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28
628회. 돌아가고는 싶고?
천뢰종의 진인들은 차마 장우검 진인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와 반대로 구사일생한 천태종 진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들의 시선이 심통이라는 교활하게 생긴 천뢰종의 늙은이로 향했다.
대화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저 심통은 과거 연적하 진인의 식솔이었던 게 분명하다.
비경에서 한때 모시던 가주와 재회한 것은 좋았으나, 대놓고 가주의 뒤통수를 쳤으니 좋게 끝나기는 틀렸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적하가 심통에게 다가갔다.
“왜 말이 없어 이 늙은이야!”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심통의 반응이다.
그는 놀란 얼굴이지만 그렇다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람처럼 덜덜 떨지도 않았다.
오히려 두 손을 맞잡고 얼굴 높이로 들어 올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
“연 공자님! 대공(大功)의 성취를 경하드립니다!”
“무슨 개소리야?”
“이 심통은 공자님께서 구주에서도 종횡무진 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랄. 석경장이 실개천이라며?”
“실개천이 흘러 흘러 바다로 가지 않습니까? 지금 연 공자님처럼 말입니다.”
“됐고, 가까이 와.”
심통이 쭈뼛쭈뼛 다가가자 연적하가 그의 면상을 주먹으로 내갈겼다.
퍼억-.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심통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천뢰종과 천태종 진인들은 심통이 즉사했다고 믿었다.
뭔가 통째로 터져 나가는 소리만 들어서는 죽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은 또 빗나갔다.
심통 진인이 꾸물꾸물하면서 기어코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이쿠! 골이야. 갑자기 백교 생각이 나네요. 그 늙은이가 이렇게 처맞았는데.”
“…….”
연적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주먹을 매만졌다.
면상을 한 대 얻어맞으니 무영신투 백교가 떠오른 모양이다. 백교는 오봉산채에서 적풍채로 옮겼다가, 천지맹의 총사인 제갈승운에게 살해당했다.
강호에서의 옛일을 떠올리자 들끓던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연적하를 살피던 심통이 슬슬 밑밥을 뿌렸다.
“공자님, 제가 천뢰종의 공법을 익히다가 정신이 회까닥했던 모양입니다. 한 대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요. 앞으로도 제가 분수를 모르고 나대면 한 번씩 가르침을 내려 주십쇼.”
“흰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된 일인지나 말해.”
“천뢰종요?”
“누가 천뢰종이 궁금하대?”
그제야 심통이 시퍼렇게 멍든 광대뼈 어림을 매만지며 말했다.
“공자님이 가시고 나서 영 사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팔황신모에게 찾아가 나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대가로 청부라도 할 줄 알았는데 웬걸?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보내 주대요? 그렇게 왔습니다.”
“천뢰종에는 어떻게 들어간 거야? 나이가 걸렸을 텐데.”
“그게 사연이 좀 있습니다. 제가 도착한 게 천관산맥이었습니다. 거기서 혈주종의 우이단녹록에게 쫓기던 옥청 노조를 만났지 뭡니까? 제가 이 금강저로 우이단녹록을 쫓아내니까, 옥청 노조가 고맙다고 함께 천뢰종까지 가자고 하데요? 그때 천뢰종에 갔다가, 옥청 노조의 외문 제자가 된 겁니다. 노조가 외문 제자를 받을 때는 나이와 무관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천뢰종에서 ‘원영 칠 성’을 이룬 거야?”
“예, 천뢰종의 공법이 이상하게 저하고 잘 맞더라고요. 공자님도 흡자결이라는 걸 배우셨습니까?”
“알긴 알아.”
“그게 아주 신공입니다. 영지 선초, 내단, 단약, 심지어 종문 제자의 영기까지 아주 시원하게 쫙쫙 빨아들입니다. 강호의 ‘흡정공’과 비슷한데 부작용이 없으니 정말 대단한 거죠. 저에게 잘 맞는 걸 보면 공자님과도 잘 맞을 겁니다.”
“그 흡자결로 ‘원영 칠 성’을 이룬 거야?”
“예, 옥청 노조가 하도 제 성취가 빠르니까 끝을 보겠다며 영지 선초와 내단, 단약 같은 걸 많이 가져다 주었거든요. 그 덕에 남들 백 년 걸 릴 일을 뚝딱 해치웠지요.”
“그게 고마워서 뼛속까지 천뢰종의 제자가 된 거고?”
“어이쿠! 그럴 리가요. 저의 뼈는 이미 석경장에 묻혀 있습니다. 제가 목숨 걸고 ‘왕들의 하늘’에 온 걸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심통의 뻔뻔한 반문에 연적하는 토를 달지 않았다.
비록 나중에 그가 변심했지만 처음의 마음만은 진심임을 아는 까닭이다.
문득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석경장 사람들이 걱정되네.”
“왜요?”
“한창 석경장이 당가와 안 좋을 때 왔잖아.”
“그렇다고 설마 남궁세가가 뒤에 있는데 석경장을 건드리려고요? 그보다는 연 공자님 걱정을 하십쇼.”
“나? 왜?”
“천뢰종의 일을 방해하지 않았습니까? 천뢰종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이 자리에 있는 천뢰종과 천태종 모두를 죽여 없애시지요? 공자님이 부담되시면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참 극단적이야.”
“천뢰종에서 물고 늘어지면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줘 패면 되지.”
“공자님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당해 내지 못합니다. 특히 종문의 고수들은 강호의 고수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심통은 한번 마음을 정하면 뒤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도리어 천뢰종과 천태종 모두를 죽이라고 권했다.
멍하니 듣고 있던 천뢰종과 천태종 고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잘 나가던 이야기가 왜 엉뚱하게 그리로 뒷단 말인가!
특히나 심통과 내내 함께 행동했던 장우검 진인의 배신감은 이루 말하기가 어려웠다.
‘한 번 배신한 자는 두 번 세 번 배신한다더니. 내 눈이 삐었지. 저런 놈을 믿고 함께 다녔다니!’
겨우 진정시킨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이제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연적하보다 심통이 더 죽도록 미웠다.
그러나 연적하는 모두 죽이라는 심통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 씨.”
“예.”
“마음을 곱게 써. 그런 게 다 업(業)이라고.”
“저도 알지만, 내가 먼저 살고 난 후에 남 생각을 해 줘야지요. 남 먼저 생각해 주다가 내가 죽으면 그건 그냥 개죽음일 뿐입니다.”
“쯧쯧! 내가 검령을 얻으면 구주의 종문은 나를 건드리지 못해. 모르겠어?”
심통은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그냥 하는 소리인지, 정말 그런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인지 궁금해서다.
‘헐! 진심이구나.’
강호에서 연적하와 붙어 다녔던 심통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종사와 제군, 노조 등 초강자가 수두룩한 종문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손 줘 봐.”
갑작스러운 연적하의 요구에도 심통은 묻지 않고 한쪽 팔을 쑥 내밀었다.
연적하는 심통의 완맥을 잡고 영기를 흘려보냈다.
연적하의 영기가 심통의 몸을 한 바퀴 빠르게 돌고 다시 빠져나왔다.
청량한 기운에 관통당한 심통이 몸을 한차례 떨었다.
‘원영 칠 성’의 고수가 외기에 그토록 생생하게 반응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게 은근히 마음에 걸린 심통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어떻습니까? 쓸 만한가요?”
“쓸 만하냐고?”
연적하가 복잡한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원영 칠 성’이라기에 영 찜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옥청 노조라는 스승은 제자가 이 지경이 되도록 왜 내버려 두었는지 모르겠다.
“심 씨, 스승이라는 옥청 노조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가 봐?”
“예? 갑자기 그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씀이십니까? 사이가 안 좋다니요?”
“심 씨, 흡자결만 주야장천 외우고 삼백 자 구결은 때려치웠지?”
“삼백 자 구결이 영기를 티끌만큼 모은다면, 흡자결은 바가지로 쏟아붓는 식이라서요. 공자님도 흡자결을 써 보시면 혀를 내두르실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지금 혀를 내두르고 있어. 당신은 지금 외줄 타기를 하고 있어.”
“예에?”
심통이 눈을 휘둥그렇게 치떴다.
“내가 익힌 공법은 원영지체를 초월하게 만들어 주는 공법이야. 하지만 심 씨는 그걸 삼백 자밖에 못 외웠지.”
연적하가 자꾸 심 씨, 심 씨 하자 심통이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 공자님 심 씨라니요. 전처럼 심 노인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냐. 심 씨가 천뢰종에 뿌리를 내렸는데 심 노인이라고 하면 안 되지.”
“뿌리를 내리다니요. 제 뼈는 석경장에 묻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가 석경장에 가서 확인해 볼게. 여하튼 심 씨, 잘 들어. 옛정을 생각해서 말해 주는 거니까. 심 씨가 연성한 삼백 자 구결의 요체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허무지요.”
툭하면 공(空)과 허(虛)를 말하고, ‘허무한 가운데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걸 모르면 바보다.
“그래, 우리가 익힌 공법은 비우고 버리면서 얻어지는 거야. 종문의 공법은 반대지. 빼앗고 빨아들여 내 몸에 채워 나가야 해. 이 둘이 한 몸 안에 공존할 수는 없어. 옥청 노조에게 삼백 자 구결을 가르쳐 줘도 그는 익히지 못할 거야. 왜냐면, 그랬다가는 예전에 심 씨가 경험한 산공(散功)을 맞닥트리게 될 테니까.”
“하지만 저는 흡자결로 영기를 모을 수 있었는데요?”
“그래, 삼백 자 구결을 때려치우고 흡자결로 지금까지 왔겠지. 심 씨 몸에는 두 개의 기운이 있어. 삼백 자 구결로 키워 온 영기와 흡자결의 영기.”
“제가 원영(元嬰)의 경지에 올라갈 때 둘이 합쳐지지 않았다는 겁니까?”
“어, 본래 합쳐져야 정상인데 삼백 자 구결과 흡자결은 상극인가 봐. 그러니 각기 다른 영기가 만들어졌겠지.”
“공자님의 눈에는 그게 보이고요?”
“노조쯤 되면 영안(靈眼)이 열렸을 테니 옥청 노조도 알고 있을걸?”
“옥청 노조가 알면서도 말해 주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야 모르지. 알고도 그랬는지, 몰라서 말하지 않았는지. 나중에 물어봐.”
“공자님 생각에는 왜 영기가 합쳐 지지 않은 것 같습니까?”
“가르쳐 줘? 듣고 나면 실망할지도 몰라.”
“가르쳐 주십쇼.”
“구천여일진경(삼백 자 구결의 모체)은 더디지만 완전한 공법으로 원영지체를 초월하게 해 주지. 그에 비해 흡자결은 빠르지만 불완전한 공법이야. 심 씨도 말했잖아. 강호의 흡정공과 비슷하다고. 완전한 공법이 불완전한 공법을 거부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 만약 심 씨가 삼백 자 구결을 익히지 않았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지.”
“결국 공자님에게 배운 삼백 자 구결이 원흉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해. 나는 다 외웠잖아.”
“끙!”
심통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맞는 말이다.
과거 연적하는 오봉산에서 구백 자 전부를 가르쳤다. 그중에 삼백 자만 외운 것은 자신이었다.
그때는 삼백 자를 외운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거들먹거렸는데, 거기에 발목이 잡힐 줄이야!
연적하가 계속해서 말했다.
“삼백 자 구결로 만든 영기와 흡자결의 영기가 충돌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때는 또다시 산공이 일어날 거야. 예전에 오봉산에서 경험한 산공과는 위력이 다른. 어마어마한 산공이 될 테지.”
“지금까지 이상이 없었는데요?”
“흡자결로 만든 영기가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일 거야. 삼백 자 구결이라 해도 그 공능은 흡자결보다 뛰어날 테니까. 다만…….”
“다만 뭐요?”
“앞으로가 문제 아니겠어? 삼백 자 구결의 영기가 경계할 정도로 흡자결의 영기가 왕성해지면, 결국 두 개의 영기가 충돌하고 말 거야. 그 순간 공든 탑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테지.”
“여기서 멈추라는 말씀이십니까?”
“멈출 수 있겠어? 아까도 저 사람들 대신 처리해 준다면서 영기를 뽑아 먹으려고 했지?”
“그게 종문의 방식이니까요.”
“내가 심 씨라면 지금이라도 삼백 자 구결로 흡자결의 영기를 녹여 버릴 거야.”
“그럼 정말 죽도 밥도 안 되는 겁니다.”
“여기서 왜 죽과 밥을 찾아? 석경장에 뼈를 묻어 놨다면서? 석경장의 심통으로 돌아가기는 싫은가 보네?”
심통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석경장 시절도 그립지만, 눈앞에 보이는 장생불사도 포기하기 어려웠다.
한참 만에 심통이 물었다.
“석경장에 돌아갈 방법이 있기는 한 겁니까?”
“돌아가고는 싶고?”
“…….”
연적하는 고민에 잠긴 심통을 남겨 두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