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1
641회. 소요종의 제군을 뭐로 보고 간자래?
소화연은 비경에서 천뢰종의 진인들에게 살해당할 뻔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를 구해 준 사람이 소요종의 연적하 진인이다.
그 뒤 소화연은 성수검령이라 불리는 옥형검령을 얻어 노조가 되었지만, 비경에서의 끔찍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은 언제나 같았다.
눈만 감으면 천뢰종 진인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노조가 되었음에도 천뢰종의 진인들을 당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위기에 몰릴 때마다, 누군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천뢰종 진인들을 물리쳤다.
그는 소요종의 연적하 진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악몽의 횟수는 줄었지만, 연적하 진인에 대한 고마움은 더 커졌다.
그는 생명의 은인이자, 같은 길을 가는 친구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물론 꿈속에서 그랬다는 거다.
여하튼 소화연 노조가 비경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연적하 덕분이다.
그러던 차에 몽중인(夢中人)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부지불식간에 제자인 장천 진인을 밀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연 진인?”
누군가 저돌적으로 확 다가오자 연적하는 움찔하고 움츠러들었다.
자세히 보니 비경에서 만났던 천태종의 진인이다.
“아, 혹시 천태종의 진인이세요?”
소화연 노조는 연적하가 자신을 기억해 주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비경에서 연 진인께서 살려 준 소화연이에요. 늦었지만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소화연 노조는 일반 처자들처럼 연적하에게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본 도솔문 제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앳된 얼굴의 외지인을 천태종 노조가 저렇듯 극진하게 떠받들다니!
서가반점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장천 진인을 비롯해 도솔문 문도들은 소화연 노조와 청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소화연 노조가 연적하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잠시 합석을 해도 괜찮을까요?”
“아, 예. 앉으세요.”
소화연 노조는 연적하의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조심조심 자리에 앉았다.
“도솔문의 뒷배가 천태종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그쪽일 줄은 몰랐네요.”
연적하의 말에 소화연 노조가 황급히 말했다.
“뒷배까지는 아니에요. 제 제자가 도솔문 출신이라 지나던 길에 잠시 들렀던 거거든요.”
“그래요? 아휴! 천태종 고수들이 뒤에 있다고 얼마나 못되게 굴던지.”
“저들이 연 진인께 무슨 짓을 했나요?”
소화연 노조는 단번에 도솔문을 ‘저들’이라고 칭했다.
연적하는 뒤끝이 몹시 긴 사람이다.
그는 도솔문도들이 홍설아를 마신다는 이유로 손님을 두들겨 내쫓고, 자신에게까지 시비 건 이야기를 상당히 과장해서 들려주었다.
“아니, 자기들도 영천주의 청주에 취해 놓고서, 왜 남들이 홍설아 마시는 걸 가지고 난리래요? 그러지 마시라고 내가 입이 부르트도록 사정했는데 계속 시비를 걸더라고요. 그래서 쫓아냈더니, 이번에는 그쪽을 데리고 온 거예요.”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저는 천뢰종의 간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달려왔던 거예요.”
“천뢰종의 간자요? 와아! 저 사람들 진짜 너무하다. 내가 수약주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천뢰종 간자라니. 꼬맹아, 너 말해 봐. 내가 어디 사람이라고 했냐?”
호기심 어린 얼굴로 듣고 있던 서윤이 냉큼 답했다.
“수약주요.”
“들었죠? 어디에서 왔냐고 묻기에 수약주 사람이라고 했는데 천뢰종 간자라니. 기가 막힌다 정말. 소요종의 제군을 뭐로 보고 천뢰종 간자래? 우리 태을 존자가 알면 뒷목 잡고 넘어가시겠네.”
제군 소리에 소화연 노조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납득했다.
왕옥산 비경에 들었던 진인들 치고 연적하의 무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종사급에 달한 천지종의 빙설화를 패퇴시킨 일은 너무도 유명했다.
그러니 그가 검령을 얻었다면 제군이 아니라 종사라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 이번에 검령을 얻으셨군요. 제군님의 성취를 경하드려요.”
“에이, 경하까지는 아니고요. 그쪽도 검령을 얻은 것 같은데, 맞죠?”
“네, 저는 운 좋게 옥형검령을 얻어 노조가 되었어요.”
“옥형검령은 뭐예요?”
“흔히들 성수검령이라고 말하는 북두칠성의 검령이에요. 그중 다섯 번째 별의 검령을 옥형검령이라고 해요.”
“아하! 성수검령? 그건 들어 봤네요. 제가 소요종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아요. 여하튼 축하해요. 검령 얻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모두 연 제군님의 보살핌 덕분이에요.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어요.”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연적하가 손사래를 치자 소화연은 배시시 웃었다.
연적하 제군의 언행을 보면 종문 고수가 아니라 일반 백성처럼 느껴졌다.
입문한 지 얼마 안 됐다니 그래서 그런 걸까?
여하튼 권위에 찌들지 않은 그런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혹시 종문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라도 물어봐 주세요.”
“그럴게요.”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소화연 노조는 다시 현실의 문제로 돌아왔다.
“도솔문이 저와 장천 진인을 내세워 연 제군님께 큰 죄를 지었네요. 허락해 주신다면 장천 진인으로 하여금 도솔문의 일을 처리하게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이미 지난 일이라 저는 상관없는데,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연적하는 그녀의 제안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도솔문의 행태를 생각하면 한 번쯤 호되게 야단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다.
그러자 소화연 노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천 진인에게 다가갔다.
“장천.”
“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던 장천 진인이 허리를 꺾었다.
허리를 숙이지 않는 종문의 전통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만하다.
도솔문도가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소화연 노조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다 죽였다.
하물며 상대는 노조도 아닌 제군이다.
천태종에서 알면 소요종과의 관계를 생각해 도솔문을 멸문시킬 수도 있었다.
“너도 들었겠지? 연 제군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시기도 하지만, 소요종의 제군이시다. 그런 분에게 도솔문 따위가 큰 죄를 지었다. 내가 도솔문 출신인 너에게 이번 일의 처리를 믿고 맡겨도 되겠느냐?”
“제자는 도솔문도가 아니라 천태종의 진인입니다. 맡겨 주신다면 스승님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러자 소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천 진인은 즉시 도솔문도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객청으로 달려와 처음 보고를 한 중년인을 가리켰다.
“너, 소요종의 제군을 천뢰종의 간자라고 모함한 이유가 무엇이냐?”
“그, 그게…… 용서해 주십쇼!”
용서해 달라는 말에 장천 진인은 오히려 이를 빠드득 갈았다.
“놈!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타지인에게 당하고 돌아온 이대제자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모두 도솔문을 위해서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순간 장천 진인이 도솔문도들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이놈이 말한 이대제자가 누구냐!”
서가반점에 있던 도솔문도들 중에서 이십 대 청년 둘이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장천 진인은 그들의 몸에서 풀풀 나는 술 냄새를 맡고 눈을 찌푸렸다.
모든 게 연적하 제군이 말한 그대로였다.
“연 제군께서 홍설아를 마신다고 시비 건 게 너희들이냐?”
“용서해 주십쇼. 천뢰종과 전쟁 중에 영천주의 술을 마시는 걸 보고 그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제군님이신 줄 모르고 그랬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내들이 머리를 조아리자 장천 진인이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천뢰종과 전쟁 중이라 그랬다? 도솔문이 천뢰종과 전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라 장천 진인님께서 천뢰종과 싸우고 계시니 성원(聲援)하는 마음으로…….”
“맞습니다. 천태종에 대한 충정으로 그리한 것입니다.”
“미친놈들. 너희가 종문과 무슨 관계라고 충정 운운하는 것이냐.”
말과 함께 장천 진인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전광석화 같은 검기가 두 이대제자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투둑. 툭.
두 개의 머리가 반점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동시에 머리가 떨어져 나간 목에서 분수처럼 붉은 피가 솟구쳤다.
촤아아-.
장천 진인이 이번에는 장일선을 향해 돌아섰다.
그 서슬에 놀란 장일선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뒷배를 믿고 쓰레기 같은 짓이나 하는 놈들의 복수를 하겠다고 소요종의 제군을 모함해? 그러고도 네놈이 살기를 바라느냐!”
노기 충천한 장천 진인이 호랑이처럼 장일선을 덮쳤다.
그의 검이 벼락처럼 장일선의 목을 베어 갈 때다.
땅-!
쇳소리와 함께 장천 진인의 손아귀를 찢고 날아간 검이 반점 천장에 ‘퍽!’하고 박혔다.
황망한 얼굴로 서 있는 장천 진인의 귓가로 연적하 제군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니 뭐 그만한 일로 사람을 죽이고 그래요? 파문이라도 시키려는 줄 알고 내버려 뒀더니, 사람 목숨을 너무 하찮게 여기시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장천 진인은 손자인 장웅 문주에게 말했다.
“제군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느냐! 파리만도 못한 네놈들에게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베풀어 주셨으니 감사드리고, 속히 문호를 정리해라!”
조부의 말에 눈치만 보고 있던 장웅 문주가 연적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미천한 저희를 살려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차후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제자들을 잘 단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쯧!’ 하고 혀를 차던 연적하가 손을 흔들자 장웅 문주의 몸이 반듯하게 세워졌다.
황송한 얼굴로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던 장웅 문주는 도솔문도들에게 다가갔다.
“장일선, 일대제자가 되어 후배들을 잘 지도하지는 못할망정, 그릇된 짓에 동조하여 사문을 위태롭게 하였으니 파문한다. 지금 즉시 강남성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구사일생한 장일선은 쉴 새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장웅 문주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장일선, 너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배가 누구냐!”
“이대제자인 이강과 홍칠입니다.”
“너와 함께 소요종의 제군께 패악질을 한 놈들은?”
“일대제자 손무치와 이대제자 장은익, 명진, 송원이 저와 함께 다녔습니다.”
“일대제자 손무치와 이대제자 이강, 홍칠, 장은익, 명진, 송원을 파문하겠다. 오늘 파문당한 자들은 두 번 다시 강남성에 발을 디디지 마라.”
파문으로 일을 매듭지은 장웅 문주는 조부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이만하게 정리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큰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그가 믿고 따르던 조부이자, 도솔문의 든든한 후원자인 장천 진인이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잘못이겠느냐. 도솔문도들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한 것은 모두가 그 뒤에 내가 있어서다. 오늘 이후로 나는 도솔문과 연을 끊겠다. 두 번 다시 도솔문의 일로 나를 찾지 마라.”
조부인 장천 진인의 절연 선언에 장웅 문주는 실감이 나지 않는지 눈만 끔뻑였다.
그러다 곧 눈물을 쏟았지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조부가 스승인 소화연 노조 앞에서 한 말을 번복할 것 같지 않아서다.
‘도솔문의 영화도 오늘로 끝이구나.’
조부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절연을 선언했으니 금산현은 물론 강남성에도 소문이 날 터였다.
망연한 얼굴로 서 있는 장웅 문주에게 장천 진인이 말했다.
“장웅, 종문의 고인들이 계시는 곳이니 제자들을 데리고 나가라.”
장천 진인의 축객령에 장웅 문주와 도솔문도들은 조용히 서가반점을 떠났다.
한쪽에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던 서윤은 어안이 벙벙했다.
늘 말로만 듣던 종문의 고수들을 현실에서-그것도 이렇게나 가까이서-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저 사촌 오라비 같은 청년이 제군이라니?
왠지 엄하고 무서운 종문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깨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