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69
669회. 매에는 장사 없다니까
검술의 극에 이르면 검기나 검강을 쓴다.
그 경지마저도 넘어서면 ‘기로 멀리 떨어진 검을 조종’ 한다거나[以氣御劍], 심지어 ‘검법에 담겨진 검의(劍意)를 형상화’시키기도 한다.
비록 경지는 다르지만 검기, 검강, 이기어검, 검의 등의 발현을 위한 필수 요소는 정기신(精氣神)의 일체다.
그리고 정기신의 일체는 마음, 혹은 의지에 달려 있다.
검술은 이처럼 마음, 혹은 의지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아무리 뛰어난 검법을 익혀도 검사의 의지가 약하면 검법의 위력이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삼류 검법을 익혔어도 검사의 의지가 강하면 삼류 이상의 위력이 나온다.
구천구검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펼치는 사람은 연적하다.
자연히 구천구검의 권능은 연적하의 의지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강호에서 연적하의 구천구검은 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위명이 쟁쟁한 고수들은 물론 마물들까지 구천구검을 두려워했다.
하위 차원의 인간 세상에서는 그랬다.
어떤 의미에서 연적하는 보검을 얻은 어린아이였다.
자연히 연적하의 구천구검은 정련될 틈이 없었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연적하의 구천구검은 아직 미완이라고 해야 옳았다.
거짓에 능한 반마신 몰록은, 경험이 부족한 인간 검사의 연약함을 놓치지 않았다.
연적하는 다시 한번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를 펼쳤다.
쓰아아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백 개의 검영(劍影) 앞에서 몰록은 웃었다.
“하조그(돌아가라)!”
몰록이 손짓하자 산검멸지의 검영들은 방향을 꺾어 연적하를 향해 날아갔다.
구천구검을 펼친 이래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연적하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츠츠츠츠-.
검영이 자신에게 되돌아오자 연적하는 이를 갈았다.
마치 적 앞에서 자해라도 하는 느낌이다.
치욕스러웠지만 당장 눈앞의 검영부터 해결해야 했다.
방법은 두 개다.
하나는 아까처럼 몸을 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순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반한 검영을 부수기로 했다.
이윽고 청사에서 또 한번 산검멸지가 쏟아져 나갔다.
꽈과과광-!
연적하와 몰록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 충격에 휘말린 연적하는 십 장(약 30미터)이나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연적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한 바퀴 재주를 넘은 그는 다시 한번 빠르게 몰록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또 산검멸지를 펼쳤다.
쓰아아아-.
수백 개의 검영이 몰록을 향해 날아갔다.
몰록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하조그!”
몰록을 향하던 검영들이 또다시 공중에 떠 있는 연적하로 향했다.
츠츠츠츠-.
연적하는 미련하게 보일 정도로 산검멸지로 자신의 검공을 되받아쳤다.
꽈광-!
폭발의 반탄력에 연적하는 또다시 낙엽처럼 뒤로 날아갔다.
다시 허공에서 재주를 넘는 연적하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다.
천하제일의 검공인 구천구검을 두 번이나 정면에서 받아치니 속이 울렁거렸다.
마물도 맞으면 몸이 찢어지는 검공을 두 번이나 받아 냈으니 당연하다.
‘정말 구천구검이 안 통하는 건가?’
가장 먼저 그런 의심이 들었다.
구천구검을 빼면 자신은 나이 어린 종문의 고수일 뿐이다.
천문(天門)을 열어 남궁연과 함께 강호로 돌아갈 길이 요원하게 느껴졌다.
자신에 대해 회의하자 전광석화 같던 연적하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안 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몸이 반응한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연적하는 허공에 못 박히기라도 한 듯 멈춰 섰다.
좌절은 이내 절망이 되어 그의 사지를 꽁꽁 묶었다.
그런 그를 향해 몰록이 말했다.
“너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나에게 대적하려 하지 말고 경배하라. 오직 나만이 너를 네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
연적하의 침묵을 고민으로 해석한 몰록이 말을 이었다.
“구주는 너의 세상이 아니다. 너는 이곳 구주의 인간들과 다르다. 그건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너에게 구주는 꿈에 불과한 곳이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으냐? 나를 경배하면 너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적하는 몰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꿈이라 해도 그의 성정에 어린아이의 심장을 제물로 바칠 일은 없었다.
“아! 못생긴 게 참 말 많네. 내가 너처럼 말 많은 인간들을 좀 아는데, 막상 까 보면 실력이 없더라고. 만약 내가 너라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지 않고 바로 죽였어. 그런데 너는 안 그러더라고? 왜 그럴까? 마천의 마귀 주제에 자꾸 경배만 하래. 너 나를 상대할 자신은 있는 거냐?”
연적하의 조롱에 몰록의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를 경배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 그럼 죽여. 죽여 보시라고.”
그러나 도발에도 몰록은 웃기만 할 뿐 여타의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조금 전 인간의 기이한 검공에 그의 가장 강력한 마법이 파괴된 까닭이다.
지금 그에게는 인간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검영을 반사하는 마법만도 슬슬 힘에 부치는데 누굴 죽인단 말인가.
연적하가 몰록을 빤히 보며 말했다.
“못 죽이겠나 보네! 반신(半神)이라면서 왜 인간 하나를 못 죽일까?”
말과 함께 연적하는 어깨를 한 바퀴 돌렸다.
관절에서 나는 ‘으드득!’ 소리를 들으니 뭔가 개운해진 느낌이다.
문득 ‘왜 그렇게까지 좌절하고 절망했던가!’ 하는 자책이 든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아직 구천검령을 꺼내지도 않았다.
구천구검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좌절한 것이다.
인간의 시야는 이렇게 좁다.
제가 가진 보물 창고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고 포기부터 생각한다.
계속된 실패로 시들었던 연적하의 눈에서 신광이 쏟아져 나왔다.
희망을 찾으니 모든 게 달리 보였다.
심지어 생각까지도 변했다.
‘내 구천구검으로 나를 공격했다 이거지?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그는 구천구검의 끝을 보고 싶었다.
정말 몰록에게 통하지 않는 건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신격을 가졌던 독안귀마도 제압한 구천구검이다.
그런 구천구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되돌려 보냈다고?
다시 생각하니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심기일전(心機一轉)한 연적하는 다시 구천기를 잔뜩 끌어 올렸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몰록을 향해 날아갔다.
올 테면 오라는 듯, 여유 있게 한쪽 손을 들어 올리는 몰록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법이 만능은 아니다.
마법으로 검영은 돌려보냈지만, 그때마다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저 인간의 영기와 자신의 마기가 상극이라 생긴 현상이다.
그 끔찍한 고통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마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거다.
쓰아아아-.
또다시 검영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몰록은 마치 파리를 쫓듯 손을 휘저으며 속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라쉬타케 마르하(근원으로 돌아가라)! 빠득.’
영혼이 찢겨 나갈 고통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하지만 몰록은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웃었다.
그렇게 억지로 버티면서 나약한 인간이 먼저 무너지기를 바랐다.
인간의 의지란 보잘것없으니까.
몰록의 손짓 한 번에 수백 개의 검영이 방향을 바꿨다.
물론 몰록은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며 한 일이지만 연적하의 눈엔 가벼운 손짓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연적하는 다시 산검멸지를 펼쳐 되돌아온 검영을 부쉈다.
꽈과과광-!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한 듯 연적하도 많이 밀려나지 않았다.
재빨리 신형을 바로 세운 연적하는 돌연 산검멸지를 연속으로 펼쳤다.
쓰아아아- 쓰아아아-.
수백 개의 검영이 파도처럼 몰록을 향해 날아갔다.
몰록은 흠칫 놀랐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연적하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검영을 상대로 연거푸 산검멸지를 썼다.
츠츠츠- 츠츠츠-.
꽈광! 꽈과과광-!
연적하와 몰록 사이의 허공에서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발음이 들렸다.
“크윽!”
연적하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천애불문비의 생령이 깃든 힘을 정면으로 받아치고도 아직 쓰러지지 않은 게 기적이다.
만약 그가 종문의 종사였으면 벌써 피떡이 됐을 게다.
“씨바아알!”
몰록에게 희롱당한 느낌에 연적하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급기야 폭주해 버렸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악에 받친 그는-뒷일을 생각하지 않고-구천구검을 무려 네 초식이나 연달아 펼쳤다.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 사 식 현녀강우(玄女降雨),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 육 식 뇌풍상여(雷風相與)가 만들어 낸 기운[意形劍罡]이 몰록에게 밀려갔다.
콰콰콰콰-!
그 가공할 기세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던 몰록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같이 죽자는 건가?’
당황한 몰록은 양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라쉬타케 마르하아!”
순간 기이한 검풍(풍천소축)과 소나기처럼 퍼붓던 진검강(현녀강우)이 방향을 바꿨다.
마지막 마력까지 쥐어짠 몰록도 무사하지 못했다.
쩌저저적-!
그것은 생명과도 같은 마력의 근원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크흡!”
몰록은 이를 악물어 새어 나오는 비명을 삼켰다.
연이어 날아오는 수백 개의 검영(산검멸지)은 보면서도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당장 육신에 구멍이 날 상황.
“라쉬타케…… 마르하.”
몰록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우우웅-.
기이한 울림과 함께 몰록의 앞쪽 공간이 일렁거렸다.
뒤이어 산검멸지의 검영과-몰록이 쥐어짜다시피 해서 겨우 만든-마법이 충돌했다.
파아앗-!
가벼운 마찰음이 일어났지만 산검멸지의 검영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츠츠츠츠-.
수백 개의 검영이 마법을 통과하는 순간, 몰록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
쩡-!
마침내 금 갔던 마력의 근원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가슴이 쪼개지는 듯한 통증에 몰록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캐액!”
입을 쩍 벌리고 바르르 떠는 몰록의 몸에 산검멸지의 검영이 화살처럼 박혔다.
퍼퍼퍼퍽-!
마력의 근원이 부서지고, 육체에 구멍까지 나자 몰록은 지면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깨애애앵-! 깨앵!”
위풍당당하던 반신 몰록이 개처럼 울기 시작했다.
울부짖는 몰록의 몸을, 우렛소리와 함께 날아든 전뢰검강의 바람[雷風]이 무자비하게 갈아 버렸다.
우르르릉-. 가가가각-!
몰록의 두꺼운 피부가 뇌풍상여에 너덜너덜해졌다.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 가던 몰록이 피맺힌 눈을 들어 올렸다.
앞서 자신이 두 개의 검공을 돌려보냈으니 인간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같이 죽자. 응?’
그런데 공중의 상황은 자신의 기대와 달랐다.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검영의 중심에 인간이 오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마지막 기대가 꺾이자, 몰록은 급속도로 생기를 잃었다.
그런 몰록의 옆으로 연적하가 깃털처럼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어. 매에는 장사 없다니까.”
연적하가 지상으로 내려오자 정상에 남아 있던 마물들이 우르르 아래 쪽으로 달아났다.
연적하는 굳이 마물들을 쫓지 않았다.
어차피 여섯 종문의 고수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터였다.
그때 연적하를 올려다보던 몰록이 힘겹게 말했다.
“인간이여……. 너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건 무슨 개소리야?”
“나는 그림자. 구주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무덤을 열고 들어가 누워라. 그리하면 죽음이 지나간 뒤에……. 시체를 남길 수 있으리라. 보니사 마헤오(속히 오소서)…….”
음산한 목소리로 이해 못 할 말을 웅얼거리던 몰록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