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52
652회.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거 아니다.
진곤 제군은 연적하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조금 전 존자께서 우리의 적은 천뢰종이 아니라 천태종이라 밝히셨소.”
“천태종이라고요?”
“그렇소. 좌군은 천뢰종 좌측으로 진입, 천리포에 도착 즉시 천뢰종을 도와 교두보를 확보하라 하셨소.”
“중군과 우군은요?”
“중군과 우군은 천뢰종 우측으로 진입해 천태종의 옆구리를 칠 게요.”
“나와 천태종을 가지고 놀았네요?”
“병법에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 하지 않소. 아마도 그래서였을 게요. 나중에 설명해 주신다고 하니 섭섭해도 참으시오.”
“…….”
연적하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참았다.
태을 존자에게 달려가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전쟁 중에 그럴 수는 없었다.
연적하가 잠잠하자 진곤 제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기서 그가 태을 존자를 들이박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을 모양이다.
진곤 제군이 세 명의 노조를 가까이 불러들였다.
“천뢰종의 좌측으로 돌아 천리포에 들어간다. 천뢰종이 안착할 수 있도록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알겠느냐?”
“예.”
노조들이 연적하 제군의 눈치를 살폈다.
지난 사흘간의 이동 중에 그가 천태종과 동맹을 맺고 온 일이 알려진 까닭이다.
잠시 후 노사들을 제외한 여든네 명의 소요종 고수들이 백리하 위를 날아갔다.
***
천리포.
진인과 노조가 도하를 할 때 어검비행을 쓴다면, 제군들은 운종술을 썼다.
운종술은 어검비행보다 익히기가 까다롭지만, 일단 터득하기만 하면 영기도 덜 들고, 무엇보다 검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군에서도 진곤 제군과 연적하 제군은 운종술을 사용했다.
세 명의 노조와 스물다섯의 진인들은 눈앞에 보이는 구름만 줄기차게 따라갔다.
백리하 위를 한 식경(약 30분)쯤 날아가자, 마침내 천리포가 나타났다.
연적하는 재빨리 천리포의 전황을 확인했다.
천뢰종 노사들을 태운 두 척의 배가 포구에서 멀찍이 빠져 있고, 그 위 하늘을 천뢰종으로 보이는 백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빙빙 돌았다.
강변에는 고수 백여 명이 강을 등지고 일진일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병법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자신이 봐도 천뢰종의 위기였다.
머리 숫자는 분명히 천뢰종이 많은데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태을 존자는 천뢰종을 도우라는 거지?’
천뢰종은 소요종보다도 세가 커 보였다.
소요종으로서는 천태종이 상대하기 쉬운데 왜 더 강한 천뢰종을 선택한 걸까?
그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진곤 제군이 천뢰종의 좌측을 가리켰다.
연적하는 천뢰종 고수들과 거리를 두고 전진했다.
천뢰종은 미리 알고 있었던지 소요종을 보고도 경계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진곤 제군과 함께 강변으로 날아갔다.
천태종 고수들은 소요종이 강변으로 다가오는 데도 제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적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간 연적하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천태종에 와서 받은 환대는 차치하고, ‘인간의 탈을 쓰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에서 ‘협’과 담쌓고 살았지만, 의리는 지켰다.
하물며 천태종은 ‘공공의 적’이 아니라 그저 아홉 종문의 일원이다.
솔직히 소요종의 입장에서는 천태종을 치나, 천뢰종을 치나 매한가지다.
그런데 태을 존자는 최후의 순간 천태종을 배신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자신을 내세웠다.
평생 남의 뒤통수를 쳐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짓을 하게 생겼다.
연적하는 진곤 제군과 소요종의 노조, 진인 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자신의 갈등과 달리 저들의 눈빛은 벌써부터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태을 존자 이 개새끼.’
처음으로 태을 존자에 대한 욕이 나왔다.
그가 살아온 수천 년의 세월을 존중했건만, 이런 더러운 일에 이용하다니.
굳이 다른 종문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태을 존자는 자신에게 물을 먹이려 한다.
이후로 자신은 ‘신의를 모르는 사람’ 혹은 ‘남에게 이용당한 사람’이라 불릴 게다.
‘설마 그걸 노린 건가?’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가 이를 빠드득 갈며 강변을 노려볼 때다.
때마침 낯익은 사람이 뒤로 비칠비칠 물러나는 게 보였다.
천태종의 소화연 노조였다.
칼에 맞았는지 그녀의 좌측 어깨는 피에 젖어 있었다.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천뢰종 고수들이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졌다.
그꼴을 보던 연적하가 진곤 제군과 뒤따라오는 노조들에게 소리쳤다.
“사람이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거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천태종을 돕기로 했으니 이만 헤어집시다! 오늘 천리포에서 천태종을 건드리면 내 손에 죽습니다!”
말을 마친 연적하는 청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홉 개의 잠혈을 모두 깨운 뒤에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소요종의 연적하 제군이다! 천뢰종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라! 투항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는다!”
천지를 경동시키는 끔찍한 외침에 천뢰종과 천태종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천태종 고수들은 연적하의 외침에 사기가 올라 ‘와아!’ 하고 화답했다.
이윽고 천리포의 하늘이 수백 개의 검형(劍形)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말만 듣고 무기를 버릴 종문 고수는 없다.
특히나 소요종을 믿는 천뢰종은 그마저도 기만전술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더욱 맹렬하게 천태종을 몰아쳐 갔다.
천리포에서 교두보 확보를 위해 싸우고 있던 백여 명의 천뢰종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천뢰종의 금환 노조는 더욱 집요하게 소화연 노조를 몰아 쳐 갔다.
그녀를 죽이면 천태종의 포위망도 약해질 터였다.
그의 검이 막 소화연 노조의 목을 찔러 갈 때다.
하늘에서 벼락처럼 수십 개의 검영이 떨어져 내렸다.
꽈르르르릉-!
검영에 맞은 금환 노조의 몸이 태풍에 휘말린 낙엽처럼 뒤로 훨훨 날아갔다.
철퍼덕.
바닥에 떨어진 금환 노조는 꿈틀거렸지만 제 힘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뒤로도 검영은 검을 손에 들고 있는 천뢰종 고수들 머리위로 떨어졌다.
꽈광! 꽝-!
검영이 계속 떨어지자 강변에 진출했던 천뢰종 고수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달아났다.
뒤늦게 강변에 내려선 소요종 좌군은 멍한 눈으로 연적하 제군만 볼 뿐이었다.
연적하 제군이 천뢰종을 공격하자 천뢰종 고수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천뢰종의 뇌산 제군이 급히 광성 존자에게 물었다.
“소요종이 배신을 한 걸까요?”
“그랬다면 우리를 뒤에서 쳤을 게요. 하지만 저들은 그냥 지나쳐 갔을 뿐이오.”
“허면 소요종이 우리의 교두보를 박살 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당황하기는 광성 존자도 마찬가지였다.
태을 존자와 동맹을 맺었는데 갑자기 저러니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했다.
“소요종 본진이 우측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들을 그냥 두어야 합니까?”
뇌산 제군의 말에 광성 존자는 잠시 망설였다.
소요종에 보란 듯 두들겨 맞은 지금 그냥 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뒤를 치지 않고 지나쳐 가는 저들을 공격해도 될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말 소요종이 배신했다면 소요종과 천태종의 합류를 막아야 했다.
“소요종을 치시오!”
광성 존자는 천리포의 교두보를 포기하고 소요종에 칼끝을 돌렸다.
이 싸움에서 패하더라도 태을 존자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광성 존자와 뇌산 제군, 양천 제군, 화신 제군이 우측으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천리포의 싸움은 일단락 지어졌다.
곧이어 천뢰종 고수들이 소요종의 중군과 우군의 사이를 끊으며 파고들었다.
갑작스러운 천뢰종의 공격에 소요종 본진은 갈팡질팡했다.
태을 존자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광성 존자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이 무슨 짓이오!”
“그대야말로 철면피다! 소요종 선발대가 우리 천뢰종의 교두보를 깨부쉈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는가!”
“그건 연적하 제군의 독단적인 짓이오!”
“독단? 천리포에 들어간 소요종 고수들이 천태종을 공격하지 않고 있다! 그걸 보고도 어느 한 사람의 독단이라 말할 수 있는가! 천태종의 뒤통수를 치자고 할 때 그대의 간교함을 알아봤다! 우리 천뢰종을 배신했으니 대가를 치러라!”
이윽고 천뢰종 고수들과 소요종의 중군, 우군이 얽혀들었다.
천뢰종은 기세 좋게 치고 들어갔지만 소요종을 바로 제압하지는 못했다.
인원은 많았지만 한 시진 넘게 천태종과 싸운 탓에 피로가 쌓여서다.
태을 존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광성 존자를 맞아 싸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공중에서 한차례 검격을 주고받더니, 거의 동시에 흐릿해졌다.
아군이 휘말려 피해를 입을까 봐 진경(眞景)으로 들어간 것이다.
양쪽의 종사가 사라지자, 천뢰종의 뇌산 제군, 양천 제군, 화신 제군과 소요종의 초요산 제군, 한산월 제군이 맞부닥쳤다.
지쳤다고는 하나 천뢰종 제군 셋의 힘을 소요종의 제군들은 당해 내지 못했다.
초요산 제군과 한산월 제군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 중군과 우군으로부터 멀어졌다.
제군들과 분리된 소요종의 중군과 우군은 천뢰종 노조들에게 밀렸다.
참전한 천뢰종의 노조가 스물임에 비해 소요종의 노조는 고작 여섯.
부상을 입은 소요종의 중군과 우군이 추풍낙엽처럼 백리하로 떨어졌다.
보다 못한 연적하 제군과 진곤 제군의 좌군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천태종 종사인 혜문 존자가 천태종 고수들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천뢰종의 금령 제군과 도천 제군이 소요종 좌군의 앞을 막아섰다.
순간 연적하가 허공에 검을 긋자 진검강이 파도처럼 일어나 앞으로 밀려갔다.
금령 제군과 도천 제군은 급급히 자신들의 검을 세워 파도를 막았지만, 압도적인 힘에 뒤로 십 장(약 30미터)이나 날아갔다.
운종술의 상태라 지지할 곳이 없어 완전히 전장에서 떠밀려 나간 것이다.
금령 제군과 도천 제군은 황급히 복귀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소요종의 좌군이 천뢰종의 허리를 둘로 가르고 난 뒤였다.
사분오열된 천뢰종 고수들을 천태종 고수들이 덮쳤다.
이번에는 중상을 입은 천뢰종 고수들이 백리하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시작은 인간이 했지만 마무리는 야수의 몫이었다.
부상자의 피 냄새를 맡은 백리하의 괴수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백리하가 천뢰종 고수들의 피로 물들어 갔다.
진경에서 빠져나온 천뢰종의 광성 존자가 허탈한 눈으로 천리포를 내려다보았다.
노조들을 태운 두 척의 배는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았고, 천리포 해변에 백여 명의 천뢰종 고수들이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뒤따라 진경에서 나온 태을 존자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천뢰종과 천태종의 전쟁이 계획과 달리 천태종의 승리로 끝나서다.
광성 존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태을 존자, 나에게 먼저 동맹을 제안하더니 이 무슨 후안무치한 짓이냐! 너와 같은 자가 종문의 종사라니, 내 얼굴이 다 뜨겁다!”
“하아! 그대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본디 내 뜻은 이런 것이 아니었소. 그렇다 해도 선후가 바뀐 것뿐이니 너무 원통해 마시구려.”
“흥! 너처럼 신의를 모르는 자가 구주의 종사를 꿈꾸느냐? 아서라. 어디서 개도 웃을 소리를.”
“어허,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연적하가 내 명을 거역한 거라니까.”
광성 존자의 비난에 태을 존자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연적하가 천태종에 듣고 있어야 할 욕을 자신이 들으니 환장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