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22
622회. 삼살(三殺)의 규칙이 있는데 점점 험해질까요?
연적하가 ‘백호’와 ‘붉은 용’을 포룡검으로 잡은 건 무슨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다.
‘백호’와 ‘붉은 용’의 대치를 보다가 ‘저것들이 영체(靈體)라면 포룡검으로 제어가 되겠지?’ 하고 포룡검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할 수 있으니 했다’ 정도였다.
그런데 뒷일을 생각하기도 전에 두 기운이 합쳐져 버렸다.
뜻하지 않게 그 자리에서 천지포태(天地胞胎)를 이루어 버린 셈이다.
천지포태의 과정을 통해 생령(生靈)이 된 진령(眞靈)은 연적하를 근원으로 인식하고 귀원(歸元)하려 했다.
연적하가 천지포태를 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고오오오 -.
두 손으로 백호와 붉은 용을 잡고 있던 연적하에게 진령이 휘몰아쳐 갔다.
천지포태를 거쳐 생령이 된 진령은 ‘원영지체’ 정도는 한순간에 가루로 만들 정도로 막강했다.
그러나 다행히 연적하는 ‘원영지체’를 초월한 몸.
대해(大海)와도 같은 진령의 힘을 받아들이고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연적하는 움찔움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이 흡자결로 빨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흡수되는 진령의 양이 상상을 초월해서다.
눈앞에서 거대한 둑이 터진 것 같았다.
‘이러다가 몸이 터지면 어쩌지?’
슬그머니 걱정이 된 연적하는 추도영법을 펼쳐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진령이 밤하늘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진령이 바다라면 자신은 하늘 같았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일다경(약 20분)쯤 지나자 진령도 끝을 보이는 듯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울리던 공기의 파동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연적하는 반개했던 눈을 떴다.
가장 먼저 허공을 향해 들려 있는 자신의 두 손이 보였다.
아직도 천애곡에는 진령의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슬쩍 손을 내렸다.
스스로 온다고 했으니 굳이 손을 들 이유는 없었다.
한편 연적하의 옆에서 명상하고 있던 검서린 진인도 태을 존자가 말한 영성을 느꼈다.
처음부터 그녀가 느낀 것은 아니다.
진령이 찾아와서 낸 ‘범의 소리’와 ‘용의 울음’을 들은 이는 연적하였다.
하지만 연적하가 천지포태를 한순간, 천애곡에 진령의 광풍이 불었다.
그때 검서린은 천애곡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았다.
태을 존자가 말한 영성이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 진인도 이걸 알고 기다린 걸까?’
영기의 광풍을 홀린 듯 보던 검서린이 슬쩍 옆자리의 연적하를 보았다.
여적하는 기이하게 두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영성을 흡수하는 건가?’
흡자결에는 저런 자세가 없다.
그래서 검서린은 연적하의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익히 알려진 것과 전혀 새로운 방법을 두고 고민한 것이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는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영기를 움켜잡듯 하고, 흡자결을 썼다.
하지만 영기는 눈곱만큼도 흡수되지 않았다.
일다경 동안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동안 천애곡을 휘감고 있던 영기의 광풍이 점차 미풍으로 변해 갔다.
전부 연적하가 빨아들였든지, 천지로 흩어졌든지 둘 중 하나이리라.
정말 연적하가 그걸 전부 흡수했을까?
흡자결도 없이?
검서린은 즉시 흡자결을 중지하고, 연적하의 흉내를 내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영기는 곧 다 사라질 상황이라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그녀는 두 팔을 높이 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영기야, 나에게도 좀 와 줘.’
연적하 주위를 살랑살랑 맴돌던 미풍이 검서린 진인에게도 흘러갔다.
그리고 검서린을 휘감았다.
이윽고 진령의 잔재가 그녀의 두정(頭頂)으로 밀려 들어갔다.
순간 검서린은 머릿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를 들었다.
꽈르릉!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산월만겁공(山月萬劫功)의 공법을 외웠다.
미증유의 영기가 임맥(任脈)을 타고 내려와 단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먹은 영지선초나 내단, 선약과는 차원이 다른 강렬한 힘이었다.
검서린은 열락(悅樂)에 들뜬 얼굴로 산월만겁공을 쉬지 않고 운용했다.
단전에 첩첩이 영기가 쌓여 갔다.
하지만 ‘천애불문비’의 진령을 담기에 그녀의 단전은 너무도 작았다.
단전을 가득 채운 진령은 이내 흘러넘쳤다.
진령은 그녀의 체내를 떠돌다 독맥(督脈)을 타고 올라와 날숨으로 빠져나갔다.
그것만으로도 검서린은 ‘원영지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침내 ‘원영 십 성’에 도달한 것이다.
‘원영 육 성’에서 ‘원영 십 성’이면 근 팔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셈이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 다시없을 기적이었다.
한참 만에 검서린 진인은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아!’
그녀는 내심 한숨을 흘렸다.
날숨으로 빠져나간 영기가 아까워서다.
‘아니, 덕분에 살았을지도.’
그녀는 아쉬운 마음을 수습했다.
겨우 ‘원영지체’를 완성한 상태에서 그 이상의 영기는 무리였다.
영기가 스스로 빠져나갔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무슨 화를 당했을지 모른다.
독요(獨羅)의 경지라면 모를까?
‘원영지체’인 상태에서는 처음부터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이제 비경에서 검령을 얻기만 하면 되는 건가.’
검령의 도움을 받으면 빠르게 독요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구주에 있는 종문은 모두 그런 식으로 가르쳤고, 실제로 그렇게 독요가 됐다.
자신은 이미 ‘원영 십 성’이니 검령을 얻기만 하면 누구보다 빨리 독요가 될 터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영지체’의 극에 도달한 육체는 있는 듯 없는 듯 했고, 눈은 바람의 결마저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진인과 지금 자신의 상태는 너무도 달랐다.
‘원영 육 성’에서 ‘원영 십 성’으로 비약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천애불문비’의 영기가 뛰어나서 그런 것일까?
스승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이어 가던 검서린은 뒤늦게 뭔가 자신이 빠트렸다는 걸 알았다.
‘연적하?’
‘원영 십 성’의 기연에 취해 연적하 진인을 잊고 있었다.
미풍에 휘말린 자신이 이럴진대, 영기의 태풍을 맞은 연적하는 어떨까?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적하 진인이 예의 그 만사 귀찮다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검서린의 목울대로 ‘꿀꺽’하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묻고 싶었다.
당신은 저 영기의 폭풍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하지만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두려웠다.
고작 미풍의 끝자락을 잡은 것만으로도 ‘원영 십 성’에 도달했는데, 그는 태풍의 중심에 있었다.
그가 무덤덤한 얼굴로 있다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건, 자기기만이다.
“연 진인.”
“예?”
“이제 다 끝난 건가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서린은 그렇게 물었다.
‘천애불문비’의 영성이 남아 있는지, 없는지, 그라면 알 것 같았다.
“예.”
“…….”
역시 ‘예’란다.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말이다.
검서린의 시선이-천애불문비로 불리던-돌무더기로 향했다.
소요종의 성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웠다.
구주에서, 아니 ‘왕들의 하늘’에서, 소요종의 주춧돌이 사라진 까닭이다.
***
불우산.
용화봉.
초월전.
검서린 진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숙소로 돌아와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새 옷으로 단장하니 문득 연적하 진인이 떠올랐다.
그에게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무려 엿새 동안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건만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뻔뻔하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연적하 진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씁쓰름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던 그녀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고작 엿새를 떠나 있었을 뿐인데, 모든 게 낯설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람이 변한다는 건 이렇게나 무섭다.
스승의 집무실로 가는데 몇몇 원영 초반의 진인들이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검 진인.”
“드디어 오셨군요.”
검서린 진인은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한 후에 그들을 지나쳐 갔다.
“놀라운 성취로구나!”
검서린 진인을 보자마자 한산월 제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산월 제군은 엿새 만에 돌아온 제자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검서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태을 존자님의 말씀이 맞았어요. 제자 ‘천애불문비’의 영기를 취해 ‘원영 십 성’을 이루었어요.”
“엿새 만에 ‘원영 십 성’이라니! 실로 천고에 다시 없을 기연이로다! 연적하 진인이 너와 함께 천애곡에 있었다고 들었다. 그도 영기를 얻은 것 같더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랬을 거예요.”
“역시…….”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한산월 제군이 지나가듯 물었다.
“그와 다시 승부를 가린다면, 어찌 될 것 같더냐?”
“제자가 질 거예요.”
한산월 제군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검서린을 보았다.
엿새 전까지만 해도 모르겠다고 하던 사람이 이젠 질 거란다.
‘원영 십 성’에 올라 그렇게 말했다면 그럴 게다.
아무래도 연적하의 경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너의 경쟁자가 연적하뿐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너는 혹 태을 존자와 초요산 제군이 새로 들인 제자들에 대해 알고 있느냐?”
“상급의 영기를 가졌다고 들었어요.”
“어제 그들 모두 진인의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 모두 ‘원영 칠 성’에 이르렀더구나.”
“예? 입문한 지 보름 만에 ‘원영 칠 성’이라고요?”
검서린 진인은 스승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백여 년 이상 걸릴 일을 보름 만에 해내다니?
연적하를 제외하고 종문 역사상 그 정도로 빠른 진전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영지 선초나 내단 따위로는 불가능한 일이니 뭔가 특별한 수를 썼겠지.”
“보름 만에 방사를 진인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나요?”
“종문에서 금지한 공법들을 사용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말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연적하가 ‘천애불문비’의 마지막 기연을 얻어 앞으로 치고 나가니 마음이 급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걸린 일인데…….”
“너라면 입문 동기인 방사가 진인이 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겠느냐? 더구나 수단이 되어 줄 ‘천애불문비’라는 희망도 사라진 마당에?”
“…….”
검서린 진인은 차마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자신이 ‘원영 십 성’에 도달해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지, 그게 아니었다면 속이 다 타서 재가 되었을 것이다.
제자가 착잡한 얼굴을 하자 한산월 제군이 화제를 돌렸다.
“앞으로의 비경은 과거와 달리 점점 험난해질 게다. 그러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번에 검령을 얻도록 해라.”
“그래도 삼살(三殺)의 규칙이 있는데 점점 험해질까요?”
비경에는 삼살의 규칙이 있다.
첫재는 불살(不殺),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둘째는 반살(反殺), 죽이려는 자를 죽인다.
셋째는 대살(代殺), 대신해서 죽인다.
대살은 본래 살인자를 죽인다는 뜻이지만, 종문에서는 ‘대신해서 죽인다’로 사용했다.
그와 같이 삼살은 비경에서 종문 제자를 보호하고, 종문 간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비경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셋째는 비경 밖에서 진행되는 종문 간의 전쟁이다.
예컨대 비경에서 어느 한 종문이 살육을 크게 저지르면, 피해를 입은 종문이 밖에서 그만큼의 적을 죽여 숫자를 맞추는 식이었다.
그런 삼살의 규칙 덕분에 비경은 지금까지 큰 말썽 없이 통제되어 왔다.
한산월 제군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아홉 종문의 성물이 사라졌으니 후대(後代)는 선대(先代)를 따라잡기 어렵게 됐다. 여기서 후대마저 잃으면 그 종문의 미래가 어찌 되겠느냐? 외부와 차단된 비경에서 천지종이 살겁을 저지를 수도 있음이야.”
검서린 진인은 그제야 스승의 염려를 알 수 있었다.
‘천지종에서 삼살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생각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