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39
639회. 뒷일은 책임 못 져요
수약주.
수미성.
소요종 종산 불우산.
빙설화(남궁연)의 예상과 달리 소요종에서 연적하의 위상은 좋지 않았다.
천지종의 추회 존자가 빙설화에게 종사패를 위임할 정도로 띄워 주었다면, 소요종의 태을 존자는 은연중에 견제하는 태도를 취했다.
소요종의 제군들은 종사인 태을 존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연적하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소요종에서 유명무실한 제군이 되어야 했다.
그래도 제군이라고 연적하가 홀로 기거할 곳이 제공됐다.
삼관정(三觀亭)이라는 곳으로 노조가 독립 생활을 하다 우화등선한 곳이었다.
다른 제군들의 거처에 비하면 초가집 같은 곳이지만 연적하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약속대로 소격각에 남아 있던 병휴 방사를 받아들였다.
둘은 사제관계를 맺었지만, 이전처럼 편하게 지냈다.
연적하가 삼관정에 자리를 잡는 동안 드디어 네 개 주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기이한 것은 천지종이다.
그들은 비경에서 그 난리를 쳐 놓고 정작 수약주의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 바람에 소요종은 태풍 전의 고요와도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삼관정.
오시 초(오전 11시), 연적하가 하나뿐인 식솔인 병휴 방사를 객청으로 불렀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하산할 거니까 알고 있어라.”
“고향 친구요?”
“어.”
연적하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발견한 병휴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설마 고향에 두고 온 여자 친구인가요?”
“여자 친구가 아니라 처다. 처.”
“헉! 스승님! 혼인하셨습니까?”
“몰랐냐? 험. 몇 년 됐다.”
“종문 제자들은 혼인을 거의 하지 않는데 참 특이하십니다.”
“혼인을 안 해?”
“수명이 다르니까요. 조강지처와 백년해로라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얼굴도 모르는 후손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요.”
“아하!”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기나긴 종문 제자의 수명을 생각하면 혼인은 어울리지 않았다.
“보통은 속세를 드나들며 즐기고 말지요. 가끔 몰래 살림을 차리는 종문 제자들도 있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
“스승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라니?”
“사모님과 함께 지내실 건지 궁금해서요.”
“병휴야.”
“예?”
“내 걱정 말고 너는 부지런히 수련해서 노사가 될 생각이나 해.”
“아, 예.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돌아오실 겁니까?”
“왜?”
“혹시라도 손님이 찾아와 물으면 가르쳐 줘야 하니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구체적인 날짜는 스승님도 모르시나 봅니다?”
“나 그렇게 계획 세우고 사는 사람 아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사람이지.”
“알겠습니다. 누가 찾으면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말 속에 뼈가 있는 것 같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스승님. 천지종과 정말 전쟁을 하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달리 물어볼 곳이 없어서요.”
“아마 하게 될 거야.”
“이런 시국에 하산을 하셔도 되는 겁니까?”
“태을 존자나 제군들이 아무 말도 없는데 뭐 어쩌라고. 내가 해야 할 일들까지 포기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가뜩이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자리를 비우시면…….”
“무슨 소문?”
연적하가 관심을 보이자 병휴는 급히 화제를 바꿨다.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출발하실 겁니까?”
“말 돌리지 말고, 무슨 소문인데?”
집요한 연적하의 채근에 병휴는 별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소격각 출신이라 존자와 제군들 사이에서 찬밥 신세라고 하더라고요.”
“찬밥?”
“존자와 제군들은 궁전을 쓰는데 스승님만 삼관정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
한참 생각하던 연적하가 반박했다.
“종사인 태을 존자도 소요정에 있는데 무슨 소리야?”
“태을 존자님은 소요궁의 주인이기도 하잖습니까. 삼관정만 쓰시는 스승님과는 다르죠. 진곤 제군은 북명전, 초요산 제군은 무궁전, 한산월 제군은 초월전의 주인인데, 스승님만 삼관정이 뭡니까? 그것도 노조가 쓰다가 늙어 죽어서 비게 된 곳이지 않습니까?”
“야, 내가 그 유명한 백운정의 천향송실(天香松室)에도 있어 봤는데, 별거 없어. 집이라는 건 비바람만 피하면 되는 거야. 거기서 더 바라면 사치야.”
“그래도 천지종과 전쟁까지 터진 마당에 제군인 스승님을 차별대우하면 안 되죠. 비경에서 스승님께 도움을 받은 분들까지도 화를 내더라고요.”
“네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제가 뭘 모르는데요?”
“내가 삼관정에 있으니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는 거야. 내가 중책을 맡았어 봐. 이 시국에 불우산에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는 왜 스승님에 대한 대우가 나쁜지 모르겠습니다. 천지종에서는 빙설화를 거의 종사급으로 대우해 준다고 하던데.”
“됐고. 나는 하산할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괜히 사방팔방 찾아 다니지 말라고 말해 주는 거야.”
“예, 때가 때이니 소식 자주 전해 주십쇼.”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천지종이 수약주로 넘어왔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올 테니까.”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천지종과 소요종의 승부는 마지막에 가서야 이루어질 테니까 말이다.
연적하는 병휴를 남겨 두고 삼관정을 떠났다.
전쟁이고 뭐고 일단 남궁연을 찾아가 그동안 쌓인 회포부터 풀 생각이었다.
***
완산주.
강남성.
금산현.
정오 무렵.
등짐을 진 청년 하나가 번화한 거리에 나타났다.
부슬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살피는 모양새가 초행길이 분명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서 있던 소년이 뒤늦게 청년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갔다.
“저기요.”
“나?”
연적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소년,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산현에서 제일가는 맛집을 알려드리려고요!”
“물론 너희 가게겠지?”
“예!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그래? 가 보자.”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것도 인연이니 꼬마 녀석의 가게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가게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골목 끝에 자리해 단골이 아니면 찾아가기 어려운 위치였다. 꼬마가 호객행위를 하기 위해 골목 어귀에 나와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갔다.
‘기특한 녀석이군.’
강호에서 어린 점소이들이 딱 저랬다.
과거를 회상하며 연적하가 피식 웃을 때다.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가게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앞서가던 서윤이 뒤를 힐끔거렸다.
행여나 가게의 소란으로 청년이 발길을 돌릴까 봐 불안한 얼굴이다.
연적하는 성큼성큼 앞장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는 조금 전의 소란에 어울리게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연적하는 창가 쪽 자리에 대충 걸터앉았다.
가게 중간에서 싸운 것으로 보이는 사내 둘이 연신 욕을 해 댔다.
“씨벌 놈이! 어디서 홍설아(紅雪兒, 영천주의 술)를 처먹고 있어!”
“영천주의 간자(間者)일지도 몰라.”
연적하가 뒤따라온 소년에게 나직이 물었다.
“홍설아가 뭐냐?”
“영천주 특산품인데 달달하고 향기도 좋은 술이에요.”
‘달달하다’는 말에 연적하의 귀가 솔깃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호에서 향설주만 마시던 그의 입에 침이 고였다.
“홍설아 한 병이랑 닭구이 달라고 해.”
“저어, 홍설아 때문에 싸움이 난 모양인데 다른 걸 드시는 게…….”
“인마. 난 내가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아, 예. 뒷일은 책임 못 져요.”
“쓰읍! 가져오기나 해.”
연적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자 서윤이 마지못해 주방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서윤이 홍설아 한 병과 닭구이가 든 접시를 들고 왔다.
그는 술병과 닭구이가 든 접시를 내려놓고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역시나!
사내 둘이 어기적거리며 연적하의 자리로 다가왔다.
대낮부터 거나하게 마셨는지 불콰한 얼굴들이다.
연적하는 귀찮은 일을 피할 생각으로 청사(靑蛇)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어 소요종의 ‘천리전송적(千里傳送笛)’까지 나란히 놓았다.
범상치 않은 단검과 옥적(玉笛)을 보고 시정잡배들이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단검과 옥적은 경계심이 아니라 사내들의 욕심을 부추겼다.
사내 중의 하나가 탁자 모서리에 은근슬쩍 엉덩이를 걸쳤다.
“소형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곳 사람이 아니지?”
그러자 뒤따라온 다른 남자가 말을 받았다.
“아니고말고. 금산현에서 홍설아를 콕 찍어 시켜 먹는 걸 보면 모르겠나?”
‘아!’ 하고 짧게 탄식하던 연적하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순간 탁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던 사내와 그와 대거리를 주고받던 남자가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으헉!”
“어? 어?”
비명과 함께 사내들이 거리 위로 나뒹굴었다.
이윽고 비칠비칠 일어난 사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심드렁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던 연적하는 홍설아를 잔에 가득 채웠
주향(酒香)은 향설주와 비슷했다.
‘맛도 비슷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소년이 빠르게 다가왔다.
“저어, 손님.”
“왜?”
“빨리 피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왜?”
“조금 전에 달아난 남자들이 도솔문 제자들이거든요. 도솔문 아시죠?”
“몰라.”
“어쩐지. 막 나가시더라. 잘 들으세요. 도솔문 문주의 조부(祖父)가 천태종의 고수예요. 그런데 그분이 지금 스승님을 모시고 도솔문에 와 있거든요. 그 남자들이 홍설아를 가지고 시비를 건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게 뻔하니까 얼른 가세요.”
“도솔문 사람이 천태종에 입문했다는 거지? 그 사람이 스승과 함께 도솔문에 방문했고.”
“예, 그러니까 빨리 가시라고요. 말 좀 그만하시고요.”
“알았어. 닭 다리만 먹고 갈게.”
“아니, 지금 닭 다리가 눈에 들어와요? 잘못하면 죽는다고요!”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중성적이던 서윤의 목소리가 계집아이처럼 뾰족해졌다.
연적하가 소년을 힐끔 보았다.
“야. 너 여자냐?”
“왜, 왜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요?”
“아, 맞다. 중요한 건 닭 다리지.”
연적하는 한 손에 닭 다리를, 다른 손에는 홍설아가 든 잔을 들었다.
“아으, 좋아. 눈으로 먼저 먹고, 그 다음이 냄새고, 마지막으로 처묵처묵 해야 진짜 잘 먹는 거지.”
“아저씨, 그냥 빨리 드세요. 아저씨 때문에 가게 박살 나고, 송장 치우고 그러는 거 진짜 싫거든요.”
연적하가 쫄깃한 살코기를 물어뜯으며 말했다.
“나 아저씨 아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죠. 아저씨 때문에 며칠 장사 접게 생겼다고요.”
“장사를 왜 접어?”
연적하가 멀뚱멀뚱 보자 서윤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팡팡 쳤다.
“가게 수리하고, 시체 치우고, 그러다 보면 며칠 훌쩍 가는거죠! 차라리 싸 드릴까요? 그게 낫겠다. 안전한 곳에 가서 실컷 눈으로 보고, 냄새 맡고, 처묵처묵 하세요.”
서윤이 주방으로 달려가는가 싶더니 이내 기름종이를 들고 왔다.
그러고는 연적하가 만류할 틈도 없이 닭구이를 빠르게 포장했다.
“자요! 술병은 그냥 가지고 가세요.”
“야아. 꼬맹이가 손 크네? 술병도 다 돈인데.”
“죽지나 마세요.”
서윤이 반강제로 연적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을 때다.
갑자기 가게 안으로 밀려 들어온 무인들이 연적하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 중에 하나가 물었다.
“도솔문 앞에서 보란 듯 도솔문 제자들을 내쳤다는 놈이 네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