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68
668회. 이게 나의 신념이다.
오지산 엄지봉 정상.
아탈레스들이 육편으로 변하자 몰록은 자리에서 일어나 포효했다.
“쿠오오오!”
그러자 몰록 주위에 있던 수백 마리의 마물들이 호응하듯 함께 소리를 질렀다.
“크허어엉-!”
“우어어엉-!”
“캬아아-!”
엄지봉 정상이 한순간 마계로 변한 듯했다.
마물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엄지봉 너머 오지산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연적하는 갑작스러운 마물들의 발광을 보고도 크게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누가 누르면 튀는 기질이 있던 그는, 오히려 몰록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몰로옥-!”
동시에 청사를 정면으로 휘둘렀다.
구천세법 칠 식 용조할지(龍爪割地)가 펼쳐지자 그 파괴적인 힘에 지면이 일직선으로 길게 패였다.
콰콰콰콰-!
한순간 몰록과 연적하 사이에 길이 열렸다.
연적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람처럼 내달려 몰록과 거리를 좁혔다.
순간 몰록 좌우편에 있던 삼 장(약 9미터) 크기의 거인 아나킨들이 앞을 막아섰다.
이윽고 두 아나킨들이 동시에 연적하에게 손을 뻗었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전광석화 같은 손놀림이다.
손보다 풍압이 먼저 닿았다.
깜짝 놀란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청사를 휘둘러 거인의 손을 쳐 냈다.
콰직-!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났지만 거인의 손은 멀쩡했다.
그 일격에 꽤나 충격을 받은 듯 아나킨들의 눈에서 흉광이 쏟아져 나왔다.
“우워워억!”
“크하아!”
괴성과 함께 아나킨들의 몸이 붉게 달아 올랐다.
이전보다 더욱 빨라진 아나킨들은 벌레를 때려잡듯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콰앙-!
아나킨들의 주먹이 닿는 곳마다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박살 났다.
바위는 가루가 되고, 땅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패였다.
미꾸라지처럼 거인들 사이를 요리 조리 피해 다니던 연적하는 거인의 뒤꿈치에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을 펼쳤다.
콰콰콰콱-!
강철만큼이나 단단하던 아나킨의 뒤꿈치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쿠워어!”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아나킨이 무릎을 꿇었다.
거인의 머리가 내려오자 연적하는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를 펼쳤다.
청사에서 뻗어 나간 수백 개의 검영(劍影)이 아나킨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뒤늦게 아나킨이 구멍 뚫린 목을 움켜잡고 버둥거렸다.
바람처럼 달려간 연적하가 행지무강(行之無疆)의 수법으로 거인의 목을 그었다.
콰드드득-!
그제야 거인의 몸에서 머리가 분리됐다.
동료의 최후를 목격한 아나킨이 광분해 날뛰자 엄지봉 정상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애꿎은 마물들만 성난 아나킨의 발에 밟혀 곤죽이 됐다.
보다 못한 몰록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아나킨은 듣지 못한 듯 멈추지 않았다.
연적하는 작정하고 마물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녔다.
입에 거품까지 물고 그를 따라다니는 거인에게 마물들만 죽어 나갔다.
그렇게 일각(15분)쯤 지나자 정상 부근의 마물들이 아래쪽으로 쫓겨 내려갔다.
엄지봉 정상의 마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연적하는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거인과 얼굴을 마주했다.
눈앞에 목표가 나타나자 거인은 박수를 치듯 양 손바닥을 마주쳤다.
순간 연적하는 신검합일로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을 펼쳤다.
청사와 하나가 된 연적하가 아나킨의 얼굴로 날아갔다.
쐐애애액-!
그때 돌연 거인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두꺼비 혀처럼 혀가 길게 뻗어 나왔다.
‘헉!’
연적하가 깜짝 놀라 대응책을 떠올릴 때 행지무강이 기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채찍 같은 혀를 피해 나선형으로 돌며 날아간 것이다.
‘행함에 경계가 없다’는 검의(劍意)에 맞게 난관을 돌파한 셈이다.
이윽고 청사와 연적하가 아나킨의 입으로 들어갔다.
뼈가 바스라지는 소리과 함께 아나킨의 뒤통수에 구멍이 뚫렸다.
콰자작-!
뒤통수에 구멍이 나고도 아나킨은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꽤나 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나킨이 꾸물꾸물 움직이려 할 때, 벼락처럼 날아든 산검멸지의 검영들이 구멍 난 뒤통수를 더욱 넓게 찢어발겼다.
그제야 아나킨의 거대한 몸이 밑동이 잘린 나무처럼 서서히 넘어갔다.
쿠우웅!
아나킨들마저 쓰러지자 몰록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몰록이 주변을 쓰윽 둘러보았다.
아직 옆에 수십 마리의 마물이 남았지만 종복인 아탈레스만도 못한 것들이다.
인상을 찡그리던 몰록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인간이여. 너의 재주가 뛰어나니 기회를 주마. 나를 경배하라. 그리하면 네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연적하는 다른 마물들과 달리 몰록이 말을 걸어오자 흠칫 놀랐다.
“뭐야? 이거 말을 할 줄 아네?”
“나는 반신(半神)의 반열에 이른 몸.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연적하는 문득 독안귀마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독안귀마와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소원이 뭔지 알고 들어준대?”
“…….”
대답 대신 유심히 연적하를 응시하던 몰록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너의 인과(因果)를 들여다보니 구주 사람이 아니로구나. 기이한 일이로고. 하등한 세계의 인간이 어찌 ‘왕들의 하늘’에 왔을꼬?”
연적하는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몰라?”
“네 소원이 하등한 너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거라면, 이루어 줄 수 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상위의 세계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하위의 세계로 가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다만 뭐?”
“그러려면 네가 한 가지 일을 해 주어야 한다. 너에게는 쉬운 일이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뭔데?”
“천 개의 싱싱한 어린아이 심장을 바쳐라. 열두 해를 넘기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에라 이 미친 개 대가리야! 그냥 뒈져라! 그러느니 천문을 열고 말겠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연적하가 청사를 휘둘렀다.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다.
청사에서 뻗어나온 수백 개의 검영들이 폭풍처럼 몰록에게 몰아쳐 갔다.
그러자 몰록이 한차례 손을 떨치며 명했다.
“하조그(돌아가라!”
순간 수백 개의 검영이 일제히 방향을 꺾어 연적하를 향했다.
“헛!”
구천구검을 연성한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다.
대경실색한 연적하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피했다.
이윽고 산검멸지의 검영이 연적하가 서 있던 자리에 화살처럼 꽂혔다.
콰콰콰쾅-!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정상이 초토화됐다.
몰록의 머리 위에 나타난 연적하는 구천구검 일 식 현녀강림(玄女降臨)으로 내리찍었다.
순간 몰록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항거하기 어려운 돌풍이 일어나 연적하를 날려 버렸다.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던 연적하는 급히 신형을 세웠다.
그때 몰록이 구부러진 손가락을 곧게 펴 연적하를 가리켰다.
“자호크 메트(죽어라)!”
산 위에 깔려 있던 흑운(黑雲)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연적하를 향해 몰려갔다.
흑운보다 시체 썩는 냄새가 먼저 도달했다.
그 역한 냄새에 무심코 코를 움켜잡았던 연적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역겨움 뒤에 머리털이 삐쭉 솟을 정도로 오싹한 사기(死氣)가 느껴졌다.
본능은 ‘흑운에 잡히면 죽는다’고 경고했다.
창고를 탈출한 이래 처음 맞닥트린 생사의 위기가 연적하의 심장을 옥죄었다.
‘어쩐다.’
연적하는 움찔움찔 뒤로 물러났다.
몰록은 둘째치고 당장 저 사악한 죽음의 구름부터 막아야 한다.
‘무슨 수가 없을까?’
그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흑운은 점차 거리를 좁혀 와 코앞까지 육박했다.
이젠 선택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신 한번 공격에 나서든지, 아니면 구룡번신으로 달아나는지를.
누르면 튀는 연적하다.
궁지에 몰린 그는 도리어 화를 내며 폭발했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그는 흑운을 향해 청사를 날렸다.
쉬이익-!
청사가 흑운을 관통했지만, 흑운은 여전히 죽음의 기운을 흘리며 날아왔다.
구름은 검이 닿지 않는 어둠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어둠…….
그때 문득 공진검(空塵劍)을 가르치던 광해 도사의 말이 떠올랐다.
-도가 하나[一]를 낳고, 하나가 둘[二]을 낳고, 둘이 셋[三]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그런즉 만물 안에 셋이 있고, 셋 안에 둘이 있고, 둘 안에 하나가 있느니라. 그 이치를 알겠느냐?
-예?
제자들의 얼뜬 반응에 광해 도사가 뜻을 풀어 주었다.
-도는 곧 하나다. 하나는 천지 밖에 있지만 천지 안을 드나든다. 공진검이 천지 밖에 있지만 천지 안을 드나드는 것도 그래서다.
“천지 밖에 있지만 천지 안을 드나든다라…….”
중얼거리던 연적하가 손을 뻗었다.
흑운 속을 헛되이 날아다니던 청사가 그의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공진검을 생각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지 밖에 있지만 천지 안을 드나든다’는 말이 오늘따라 새롭다.
그러고 보니 공진검의 검의(劍意)는 천둔검을 닮은 것도 같다.
천둔검 역시 천지 밖에 있다가 홀연히 나타나는 느낌이 들어서다.
공진검과 포룡검, 천둔검, 그리고 득물(得物)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돌아갔다.
시간이 멈추고 영원 같은 찰나가 그를 찾아왔다.
깨달음의 희열에 녹아들던 그를 깨운 건 코가 비뚤어질 것 같은 악취였다.
‘아차!’
생사의 격전 중에 잡생각이라니.
자책하던 연적하는 밀려오는 흑운 앞에서 공진검의 검무(劍舞)를 추었다.
청사에서 검명(劍鳴)이 흘러나왔다.
우우웅-.
-물론 그렇다고 단지 검법만 펼쳐서는 안 된다. 그건 그냥 검무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라도 공진검과 포룡검을 배워서 펼칠 수 있다. 그러나 퇴마를 하려면 법력이 검법을 받쳐 줘야 한다. 그것은 내단과 신념이다.
광해 도사를 떠올린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그가 ‘믿음’ 대신 ‘신념’을 강조한 이유를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도 같다.
구도(求道)는 나에서 시작해 나로 끝나니까.
검무가 끝나자 연적하는 검결지를 청사에 얹고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이게 나의 신념이다.’
우웅-.
한순간 청사의 앞쪽 허공에서 선명한 진동음이 일어났다.
곧이어 대기가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세찬 파동이 장내를 휩쓸었다.
“끄아아악-!”
“꺄아악-!”
귓속을 긁어내는 듯한 악귀들의 울음소리가 오지산 상공을 뒤덮었다.
잠시 후 흑운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바람이 시체 썩는 냄새를 밀어내자 연적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탁 하고 어질어질하던 머리가 거짓말처럼 맑아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는 천지가 떠나가라 고함을 내지르며 다시 한번 몰록에게 날아갔다.
“몰로오오옥-!”
연적하는 몰록을 노려보며 다시 한 번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를 펼쳤다.
수백 개의 검영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츠츠츠츠-.
몰록이 또 되돌려 주겠다는 듯 거만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렸다.
연적하는 이를 악물었다.
‘씨벌! 되돌릴 수 있으면 또 되돌려 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구천구검으로 베어 줄 테니까. 누가 먼저 구천구검에 죽는지 보자고.’
그렇게 연적하는 공진검으로 떠올린 ‘신념’을 구천구검에 담았다.
되든 안 되든 구천구검이 자신의 최선이니 그것으로 끝을 볼 생각이었다.
승리를 자신하는 듯 산검멸지의 검영 앞에 선 몰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