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
64회. 네가 뭐라고 그놈과 싸워?
뒤늦게 이소민은 부친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이에 비해 도적의 무위가 너무 뛰어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교의 초능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어요?”
“흠! 초식의 오묘함보다 월등히 뛰어난 내공이라면 의심해 볼 만하지 않겠느냐?”
“그런 거라면 좀 차이가 있네요. 그는 젊지만 오봉십걸들의 무공 스승이라고 했거든요.”
“초능이 아니라 무공의 고수라는 소리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그곳에 있을 때 도적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천지상인이 석 달이나 그와 함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설마 무당파의 천지상인을 말하는 거냐?”
“네, 천지상인이 그에게 패한 뒤 석 달이나 머무르다 갔다는 말을 들었어요.”
“천지상인이라면 확실히 알겠구나. 그게 초능에 의한 건지, 아니면 본신의 무위인지.”
“그렇겠네요.”
잠시 생각하던 이연익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당장이라도 네 복수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그럴 수가 없구나.”
“아니에요. 그보다 혼세검마가 그처럼 고수라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한두 개 문파로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니 정의맹에서 무림첩을 돌릴 게다.”
무림첩이라는 말에 이소민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군자검 이연익이 그런 이소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녀석은 오봉산채의 일만 없었어도 참가하게 해 달라고 떼를 썼을 것이다.
무림첩은 신진고수들에게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칠파이문과 정도 문파의 정예들만 모이는 그 자리에 얼굴만 비춰도 평생 자랑거리일 테니까.
그때 방문 밖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안에 있느냐?”
태상인 의천검존 이의정이다.
이연익과 이소민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천검존 이의정.
의천문의 태상이자 천하십대고수인 그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방 안에 은거하신 분이라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그건 절반은 맞는 소리였다.
이의정은 동굴이나 석실이 아니라 자신의 거처에서 수련하기를 즐겨했다. 그의 지론에 의하면 바깥출입 끊고 수련하면 그게 폐관이었다.
이의정이 아들의 축 늘어진 소매를 보며 물었다.
“팔은 좀 어떠하냐?”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군자검 이연익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운이 좋았다. 이기어검술을 사용하는 상대에게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나던 길에 이야기를 들었다. 오봉산채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예?”
이연익이 고개를 들고 부친을 바라보았다.
지금같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오봉산채를 징벌한다니 놀란 것이다.
“그 어린 도적이 소민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나는 유명교보다 그 도적놈을 더 용서할 수 없다. 어차피 유명교는 정의맹이 상대해야 하는데, 군웅들이 한자리에 모이려면 두 달 이상 걸린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군웅들이 모이기 전에 도적들을 처리하고 오마.”
“아버님의 심정은 이해하나 지금 의천문의 제자들을 움직이기가 좀 그렇습니다.”
“누가 제자들을 데리고 간다고 했느냐?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괜히 제자들과 다니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이목만 끌 뿐이야.”
“그래도 아버님만 홀로 가시는 건 좀 그렇습니다.”
이연익은 부친이 혼자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시중들 제자들과 함께라면 모를까? 의천문의 태상이 궁상맞게 혼자 움직이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헐! 지금 나를 퇴물 취급하는 게냐? 왜 혼자라도 갔다가 도적들의 칼에 맞아 죽을까 봐?”
“그,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시중 들 사람이라도 데리고 가셨으면 해서요.”
“필요 없다. 내가 무슨 헛바람 들어간 고관대작도 아니고. 본래 강호를 주유함에 있어 칼 한 자루, 말 한 필이면 충분하느니라.”
“…….”
이연익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왼쪽 팔만 성했더라면 자신이 먼저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한쪽 팔이 잘리고 내상마저 입은 지금 그건 망상에 불과했다.
“그런 줄 알고 있거라.”
“……예.”
이연익이 풀 죽은 얼굴로 답할 때다.
“할아버지, 제가 모시고 가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던 이소민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던졌다.
한순간 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잠시 후 이연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그럼 소민이라도 데리고 가 주십시오.”
이연익의 입장에서는 손녀라도 딸려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자꾸나.”
손녀를 귀여워하는 이의정은 이연익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손녀가 오봉산채에서 받은 모욕감을 이참에 씻어 줄 생각이었다.
***
낙양 동편 언사.
와룡장.
한동안 잘나가던 와룡장은 연이은 불행에 거의 공동묘지 분위기였다.
와룡검객 연무백은 중상을 입었고, 함께 간 연씨 일족 다섯은 사망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연설주가 돌아왔지만 그녀를 통해 듣게 된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안주인인 백미주는 일단 연승백과 연설주의 입단속에 들어갔다. 행여나 이 소리가 백세상방에 들어가면 계약이 해지될 위험이 있어서다.
점심 무렵.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백미주가 갑자기 화난 얼굴로 연설주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도둑놈은 왜 우리 와룡장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라더냐?”
씹던 음식을 채 삼키지도 못하고 연설주가 급히 답했다.
“그,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뭔가 있어. 우리만 천 냥을 내고. 이제는 상방까지 진출하지 못하게 막겠다니? 제놈들이 뭔데? 그냥 도둑이잖아? 통행세만 받으면 되는 놈들이, 왜 와룡장이 일을 못 하게 막는 거냐고? 안 그래?”
백미주가 묘한 눈으로 연설주를 바라보았다.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네가 모르면 누가 안다는 거냐? 그곳에서 열흘이나 지내고서 할 말은 아니지.”
“엄마, 저는 낙양오협들과 함께 갇혀 있었어요. 열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도둑들과 대화를 나눈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아요.”
연승백이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 설주 말이 맞아요. 낙양오협들도 그 도둑놈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니야. 분명 뭔가 있을 거야. 설주가 그놈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분명해. 그놈하고 계속 말다툼을 했다면서? 왜 그랬어? 무조건 숙여 줬어야지.”
연설주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답했다.
“엄마, 그놈이 와룡장에 무슨 짓을 한 것처럼 말해서 내가 뭐라고 했던 거예요. 몇 번을 말해요. 나랑 싸우고 이렇게 된 게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그럴 땐 중간에서 지혜롭게 풀었어야지. 네가 뭐라고 그놈과 싸워?”
연승백은 어머니를 진정시키려다가 말았다.
어머니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놈이 이상한 소리를 했을 때 싸울 게 아니라 잘 다독였어야 했다. 그랬다면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두가 가정이지만 말이다.
연설주는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분명 그 도적은 처음부터 자신과 와룡장을 물고 늘어졌다. 그건 낙양오협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걸 믿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이 그놈의 비위를 건드려서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다.
‘말을 말아야지…….’
연설주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꾹 눌러 참았다.
뒤늦게 연승백이 한마디 했다.
“어머니, 그 도적이 그냥 겁주려고 한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와룡장과 무슨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아!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남성의 녹림들 어쩌고 하는 걸 보면 허언이 분명해요. 생긴 지 일 년 갓 넘은 작은 산채가 무슨 힘이 있다고.”
“하여튼, 설주 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생각 마. 올해 안에 혼인을 시킬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저 혼인 생각 없어요.”
“시끄러. 너 때문에 집안이 망할 판이야. 내가 너 그러고 다니는 꼴 못 본다. 계집애가 혼인할 생각해야지 왜 칼을 들고 설쳐? 그러니까 이런 사달이 나지.”
“엄마.”
“입도 뻥긋하지 마. 집 밖에 나갔다가는 그날로 연 끊을 줄 알아.”
“…….”
연승백은 풀 죽은 동생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한편으로는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이번에는 너무 사고를 크게 쳤다. 그녀가 만든 천 냥의 빚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다.
둘째인 자신도 이런데 와룡장을 이끌어 가는 어머니의 속은 오죽 답답할까!
***
유월.
낙양.
공현요를 차지하기 위한 백세상방과 삼진상방의 싸움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갑자기 와룡장이 여주에서 큰 타격을 입은 게 원인이었다.
백세상방의 방주 이세창이 ‘조금만 서두를걸’하며 땅을 쳤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와룡장이 주춤한 동안 삼진상방의 뒷배인 무문관은 낭인을 끌어들여 세를 불려 나갔다.
이에 백세상방에서도 따로 낭인을 모집해 무문관을 견제했다. 와룡장만 믿고 있기에는 무문관 쪽의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다.
싸움은 싸움이고 상방은 장사를 해야 한다.
백세상방은 상행을 다니기에 적당한 날씨가 되자 쉴 틈 없이 상단을 운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세상방 방주 이세창은 건화상방의 방주 유지산을 만났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뭐라고요? 와룡장의 호위를 쓰는 상방은 앞으로 상행을 다닐 수 없다니?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요? 와룡장에서는 별말이 없던데…….”
“저런 모르셨나 보구려. 하기야 와룡장이 직접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겠지.”
“허! 애태우지 말고 속 시원히 말씀해 보시구려.”
“우리 상방에 태원을 오가는 상단이 하나 있지 않소이까. 사흘 전에 그 상단과 함께 황하의 수룡채를 지나온 호위대주가 수룡채 채주에게 들었다고 하더이다. 이제 와룡장 출신의 무사를 호위로 쓰는 상단은 지나다닐 수 없다고. 그런 상방이 있으면 물건을 탈탈 털어먹으라는 녹림 총순찰의 지시가 있었다 하더이다.”
“어허! 그게 대체 무슨! 정말 사흘 전에 그런 말을 들었단 말씀이오?”
“내가 없는 소리를 하겠소? 나는 이 방주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모르셨소?”
“금시초문이외다. 안 되겠소. 직접 확인해 봐야지.”
이세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얼떨결에 따라 일어난 유지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헐! 정말 모르셨나 보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단에 연락해서 다른 길로 우회하라고 하는 게 나을 게요. 다른 길이라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세창은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서둘러 튀어 나갔다.
정신없이 뛰어나가는 그를 보며 유지산이 혀를 찼다.
“쯧쯧! 와룡장에서 녹림의 윗줄을 건드렸나 보네. 그러게 잘나간다 싶을 때 더욱 조심했어야 하는데. 요즘 좀 안하무인이기는 했지.”
이세창은 한달음에 백세상방으로 돌아가 대행수 이연복을 불러들였다.
이세창의 말을 들은 이연복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두 사람은 즉시 상방의 마차를 타고 와룡장이 있는 언사로 달려갔다.
백미주에게 직접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마차는 한 시진(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 와룡장에 도착했다.
마당에 들어선 이세창은 허겁지겁 마중 나오는 백미주를 발견하고 버럭 소리쳤다.
“이보시오! 내가 오늘 건화상방의 유 방주를 만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에 대해 똑바로 해명해야 할 게요!”
“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백미주가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이세창과 이연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