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43
643회. 그를 쳐 죽일 수 있을까?
오 장(약 15미터)여 높이로 날아오른 연적하가 청사를 꺼내 던졌다.
진검강에 휩싸인 청사가 목선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투투툭-!
마치 썩은 밧줄처럼 대왕문어의 발들이 일시에 잘려 나갔다.
스르륵-.
대왕문어의 몸이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왕문어가 사라지자 뒤뚱거리던 목선은 금방 균형을 되찾았다.
연적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았다.
조금 전 연적하가 구해 주었던 초로의 선원, 진금원이 갑판위에 납작 엎드렸다.
“존귀하신 분을 몰라뵙고…….”
순간 연적하가 지풍으로 그의 아혈을 찍고 일으켜 세웠다.
“계속 몰라봐야 해요. 알은척하면 물에 던져 버릴 거예요. 알았죠?”
진금원이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연적하는 선원의 아혈을 풀어 주고 돌아앉았다.
가라는 뜻이다. 진금원은 무의식적으로 굽실거리면서 뒷걸음질 쳐 멀어져 갔다.
연적하는 선원과 선객 들의 뒤늦은 소란을 뒤로하고 무량하를 응시했다.
선원 외에 또 누가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꼴리는 대로 사는 거지.’
어차피 될 일은 그냥 둬도 되고, 안 될 일은 무슨 생난리를 쳐도 안 된다.
그러니 자기 갈 길만 가면 되는 거다.
생명의 은인을 찾기 위한 술렁거림도 이내 가라앉고 목선은 잠잠해졌다.
선원들은 부서진 뱃전을 보수한다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반 시진(1시간)쯤 지나 목선은 마침내 무량하의 중심부를 통과했다.
다시 한 식경(약 30분)쯤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 둘 낚싯대를 꺼냈다.
언제 목숨을 잃을 뻔했냐는 듯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다.
이윽고 ‘와아!’ 하는 환호성이 뱃전에서 들려왔다.
그 와중에 누군가 은린어를 잡은 모양이다.
금자 한 냥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묘했다.
죽음의 공포를 금방 잊고 금자 한 냥에 열광하는 인생이라니.
드디어 선착장이 보였다.
줄곧 선수에 앉아 있던 연적하는 하선을 위해 갑판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목격자가 더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승선할 때와 달리 사람들이 눈을 내리깔고 어려워하는 눈치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지만 왠지 입맛이 썼다.
저들 중에 천지종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새어 나갈 게다.
‘모른 척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런 생각은-부모 손을 꽉 잡고 있는-아이들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아무리 팍팍한 세상이라도 이왕 태어났으니 살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배가 선착장에 닿자, 선원들이 배와 선착장 사이에 널빤지를 걸쳤다.
사람들과 함께 배에서 내린 연적하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빠져나갔다.
잠시 후 마을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타난 그는 가까운 객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별채 하나를 통째로 얻은 뒤 저녁이 될 때까지 두문불출했다.
***
고마움과 먹고사는 것 중에 무엇이 우선 될까?
무량하를 오가는 목선의 선원, 진금원의 경우 먹고사는 문제가 더 컸다.
다른 목격자들이 청년의 정체를 두고 설왕설래할 때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에게는 다른 목격자들이 가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
그것은 ‘종문 고수인 청년이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금원은 청년이 소요종의 고수라고 생각했다.
소요종이 아니라면 자신을 겁박하면서까지 비밀에 집착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결론 내린 진금원은 다시 배에 오르지 않고 바로 종산(宗山)인 원덕산으로 향했다.
신시 정(오후 4시).
원덕산.
천지종 입구의 팔문각.
팔문각은 천지종에 드나드는 외부인을 분류하고 심사하는 곳이다.
그곳에 근무하는 원술 노사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라? 소요종의 고수로 보이는 사람이 이포진에서 내렸다고?”
진금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본 것을 비밀로 하지 않으면 물에 처넣겠다고 했습니다.”
원술 노사는 무려 은자 오십 냥 짜리 전표를 진금원에게 건넸다.
“수고했다. 그자를 잡게 되면 더 큰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어이쿠! 뭘 이런 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빨리 전표를 챙긴 진금원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은자 오십 냥이라는 거금을 챙겼지만 ‘더 큰 상’ 소리를 들으니 또 혹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에, 이목구비가 기생오라비처럼 여리여리한데, 눈매가 축 처졌다고 했더냐?”
“예, 맞습니다. 자다가 방금 깬 것처럼 눈에 매가리가 없었습니다.”
“알겠다. 그만 돌아가도 좋다.”
“예, 예.”
진금원은 뭔가 아쉬운 얼굴로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상을 어떻게 주실 건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금원을 돌려보낸 원술 노사는 곧바로 팔문각 각주인 원광안 노조를 찾아갔다.
“각주님, 이포진에 소요종 고수로 보이는 청년이 있다고 합니다.”
“소요종 고수?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느냐? 죽으려고 환장하지 않은 다음에야 왜 이포진에 와?”
원광안 노조가 황당한 눈으로 원술 노사를 보았다.
이포진은 원덕산에서 한 시진(2시간) 거리 떨어진 포구 마을.
종문 고수들의 경우 일각(15분)이면 닿는 거리니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다.
그런 곳에 소요종 고수가 오다니?
꼬리를 말고 수약주에 처박혀 있는 놈들이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원광안 노조는 원술 노사가 허튼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말이 안 되는 것임은 틀림없으나, 정황상 소요종의 고수라고 보여집니다.”
“무슨 근거로?”
원술 노사는 진금원의 제보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청년은 유령처럼 진금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흐음. 대왕문어의 다리를 이기어검으로 잘랐다면 확실히 보통은 아니겠군.”
원광안 노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왕문어는 은급의 야수로 일반 무인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잡지 못한다.
그런 야수를 이기어검으로 토막 냈 다면 종문의 고수가 맞았다.
그가 소요종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자가 소요종 제자라는 증거가 있느냐?”
“선원에게 알은체하면 물에 처넣겠다고 한 걸 보면 소요종이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자신의 종적을 지우려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비약이 다소 있지만, 조사해서 손해 볼 일은 없겠지. 좋다. 천왕단에 이포진을 조사하라 전해라.”
“예!”
원술 노사는 원광안 노조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다.
홀로 남아 있던 원광안 노조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과 같은 시국에 천지종 종산을 몰래 찾아온 종문 고수라니?
원술 노사는 소요종을 의심하지만 사실 그들이 천지종 종산까지 올 일은 없었다.
“거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다.”
혀를 차던 원광안 노조는 빙설화 제군이 요청한 차출 명단을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
팔문각은 천지종과 외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속세로 나갈 일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조직이 천왕단이다.
갑작스러운 단주의 소집 명령에 다섯 명의 진인이 팔문각 뒤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 홍일점인 손나인 진인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이번에 새로 오신 구 단주가 일성 제군의 제자라면서요?”
무송 진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소. 그뿐인 줄 아시오? 이번 왕옥산 비경에서 그 귀하다는 북두검령을 얻었다 하더이다.”
북두검령이라는 말에 진인들의 입에서 ‘오오!’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원영 오 성에 불과한 그들에게 ‘비경’과 ‘검령’은 꿈 같은 소리였다.
거기에 북두검령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진인들이 구 단주의 행운을 부러워할 때 그들 뒤로 청년 하나가 나타났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는 구회일 진인이었다.
다섯 명의 진인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신임 단주인 구회일 진인을 주목했다.
“이포진에 소요종 제자로 의심되는 고수가 나타났다고 하오. 그자를 추포하라는 각주님의 명이 계셨소. 도착한 지 한 시진 반(3시간)이나 지났으니, 이미 이포진을 떠났을지 모르오. 서두릅시다.”
말을 마친 그는 어검비행의 수법으로 날아올랐다.
망연하게 바라보던 다섯 명의 진인들도 급히 어검비행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
이포진.
이포진에 도착한 천왕단은 뿔뿔이 흩어져 게슴츠레한 눈매의 청년을 수소문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선착장에서 사라진 연적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거름 무렵.
가장 번화한 골목 어귀로 여섯 명의 천왕단 진인들이 다시 모였다.
다들 소득이 없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실망한 구회일 진인이 ‘포기하고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사십 대 남자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어, 나리 님들. 지나다 우연히 들었는데 눈꼬리가 축 처진 청년을 찾으신다고요?”
“눈꼬리가 처진 게 아니라 게슴츠레한 눈매의 청년을 찾고 있다. 보았느냐?”
“소인이 초반객점에 야채를 가져다주러 갔다가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요.”
“이상한 말?”
“주방 숙수가 별채를 통째로 빌린 청년을 봤는데, 얼굴이 졸린 듯 흐리멍텅해 보였다고 낄낄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요.”
“우리는 흐리멍텅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구회일 진인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사내는 멋쩍은 얼굴로 돌아서 허둥지둥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우두커니 서 있던 손나인 진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단주님, 게슴츠레한 게 보는 사람에 따라서 흐리멍텅해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구회일 진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주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번에는 천일봉 진인까지 거들고 나섰다.
“젊은 놈이 혼자서 별채를 통째로 빌리는 일은 흔치 않은데. 확인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쓸쓸한 눈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던 구회일 진인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돈 많은 놈이 빌렸을 게요. 나도 어디 가면 별채를 빌려서 쓰니까.”
보다 못한 공호 진인이 끼어들었다.
“단주님, 밑져야 본전이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초반객점을 확인하고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마지막이라는 말에 구회일 진인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어쩌면 그는 돌아갈 변명거리를 궁리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알겠소. 초반객점을 확인해 보고 끝내는 것으로 합시다.”
천왕단의 진인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마을 외곽의 초반객점을 찾아갔다.
***
초반객점.
천왕단의 여섯 진인들은 초반객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 시간이라 일 층 식당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계산대로 다가가며 손님들을 가볍게 훑어보던 구회일 진인이 멈칫했다.
뭔가 굉장히 불쾌한 걸 본 느낌이다.
확인차 다시 식당을 살피던 구회일 진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얼굴은 분명 수약주에서 만났던 악귀, 연적하였다.
어찌 잊으랴.
반점에서 자신을 개 잡듯 패던 저 악귀를.
그날의 일을 떠올리자 몸에 깊게 새겨진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는 소요종이 아니라 ‘석경장의 연적하’라고 했다.
일단 구회일 진인은 자신이 초반객점에 온 목적부터 되짚어 보았다.
그다음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살검령의 지존으로 불리는 북두검령을 얻은 지금, 그를 쳐 죽일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