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2
672회. 아직 젖도 안 뗀 나이라지?
연적하와 남궁연은 몰록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가뜩이나 바쁜 천지종 노조들을 여덟 종문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다.
정작 그의 휘하에 있는 종사들은 ‘몰록의 말’을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주에 마천의 침략은 전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시간은 상대적이다.
몰록과 같은 반신(半神)과 인간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
그걸 마신(魔神)까지 끌어올리면 차이는 더더욱 벌어진다.
몰록이 예고한 마신의 침략은 천 년 뒤일 수도 있고, 만 년 뒤일 수도 있다.
그들은 오히려 대종사가 경험이 부족해 몰록의 말에 놀란 것이라 생각했다.
천 년쯤 후에는 껄껄 웃으며 몰록의 말에 호들갑 떨었던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리라.
그래도 다섯 종사들은 대종사의 편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마천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라’고 했으니 불려 다닐 일은 없을 것 같아서다.
연적하의 휘하에 있는 종사들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다른 종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황천주.
철한성.
광염종 종산 금악산.
황천궁.
상석에 앉아서 자칭 대종사 연적하의 편지를 읽던 백은 존자가 냉소를 쳤다.
“흥! 얼빠진 놈. 오지산에서 몰록을 해치웠다고 구주가 제 것인 양 설쳐 대는군. 너, 노조라고 했더냐?”
목수평 노조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예.”
“너는 연적하를 직접 본 적이 있느냐?”
“꿀꺽, 예.”
목수평 노조는 백은 존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공손히 답했다.
목수평 노조가 한껏 자세를 낮추었음에도 백은 존자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아직 젖도 안 뗀 나이라지?”
연적하가 이십 대 초반이니 수천 년을 살아온 백은 존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만도 했다.
“백은 존자님에 비하면 그런 셈이지요.”
“그런 놈이 광염종에 욕심을 낸다는 거냐!”
돌연 백은 존자가 버럭 소리치며 들고 있던 서신을 집어 던졌다.
피잉-.
화살처럼 날아간 편지는 목수평 노조의 한쪽 팔을 자르고 벽에 박혔다.
“윽!”
목수평 노조는 비명을 삼키며 급히 지혈에 들어갔다.
다행히 백은 존자는 죽일 마음은 없었던지 치료하는 걸 빤히 지켜만 봤다.
지혈을 마친 목수평 노조는 백은 존자의 눈치만 살폈다.
하필 광염종으로 보낸 곡분조 노조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그때 화린 제군이 백은 존자에게 말했다.
“백은 존자님, 연적하가 천지종을 접수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천지종의 사자를 통해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백은 존자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이 많아 초열지옥이라 불리는 황천주는, 설상가상으로 땅마저 척박해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에게 구주의 사정을 듣는 게 전부였다.
화린 제군이 목수평 노조에게 다가갔다.
조금 전 갑자기 팔이 잘린 목수평 노조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쯧! 놀랄 것 없다. 내 너에게 몇 가지를 물어볼 것이니 성심성의껏 답하도록 해라.”
“예.”
“연적하가 천지종에 있다는 게 사실이냐?”
“예, 안학궁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안학궁이면 추회 존자의 거처가 아니냐? 추회 존자가 그에게 안학궁을 내어 주었느냐?”
“추회 존자께서는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추회 존자가 죽었다고? 설마 그를 죽인 게 연적하는 아니겠지?”
“맞습니다. 대종사님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황망한 얼굴로 보던 화린 제군이 다시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거라.”
목수평 노조는 담담한 어조로 오지산에서 일어난 일을 말했다.
점차 혈색을 되찾아 가는 목수평 노조와 달리 백은 존자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렇게 추회 존자님과 현원 제군, 대륜 제군, 일성 제군은 대종사님의 검령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천지종은 대종사님의 휘하로 들어갔지요.”
“…….”
화린 제군은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제군이던 자가 단신으로 천지종의 종사와 세 명의 제군을 죽였다니?
“그 연적하가 지난해 구월에 비경에서 이름을 떨친 연적하 진인이 맞느냐?”
“맞습니다.”
“에라, 이 미친놈아! 거짓말을 할 거면 적당히 해야지. 뭐? 지난 구월에 검령을 얻은 진인이, 다음 해에 천지종의 종사와 제군 셋을 죽였다고?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천지종뿐 아니라 그날 오지산에 함께 있던 태상종과 무극종도 대종사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그 말에 화린 제군은 화를 가라앉혔다.
맞는 말이다.
구주에 광염종의 노조들을 풀면 늦어도 보름 안에는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
더구나 천지종 노조가 광염종까지 와서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멍하니 서 있던 화린 제군은 백은 존자의 곁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태상종과 천뢰종에 사람을 보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게.”
조금 전까지 혈기를 부리던 백은 존자의 태도가 눈에 띄게 변했다.
연적하의 무위가 그처럼 뛰어나다면 사자를 건드려서는 안 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백은 존자는 연적하의 무위가 잔뜩 부풀려져 있기만을 바랐다.
화린 제군이 이번에는 목수평 노조를 향해 말했다.
“목수평 노조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자네의 팔은 유감스럽게 생각하네. 백은 존자님도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네. 너무 뜻밖의 제안에 화가 나서 그러신 거니 이해를 해 주게. 백은 존자님이니 그 정도로 끝났지, 다른 종사들 같았으면 어깨 위에 달린 걸 내려놓아야 했을 걸세.”
“예, 감사합니다.”
목수평 노조는 암암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는데 다행히 팔 하나로 끝날 모양이다.
“치료라도 해서 보내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닙니다. 제가 늦게 돌아가면 대종사님께서 오히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하실 겁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바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는 광염종의 답은 묻지도 않았다.
광염종의 입장은 자신의 팔 하나를 자른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백은 존자님이니 그 정도로 끝났지, 다른 종사들 같았으면 어깨 위에 달린 걸 내려놓아야 했을 걸세’라던 화린 제군의 말은 맞았다.
비슷한 시간 혈주종을 방문한 장등 노조의 끝은 좋지 않았다.
웅천주
센라성.
혈주종 종산 퉁룽챈녹.
디아녹궁.
상석에 앉은 혈주종 종사 호다이 존자가 가늘게 뜬 눈으로 장등 노조를 응시했다.
온몸에 가득한 뱀 문신으로 그는 거대한 구렁이처럼 보였다.
장등 노조는 뱀과 맞닥뜨린 개구리처럼 잔뜩 웅크린 채 굳어 있었다.
“흐흐, 천지종의 연적하를 대종사로 섬기라고? 잘도 이런 걸 가지고 왔구나. 그동안 우리 혈주종이 조용했지?”
“…….”
장등 노조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혈주종은 구주의 종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종문이었다.
여덟 종문이 자연적인 성향인 반면, 혈주종은 마치 뿌리가 다른 것처럼 악에 치우쳤다.
다른 종문에서 금기시하는 인신공양(人身供養)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천문(天門)을 열겠다고 바친 사람만도 천 명이 넘는다.
평범한 인간을 가축처럼 여기는 종문에서도 그런 혈주종의 행사에 치를 떨었다.
그럼에도 혈주종이 종문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들도 성물과 천문을 가지고 있어서다.
종문 고수들이 혈주종을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열대 우림인 웅천주는 국토의 대부분이 밀림이다.
자연히 독물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는데, 혈주종은 그 독물을 무공에 이용했다.
그래서 혈주종과 싸울 때는 중독을 걱정해야 한다.
오죽하면 종문 사이에 ‘혈주종과는 한곳에 있지 말라’는 말까지 있을까.
“천지종의 장등이라고?”
“예.”
“우리 혈주종은 힘을 가졌지만 웅천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감히 천지종의 아래로 들어오라? 그것도 같잖게 마신의 위협을 들먹이면서?”
“존자님, 몰록이 그런 말을 남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 말을 네가 직접 들었느냐?”
호다이 존자의 추궁에 장등 노조는 흠칫했다.
오지산에서 그 말을 직접 들은 이는 연적하 대종사밖에 없었다.
존자와 제군 들도 듣지 못한 일을 자신이 무슨 수로 듣는단 말인가.
“듣지 못하였습니다.”
“연적하라는 애송이의 말만 믿고 혈주종을 바치라고? 흐흐, 우리 혈주종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더냐?”
“그, 그렇지 않습니다. 구주에서 혈주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 있냐고? 네놈과 천지종, 연적하가 바로 그런 자다! 우리를 병신처럼 생각했으니 이런 종이 쪼가리로 혈주종을 꿀꺽 삼키려 한 게 아니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쇼!”
“믿어 줄 테니 너의 결백을 증명해라.”
“어떻게 증명하라는 말씀이신지…….”
“목숨으로.”
말과 함께 호다이 존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장등 노조의 몸이 굳었다.
이윽고 호다이 존자가 궁에 모인 제군들에게 명했다.
“저놈의 머리를 잘 싸서 천지종에 보내고, 몸은 육젓을 담가 반찬으로 삼도록 해라.”
그러자 쏘우코반 제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호다이 존자님, 종문의 사자를 죽인 예는 아직 없습니다. 그보다는 사지 중에 하나를 잘라 교훈을 내리심이…….”
“됐다. 연적하 대신 저 천지종 놈이라도 죽여야 내 속이 풀리겠다.”
“천지종에서 보낸 편지의 진위 여부를 확인한 뒤에 벌하는 것도 늦지 않습니다.”
“확인할 것도 없다! 천지종은 오백 년 전 소요종과 전쟁을 벌였다. 오백 년 동안 소요종 하나 병탄하지 못한 놈들이 무슨 수로!”
호다이 존자의 말에 쏘우코반 제군은 반박하지 못했다.
정글로 뒤덮인 웅천주는 화산 지대인 황천주만큼이나 외부와 교류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장등 노조의 말과 편지는 허튼수작에 불과했다.
왜 씨알도 안 먹힐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혈주종의 제군들은 호다이 존자의 명대로 장등 노조를 처리했다.
***
칠월.
한산주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한산주는 구주의 중앙에 자리한 터라, 운종술(雲從術)을 쓰면 빠르게 여덟 개 주를 오갈 수 있다.
편지를 들고 떠났던 천지종 노조들은 한 달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돌아왔다.
태상종, 천뢰종, 무극종, 천태종, 소요종을 다녀온 노조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들은 연적하 대종사에게 각 종사들의 친필 서신과 공물을 바쳤다.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법요종에 갔던 한원고 노조가 돌아오면서부터 삐걱거렸다.
안학궁.
한 달 하고도 닷새 만에 돌아온 한원고 노조가 똥 씹은 얼굴로 말했다.
“법요종 종사 페라르바의 말을 가감 없이 전해 올리겠습니다. ‘법요종은 천지종의 제안을 거절한다’입니다.”
“…….”
한순간 안학궁에 침묵이 감돌았다.
일찌감치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조들은 대종사의 눈치만 봤다.
무심한 얼굴로 앉아 있던 연적하가 물었다.
“‘거절한다’라고 한 거 맞아요?”
“예,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짧은 말이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거절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절한다’라는 반말은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왜 거절한대요?”
“사벌주는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의 가호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대종사보다 군주를 믿으시겠다?”
“…….”
어지간하면 함께 법요종 종사를 욕할 법도 한데 한원고 노조는 입을 꾹 다물었다.
페라르바 존자 뒤에 우샤스 킨샤사가 있어 일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