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63
663회. 네가 연 제군을 위하는 만큼 연 제군도 그럴까?
천뢰종의 광성 존자는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태을 존자를 쏘아보았다.
‘교활한 늙은이, 이제 어쩔 테냐?’
천리포에서 태을 존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그는 이 순간 희열을 느꼈다.
천리포에서 포로가 되었을 때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만약 다른 종문에 포로로 잡혔으면 자신은 영기를 빼앗기고 죽었을 게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날이 오다니!
그의 입장에서는 전화위복도 이런 전화위복이 없었다.
“태을 존자! 더 이상 천뢰종 연합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입장을 명확히 밝혀 주시오!”
광성 존자의 채근에 태을 존자는 마지못해 답했다.
“연적하…… 대종사는 우리 소요종의 자랑인데 부정할 리가 있겠소? 이후로는 소요종 역시 그에게 대종사의 호칭을 사용할 것이오.”
태을 존자의 말에 소요종 제군들은 고개를 툭 떨구었다.
그것은 소요종이 천뢰종의 아래임을 시인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광성 존자의 시선이 이번에는 천태종의 종사인 혜문 존자를 향했다.
혜문 존자는 광성 존자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대세라는 게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연적하 제군이 대세였다.
“우리 천태종 역시 이후로 대종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하겠소.”
태을 존자와 달리 연적하를 지칭하지 않은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광성 존자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소요종과 천태종에서 그리 말씀하시니 조만간 대종사님의 취임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소. 반신반의하는 제자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이참에 우리 연합의 단합된 힘을 보여 주십시다.”
혜문 존자가 눈을 찡그렸다.
대종사의 취임식과 단합이 무슨 관계라고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되면 정말 우리가 연적하의 아랫사람이 되고 마는데…….’
문득 태을 존자를 보니 그도 난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혜문 존자나 태을 존자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미 연적하를 대종사로 인정하겠다고 한 마당이라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대종사님의 취임식은 출정식을 갖는 날 갖도록 하십시다. 뭐, 오늘이라도 원한다면 바로 취임식을 열 수도 있소만.”
그러자 혜문 존자가 황급히 말했다.
“어차피 출정식에 다 모여야 하니 그날 모두 해치우도록 하십시다.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니까.”
“나도 혜문 존자와 같은 생각이오. 어차피 취임식과 출정식 모두 수일 내로 열어야 할 텐데, 굳이 두 번에 나눠서 할 이유가 있소?”
광성 존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정식 날, 대종사님의 취임식을 하도록 하십시다. 언제가 좋겠소?”
당하기만 하던 태을 존자가 딴지를 걸었다.
“출정식을 묻는 거라면, 그보다는 천지종과 어떻게 싸울지부터 논의해야 하지 않소?”
혜문 존자가 보충하듯 말했다.
“옳으신 지적이외다. 천지종의 빙설화 제군은 구주 제일의 지략가로 알려져 있소.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도 태상종이나 무극종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게요.”
기다렸다는 듯 초요산 제군도 거들고 나섰다.
“맞습니다. 출정식보다는 대책 마련이 우선입니다.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우리에게 빙설화 제군을 상대할 복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요종과 천태종 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광성 존자를 향했다.
은근 따져 묻는 분위기다.
하지만 광성 존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대종사님께서 그런 준비도 없이 종문들을 소집했을 것 같소? 빙설화 제군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대종사님께서 책임지시기로 했소.”
혜문 존자가 놀란 얼굴로 연적하 대종사를 보았다.
“대종사님, 저 말이 사실입니까?”
혜문 존자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아 대종사라고 불렀다.
연적하가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빙설화 제군의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자 연적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태을 존자가 끼어들었다.
“빙설화는 천고의 법진 하나로 태상종과 무극종을 복속시킨 사람…… 입니다. 정말 빙설화의 법진을 파훼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거듭된 질문에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지금 내 말을 의심하는 거예요? 내가 누구처럼 한 입으로 두 말할 사람으로 보여요?”
순간 태을 존자는 이를 악물었다.
어렵게 존대까지 했는데 지난 일로 개망신을 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요종과 천태종의 고수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더는 묻지 않았다.
자칫 대종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다.
더 이상 소요종과 천태종이 딴지를 걸지 않자 광성 존자가 말했다.
“허면 이제 출정식만 남았는데, 천지종에서 대비하기 전에 내일이라도 여는 게 어떻겠소? 대종사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나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고개를 끄덕이던 광성 존자가 소요종과 천태종 고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러분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소? 내일 출정식에 반대하는 분이 계시오?”
“내일로 하십시다.”
“시간 끌어 좋을 게 없으니 내일 하시지요.”
“그럽시다.”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소요종과 천태종 고수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천뢰종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의 출정식 날짜가 잡혔다.
***
천뢰종 연합 출정식 당일.
세 종문의 출정식 자리에서 연적하는 대종사로 추대되었다.
소요종과 천태종의 존자와 제군들은 마지못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노조와 진인, 노사들의 모습은 또 달랐다.
연적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제자들은, 그가 대종사 자리에 오른 것을 자신의 일처럼 좋아했다.
대종사의 취임식과 출정식이 끝나자 세 종문 고수들은 천뢰종 종산을 떠났다.
***
한산주.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소요종과 천태종이 천뢰종 종산에 집결하자 천지종도 부랴부랴 태상종과 무극종을 불러 모았다.
무려 이천 명이 넘는 숫자가 원덕산에 집결했다.
문제는 그 많은 고수를 지휘할 사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추회 존자가 직접 진두지휘하겠다고 나섰지만 너무 많은 숫자라 통제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천지종 하나만 운영해 왔다. 그것도 사실상 존자쯤 되면 실무를 제군과 노조들에게 맡기고 손을 떼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이천 명이 넘는 세 개 종문을 지휘하려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더구나 태상종과 무극종을 무릎 꿇린 이는 빙설화 제군.
그녀가 모습을 감추자 태상종과 무극종은 상당히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추회 존자는 임시방편으로 대륜 제군에게 태상종, 일성 제군에게 무극종의 지휘 감독을 맡겼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혼란만 불러일으켰다.
빙설화 제군의 경우 고강한 무위로 태상종과 무극종 종사를 찍어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대륜 제군과 일성 제군의 무위는 종사급에 이르지 못했다.
자연히 태상종과 무극종이 토해 내는 불만의 목소리만 높아져 갔다.
안학궁.
오늘도 세 종문의 존자와 제군들은 안학궁에서 천뢰종 연합을 두고 갑론을박했다.
천지종의 대륜 제군이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백리하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한산주와 영천주 경계에 있는 오지산의 협곡에서 싸워야 합니다. 백리하에서 위례성까지는 팔백 리(약 314 킬로미터)밖에 안 됩니다. 적을 그렇게 깊숙이 들어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태상종 종사인 진표 존자가 바로 반박했다.
“오지산의 협곡에서 싸우자고 했소? 빙설화 제군이 지휘를 한다면 무조건 찬성이오. 허나 빙 제군도 없이 협곡으로 가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소. 귀하는 협곡에서 싸워 본 적이 있소? 나는 그 끔찍한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소이다. 그건 구산 존자도 마찬가지일 거외다.”
진표 존자는 불귀곡에서의 경험 이후로 협곡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건 무극종의 구산 존자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오지산은 반대외다. 차라리 시야가 트인 백리하 인근이 낫겠소. 백리하라면 쌍방의 무력만으로 승부를 보기에 좋은 곳이니.”
하지만 대륜 제군을 포함한 천지종 제군들은 백리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백리하까지 거의 칠백 리(약 274킬로미터)를 적에게 내주자는 소리인 까닭이다.
천지종의 현원 제군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두 분 존자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백리하는 영천주의 경계에서 칠백 리나 떨어진 곳입니다. 영천주 경계에서 이곳까지 천오백 리니, 거의 절반을 내어 주는 셈입니다. 만에 하나 백리하에서 밀리면 그다음 전장은 원덕산이 될 겁니다. 그러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표 존자가 냉소를 쳤다.
“흥! 그러니 오지산에서 싸우자 말했다시피 빙설화 제군이 나서지 않는다면 협곡에는 발도 들이지 않을 게요. 대체 빙 제군은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요? 소문에는 천지종 내부에서 사달이 일어났다고 하던데, 정말이오?”
“…….”
한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결국 회의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추회 존자가 나서서 해명했다.
“빙 제군은 일신상의 이유로 잠시 물러나 있을 뿐이에요. 이번 천뢰종 연합과의 싸움이 끝나면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될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하지만 노회한 진표 존자는 그 정도 답변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추회 존자께는 송구한 말이나, 솔직히 구산 존자와 내가 천지종에 머리를 숙인 것은 빙설화 제군의 무위와 지략에 굴복해서요. 빙 제군이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종산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뭐라고요? 불귀곡에서의 맹세를 저버리겠다는 것인가요!”
“불귀곡에서 우리와 맹세를 나눈 사람은 추회 존자 그대가 아니라 빙설화 제군이오. 불귀곡에 있지도 않았던 그대는 맹세 운운할 자격이 없소.”
추회 존자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저거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빙설화 제군의 부재를 빌미로 약속을 저버리겠시겠다?’
물론 올무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이기는 하지만 너무 수가 얕았다.
“빙설화 제군은 조만간 복귀할 거예요. 그러니 천지종에 한 맹세나 잘 지키도록 하세요. 그리고 천뢰종 연합이 한산주를 휘젓게 할 수는 없어요.”
“끝내 오지산에서 싸우겠다는 것이오?”
“오지산에서의 싸움은 우리 천지종이 선두에 서겠어요. 그럼 문제없겠죠?”
그제야 진표 존자와 구산 존자는 한발 물러섰다.
협곡에서 천지종이 선두에 서겠다니 더 이상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
그렇게 천지종 연합은 회의를 연 지 이틀 만에 전장(戰場)을 확정했다.
***
그날 밤.
추회 존자는-태상종과 무극종의 눈을 피해-은밀하게 수호각의 뇌옥을 방문했다.
지하 십 장(약 30미터) 아래로 내려가자 붉은빛에 물든 사방 일 장 크기의 뇌옥이 드러났다.
붉은빛은 금령법진(禁靈法陳)의 작용이다.
금령선액(禁靈仙液)만으로도 불안해 법진까지 설치한 것이었다.
빙설화 제군을 본 추회 존자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탓에 빙설화 제군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쯧! 그깟 남자가 뭐라고. 하늘에 닿은 네 재주가 아깝지도 않으냐.”
“설마 아직도 내가 연 제군이 남편이라서 양보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연 제군의 강함은 나도 경험했다. 하지만 그보다 강한 두 종문을 법진 하나로 제압한 사람이 너였다. 그런 네가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으니 당연하지 않으냐?”
“그건 누구와 달리 내가 지혜롭기 때문이죠.”
“누구란 나를 지칭하는 것이냐?”
“잘 아시네요. 내 고향에서는 그런 경우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신다고 하지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그런데, 네가 연 제군을 위하는 만큼 연 제군도 그럴까?”
추회 존자는 빙설화 제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연 제군이 빙설화를 얼마만큼 위하느냐에 오지산의 승패가 달렸으니 그건 중요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