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38
638회. 네가 천지종을 지휘하도록 해라
소요궁.
세 명의 제군은 연적하와 진인들을 해산시킨 뒤 다시 소요궁으로 돌아갔다. 진인들 앞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다.
태을 존자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군들이 자리에 앉자 태을 존자가 손가락으로 술병을 가리켰다.
그러자 둥실 떠오른 술병이 제군들 앞의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태을 존자와 제군들은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어쩌면 이것이 축하연에서 보이지 않은 존자와 제군들의 진면목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상상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 연적하 제군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혹은 다시 시작된 천지종의 도발 때문인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제군들 중의 선임인 초요산 제군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태을 존자님은 왜 갑자기 칠요검령을 회수하신 겁니까? 칠요검진(七曜劍陳)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진곤 제군과 한산월 제군도 궁금하다는 눈으로 태을 존자를 보았다.
그러자 태을 존자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연적하의 검령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칠요검진까지 써야 되겠소?”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번 일로 진인들이 오해를 하면 어쩌나 싶어서.”
초요산 제군이 슬쩍 태을 존자의 안색을 살폈다.
연적하의 검령과 부딪친 직후 태을 존자의 검령이 사라졌으니 진인들 사이에서도 말들이 많을 터였다.
어색한 침묵이 소요궁에 내려앉았다.
문득 태을 존자가 제군들에게 물었다.
“오해라. 제군들이 보기에 연적하의 검령은 어땠소?”
한산월 제군이 답했다.
“검령은 뛰어나 보였습니다만 연 제군이 통제하기에 버거워 보이더군요.”
진곤 제군이 한마디 보탰다.
“무상검령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어 보였습니다만, 연 제군이 동화(同化)에 성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초요산 제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랬다.
연적하와 구천검령의 동화에는 문제가 많았다.
태을 존자가 손을 대자 동화가 약해져 움직이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초요산 제군, 그대가 보기에는 어떠하던가?”
“제 생각도 두 분 제군들과 같습니다. 구천검령 자체는 훌륭하나 아직은 미흡함이 많아 보였습니다.”
“그랬을 게요. 연적하가 검령을 얻은 게 고작 보름 전이 아니오? 한평생을 노력해도 동화가 제대로 될까 말까 한데 보름 만에야 오죽하겠소.”
제군들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을 존자의 말이 이어졌다.
“백 년? 늦어도 천 년쯤 지나면, 연적하는 종문에 다시 없을 존재가 될 게요. 어쩌면 지금의 내 자리에 그가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소.”
태을 존자의 말에 제군들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지나친 기대이십니다.”
“연 제군이 종사라니요? 과한 말씀이십니다.”
“연 제군의 검령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태을 존자가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한평생 ‘영기의 질’을 중요시하던 사람이오. 연적하를 제자로 거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하나 있소. 그건 바로 지금이 대변혁의 시대라는 거요. 어떤 일도 가능한 시대라 이 말이오.”
그 말에는 제군들도 반박하지 못했다.
반년 만에 방사가 제군이 되다니! 종문 역사에 그런 일은 없었다.
태을 존자의 말대로 이제는 과거와 달리 예측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다행인 것은 연적하가 우리 소요종에 있다는 사실이오. 만약 그가 천지종에 입문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게요.”
한산월 제군이 갑자기 생각난 듯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천지종에 대단한 고수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태을 존자가 계속 말해 보라는 눈으로 한산월 제군을 응시했다.
“천지종의 빙설화가 처음 고산준령을 발견하고 봉황음(鳳凰吟)으로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설마 추회 존자의 그 봉황음을 말하는 거요?”
태을 존자가 놀란 눈으로 한산월 제군을 보았다.
봉황음은 음공의 극치로 천지종 종사인 추회 존자의 절기였다.
종사급에 이른 영기가 아니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음공이 봉황음이다.
그런데 진인이 그걸 펼쳤다니?
천지종에 연적하와 같은 고수가 또 있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 사막 전체에 울려 퍼졌다니 봉황음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천지종의 진인들이 빙설화를 극진히 떠받들었다고 하더군요.”
“…….”
태을 존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천지종에도 연적하처럼 규격을 초월한 고수가 나타난 모양이다.
이쯤 되면 아무리 대변혁의 시대라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하늘은 대변혁의 시대에 진인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시는지 모르겠다.
한산월 제군이 계속해서 말했다.
“고산준령에서 연 제군과 빙설화가 만나 한차례 싸웠다고 합니다.”
태을 존자와 진곤 제군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빙설화가 소요종 진인들을 죽이려 할 때 연 제군이 막은 것이었지요. 결국 연 제군의 검공에 빙설화가 달아나는 것으로 끝이 났답니다.”
한산월 제군이 말을 마치자 태을 존자가 물었다.
“연적하는 빙설화에 대해 뭐라고 하더이까?”
“비경에 들었던 제자들에게 전해 들었을 뿐, 아직 연 제군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가마히 듣고 있던 태을 존자가 진곤 제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곤 제군.”
“예.”
“무상각과 제행각의 각주들에게 지급(至急)으로 명하시오. 천지종의 빙설화에 대한 정보를 모으라고. 정보의 가치에 따라 금은은 물론 선단과 혼석, 영석도 아낌없이 지불하라 하시오.”
“혹 존자께서는 추회 존자가 빙설화를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빙설화가 봉황음을 사용한 것은 추회 존자의 뜻이 분명하오. 구주를 진동시킬 고수가 천지종에 있음을 알리고 싶었겠지. 그렇다면 비경 다음은 소요종 과의 전쟁일 게요.”
“명대로 하겠습니다.”
진곤 제군은 토를 달지 않았다.
천지종에 연적하와 비슷한 고수가 출현했다면 알아 두어 나쁠 게 없으니까.
그때 초요산 제군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천지종에서 빙설화를 내세운다면 우리도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종사급에 도달한 고수라면 제군이나 노조로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소요종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고수로 대처함이 마땅했다.
물론 소요종에도 그만한 고수가 있다.
연적하 제군이다.
하지만 초요산 제군은 차마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연적하의 명성이 올라가는 만큼 태을 존자의 자리가 흔들리는 까닭이다.
태을 존자에게 ‘어쩌면 지금의 내 자리에 그가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소’라는 말을 들은 뒤로 더 조심스러웠다.
비록 종문 역사상 두 명의 종사가 존재한 적은 없지만, 태을 존자의 말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대변혁의 시기에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을까!
연적하의 빠른 성취를 생각하면 조만간 난감한 일이 생기고도 남았다.
그런 초요산 제군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태을 존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에게도 연적하가 있지 않소? 빙설화의 문제는 그에게 맡기면 될 게요.”
순간 제군들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태을 존자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또 다른 뜻을 감지한 때문이다.
추회 존자와 달리 태을 존자는 연적하를 전면에 내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지 빙설화의 대항마로 연적하를 사용하겠다는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이라면 연적하에 대한 태을 존자의 경계가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
신비지경에서 여섯 종문이 충돌한 사건으로 구주(九州)가 발칵 뒤집혔다.
오백 년 전 천지종과 소요종의 전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충격이 구주를 휩쓸었다.
당장 여섯 개 주의 성주들은 징집령을 내려 군대를 편성하고, 종문으로 관리를 파견했다.
윗분들의 전쟁에 뒷짐만 지고 있을 수도 없으니 흉내를 내는 식이다.
사실 종문의 전쟁에 백성이 끼어들 틈은 없다.
단시 삶이 팍팍해질 뿐이다.
전쟁 상대인 주(州)를 마음대로 통행하기 어렵고, 교역도 빡빡해진다.
그러니 여섯 개 종문의 충돌은 구주의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일이었다.
***
한산주.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안학궁(安鶴宮).
오전.
종사인 추회 존자가 환하게 웃으며 맞은편에 자리한 빙설화를 보았다.
“면사를 벗으니 보기 좋구나. ‘삼천(三天)의 신’이 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니, 검령을 얻고 심경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냐?”
“네, 더 이상 가리고 다닐 이유가 없어서요.”
“무엇 때문에 면사를 벗었는지 물어도 되겠느냐?”
“세상과 저를 나누지 않아도 되니 벗었을 뿐이에요.”
“그렇구나.”
추회 존자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말을 뱅뱅 돌리는 걸 보니 다시 물어도 가르쳐 줄 것 같지 않아서다.
“그런데 비경에서 소요종 진인과 싸우다가 피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찌 된 일이냐?”
“소요종에 뛰어난 고수가 있었어요. 좀처럼 승기를 잡을 수가 없어서, 그냥 피했어요. 그와 생사결을 하기 위해 비경에 들어간 게 아니었으니까요.”
“네가 생사를 논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고?”
추회 존자가 반신반의한 눈으로 빙설화를 보았다.
건곤벽의 기연으로 종사보다 뛰어난 영기를 가진 그녀가 생사 운운하다니?
상대가 제군이나 존자라면 모르겠다.
고작 소요종의 진인을 상대로 생사결이라니 기가 막혔다.
“모르죠. 저처럼 그도 성물의 기연을 얻었을지. 그의 영기는 저의 아래가 아니었어요.”
“검령을 얻은 지금 그와 다시 싸운다면 어떨 것 같으냐?”
“그도 검령을 얻었다면 비경 안에서와 같은 결과가 나올 테지요.”
“자신이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런 거냐?”
“장차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그래요. 그와의 싸움에서는 검령과의 동화가 승패를 가를 거예요.”
추회 존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허어! 구주에 너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나. 그것도 하필 소요종이라니.”
“아직은 그를 상대할 자신이 없어요. 검령과의 동화가 끝나기 전까지 피하고 싶어요.”
“소요종의 병탄을 뒤로 미루자는 소리냐?”
“순서를 바꾸었으면 해요. 어차피 종문 간의 전쟁은 피할 수가 없어요. 서쪽의 태상종과 함께 무극종을 치고, 그 후에 태상종과 건곤일척(乾坤一鄕)의 승부를 보세요. 그때쯤이면 검령과의 동화에도 진척이 있을 거예요.”
“먼저 태상종, 무극종을 병탄한 후에 소요종을 치자는 말이구나?”
“그런 셈이죠.”
추회 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주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말이니 맞을 것이다.
구주의 종문들이 함께 천문을 연구한 적도 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지금을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는 종사가 자신만은 아닐 게다.
자신이 소요종의 병탄을 시작으로 생각했듯 태상종과 천뢰종도 그럴 것이다.
성물의 파괴로 종문 전쟁이 촉발되었다는 것을 창조신은 알려나 모르겠다.
이미 종문 간 전쟁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했다.
북쪽의 법요종, 광염종, 혈주종이 움직이기 전에 중서부와 남서부를 정리해야 한다.
아쉽지만 지금은 소요종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태상종에 사자를 보내마.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찌해야 하느냐?”
“우리가 무극종과 손잡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 거절하지 못할 거예요.”
그 한마디 말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추회 존자의 머릿속이 정리됐다.
문득 그녀는 탁자 서랍에서 천지종의 종사패를 꺼냈다.
회한 어린 눈으로 종사패를 보던 추회 존자가, 슬며시 종사패를 빙설화 앞으로 밀며, 말했다.
“오백 년 전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나는 큰 전쟁에 소질이 없다. 오죽하면 다 빼앗은 것을 도로 내어 줬을까. 이 시간 이후로 네가 천지종을 지휘하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