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09
609회. 고요하고 은근하게
웅천주.
북쪽 금산산맥.
‘왕들의 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삼천(三天)의 신과 팔왕, 그리고 아홉 군주다.
그들의 공통점은 신격(神格)을 가졌다는 점이다.
신격을 가진 존재들 중에는 종문 출신의 인간들도 있었다.
예컨대 팔왕 중에 사천왕과 영천주의 군주 마조(媽祖), 사벌주의 군주 우샤스 킨샤사, 한산주의 군주 북두신군이 그랬다.
그중 사천왕은 ‘삼천의 신’에 가까워지면서 속세의 생활을 까마득히 잊었다.
십만 년 이상 존재한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은 찰나지간에 불과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세 명의 군주들은 달랐다.
그들은 구주를 드나들며 인간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천 년 전 마천(魔天)이 영천주를 침공했을 때 마조가 쫓아 준 일은 구주의 전설이었다.
이른 아침.
금산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사봉에 세 줄기 광채가 꽂혔다.
이윽고 마조, 우샤스 킨샤사, 북두신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조는 중년의 여성, 우샤스 킨샤사는 남녀의 구별이 모호했고, 북두신군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 군주들은 서로를 한차례 살핀 후에 침묵했다.
마치 먼저 입을 열면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누군가 나서기를 기다렸다.
“어험, 만나자고 했으면 말을 해야지. 눈치 볼 게 뭐가 있다고들 그러시나.”
북두신군이 중얼거리자 마조가 화답하듯 나섰다.
“그래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아홉 종문의 성물(聖物)이 한날한시에 깨졌어요. 그건 이후로 구주에서 우리와 같은 존재가 다시 나오기 어렵게 되었다는 걸 의미하죠. 마천에서 벌인 짓일까요?”
마조는 이번 일의 배후를 마천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시탐탐 아홉 종문의 천문(天門)을 노리고 있었으니 그럴 이유가 충분했다.
아홉 종문의 힘이 약해지면 마천을 막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북두신군의 생각은 달랐다.
“마천에서 종사들이 모르게 종문의 성물을 부술 수는 없소. 설사 마신이 나선다 해도 그건 불가능할 게요.”
“그럼 자연적으로 부서졌다는 말인가요? 그게 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말과 함께 마조는 우샤스 킨샤사를 보았다.
그 눈빛이 의미심장해서 우샤스 킨샤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마천은 찔러 본 소리고 나를 의심하는 건가?’
말하는 걸 보니 마조는 자연 현상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마천이 아니라면 남는 건 군주들밖에 없다.
평소 군주들만 구주에 관심을 보였으니까.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말이다.
“마조께서는 군주들을 의심하는 건가요?”
에둘러서 말해 봐야 시간 낭비인지라 우샤스 킨샤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군주들이라면 마기와 무관하니 종사들이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구주의 아홉 종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아홉 군주가 모두 가담했다면 모를까? 몇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렇네요.”
마조는 의외로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샤스 킨샤사를 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결국 우샤스 킨샤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겁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세요.”
“당신이 천자마와 어울린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공교롭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우샤스 킨샤사는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사실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부인해 봐야 믿을 사람도 없었다.
북두신군이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우샤스 킨샤사를 보았다.
그는 격조 높은 군주가 왜 마왕인 천자마와 어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샤스 킨샤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상고시대의 주문을 해석하는 데 도와 달라고 해서 몇 번 만난 것뿐이에요.”
우샤스 킨샤사는 ‘지혜의 신’으로 알려졌기에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마조는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자 우샤스 킨샤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설명이 더 필요한가요? 정말 나와 천자마가 성물을 파괴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어요.”
“물론 두 분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겠죠. 나도 두 분이 성물을 파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죠?”
“이곳에 오기 전 고범천왕을 찾아 뵈었어요. 그분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감히 누가 성물을 파괴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창조신의 뜻일 것이다’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나와는 무관한 일이네요.”
“과연 그럴까요?”
마조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혜의 신’인 우샤스 킨샤사가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
마조와 우샤스 킨샤사가 서로를 노려보자 북두신군이 한마디 했다.
“마조, 사천왕이 창조신의 뜻이라는데, 왜 우샤스 킨샤사를 몰아세우는 거요?”
그러자 마조가 차갑게 말했다.
“창조신이 성물을 거두어 간 것은, 구주의 인간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구주의 인간들은 신이 될 기회를 박탈당했어요. 왜겠어요? 신이 될 기회를 주었더니, 허튼짓이나 하고 다니니까 그런 거죠.”
“그러니까 내가 천자마를 몇 번 만나 도움을 준 게 허튼짓이라는 건가요? 고작 그런 이유로 성물이 파괴됐다고요?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요?”
우샤스 킨샤사가 처음으로 노기를 드러냈다.
그가 눈을 부라리자 마조도 해보자는 식으로 투기를 끌어 올렸다.
“흥!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선(眞仙)들이 속을 것 같아? 당장 그만두는 게 좋을걸? 성물이 파괴된 건 경고라고!”
두 사람 사이에 영기가 사납게 소용돌이쳤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 상대를 베어 버릴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그 중간에 끼인 북두신군의 얼굴은 태평했다.
군주들 간에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설사 원수를 만나도 다른 군주들 앞에서 싸우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입어 약해진 순간 다른 군주에게 잡아 먹히기 때문이다.
마조도 고작 의혹만으로 생사대결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우샤스 킨샤사도 마찬가지였다.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두 사람은 북두신군이 만류하지도 않았지만 투기를 가라앉혔다.
“우샤스 킨샤사,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아. 진선들도 그럴걸?”
그 말을 끝으로 마조는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우샤스 킨샤사가 북두신군에게 물었다.
“당신도 마조와 같은 생각인가요?”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소. 종문의 성물이 사라진 것은 인간의 문제니까. 하지만 성물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오. 그러니 나도 한마디 해야겠소. 뭔지 모르겠지만 그만두시오. 구주는 ‘왕들의 하늘’에서도 아주 특별하오. 창조신은 가장 연약한 인간에게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했소. 창조신이 성물을 거두어 갔다면, 그다음은 무엇이겠소? 만약 하늘의 문[天門]에 문제가 생기면, ‘삼천의 신’들도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게요.”
북두신군은 우샤스 킨샤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우샤스 킨샤사는 냉소를 쳤다.
“흥! 왜 창조신이 한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지? 성물 다음은 천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천문에 일이 생기면 뭐가 어쩌고 어째?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만 보는 주제에들.”
팔왕과 아홉 군주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삼천의 신’도 천문을 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천의 신’은 신좌에 오르고도 천문을 열지 못해 ‘왕들의 하늘’에 남았다.
상위의 차원으로 올라가고 싶어도 가질 못하니 남아 있을 수밖에.
위에 ‘삼천의 신’들이 버티고 있으니 팔왕과 아홉 군주의 운명은 뻔하다.
신좌를 노리고 싸우다가 소멸당하거나, 죽지 않는 목숨을 붙들고 세월만 보내야 한다.
“성물이 경고라고?”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 찔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일로 성물을 파괴했다는 것도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진선이 알았다면 벌써 징조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진선이 개입한 흔적은 ‘왕들의 하늘’과 ‘아래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문득 우샤스 킨샤사는 원망 어린 눈으로 창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누구도 열 수 없는 문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
수약주.
수미성.
시무현 불우산.
정오 무렵, 연적하는 검 하나를 주워 들고 소격각 뒷마당으로 향했다.
소격각을 굴러다니던 검이라 이가 숭숭 나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검술을 수련하는 데 하등의 지장이 없어서다.
자세를 잡고 황인보 사형에게 배운 초급 검공 ‘천산검영’을 떠올렸다.
-원영의 현묘한 법체(法體)를 이루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내보낼 수 있다.
황인보 사형은 분명히 그렇게 가르쳤다.
스승은 그 화신이 ‘진검기’나 ‘진검강’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노사에게는 진검기, 진인에게는 진검강인 식이다.
강호에서 법력과 내공을 나누듯, 구주에서는 원영과 내공을 구별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진검기나 진검강은 그래서 나온 표현이다.
하지만 자신은 법력과 내공이 같았다.
그리고 ‘천애불문비’의 신비한 말에 의하면 자신은 원영을 초월했다.
법력과 내공의 구별이 없었던 것처럼 원영의 힘도 쓸 수 있는 모양이다.
검을 휘두르기 전에 연적하는 차분하게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천애불문비’ 앞에서 두정(頭頂)이 열린 뒤로 몸이 이전 같지 않아서다.
구천기를 일 추천하자 전신에 힘이 차올랐다.
그 상태에서 의식을 집중하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원신(元神)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자신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혈관을 타고 피가 흐르는 것은 물론 심장이 뛰는 것과 폐의 움직임까지 보였다.
호기심에 단전을 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천기로 만든 내단(內丹)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연적하는 한순간 멍했다.
이것은 혹시 원신과 내단이 원융회통(圓融會通)함으로 생긴 변화일까?
‘하기야 신격을 담으려면 내단으로 되겠어?’
그는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간의 몸에 초월적인 영기를 담지 못해 인위적으로 만든 게 원영지체다.
하지만 자신은 그마저도 초월한 몸.
이전과 같은 내단의 형상을 기대한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
흐뭇한 눈으로 단전을 보니 마치 밤하늘에 별을 뿌려 놓은 모양새다.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보니 문득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연적하다!
나는 원영지체를 초월했다!
나는 하늘의 문을 열 사람이다!
돌연 우뚝 선 연적하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터져 나왔다.
콰자자자작-.
이윽고 원영의 영기를 초월한 힘이 연적하를 중심으로 용권풍을 일으켰다.
휘우우웅-.
영기가 만든 태풍은 점점 크기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흥이 오른 연적하는 영기의 태풍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천산검영’을 펼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고오오오오-.
그의 주변으로 푸른 검영(劍影)이 떠올랐다.
그것은 한마관 진인이 보여 주었던 진검강보다 더 짙었고, 신비하게 빛나기까지 했다.
하나, 둘, 셋……. 열, 스물, 서른…….
검영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늘어나 뒷마당의 하늘을 가득 채웠다.
하늘 가득한 진검강을 홀린 눈으로 보던 연적하의 얼굴이 굳었다.
‘헉! 소격각? 안 돼!’
이대로라면 소격각과 주변 십 장(약 30미터)은 가루가 되고 만다.
연적하는 검을 뒤로 던졌다.
뒤쪽으로 날아가던 검이 방향을 틀어 연적하의 발밑으로 파고들었다.
구천구검 구 식 능운소요(凌雲道遙)다.
내공의 제약에서 벗어난 연적하는 검을 타고 옆 봉우리로 날아갔다.
막 지면으로 떨어지려던 진검강의 검영이 일제히 그를 따라 움직였다. 마치 거대한 새 떼가 이동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은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