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62
662회. 제군과 대종사
석 달 전 대륜 제군과 수호각은 염화전에서-그것도 공개적으로-물을 먹었다.
그들은 침입자가 달아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만약 그게 한 사람의 경험이라면 착각이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륜 제군과 오행금종진을 펼친 다섯 명의 진인들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자신이 침입자에게 농락당했다고 생각한 대륜 제군은 수호각에 “범인이 다시 찾아올 테니 염화전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뒤로 수호각의 진인들은 밤낮없이 염화전을 감시했다.
수호각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라 종문 간 전쟁의 와중에도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연적하 제군이 나름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걸려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대륜 제군이 난입하기 일각(15분) 전.
침상에 누워 남궁연을 기다리던 연적하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 느낌이 싸했다.
그러고 보면 추회 존자가 이 시간에 남궁연을 불러낸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다.
‘이 늦은 밤에 차라니.’
곰곰 생각하던 그는 가만히 영기를 퍼트려 보았다.
역시나.
염화전 주위를 빼곡하게 에워싸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 사람들이 나를 뭐로 보고.’
머릿수를 더 많이 동원하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만, 추회 존자가 누님을 빼돌린 건가?’
곰곰 생각해 보니 분위기가 딱 그랬다.
이 모두가 계획된 일이라면 그다음 목표는 자신을 잡는 일이리라.
연적하는 가만히 공허법의 주문을 외웠다.
“공허무상불견시(空虛無象不見視) 건곤일색간불견(乾坤一色看不見) 급급 여율령 사바하.”
뒤이어 창가로 걸어가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손이 보였다.
‘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금쯤 사라졌어야 할 몸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은형술이 왜 안 되지?”
그는 다시 공허법의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습이 감춰지지 않았다.
“이런 젠장. 술법이 막혔네.”
세상은 넓고 공법은 많다.
당장 강호만 해도 상대의 술법을 금제하는 술법이 있다.
천지종에도 그와 비슷한 공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순순히 당해 주지 않겠다는 거지?”
하기야 속세의 문파도 아니고, 천하의 천지종이 같은 수법에 또 당할 리가 있나.
연적하는 잠시 다른 수를 떠올려 보았지만 당장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나저나 누님이 늦으시네.”
종사를 대리하는 제군인데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싶으면서도 찜찜했다.
“괜히 왔나?”
지금 같은 때에 남궁연의 숙소에서 자신이 발각되면 수습하기 어려울 게다.
고민하던 연적하는 일단 몸을 피할 생각에 창가로 다가가 주위를 살폈다.
딱히 신경 쓰일 만한 건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적진 한복판에서 하염없이 시간만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연적하가 작정하고 창문을 연 순간, ‘쾅!’ 소리와 함께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그는 방에 난입한 상대를 무시하고 밤하늘로 도약했다.
그리고 막 구룡번신(九龍翻身)의 수법으로 빠져나가려 할 때다.
어둠 속에서 가공할 기세로 검 한 자루가 날아왔다.
쐐애애액-.
무시하고 그냥 달아나려 했다가는 사지 중에 하나를 내어 줄 판이다.
허공에 우뚝 선 연적하는 청사를 꺼내 검을 쳐 냈다.
채앵-!
일 장(약 3미터)여 거리까지 튕겨났던 검은 빠르게 기세를 회복해 다시 돌아왔다.
그사이 침입자 뒤쪽에 자리를 잡은 대륜 제군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자신의 성명절기인 팔식귀원검(八識歸元劍)을 펼쳤다.
각양각색의 검형(劍形) 여덟 개가 팔방에서 연적하를 향해 쇄도해 갔다.
츠츠츠츠-.
쐐애애액-!
팔식귀원검과 튕겨 났던 검까지 모두 아홉 개의 검이 연적하를 노렸다.
연적하는 정신없이 검을 쳐 냈다.
쾅! 쾅! 쾅! 쾅-!
검형 하나 하나가 품고 있는 검의(劍意)와 그 속에 실린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자신의 검공으로 반격에 나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종사와 제군의 합공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그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힘이 들망정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나자 그는 조금씩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 생겼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살벌한 합공에 몸이 적응하자 더 이상 위태롭지 않았다.
격전의 와중에 그의 시선이 염화전에서 십 장(약 30미터)쯤 떨어진 석탑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노파가 이기어검의 주인이 분명했다.
놀랍게도 노파에게서 소요종의 제군들보다 강한 영기가 느껴졌다.
‘대단하네.’
천지종이 가진 힘의 일부를 엿본 것 같은 느낌이다.
연적하는 다시 한번 쇄도하는 노파의 이기어검을 쳐 낸 후, 남궁연의 방에서 나온 노인과 마주 보았다.
관우처럼 풍성한 수염이 인상적이다.
연적하는 노인의 수염에 감탄한 자신이 대견했다.
적진 한복판에서, 이처럼 대단한 적들과 싸우는데, 감탄할 여유가 생기다니.
그때 삼십여 명의 고수들이 허공으로 솟아올라 사방을 틀어막았다.
뒤이어 가공할 압력이 밀려왔다.
저들 머리 위로 천산검영을 펼치면 볼 만할 테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전장에서라면 모를까?
여기서 일을 더 키우면 남궁연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달아나야겠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사라져 주는 게 남궁연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잘들 있으라고!’
그의 몸이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구룡번신을 쓰자 그의 몸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쐐애액-.
츠츠츠츠-.
한발 늦게 추회 존자의 이기어검과 대륜 제군의 팔식귀원검들이 빈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
천라지망을 좁혀 가던 수호각 고수들은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염화전 인근에 그들을 제외한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지난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륜 제군은 술렁거리는 수호각 고수들을 돌려보낸 뒤 석탑으로 날아갔다.
“놈을 놓쳤습니다. 수호각에서 적연부동(寂然不動)의 법진을 펼쳐 놓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연부동은 술법을 금제하는 법진으로 그 안에서는 일체의 술법이 무위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사라지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기막혀 하는 대륜 제군에게 추회 존자가 말했다.
“그가 사라진 것보다 우리가 그를 제압할 수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일세.”
“흐음! 그도 그렇군요.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는데…….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대륜 제군은 그와 같은 청년 고수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 나이에 자신과 추회 존자의 합공을 견뎌 내다니!
“소요종의 연적하 제군이네.”
“예? 그게 사실입니까? 설마 빙설화 제군이 천지종을 배신한 겁니까?”
“배신은 아니고, 빙설화 제군이 속세에서의 연을 끊지 못해 일어난 일이네.”
“속세에서의 연이오?”
“빙설화와 연적하가 부부라고 하더군.”
“부부요?”
뜻밖의 말에 대륜 제군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점입가경이라더니 딱 그 꼴이다.
종문 전쟁의 와중에 소요종 제군을 종산에 끌어들였는데, 알고 보니 속세에서 부부였단다.
“빙설화는 일단 수호각의 뇌옥으로 보냈네. 소요종과의 전쟁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 연 제군을 겪어 보니 빙설화를 뇌옥에 보내길 잘한 것 같군.”
“빙 제군은 어쩌실 생각이신지요?”
“어쩌긴, 소요종을 병탄한 뒤에 다시 끄집어내 줘야지. 빙설화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연 제군의 무위가 저처럼 뛰어난데……. 빙 제군의 협조가 없어도 되겠습니까?”
“오늘 보지 못했나? 빙설화의 약점이 연 제군이듯, 연 제군의 약점 또한 빙설화일 테지. 빙설화의 생사가 우리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면, 연 제군도 날뛰지 못할 걸세.”
“빙 제군으로 연 제군을 회유할 생각이십니까?”
“그보다 더 좋은 수가 있나?”
“그렇기는 합니다만 빙 제군이 부부의 연을 잊지 못한다면……. 천지종에 큰 위험이 아닙니까?”
대륜 제군은 슬쩍 추회 존자의 안색을 살폈다.
만약 나중에라도 빙 제군이 연 제군 편에 서면 천지종에는 재앙이었다.
그러자 추회 존자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연 제군이 살아 있다면 그렇겠지. 연 제군이 살아 있다면…….”
하지만 대륜 제군은 그런 추회 존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저렇게 신출귀몰하는 연 제군을 무슨 수로 죽인단 말인가.
‘수호각의 뇌옥이라고 했겠다.’
어쩌면 지금이 눈엣가시인 빙설화 제군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인지도 몰랐다.
다행히 수호각은 자신의 관할하에 있는 곳이다.
대륜 제군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
삼월 초하루.
영천주.
청산성 낙일현.
천뢰종 종산 유명산.
한적하던 천뢰종 종산에 소요종과 천태종 고수들이 몰려들었다.
연합이라고 하지만, 과거 눈만 마주쳐도 싸우던 세 종문 고수들이 모였으니 조용할 리가 없다.
하물며 몇 달 전까지 적과 배신자 관계였으니 오죽할까.
식당 주변에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 시비가 일어났는데 대부분 호칭이 원인이었다.
소요종과 천태종은 연적하를 ‘제군’이라 했고, 천뢰종에서는 ‘대종사’라 했다.
그 문제로 계속해서 싸움이 났지만 세 종문은 호칭 문제를 양보하지 않았다.
사실 세 종문 고수들에게 연적하의 호칭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벽력궁.
정오 무렵, 세 종문의 존자와 제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연적하와 천뢰종 제군들을 제외하고 다들 어딘지 불편한 얼굴들이다.
천뢰종의 종사인 광성 존자가 빳빳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말을 이어갔다.
“……해서 호칭부터 통일하자는 게 나의 의견이오. 우리 ‘대종사’님을 ‘제군’이라 부르는 자들 때문에 불필요한 시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소. 종문의 어른들이 솔선수범하면 그런 일들은 근절될 것 같은데, 반대하는 분 계시오?”
그러자 소요종의 초요산 제군이 운을 뗐다.
“소요종에는 규칙과 질서가 있습니다. 연 제군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순간 광성 존자가 버럭 소리쳤다.
“초요산! 감히 내 앞에서 우리 대종사님을 제군이라 부르다니! 태을 존자! 소요종이 우리 대종사님을 인정하지 않겠다면 지금 말하시오!”
광성 존자는 제군 따위와 말을 섞기 싫어서 태을 존자를 끌어들였다.
태을 존자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광성 존자와 초요산 제군을 번갈아 보았다.
천지종 연합과 싸우기도 전에 호칭 문제로 내분이 일어날 판이다.
이 자리에서 연적하가 대종사라는 걸 부정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천뢰종과 연적하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천태종의 혜문 존자를 힐끔 보았다.
무덤덤한 얼굴로 앉아 있는 그를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싸움이 났는데 천태종이 천뢰종의 편에 서면, 소요종은 천뢰종에 병탄되고 말 게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혜문 존자의 의중을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아아! 처음부터 대종사라는 말이 나오지 못하게 했어야 하거늘…….’
그래 봐야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이젠 연적하와 싸워 대종사 자리를 빼앗든지, 그가 대종사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