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73
673회. 뒤늦게 기억이 나서요
연적하가 안학궁에 모인 노조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회피하는 게, 그냥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연적하는 우샤스 킨샤사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우샤스 킨샤사는 강호에서 만났던 금사의 진명(眞名)이다.
그런데 법요종의 종사가 우샤스 킨샤사를 등에 업고 저항하니 짜증이 났다.
“우샤스 킨샤사가 무서운가 봐요?”
연적하의 물음에 곡분조 노조가 노조를 대표해 말했다.
“대종사님, 우샤스 킨샤사 님은 무섭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우호적인 군주라 조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우호적이라고요? 그 괴물이?”
연적하는 남자 같지도 않고 여자 같지도 않은 금사를 떠올렸다.
괴물이라는 말에 노조들이 뜨악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구주에서 신격을 가진 군주를 괴물로 칭하는 사람은 대종사밖에 없으리라.
곡분조 노조는 대종사의 입에서 더 험한 소리가 나올까 봐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은 마천의 마귀들에게서 몇 번이나 구주를 구해 주셨습니다.”
“자기가 필요해서 그런 걸 거예요. 공짜로 남 좋은 일을 해 줄 얼굴이 아니었어.”
“혹시 우샤스 킨샤사 군주님과 대면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멀리서 한번 봤어요. 왜요?”
“아, 아닙니다. 신을 직접 보셨다니 놀라워서요.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노조들이 이구동성으로 연적하의 행운을 축하했다.
우샤스 킨샤사를 안 좋게 생각하던 연적하는 뻘쭘한 얼굴로 노조들을 보았다.
고작 멀리서 얼굴 한번 본 걸 경하드린다니. 싸우러 가자면 경기를 일으키겠다.
그렇게 연적하와 노조들이 우샤스 킨샤사를 두고 야릇한 신경전을 벌일 때다.
누군가 안학궁의 회의실로 터벅터벅 들어왔다.
광염종으로 갔던 목수평 노조였다.
목수평 노조의 피로 물든 팔 부위를 살피던 노조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옷과 함께 한쪽 팔이 잘려 있었다.
여섯 종문이 통합된 지금 천지종 노조의 팔을 자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으나 마나 광염종의 백은 존자가 패악질을 부린 것이리라.
처음에는 당황했던 노조들은 이내 여섯 종문을 떠올리고 분개했다.
여섯 개 종문이 힘을 합치면 광염종 정도는 쉬운 상대인 까닭이다.
“팔은 어찌 된 거요?”
“누가 그랬소!”
“천지종 사자의 팔을 자르다니! 종문 역사상 그런 일은 없었거늘!”
“백은 존자의 짓이오? 아니면 제군이 그랬소?”
자신감을 회복한 노조들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목수평 노조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묵묵히 연적하 대종사 앞으로 다가갔다.
“대종사님. 광염종에서 오늘 길입니다. 백은 노조는 따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연적하가 목수평 노조의 잘린 팔 부위를 보며 물었다.
“그 팔은 어떻게 된 거예요?”
목수평 노조가 작심한 듯 답했다.
“백은 존자가 ‘아직 젖도 안 뗀 주제에 감히 광염종을 넘보냐’며 대종사님께서 주신 서신으로 잘랐습니다.”
“그, 젖도 안 뗐다는 건, 설마 나를 두고 한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허…….”
연적하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구주에 자신의 무위가 알려졌을 법도 한데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광염종도 뒤를 봐주는 군주가 있어요?”
그러자 다른 노조들보다 구주 사정에 밝은 곡분조 노조가 대신 답했다.
“광염종과 관계된 군주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럼 뭘 믿고 저렇게 나대지?”
그가 의아해 하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궁연이 말했다.
“사벌주와 황천주, 웅천주는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어. 땅의 대부분이 사벌주는 사막, 황천주는 화산, 웅천주는 밀림이라 상단도 다니기를 꺼려 하거든. 아마 백은 노조는 너에 대해 알지 못했을 거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직은 구주의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마신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니까.”
“역시 그래야겠죠?”
연적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지난 한 달여간 마천은 구주를 침공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반신반의하던 종문 고수들까지 이제는 몰록의 말을 저주로 받아들였다.
몰록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은 연적하와 남궁연뿐이었다.
두 사람은 구주의 평화를 태풍 전의 고요로 인식했다.
그래서 광염종이 사자의 팔을 자른 것도 참고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연적하의 인내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이번에는 팔문각의 원광안 노조가 굳은 얼굴로 나무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안학궁에서 남궁연과 광염종의 문제를 논의하던 연적하가 물었다.
“그건 뭐예요?”
원광안 노조는 대답 대신 탁자 위에 올린 나무 상자를 개봉했다.
소금에 절인 사람의 머리가 나왔다.
장등 노조의 얼굴을 알아본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등 노조?”
원광안 노조가 침통한 얼굴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조금 전 혈주종의 심부름이라며 웅비상단 사람들이 가지고 왔습니다.”
“…….”
연적하가 황망한 얼굴로 장등 노조를 보았다.
사자로 뽑혔다고 좋아하던 사람인데 한 달 만에 저렇게 돌아오다니.
말없이 장등 노조를 보던 연적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노조들을 불러 모으세요.”
“예.”
원광안 노조가 급히 돌아 나갔다.
우두커니 서 있는 연적하의 어깨에 남궁연이 가만히 손을 얹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혈주종의 호다이 존자가 너무 나간 거야.”
“제 잘못이에요. 혈주종이 어떤 곳인지 알면서도 ‘설마’ 하고 보냈거든요.”
“누군가는 가야만 했어.”
“내가 직접 갈 수도 있었어요.”
“그런 생각 하지 마. 종사들도 편지를 들고 종문을 찾아다니지는 않아. 하물며 너는 대종사잖아.”
연적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고 있다.
대종사가 할 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나섰다면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그런 것뿐이다.
잠시 후 열아홉 명의 노조들이 안학궁에 모여들었다.
천지종에 있는 모든 노조가 달려온 셈이다.
노조들은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장등 노조의 머리를 보고 울분을 토했다.
“사자를 죽이다니 종문 간에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혈주종을 벌해야 합니다.”
“대종사님, 장등 노조의 복수를 해 주십시오.”
사자로 갔던 장등 노조의 처참한 죽음은 노조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윽고 노조들의 음성이 가라앉자 연적하가 물었다.
“혈주종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나요?”
기다렸다는 듯 팔문각의 원광안 노조가 답했다.
“대종사님, 종문들을 소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종문의 고수를 모아 이참에 혈주종을 병탄하시지요. 다섯 종문에서 두 명의 제군만 보내도 열 명입니다. 그 정도 숫자면 천지종의 희생 없이 혈주종을 병탄할 수 있습니다.”
천수각의 곡분조 노조가 거들었다.
“각 종문별로 두 명의 제군이면 종문에도 크게 부담이 가지 않을 겁니다.”
뚱한 얼굴로 듣고 있던 연적하가 남궁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님, 혈주종에 제군이 몇이나 있는지 알아요?”
“여섯.”
“흐음, 애매하네요.”
연적하가 노조들을 둘러보았다.
열아홉 명이지만 천지종 운영과 연합한 종문의 관리를 위해 절반은 두고 가야 한다.
그럼 동원 가능한 노조는 열 명 남짓.
진인의 숫자는 더 형편없다.
현재 천지종의 진인이 칠십 명인데 그중 절반을 데리고 가면 서른다섯이다.
노사와 방사는 있어 봐야 짐이니 열외다.
‘흠, 누님은 임신 중이니 안 되고.’
결국 천지종에서 동원 가능한 숫자는 자신을 제외한 마흔다섯이 전부였다.
하나의 종문과 싸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다.
노조들이 종문을 소집하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연적하는 혈주종의 일에 다른 종문을 소집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 있을지 모를 마신의 침공을 준비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들이 믿거나 말거나 간에.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가 노조들에게 말했다.
“혈주종이 천지종의 사자를 죽였으니 호다이 존자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곡분조 노조님은 나와 함께 혈주종으로 갈 인원을 내일 아침까지 선발해 줘요. 노조 열, 진인 서른 다섯이면 돼요.”
“예, 그런데 다른 종문의 협조는…….”
곡분조 노조가 말끝을 흐리며 대종사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대종사의 무위가 대단하다 해도 상대는 혈주종이다.
그들은 제군의 도움 없이 대종사 혼자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우르르 몰려다녀 봐야 걸리적거리기만 하고, 됐어요. 호다이 존자를 죽이든지, 제압하면 끝나는 거잖아요? 가만있어 보자. 죽여야 하나? 제압해야 하나? 누님, 어떻게 하는 게 나아요?”
“마신의 침공에 대비하려면 고수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을 거야.”
“제압하라는 말이네요?”
“하지만 영 못 쓰겠다 싶으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 우리가 마천에 맞서 싸우는 건, 그들이 마귀 짓을 해서잖아. 마귀짓을 하는 인간은 마천의 마물과 다를 바 없어.”
그녀의 깔끔한 정리에 연적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자신이 마물을 죽이는 건, 놈들이 살육을 일삼아서다.
상대가 마물과 똑같은 짓을 한다면 그냥 마물처럼 대하면 된다.
대종사와 빙설화 제군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조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구주에서 가장 지혜로운 빙설화 제군이 대종사를 만류하지 않고 오히려 동조하다니!
노조들은 조금 찜찜한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안 된다며 징징거리지는 않았다.
노조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회의는 끝났다.
노조들과 함께 안학궁을 나가던 곡분조 노조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흔다섯이라니.
혈주종의 정벌에 가겠다고 할 지원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계단을 내려가 안학궁 마당에 들어 서자마자 노조들이 다가왔다.
선두에 선 이는 회의 내내 그의 정면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마원 노조였다.
“곡 노조님.”
“무슨 일인가?”
마원 노조는 독요 오 성인지라 독요 구 성인 곡분조 노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왔다.
“혈주종으로 가는 노조 명단에 제 이름을 좀 넣어 주십사 말씀드리려고요.”
“토벌대에 지원하겠다고?”
곡분조 노조가 의아한 눈으로 마원 노조를 보았다.
대종사가 천지종만으로 혈주종을 치겠다고 한 뒤로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먼저 지원하다니?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지 모르겠다.
“예.”
“알겠네. 별일이군.”
곡분조 노조는 ‘회의 내내 죽상이더니 왜 지원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곡분조 노조가 막 돌아서려 할 때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노조들이 곡분조 노조의 앞을 막았다.
“곡 노조님, 저도 지원하겠습니다.”
“저도요.”
“제 이름도 추가해 주십시오.”
그 수가 무려 일곱이다.
대종사가 노조 열 명을 선발하라 했는데 순식간에 여덟이 채워진 것이다.
내일까지 어떻게든 토벌대 인원을 채워야 할 곡분조 노조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별일이군.’
곡분조 노조는 들고 있던 장부에 노조들의 이름을 기입했다.
노조들은 곡분조 노조가 기록하는 걸 보고서야 안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 정도로 토벌대의 참여가 간절하다는 뜻이다.
불현듯 호기심이 생긴 곡분조 노조는 종종걸음으로 마원 노조를 따라갔다.
“이보게.”
“예?”
“그대는 천지종만의 토벌대에 회의적으로 보였는데, 가장 먼저 지원하더군. 조금 전의 노조들도 그렇고. 생각을 바꾼 이유가 있는가?”
그러자 마원 노조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뒤늦게 기억이 나서요. 오지산에서 본 대종사님의 검령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