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2
682회. 왕들의 하늘, 영원한 감옥
아데 살테나 항.
숙박업소 미향(微香)의 호르델.
아침 식사를 마친 천지종 고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대종사의 눈치만 살폈다.
어제 마천의 마귀들이 구주를 침공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종사는 그 뒤로 지금까지 그것과 관계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차를 마시던 연적하가 심통 진인에게 물었다.
“심 진인, 오늘 아침에 메누아 봤어?”
연적하는 평소 심 노인이라고 불렀지만, 종문 고수들 앞이라 진인이라는 호칭을 썼다.
“못 봤습니다.”
“나중에 슬쩍 알아봐. 메누아가 식사하는 거 본 사람이 있는지.”
“왜 그러십니까?”
“걱정이 돼서 그래.”
“알아서 챙겨 먹을 겁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할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메누아를 걱정하는 게 아니야.”
“예?”
심통이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 이상은 말해 주지 않았다.
대장부 체면에 열두세 살로 보이는 소녀가 무섭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종사님.”
심통도 천지종 고수들의 눈치가 보이는지 연적하를 대종사라 불렀다.
“왜?”
“법요종으로 가실 겁니까? 아니면 천지종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다들 그걸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마천의 제후와 왕, 마신은 악신들이라 군주와 왕과 ‘삼천의 신’이 상대해야 한다잖아.”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합니까?”
“그런데 왜 광명진천이라는 신이 나를 찾아왔느냐 이 말이야.”
“도우러 왔다지 않습니까?”
“나를 도울 일이 뭐가 있냐고? 마왕이든 마신이든 신들이 상대할 거잖아.”
“말씀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하네요. 광명진천은 뭘 도와준다는 걸까요? 어차피 인간은 악신의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할 텐데.”
“내 말이. 하여튼 요상한 일투성이라니까.”
“그래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아직 대답을 안 해 주셨습니다.”
“천지종으로 돌아가야지. 마천이 쳐들어왔는데 법요종과 광염종을 건드릴 수는 없잖아.”
종문 전쟁을 계속하면 종문의 전력이 약화된다.
게다가 마천이 구주를 점령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니 일단 마천부터 격퇴해야 했다.
“아쉽군요. 무량하를 건너 사흘만 더 가면 법요종이라고 하던데.”
“나만큼 아쉬울까. 자, 슬슬 움직이자고.”
연적하를 주목하고 있던 천지종 고수들이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천지종은 무량하를 건너지 않고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데 살테나 항을 떠난 지 반 시진(1시간)쯤 됐을까?
‘미향의 호르델’에서 보이지 않던 메누아가 태연하게 연적하의 옆으로 다가왔다.
진인들을 고려해 신행부(身行符)로 달려가던 연적하가 메누아를 힐끔 보았다.
“어이, 아침은 건너뛴 거냐?”
“멀리까지 산책을 나갔다가,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아서 먹고 왔느니라.”
“어지간히 멀리 갔었나 봐? 그쪽이 늦을 것 같아서 먹고 올 정도면.”
“나의 일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내가 좀 착해.”
“어리석음과 착한 것을 혼동하지 마라. 너는 그냥 어리석은 것이다.”
연적하는 메누아의 독설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래도 속은 편치 않았다.
‘지독한 계집애. 생긴 건 귀엽게 생겼는데 말은 독사같이 하는구나.’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만 아니면 귀싸대기를 날려도 열 번은 날렸을 게다.
***
황천주.
금화성.
만곡진.
무량하를 끼고 달리던 천지종 고수들은 만곡진의 객잔에서 하룻밤 묵었다.
자정쯤 됐을까?
누군가 연적하의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창문으로 비쳐 든 달빛에 드러난 얼굴은 메누아였다.
귀신처럼 스르륵 연적하 옆으로 다가간 그녀는 한참 동안 그를 내려다보았다.
‘가지고 싶다.’
창조신의 생령은 이 세계의 신들조차 가져 보지 못한 보물이다.
그런 보물과의 만남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갈고리처럼 펼쳐진 메누아의 작은 손이 곤히 잠든 연적하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도중에 손을 거둬들였다.
언제라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혹은 내키지가 않아서인지는 그녀만 알 것이다.
우두커니 서 있던 메누아가 말했다.
“자는 척하지 마라.”
그제야 연적하가 슬며시 눈을 떴다.
“눈치챘어?”
“심장 소리가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모르겠느냐. 법기(法器)에서 손 떼고.”
연적하는 청사(靑蛇)를 놓고 슬그머니 손을 뺐다.
메누아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인간이 나에게 대적할 생각을 하다니 놀랍군.”
“내가 원래 그냥 나 잡아 드슈 하고 목을 내미는 성격이 아니거든.”
“그래,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 맛도 있어야지.”
“내 말이. 맥없이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답답하다고 할까. 그래 나는.”
“여하튼 패기 하나는 인정해 주마.”
“어, 그거 칭찬이지? 고마워.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왜 온 거야?”
“경고를 하러 왔다.”
“경고? 마천의 마귀들을 조심하라고?”
“보이는 칼보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무서운 법이니라.”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칼은 뭐고 화살은 또 뭐란 말인가?
“이봐, 헷갈리게 말하는 사람은 내 처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광명진천을 조심하라는 소리다.”
“광명진천?”
뜻밖에 말에 연적하가 눈을 끔뻑였다.
광명진천은 구주의 인간을 위해 마천과 싸워 주는 ‘삼천의 신’이다.
인간의 편인 최고위급 신을 조심하라니?
갑자기 메누아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 신은 인간의 편이잖아?”
“누가 너더러 신이 인간의 편이라고 하더냐?”
“종문의 사람들이 그러던데? 구주의 인간들을 도와주는 신들이 있다고.”
“신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 하는 말이다.”
“마천의 마귀가 침공할 때마다 구주의 인간을 도와주는 신이 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과 어울려 주는 신이 있을 뿐이다.”
“돕는 게 아니라 어울려 주는 거라고?”
“신은 자연처럼 정이 없다. 그런 존재가 왜 인간을 돕는다고 생각하느냐?”
“…….”
연적하는 메누아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구주의 인간은 ‘삼천의 신’을 세 개의 달이라 믿는다.
달은 메누아의 말처럼 정이 없다.
그래서 구주의 인간과 마천의 마귀 모두를 밝게 비추어 준다.
광명진천이나 마하수라천은 그런 삼천의 신들 중에 하나다.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가 문득 물었다.
“광명진천이 인간을 돕는 게 아니라면, 마신도 마천의 마귀들 편이 아닐 수 있다는 거야?”
“내 대답은 삼천의 신들 뿐 아니라, 신은 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신들은 왜 구주와 마천의 편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건데?”
“계곡을 따라 부는 바람에 목적이 있느냐?”
“없지.”
“신들도 그와 같다. 그들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
“신들의 장단에 맞춰 구주의 인간과 마천의 마귀 들이 춤을 춘다는 거야?”
“신들을 탓할 것 없다. 구주의 인간과 마천의 마귀 들은 그들의 욕망대로 행동하고 있으니까.”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신들이 할 수 있으니 하는 반면, 인간과 마귀 들은 욕망에 끌려다닌다는 소리였다.
빛과 어둠,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으로 나누어 생각하던 연적하에게 메누아의 말은 충격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것과 내가 광명진천을 조심해야 하는 게 무슨 상관이야? 광명진천과 나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
“‘삼천의 신’들이 관심을 기울이면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쯤은 모두 알게 된다. 네가 누구며, 어떤 영기를 가지고 있는지도.”
“내 출신이 문제가 되는 거야?”
“네가 ‘하늘의 연못[天池]’에서 왔다면 출신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위 차원에 관심을 가지는 신은 없다.”
“광명진천이 내 영기를 노릴 수도 있다는 소리야? 그쪽처럼?”
메누아는 ‘그쪽처럼’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부인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의 생령을 취하고 싶었던 건 사실이니까.
메누아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신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계를 알아야 한다.”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
“우리는 이곳을 ‘왕들의 하늘’이라 부른다. 너는 이 세계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기적인 욕망이 판치는 세계? 약육강식의 세계?”
“모두 맞는 말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이 세계는, 죽어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감옥이다.”
메누아는 ‘감옥’이라는 말을 힘주어 말했다.
그것이 메누아가 그녀의 긴 생을 통해 깨달은 이 세계의 본질이었다.
“감옥이라고?”
“누구도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니까. 인간은 물론, 영물, 신수, 심지어 신들조차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감옥이라 할 수밖에.”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그렇다.”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알아? 죽어 봤어?”
“어리석은 질문이군.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광명진천에게 물어보거라. 아무리 그라도 그 정도는 숨기지 않고 알려 줄 것이다.”
연적하의 입이 벌어졌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메누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감옥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것 같다.
‘가만. 그런데 금사는 어떻게 강호로 갈 수 있었지?’
자신은 분명히 강호에서 금사, 즉 우샤스 킨샤사를 만나지 않았던가!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메누아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구나.”
“아니, 알겠는데 이상한 게 있어서.”
“말해 보아라.”
“믿어 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왕들의 하늘’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왔어. 그런데 내가 살던 세상에서 우샤스 킨샤사 군주를 본 적이 있거든. 그건 뭐냐?”
“우샤스 킨샤사는 ‘왕들의 하늘’을 떠난 적이 없으니 분신(分身)이나 화신(化身)일 게다.”
연적하는 메누아를 힐끔보았다.
뜻밖에도 그녀는 자신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벗어나지 못한다며?”
“분신이나 화신은 영구한 게 아니다.”
“만약에 우샤스 킨샤사의 본신이 넘어갈 수 있게 된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말을 하던 메누아가 멈칫했다.
창세 이후 창조신이 만든 불변의 규칙들이 구주에서 깨지고 있었다.
그러니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 불가능하다고 고집하기도 뭐했다.
“본신이 다른 세계로 빠져나갈 수도 있나 보네?”
“없다.”
메누아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는 없었다.
“하나 더 이상한 게 떠올랐는데. 내가 다른 세상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이곳의 이름이 ‘범천욕계왕재천’이라고 적혀 있더라고. 그렇다면 그도 이 세계를 떠났다는 거잖아?”
“어리석군.”
“뭐가?”
“너도 이 세계에 왔으면서 다른 존재가 왔다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냐?”
“그가 떠났다는 말을 하고 있잖아.”
“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을 거라는 말이다.”
“응?”
“이 세계에서 태어난 것들은 영원히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래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니, ‘벗어나지 못했다’ 정도로 해 두지.”
순간 연적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남궁연이 출산하기 전에 어떻게든 강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아! 이 세계가 영원한 감옥이라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게 내 영기와 무슨 상관이 있어?”
“그 절대의 규칙을 만든 게 창조신이다. 그리고 너에게는 창조신의 생령이 있지. 광명진천이 왜 너를 찾는다고 생각하느냐?”
“내 영기를 취하려고? 조금 전의 그쪽처럼?”
“천문(天門)의 비밀은 신들조차 풀지 못했지만, 네 속에 있는 생령은 다르다. 단순 명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창조신이 묶은 매듭이니 창조신의 영기로 풀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쪽은 왜 도중에 마음을 바꾼 거야?”
연적하가 메누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자기 입으로 ‘왕들의 하늘’을 감옥이라고 했으면서 왜 멈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