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53
653회. 떠받들어 주니까 세상이 우습지?
천태종과 천뢰종의 전쟁이 첫 격전지인 천리포에서 끝났다.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결과였지만 사상자 숫자만큼은 건곤일척의 승부처다웠다.
패자인 천뢰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천뢰종은 노조 열 명, 진인 구십 명이 백리하에서 목숨을 잃었다.
동원한 노조와 진인 중에 절반이 희생된 셈이다.
백리하에 떨어진 천뢰종과 소요종 고수들은 거의 다 괴수들의 밥이 됐
그에 비하면 천태종과 소요종의 희생은 미미했다.
천태종 진인 오십, 소요종 진인 스무 명 남짓이 백리하에 떨어져 죽었다.
천리포 강변에서 싸운 사람들 중에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
양측의 부상자는 따로 빠져 있다가 전투 후에 승자와 포로로 운명이 갈렸다.
천태종 고수들은 백여 명의 천뢰종 생존자들을 강변에 줄지어 무릎 꿇렸다.
무릎 꿇은 천뢰종 고수들 중에는 심통도 있었다.
그는 천뢰종 선발대로 교두보 확보를 위해 천리포에 들어왔다가 목숨을 건졌다.
본진에 남았던 진인들 다수가 백리하로 떨어진 걸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
특히나 그는 연적하가 난입하자마자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한 덕분에 부상도 입지 않았다.
천리포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무악 진인이 그를 보고 침을 돼 뱉었다.
“비겁한 놈. 싸우다 말고 투항하다니, 옥청 노조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으냐?”
몇몇 천뢰종 진인들이 심통 진인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심통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쯧쯧! 저기 보이는 소요종의 연적하 제군에 대해 알게 된다면 당신은 나보다 더했을 거야.”
“고작 소요종 제군 하나가 그리도 무서웠더냐? 천뢰종에는 제군이 없고? 전쟁에서 패했다고 천뢰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네가 후과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흐흐, 후과? 내가 연 제군님과 동향 사람이야. 연 제군님은 그냥 제군 하나가 아니라니까. 내가 병신이라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 줄 알아? 그쪽도 사지 멀쩡하게 살고 싶으면 납작 엎드려. 괜히 눈에 힘주고 깝치다가 더 다치기라도 하면 그쪽 손해니까.”
심통이 더 강하게 나오자 무악 진인은 바로 맞받아치지 못했다.
심통의 옆에 있던 진인 중에 하나가 슬며시 물었다.
“연 제군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오?”
“제군이지만 종사도 찜쪄 먹을 사람이오. 그러니 괜히 연 제군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은 하지 마시오.”
천뢰종 고수들은 반신반의의 눈으로 멀리 있는 연적하 제군을 보았다.
하기야 천리포를 뒤덮었던 그 기이한 검형(劍形)은 종문에서도 보기 드문 검공이었다.
천리포.
은수객잔(所水客棧)의 별채.
전쟁의 마무리는 논공행상이다.
천태종과 소요종, 그리고 모든 것을 내어주게 된 천뢰종의 종사가 마주 앉았다.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적은 천뢰종이 아니라 천태종’이라던 소요종의 태을 존자는 천태종과 동맹인 양 행세했다.
전쟁에 패한 뒤 영기를 금제당한 천뢰종의 광성 존자는 시종일관 입을 열지 않았다.
천태종의 혜문 존자가 승리의 주체 답게 회의를 주도했다.
“……하여 광성 존자의 영기를 영원히 폐하되, 천뢰종의 맥은 보존하게 해 줄 것이오. 물론 천뢰종이 관리하던 천문(天門)은 양도해 주셔야겠소.”
광성 존자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천뢰종이 승자가 됐어도 같은 소리를 했을 게다.
그의 목표도 천태종의 천문이지 영토나 재물, 무공 따위가 아닌 까닭이다.
“선처에 감사드리오. 천뢰종의 천문을 어느 종문에 넘겨 드려야 하오?”
순간 소요종의 태을 존자는 슬쩍 혜문 존자의 안색을 살폈다.
혜문 존자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그 답은 양해각서에 적어 두었소. 아직 양해각서가 진행 중이지만 태을 존자께서도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태을 존자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십시다.”
그러자 광성 존자가 혜문 존자에게 다시 물었다.
“천뢰종의 천문은 천태종과 소요종이 합의대로 처리해 드리리다. 그런데 천뢰종의 포로들은 언제쯤 풀어 주실 생각이신지요?”
광성 존자는 천태종과 소요종이 천뢰종 고수들의 영기까지 탈취할까 봐 걱정했다.
지금까지 종문들의 싸움이 그랬으니까.
물론 종문 간 전쟁은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모든 게 승자의 손에 달려 있으니 안심해서는 안 됐다.
자신이야 이미 끝났지만, 최소한 천뢰종의 명맥만큼은 잇게 하고 싶었다.
진경(眞景)에서 나오자마자 항복한 것도 천뢰종의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혜문 존자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그대가 천문의 소유자에게 ‘위임 의식’을 치르면 돌려보내리다.”
종사들은 후계자에게 천문의 관리를 위임하는 의식을 치렀다. 그것의 정식 명칭은 ‘종문의 약속된 후계자에게 위임하는 의식’이다.
광성 존자에게 미안했던지 태을 존자가 나섰다.
“천문을 넘긴다는 광성 존자의 선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소?”
종사의 말은 무상의 권위를 갖기에 선언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태을 존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혜문 존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천문과 관계된 일이니 이왕이면 제대로 해야지요. 위임의식으로 하겠습니다.”
태을 존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한발 물러났다.
이 회의의 주재자가 혜문 존자인지라 그가 하자는 대로 해야 했다.
광성 존자는 답답했지만 천뢰종의 생사여탈권이 천태종에 있는지라 한숨만 내쉬었다.
“그리고 소요종은 천리포에 숙소가 변변치 않으니 백리하 건너 도리포로 가셨으면 합니다. 그곳에서 양해 각서를 검토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태을 존자는 양해각서에 담긴 내용을 모르는지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리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게요.”
말과 함께 태을 존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서도 연적하 제군의 항명에 대한 처벌을 논하려면 천리포보다 도리포가 나았다.
백리하라는 천혜의 경계를 이용하면 소요종의 내분을 숨길 수 있으리라.
잠시 후 천리포에 있던 소요종 고수들이 다시 백리하를 건너갔다.
***
강동성.
말리현.
도리포.
태을 존자는 소요종 고수들을 이끌고 도리포에서 반 시진(1시간)쯤 떨어진 야산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노사들에게 ‘야산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라’고 명한 뒤, 좌군, 중군, 우군과 함께 산을 올랐다.
산 중턱 분지에 도착한 태을 존자가 중군의 초요산 제군과 우군의 한산월 제군에게 턱짓을 보냈다.
그러자 갑자기 좌군을 가운데 두고 중군과 우군이 좌우로 갈라섰다.
스스슥-.
누가 봐도 중군과 우군이 좌군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좌군의 수장인 진곤 제군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초요산 제군과 한산월 제군을 보았다.
초요산 제군과 한산월 제군은 ‘가만히 있으라’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진곤 제군은 연적하 제군에게 전음을 보냈다.
-연 제군, 태을 존자께서 이번 일을 문제 삼으려나 보오.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시오. 큰일을 앞에 두고 자중지란이 일어나서야 쓰겠소?
그러나 연적하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태을 존자를 응시하기만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고 하던가.
좌군의 고수들은 잔뜩 위축된 얼굴로 연적하 제군과 태을 존자의 눈치만 살폈다.
이윽고 태을 존자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분명히 좌군의 진곤 제군에게 우리의 적은 천태종이라고 했다. 천뢰종과 동맹을 맺은 이유는 따로 제군들에게 설명해 주겠다고까지 했음에도, 좌군은 끝내 동맹인 천뢰종을 공격했다. 항구한 종문 역사에 항명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진곤 제군은 답하라! 그대는 왜 나의 지시를 거스르고 천뢰종을 쳤는가!”
좌군의 시선이 일제히 진곤 제군에게로 향했다.
진곤 제군은 물론 좌군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태을 존자의 목표는 진곤 제군이 아니라 연적하 제군이라는 것을.
진곤 제군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연적하 제군이 홀로 벌인 짓이라 해도 제군 체면에 고자질하 듯 떠넘길 수는 없었다.
그때 연적하가 냉소를 쳤다.
“흥! 뻔히 누가 뭘 했는지 알면서 말을 빙빙 돌리지 맙시다. 태을 존자님,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직접 하시죠?”
그의 뻔뻔한 태도에 태을 존자는 폭발하고 말았다.
“뭐라! 분에 넘치는 검령 하나를 얻고 안하무인으로 굴다니! 네가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태을 존자의 주위로 영기가 소용돌이쳤다.
연적하도 지지 않고 영기를 끌어 올려 맞섰다.
이전에는 수천 년을 살아온 종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천애불문비의 생령을 얻고, 구천검령까지 얻은 마당에 두려울 게 뭐란 말인가!
태을 존자가 수천 년간 영기를 모았다면 자신은 수십만 년 된 생령을 얻었다.
거기에 구천검령까지 있으니 지려야 질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태을 존자와 연적하 제군이 금방이라도 싸울 듯 기세를 끌어 올리자 소요종 고수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참으시지들…….”
“큰일 났네.”
종사는 종문에서 절대적인 위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사의 명이 항상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금 태을 존자가 소요종에 연적하를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치자.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자들은 제군들 뿐이다.
하지만 제군이라 해도 좌군인 진곤 제군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뭉그적거릴 게다.
결국 초요산 제군과 한산월 제군이 연적하를 죽여야 하는데, 그들만으로는 턱도 없다.
소요종의 지존인 태을 존자가 명령을 내리지 않고 직접 나선 것과, 소요종 고수들이 존자와 제군의 싸움에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하는 것도 그래서다.
연적하의 항명 탓에 천뢰종 종사에게 ‘신의를 모르는 자’로 매도당한 태을 존자가 먼저 움직였다.
태을 존자가 검을 종횡으로 휘둘렀다.
그의 성명절기인 통천검강(通天劍罡)이 연적하를 향해 날아갔다.
통천검강은 여타의 진검강보다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청사를 꺼내 진검강을 흩뿌렸다.
콰자자자작-!
통천검강이 진검강을 부수며 노도처럼 연적하를 향해 몰아쳐 갔다.
기선을 제압당한 연적하는 다급하게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를 펼쳤다.
청사 끝에 맺혀 있던 진검강과 통천검강이 충돌했다.
꽈르릉!
이번에는 깨질 것 같지 않던 통천검강이 산산조각 났다.
태을 존자는 자신의 통천검강이 터지자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자신의 가장 강한 검공이 막혔으니 남은 건 검령뿐이다.
하지만 연적하의 그 거대한 검령을 생각하니 차마 검령으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힘에서 밀린다면 기술이다.
그리고 종사인 자신에게는 제군들이 꿈도 꾸지 못할 절기가 있다.
태을 존자가 허공의 한 지점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선 그의 몸은 마치 유령처럼 반투명했다.
진경(眞境)으로 들어간 것이다.
“안 되니까 잡기술이냐!”
연적하는 종사의 전유물인 진경을 잡기술이라 폄하하고, 자신도 진경으로 뛰어들었다.
내심 절대 우위라 자신하던 태을 존자는 심장이 철렁했다.
이제 갓 제군이 된 연적하가 종문 궁극의 비술이라는 진경을 터득했다니!
“이게 무슨…….”
황망한 눈으로 보고 있는 그를 향해 연적하가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이 뻔뻔한 늙은이야! 너는 그냥 나이 많이 처먹은 늙은이에 불과해! 종사라고 종문에서 떠받들어 주니까 세상이 우습지?”
진검강으로 넉 자 길이의 장검으로 변한 청사가 태을 존자를 베어 갔다.
태을 존자는 급히 검으로 맞받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검격을 나누었다.
쾅! 쾅! 쾅! 쾅! 콰직-!
둔탁한 소리에 태을 존자는 급히 뒤로 빠지며 자신의 검을 살폈다.
통천검강으로 감쌌던 보검 중앙에 쩍 하고 금이 가 있었다.
“이런 미친…….”
법기에 버금가는 보검을 부술 정도로 단단한 병기라니?
이래서는 검격을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가 없다.
통천검강, 검령, 진경으로도 제압하지 못하자 뒤늦게 위기감이 찾아왔다.
천박한 영기를 가진 놈이라 업신여겼는데, 아무래도 잘못 판단한 것 같다.
태을 존자가 살에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연적하에게 소리쳤다.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