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18
618회. 사람을 해치는 것은 연약함이다.
신이승은 스승인 초요산 제군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대변혁의 시기’ 운운하다가 갑자기 ‘너는 어떠냐? 지금처럼 소요종의 질서와 규칙에 따르겠느냐? 아니면 그 모든 것을 뒤집어 보겠느냐?’라니.
그것도 하필이면 연적하의 예를 들어 말하니 더더욱 헷갈렸다.
‘나를 시험하시려는 건가?’
처음에 신이승은 초요산 제군이 자신의 인성을 시험하려는 것으로 오 해했다.
‘질서와 규칙을 뒤집어 보겠느냐?’는 질문은 파격을 떠나 역천(逆天)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물론 ‘대변혁의 시기’에 순천(順天)과 역천은 별 의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제자 아둔하여 스승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풀어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초요산 제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원영지기를 느낄 때까지 초급 무공을 붙잡고 있겠느냐? 아니면 너도 연적하 진인처럼 질서를 깨고 싶으냐 묻는 것이다.”
“저도 연적하 진인처럼 노사를 건너뛰고 진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소요종의 초급 무공만 붙잡고 있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요종의 역대 종사께서 창안한 무공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무공이 있습니까?”
신이승은 일단 소요종의 무공이라는 데 안도했다.
소요종의 제자가 다른 종문의 무공을 익혔다가는 무슨 덤터기를 쓸지 몰라서다.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그렇게 뛰어난 무공을 왜 역천의 공법인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졌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장된 역천의 공법이.”
“위험하다고요?”
“‘신마멸겁공(神魔滅劫功)’은 이름 그대로 신(神)과 마(魔)를 죽이는 공법이다. 부작용을 우려해 무궁전에서도 빼어 따로 보관하고 있지.”
“부작용이라 하심은?”
“사람이 종종 자신의 능력을 초월하게 될 때가 있느니라. 그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위태로울 때다.”
순간 신이승은 갑작스럽게 전해지는 기괴한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부작용과 위태로울 때라니? 신마멸겁공이 대체 무엇이기에?’
오싹하면서도 참기 어려운 호기심이 뱀처럼 머리를 들고 일어났다.
“‘신마멸겁공’의 부작용이 위태로운 것입니까?”
“너도 알고 있겠지? 구주 너머에 마천(魔天)이라 불리는 마계가 있음을.”
“예, 아홉 종문이 마천의 위험으로부터 구주를 지키고 있다 들었습니다.”
“마천의 마인들은 모두 마기(魔氣)에 물들어 있지. 그들이 본래 마인으로 태어났는지, 마기에 물들어 마인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다고나 할까. ‘신마멸겁공’은 그 마기를 몸에 심어 원영(元嬰)을 연단하는 공법이다.”
“헉! 마기를요?”
신이승이 반신반의의 눈으로 초요산 제군을 보았다.
만약 스승이 아니었다면 이런 끔찍한 소리는 귀담아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기와 원신은 상극이다. 마기가 몸에 들어오면 소멸의 위험을 감지한 원신(元神)은 필사적으로 마기를 제압하려 하지. 그 초월적인 반발력을 이용해 ‘원영지체’를 이루는 공법이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신마멸겁’의 경지에 이르면 스스로 마기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평생 마기의 침탈을 두려워하며 살아야겠지. 소요종 역사에 그렇게 살다 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마인이 될 수도 있습니까?”
“주화입마에 빠지면 마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마멸겁’의 공능을 생각하면, 주화입마의 위험 정도는 감수할 만하지 않으냐?”
신이승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마기를 몸에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신마멸겁공’은 마공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만 확실하다면 익히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당장 연적하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신마멸겁’의 경지로 어디까지 오를 수 있습니까?”
신이승의 눈이 욕망으로 이글거렸다.
그는 벌써부터 복수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더냐? 역대 종사 중에 한 분이 창안한 공법이라고. 종사까지도 가능하다. 연적하가 어떤 공법을 익혔는지 모르겠지만, ‘신마멸겁공’보다는 못할 게다.”
“제가 이레 안에 진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가능하다. 너와 공법의 상성이 잘 맞는다면.”
“그렇다면 익히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님.”
신이승이 초요산 제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초요산 제군은 선뜻 그러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말을 꺼낸 사람은 자신이지만 막상 제자가 가르쳐 달라니 꺼려진 까닭이다.
소요종에서 무경서를 따로 보관한 것은 그만큼 ‘신마멸겁공’이 안전하지 않아서다.
빠른 속도로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마기를 품는다니.
어찌 보면 정신 나간 짓이라 할 수 있다.
스승이 되어 제자를 그런 길로 인도하려니 못할 짓을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변혁의 시대.
‘천애불문비’가 사라진 지금 신이승의 경지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는 공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하아! 나의 욕심이 너를 해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구나.”
초요산 제군도 사람이다.
제자인 신이승이 입문 동기에게 얻어맞은 건 그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다스리는 무궁전에서 그랬으니 얼굴을 들고 다니기도 어려울 정도.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신마멸겁공’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래서다.
신이승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욕심은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전시켜 줍니다. 사람을 해치는 것은 연약함이지요. 제자에게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초요산 제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욕심보다 해로운 것은 연약함이다.
당장 신이승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가 신마멸겁공을 원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연약함 때문이니까.
***
연적하가 무궁전에서 전례 없는 사고를 쳤지만 파장은 크지 않았다.
종문 고수들의 폐쇄적인 생활 때문이다.
서각에 목격자는 많았지만 대화 상대가 한정적인지라 소수의 사람만 알고 넘어갔다.
백운정에 온 뒤로 연적하의 일상은 더 단순해졌다.
소격각에 있을 때는 그나마 뒷간 청소라도 했지만, 백운정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명상과 무공 수련으로 오전의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무궁전으로 이동해서 소요종의 무경서들을 읽었다.
한 시진(2시간) 정도 책을 읽으니 삭신이 쑤셔 왔다.
책벌레인 남궁연이라면 모를까?
독서와 담쌓고 지내던 그에게 한 시진은 꽤나 힘든 시간이었다.
의자에서 꿈지럭거리던 그는 ‘천산검영주해’의 책을 덮고 일어났다.
그가 나가자 귀종각에 있던 몇몇 진인들이 그의 뒷모습을 힐끔 보았다.
귀종각의 출입은 진인들부터 가능한 까닭이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청년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이내 털어 냈다.
무궁전을 떠난 연적하는 천애곡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남궁연과 닮은 구천현녀를 보았고, 자신이 큰 깨달음을 얻은 장소라 들러 본 것이다.
천애곡은 ‘천애불문비’가 없음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그동안 두문불출하던 제자들이 모두 나왔다고 하더니 그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모양이다.
한눈에 보아도 방사보다 노사나 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노조들도 있겠지?’
이리저리 둘러보던 연적하는 돌무더기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시작했지만 ‘역시나’였다.
돌무더기는 더 이상 ‘천애불문비’가 아니었다.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한 연적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자리에 있던 노인이 혀를 찼다.
“쯧쯧! 진득한 구석이 좀 있어야지. 불판 위에 올린 고기도 아니고.”
그냥 가려던 연적하가 물었다.
“돌무더기에서 뭐 느껴지는 게 있어요?”
“지난 수십만 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던 ‘천애불문비’네. 그세월이면 설사 그냥 돌덩이라 해도 영성(靈性)이 깃들었을 시간이 아닌가.”
“아, 영성…….”
연적하는 노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귀가 얇은 그는 슬그머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참 동안 돌무더기를 응시하던 연적하의 엉덩이가 다시 들썩거렸다.
영성은 개뿔.
서늘한 바람만 이따금 계곡 안쪽에서 불어올 뿐이었다.
선선한 바람에 긴장의 끈이 탁 풀린 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쯧쯧! 엉덩이가 저렇게 가벼워서야…….”
노인의 잔소리에 연적하는 억지로 눈을 떴다.
입 주위가 얼얼하고 눅눅한 걸 보니 침이라도 흘렸던 모양이다.
“쓰읍, 영성이 있기는 있어요?”
“무슨 낚시라도 하러 왔는가? 영성에 접하기 위해서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네.”
“그게 뭔데요?”
“추도영법(追到靈法)을 쓰면 바로 아는 걸 왜 나에게 묻고 있나?”
“추도영법요?”
연적하가 노인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언제 사라졌는지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었는데 기척도 없이 사라지다니?
그제야 흐리멍덩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꿈이 덜 깼었나?’
아무래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뜬금없이 ‘추도영법’이라니?
소요종에 그런 공법이 있기는 한 걸까?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천애곡을 빠져나갔다.
그는 다시 귀종각으로 돌아갔다.
비몽사몽간에 노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귀종각에 나와 있던 하중선 진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연 진인, 조금 전에 작성하셨으니 방명록은 기재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혹시 소요종에 ‘추도영법’이라는 공법이 있어요?”
“‘추도영법’이라면 상급의 공법이니 당연히 귀종각에 있습니다. 오른편 벽 쪽의 서가를 찾아보십시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아무 때라도 물어보십시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서가로 향했다.
하중선 진인은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부러운 눈으로 응시했다.
연적하는 ‘추도영법주해’를 뽑아 들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첫 장을 펼치니 ‘영기를 보는 법’이라는 글귀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오룡궁의 통천안과 같은 안법(眼法)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내용을 읽을수록 기이했다.
‘신령스러움에 도달한다’는 추도영법은 단순한 안법이 아니었다.
‘이걸 왜 영기를 보는 법이라고 하지?’
물론 영기를 보면 신령스러움의 구별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영기를 보는 것은 목적이 아니다.
추도영법의 목적은 ‘신령스러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추도영법을 쓰라고 했나?’
생각해 보니 노인은 ‘추도영법으로 보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추도영법주해’는 안법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했다.
‘왜 그 노인은 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연적하가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움켜잡고 끙끙거릴 때다.
갑자기 상큼한 방향(芳香)이 코끝으로 밀려왔다.
돌아보니 은소선이 곁에 서 있었다.
‘넌 또 왜?’
그가 눈을 부라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은소선이 급히 말했다.
“제 스승님께서 찾으세요.”
순간 연적하는 가슴이 철렁했다.
종사는 종문 제자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반인반신의 존재인 까닭이다.
“그분이 왜?”
연적하의 목소리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젠장! 이걸 어쩐다.’
아무래도 어제 은소선을 때린 일로 그러는 것 같다.
그때는 종사의 제자도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현실의 냉혹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