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2
642회. 구주가 본래 그런 곳이잖아요
서가반점.
주변이 정리되자 소화연 노조가 제자인 장천 진인을 슬쩍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낯 두꺼운 장웅 문주가 은근 거슬렸는데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손자와 절연한 제자를 생각해 내색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장천 진인이 소화연 노조와 연적하 제군에게 꾸벅 머리를 숙였다.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려 송구합니다. 손자 대까지만 곁에서 지켜보려 했는데, 저의 욕심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어디 너의 욕심 때문이더냐. 사람의 욕심이 본디 그러한 것을. 종문의 고인들이 속세와 연을 끊는 것도 알고 보면 그런 이유에서니라.”
뒤늦게 철이 든 제자를 위로하던 소화연 노조는 ‘아차!’ 하고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자신이 너무 늙은이들 말투를 쓴 것 같아서다.
다행히 연적하는 음식을 더 주문하느라 못 들은 눈치였다.
서윤이 주방으로 사라지자 연적하가 소화연 노조와 장천 진인에게 말했다.
“몇 가지 안주와 술을 더 시켰는데, 바쁘지 않으면 함께 드시겠어요?”
연적하의 제안에 소화연 노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오히려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얻어먹으려니 면목이 없네요.”
“괜찮아요. 다음에 비싼 거 사세요.”
물론 그냥 해 본 소리다.
구주에서 소요종과 천태종의 제자가 만날 일이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화연 노조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네, 다음에 꼭 제가 사 드릴게요.”
장천 진인이 무심코 돌아볼 정도로 의지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잠시 후 안주와 홍설아 한 병이 나왔다.
장천 진인이 머뭇거리자 연적하가 얼른 술병을 들어 두 사람 잔에 홍설아를 따랐다.
“제가 홍설아처럼 달달한 술을 좋아해요. 두 분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소화연 노조가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집어 들었다.
“저도 소싯적에는 홍설아를 즐겨 마셨어요. 입문한 뒤로는 처음이네요. 스승님이 술을 멀리하셨거든요.”
장천 진인은 감히 술잔에 손을 대지도 못했다.
진인인 그로서는 노조와 제군의 자리에 함께한 것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었다.
연적하는 장천 진인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칫 술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서다.
연적화와 소화연 노조만 조용히 잔을 비웠다.
한동안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연적하는 남궁연을 생각했고, 소화연 노조도 기분 좋게 추억에 잠겼다.
한참 만에 소화연 노조는 정신을 차렸다.
너무 분위기에 취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던 중인지를 잊었다.
잠시 연적하 제군의 눈치를 살피던 소화연 노조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어 연 제군님.”
“네?”
“당금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요?”
“네, 종문 간의 전쟁에 대한 연 제군님의 고견을 듣고 싶어서요.”
“흐음.”
닭구이를 뒤적거리던 연적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남궁연과의 대화 덕분에 앞으로 일어나는 일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홉 종문의 성물이 파괴된 건 아시죠?”
“네, 비경을 준비할 때 들었어요.”
“종사들은 그걸 자연재해나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예요.”
“…….”
소화연 노조는 연적하의 입에 주목했다.
제군은 종사와 가까우니, 지금 그의 말이 종사의 뜻에 가장 근접할 터였다.
“만약 성물을 파괴한 게 창조신이라면, 그다음은 분명히 천문(天門)일 테죠.”
“아…….”
“저도 소요종의 천문을 봤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는 다른 종문의 천문이 궁금하기는 했어요. 저도 그런데 종사들은 오죽하겠어요? 오백 년 전에 천지종에서 소요종을 공격했던 이유도 천문 때문이잖아요.”
“결국 천문 때문에 전쟁이 났다는 말씀이시네요?”
“지금은 천태종의 적이 천뢰종뿐이지만, 결국 다른 종문과도 싸우게 될 날이 올 거예요. 천태종에서 천문을 가지고 있는 한은.”
“천문을 두고 종문들이 싸우게 될 거라니……. 그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싸워서 뺏는 것 말고도 방법은 있어요.”
“그게 뭔가요?”
“구주의 종문은 본래 한 뿌리였잖아요. 이 기회에 아홉 종문이 다시 뭉치면 돼죠.”
“아…….”
소화연 노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힘들 거예요. 소요종만 보더라도 천지종과 뭉칠 수 있겠어요?”
“거의 불가능하죠.”
“다른 종문들도 그래요. 그동안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번에 곪았던 게 터져 버린 것 같아요. 천태종과 천뢰종의 전쟁처럼요.”
“그게 천태종과 천뢰종의 전쟁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그러지 않을 거예요.”
“조금 앞서간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만약 소요종이 천지종과의 전쟁에서 승자가 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그야 당연히 태을 존자와 제군들의 욕심에 달려 있겠죠? 어떻게든 ‘삼천의 신’이 되고 싶다면, 힘이 빠진 종문을 병탄하려 들 거예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우니까요.”
“…….”
소화연 노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만약 소요종과 천태종이 전쟁을 벌이면 연적하 제군과의 사이도 틀어지는 까닭이다.
“연 제군님은 종문의 병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생각이 뭐 중요한가요. 고작 한 사람의 제군에 불과한데.”
“하아! 연 제군님처럼 다른 종문을 위해 줄 줄 아는 분들이 많아야 하는데……. 싸워서 빼앗으려고만 하니.”
“구주가 본래 그런 곳이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저는 연 제군님 같은 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힘 없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으니까요.”
연적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강호에 있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정말 꼴리는 대로 살았다.
녹림에서 세상을 배워서 으레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고, 그게 은근 잘 맞았다.
그러다 구주에 와서 보니, 자신은 성인군자에 가까웠다.
종문 고수들은 자신이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막 살았다.
소화연 노조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을 녹림도나 정파 고수들이 들었다면 개소리라고 할 게다.
힘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니.
생각할수록 황당해 나중에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야기가 길어졌나 보다.
술병에 술이 바닥을 보이고, 접시 위에도 닭 뼈가 수북했다.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연적하가 엉덩이를 들썩이자 소화연 노조와 장천 진인이 급히 일어났다.
“연 제군님, 다음에는 꼭 제가 대접할게요.”
“그러세요.”
연적하가 계산대로 가자 소화연 노조와 장천 진인이 졸졸 따라왔다.
계산을 마친 연적하는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운종술(雲從術)로 날아가 버렸다.
소화연 노조는 연적하 제군이 사라진 뒤에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망연한 얼굴로 서 있던 소화연 노조가 중얼거렸다.
“저런 분이 종사가 되셔야 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장천 진인이 물었다.
“만약 연 제군이 ‘득물(得物)의 경지’에 오르면 태을 존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군과 종사를 가르는 기준은 하나다.
수련 최고의 경지라는 득물, 즉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면 종사다.
득물의 경지에 오른 종사는 법기(法器)를 만들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득물로 만들어진 법기는 검령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검령처럼 법기 역시 초월적인 힘을 가진 까닭이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 법기는 검령보다 조금 더 환영받았다.
영기에 좌우되는 검령과 달리 법기는 그 자체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서다.
예컨대 영기를 소모하면 검령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법기는 영기와 무관한 신외지물(身外之物)이라 그 용도가 무궁했다.
이처럼 ‘득물의 경지’와 ‘법기’는 종사를 나타내는 신표나 다름없었다.
“글쎄다, 모르겠구나. 지금까지 동시대에 두 명의 종사가 나온 적이 없어서.”
종사, 즉 득물의 경지는 가히 반신(半神)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종사 사후에 몇천 년 동안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설마하니 법기의 우열로 종사를 가리지는 않겠지요?”
“…….”
법기의 우열이라니.
그건 동시대에 두 명의 종사가 나온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소리였다.
장천 진인의 우스갯소리를 뒤로하고 소화연 노조는 서가반점을 떠났다.
***
한산주.
봉무성.
다물현.
무량하 강변.
정오 무렵, 하늘에서 강변으로 청년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천지종을 찾아가는 연적하다.
그는 강변에서 무량하의 수평선을 한동안 응시했다.
무량하를 건너면 멀리 천지종 종산인 원덕산이 보인다고 하던가.
“귀찮아도 배를 이용하는 게 낫겠지?”
마음 같아서는 운종술이나 어검비행으로 강을 건너고 싶지만 참았다.
무려 반 시진(1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시국에 천지종 종산 인근에서 그러는 건 정신 나간 짓이다.
연적하는 선착장을 찾아 강줄기를 따라 걸어갔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반 시진(1시간)쯤 가니 다물현 선착장이 나왔다.
연적하는 일반 백성들 속에 섞여들었다.
십 장(약 30미터) 길이의 배가 서서히 포구를 떠나 무량하로 진입했다.
선실에서 해를 피하고 있던 연적하는 갑판으로 나갔다.
낚시꾼들이 위험천만하게 낚싯대를 들고 있는 걸 봤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몇 사람의 죽음을 봤음에도 그런 걸 보면 구주 사람이 다 된 모양이다.
연적하는 낚시꾼들을 피해 선수(船首)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뱃머리에 걸터앉자 호롱(닻물레)을 손보던 초로의 선원이 슬쩍 말했다.
“소형제, 심심하면 금장붕어라도 잡지? 누가 알아? 은린어라도 나올지.”
“귀한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라 비린내 나면 안 돼요.”
“허, 그럼 별수 없지.”
선원은 ‘비린내가 나면 안 된다’고 하니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뱃머리를 쳐 대는 물소리만 아니라면 잠이 솔솔 올 만큼 고즈넉한 분위기다.
익숙해서 그런지 규칙적인 흔들림에 잠까지 솔솔 쏟아졌다.
최소한 한 시진은 배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참 수마와 싸우고 있는 연적하의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또 누가 가시무치에게 물려 갔나?’ 생각할 때다.
‘쿵!’ 소리와 함께 배가 흔들렸다.
그래도 연적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무량하에서 이 정도 충격은 놀랄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갑자기 ‘콰지직!’ 소리와 함께 배가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연적하는 급히 뒤를 둘러보았다.
“헉!”
강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다리 여덟 개가 목선 중심부를 휘감고 있었다.
아까 호롱을 손보던 선원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연적하는 강물에 떨어지려는 그를 잡아채 몸 가까이 끌어당겼다.
“저건 뭐예요?”
“제길! 대왕문어네. 우리는 다 죽었어.”
“무슨 문어가 저렇게 커요?”
“그래서 대왕이라 부르는 게 아닌가. 철선이면 모를까? 목선은 버티질 못해.”
선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배에 타고 있던 몇몇 무인들이 대왕문어의 발을 병장기로 찍었지만 소용없었다.
타격음만 요란했지 도검은 문어의 발에 박히지 않았다.
철급의 야수들처럼 피부에 영기를 두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 좋다 말았네. 다 와서 이게 뭐래?”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배가 침몰하면 사람들은 대왕문어나 가시무치 따위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렇다고 대왕문어를 죽이면 ‘종문 제자가 여겠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그때 대왕 문어의 거대한 발들이 목선을 강하게 옥죄었다.
콰드득-!
목선 중앙부가 부서지기 직전, 연적하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