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58
658회. 대종사(大宗師)
금제가 풀리자 천뢰종 종사인 광성 존자는 반사적으로 천태종의 숫자를 살폈다.
제군 넷에 진인이 백 명쯤 돼 보였다.
천뢰종은 제군 다섯에 진인이 백십 명.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아직까지 천뢰종이 우세했다.
이윽고 광성 존자의 눈이 연적하 제군을 향했다.
문제는 연적하 제군이다.
그의 무위가 제군 중에 으뜸이니 이 자리에서 천태종과 다시 맞붙으면 양패구상하리라.
그렇게 되면 소요종만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어쩌면 태을 존자 쪽 사람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연적하 제군을 남겨 두고 간 것인가?’
태을 존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광성 존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의심부터 했다.
태을 존자같이 간교한 사람이라면 수작을 부리고도 남는다.
하기야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로 옆에 태을 존자가 있는데 제군이 천뢰종을 넘겨받다니?
사실은 혜문 존자가 연적하를 끌어들인 것이지만 광성 존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을 존자여, 내가 그대의 수법에 두 번이나 놀아날 것 같은가.’
광성 존자는 금제가 풀렸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연적하가 광성 존자에게 말했다.
“내 제안에는 당신도 포함이 돼. 나를 이기면 천뢰종을 돌려줄게. 하지만 지면 당신과 천뢰종은 나를 대종사로 모셔야 할 거야. 어때?”
갑작스러운 연적하의 제안에 광성 존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만회할 기회를 줘서 고맙지만 대종사라니?
장구한 종문의 역사상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다.
“대종사는 뭔가?”
“방금 내가 새로 만든 말이야. 종사들 위에 있다는 뜻이지. 종사를 죽이지 않고 부려 먹기 좋잖아. 나를 대종사로 인정하면 솜털 하나 다치지 않을 거야.”
“허허헛! 종사들의 위에 서겠다니. 실로 황당한 이야기구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어차피 포로로 잡힌 자신의 처지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아니 무조건 이익이다.
이기면 천뢰종을 되찾고, 진다 해도 목숨을 잃지는 않으니 말이다.
대소를 터뜨린 광성 존자와 달리 혜문 존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연적하 제군이 광성 존자의 영기를 취해야 할 텐데 무슨 해괴한 짓들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대종사라니?
그 말은 즉, 자신이 종사들의 위에 서겠다는 것이었다.
종사에는 자신도 포함된다.
그저 이용해 먹기 딱 좋은 들개인 줄 알았더니 호랑이 흉내를 낸다.
혜문 존자는 연적하 제군을 죽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가 정말-듣도 보도 못한-대종사를 꿈꾼다면 장차 자신의 적이 될 터였다.
하지만 여기서 연적하 제군과 싸우면 천태종 역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게 될 게다.
게다가 연적하 제군을 죽인다는 보장도 없다.
그가 작정하고 달아나면 설사 자신이라 해도 잡지 못할 테니까.
혜문 존자는 답답했지만 말도 안 되는 비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광성 존자는 처음부터 검령을 불러냈다.
며칠 전에 본 연적하 제군의 검공을 당해 낼 게 떠오르지 않아서다.
파츠츠츠-.
광성 존자의 앞에 뇌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뢰종에만 드물게 나타난다는 뇌천검령이다.
길이가 삼 장(약 9미터)에 달하는 뇌검의 위용에 천태종은 숨을 죽였다.
뇌기를 뿜어내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검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반면 천뢰종 고수들은 뇌검이 마치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뿌듯한 얼굴을 했다.
비록 태을 존자의 배신으로 전쟁에서 패했지만 뇌천검령은 그들의 자랑이었다.
광성 존자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 제군,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제군쯤 되었으면 그러지 않을 거라 믿겠소.”
그의 광오한 태도에 연적하가 푸들푸들 웃었다.
그리고 독맥에 있는 구천검령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구천검령이 화답했다.
연적하의 머리 위로 붉은 검형(劍形)이 떠올랐다.
검신의 폭이 일 장(약 3미터), 길이는 무려 십 장(약 30미터)에 달했다.
구천검령의 크기 때문일까?
방금 전까지 당당하던 뇌천검령이 왜소해 보였다.
광성 존자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글거리며 지옥의 열기를 내뿜는 붉은 검형을 보고 있으려니 숨이 턱 막혔다.
‘구천검령이라고? 구주에 저런 검령이 있었다고?’
종문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지만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저 검령을 본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기록에 남겼을 것이다.
검령이 내뿜는 존재감부터가 달랐다.
뇌천검령의 존재감은 그래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다.
그런데 저 구천검령은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삼천의 신’들이 가지고 다닌다는 신기(神器)가 저럴까.
‘나의 뇌천검령은 무적이다. 저건 보기만 그럴듯할 뿐 실속은 없을 게다.’
광성 존자는 억지스러운 생각으로 자신감을 북돋웠다.
그리고 뇌천검령으로 자신의 성명절기인 뇌천대장(天大壯)을 펼쳤다.
뇌천검령이 폭발하듯 뇌기를 분출했다.
꽈광-!
수백 수천 개의 뇌기가 연적하 제군을 때렸다.
하지만 뇌기는 연적하 제군의 몸에서 일어난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파츠츠츳-.
아직 위력을 잃지 않은 뇌기가 연적하 제군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깜짝이야!’
뇌기에 직격당한 연적하는 얼굴을 찡그렸다.
광성 존자의 수법은 막고 어쩌고 할 틈도 없을 정도로 빨랐다.
호신강기가 아니었으면 저 일격에 새카맣게 탔을 게다.
그가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자 구천검령의 붉은빛이 더 진해졌다.
마치 연적하를 놀라게 해서 화가 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연적하의 검결지가 광성 존자를 가리켰다.
구천검령이 기다렸다는 듯 일직선으로 광성 존자를 향해 날아갔다.
광성 존자는 급히 뇌천검령으로 붉은 검을 막았다.
파지지직! 파직-!
구천검령과 뇌천검령 사이에 불꽃처럼 뇌전이 튀었다.
그러나 뇌천검령은 구천검령을 막지 못했다.
푸스스-.
기이한 소리와 함께 뇌천검령이 사라졌다.
순간 충격을 받은 듯 광성 존자의 상체가 격하게 흔들렸다.
구천검령은 아무것도 거칠 것 없다는 태도로 위풍당당하게 날아갔다.
구천검령의 영기에 압도당한 광성 존자는 서둘러 패배를 자인했다.
“졌소!”
그러나 구천검령은 멈추지 않았다.
광성 존자는 구천검령이 한 자(30센티) 앞까지 이르자 절규하듯 외쳤다.
“대종사님!”
그제야 구천검령이 정지했다.
광성 존자의 얼굴에서 겨우 한 뼘 떨어진 위치였다.
광성 존자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두덩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휘이이잉-.
가을의 바람이 요란하게 강변을 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세찬 바람도 강변의 침묵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천태종과 천뢰종 사람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홀린 듯한 눈으로 구천검령을 보았다.
그건 혜문 존자도 마찬가지였다.
천뢰종 궁극의 검령이 뇌천검령인데 그걸 깨부수는 검령이라니!
자신의 조화검령을 떠올려 보았지만 한숨만 났다.
태을 존자가 연적하 제군에게 천뢰종을 양보하고 떠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구천검령이라고 했던가.’
검령은 강하지만 연적하 제군에게는 빈틈도 많았다.
뇌천검령에 손쓸 틈도 없이 격중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호신강기가 무적은 아니니 종사들이 힘을 합치면 그도 당해 내지 못하리라.
문제는 종사들이 제군 하나를 잡겠다고 힘을 합치느냐다.
‘아직은…….’
하지만 연적하 제군의 손에 천문이 하나 둘 떨어지면, 종사들도 생각을 달리할 게다.
연적하가 구천검령을 거둬들였다.
망연한 얼굴로 서있던 광성 존자가 연적하 제군의 앞으로 가서 고개를 숙였다.
“나와 천뢰종은 대종사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난 천뢰종 고수들이 일제히 연적하를 향해 허리를 꺾었다.
“대종사님!”
종사에 대한 최고의 예가 묵례다.
그런데 대종사는 종사보다 윗사람이니 얼떨결에 허리를 접은 것이다.
천뢰종의 그런 모습에 천태종 고수들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지금까지 종문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
그런 금기 아닌 금기가 깨진 것이다.
천태종 사람들에게 대종사라는 이름과 허리를 꺾는 모습은 새롭다 못해 충격이었다.
그렇게 천리포 강변에서 광성 존자와 천뢰종은 연적하를 대종사로 받아들였다.
연적하와 천뢰종의 관계가 정립되자 천태종 고수들은 천뢰종 포로들을 풀어 주었다.
천뢰종 고수들이 한쪽에 도열해 연적하의 지시를 기다렸다.
혜문 존자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연적하와 광성 존자에게 다가갔다.
“연 제군, 천태종은 이만 종산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소.”
그러자 광성 존자가 불쾌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혜문 존자. 우리 대종사님에게 제군이라니? 대종사님을 부정하겠다는 거요?”
혜문 존자는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적하와 광성 존자를 번갈아 보았다.
소요종의 제군에게 대종사라고 부르라는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 연적하가 너희 천뢰종의 대종사지 천태종의 대종사더냐!’
하지만 광성 존자의 일침에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종사인 광성 존자가 대종사로 받드는 사람에게 제군이라는 호칭은 적절치 않았다.
“실례했소. 연 제군과 천태종은 혈맹과도 같기에…….”
“어허! 그래도 계속 제군이라고 부르다니! 그건 우리 천뢰종과 대종사님을 무시하는 행동이외다.”
“…….”
혜문 존자는 이를 악물었다.
광성 존자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니 끝까지 물고 늘어질 분위기다.
천뢰종과 천태종 앞에서 당한 망신에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참에 천태종과 다시 싸움을 벌이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연적하 제군과 천뢰종의 전력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태종의 종산에서라면 모를까?
이곳 천리포에서 다시 붙는다면 반드시 패할 게다.
연적하 제군의 구천검령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했다.
연적하 제군을 슬쩍 보니 그는 무심한 눈으로 강물만 보고 있었다.
‘귓구멍이 뚫렸으니 지금의 상황을 알 텐데 못 들은 척하다니…….’
어쩌면 광성 존자가 저렇게 나오는 것은 연적하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숙여 준다.’
지금은 숙여 주지만, 훗날 열 배 백 배로 오늘의 치욕을 갚아 줄 날이 올 게다.
“생소한 호칭이라 입에 붙지 않아 실수를 했소. 연 대종사, 천태종은 종산으로 돌아가겠소.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먼저 가 보리다.”
그제야 연적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요. 조만간 천문을 구경하러 한번 찾아갈게요.”
“대종사의 방문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오. 언제라도 와 주시오. 그럼 이만.”
혜문 존자는 광성 존자 쪽은 한 번도 보지 않고 빠르게 돌아섰다.
잠시 후 천태종 고수들이 강변에서 사라졌다.
광성 존자가 연적하에게 말했다.
“대종사님, 혜문 존자를 이대로 보내시면 안 됩니다. 종사들 중에 가장 교활한 자가 혜문 존자입니다. 제가 소요종과 손잡고 천태종 먼저 치려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나는 내게 대놓고 덤비거나 적의를 보이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아요.”
“혜문 존자 같은 이는 결코 눈앞에서 적의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상관없어요. 혜문 존자보다 백 배는 뛰어난 사람이 내게 있으니까.”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혜문 존자만큼 머리가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연적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걱정하지 마요. 내가 말한 사람은 그쪽이 아니에요.”
“아, 그러시군요.”
계면쩍은 얼굴로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광성 존자가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대종사.
처음에는 영 이상하더니 지금은 본래 있었던 호칭인 듯 입에 착착 감긴다.
그의 구천검령이라면, 정말 대종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일대일에서 그를 능가할 종사는 없을 테니까.
그는 천문을 열고 ‘삼천의 신’이 될 수 있을까?
‘삼천의 신’을 생각하자 잠잠하던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것이야말로 ‘왕들의 하늘’에 사는 자의 숙명이라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