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5
685회. 누님, 우리 이상한 거 알아요?
‘왕들의 하늘’은 욕망으로 점철된 기괴한 곳으로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게 없었다.
종문의 것도 그럴진대 최상위 신인 광명진천이 외우라는 것은 오죽할까.
“청명신주(靑冥神呪)?”
“예, 내용이 영 이상하면 안 외우려고 했는데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말해 봐.”
“나는 스스로 삼가며 내 마음을 지킬 것이다. 내가 눈으로 본 것에 현혹당하지 않을 것이며, 진리에서 어긋난 것을 내 마음에서 지울 것이다.”
“그게 다야?”
“예. 이상한 부분 없잖아요.”
남궁연은 즉답하지 않았다.
광명진천은 보통의 신이 아니다.
그런 그가 마신을 쫓기 위해 가르쳐 주었다는 주법(呪法)이 평범할 리 없다.
그녀는 청명신주의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
연적하의 말대로 해가 될 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연적하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테니 해코지를 해도 드러나게는 하지 않으리라.
남궁연은 다시 한번 주법을 암송했다.
그렇게 두 번 암송하자 비로소 광명진천의 목적이 드러났다.
“흥!”
“왜요?”
“광명진천의 청명신주가 노리는 게 뭔지 알 것 같아.”
“청명신주가 노리는 게 있다고요?”
“광명진천은 네가 마신을 불신하기를 바라고 있어.”
“왜요? 어차피 마신과 우리는 적인데 불신이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다고요?”
“그러게. 그는 왜 너와 마신의 사이를 벌리려고 하는 걸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청명신주를 외우면 내가 마신을 불신하게 돼요? 청명신주에 그런 내용이 있어요?”
연적하는 남궁연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청명신주에는 남궁연이 말한 바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명진천이 가르쳐 준 청명신주에는 그의 의지가 담겨져 있어. 이곳에서는 그걸 언명(言命)이라고 해. 네가 마신을 보고 느낀 모든 걸 부정하고, 지우는 게 목적인 것 같아.”
“그런 내용이 담겨 있어요?”
“그래. 네가 말했잖아. 눈으로 본 것에 현혹당하지 않겠다고. 그건 네가 본 걸 거짓이라 인식하게 만드는 거야. 진리에서 어긋난 걸 마음에서 지운다는 건 더 사악해.”
“왜요? 그거야말로 좋은 말이잖아요?”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아.”
“예?”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다. 그 절대적인 기준인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다니?
학문과 사고가 깊지 않은 연적하에게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이 우주에서 절대적인 건 없어.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 해석이 제각각이지. 선과 악도 마찬가지야. 이쪽에서 보면 선이라도 저쪽에서 보면 악이 되거든.”
“아, 그런 뜻이에요?”
“청명신주가 말하는 진리란 광명진천의 입장에서 본 진리야. 그의 앞에서 청명신주를 외우면 진리에 대한 너의 기준이 그에게 맞춰질 거야.”
“그러니까 내 생각을 바꾸려 한다는 거죠?”
“맞아. 주법의 내용은 모두 좋은 말이지만, 조금씩 광명진천이 원하는 방향으로 네 생각도 변해 갈 거야. 네가 마신에게 지배당했다고 믿거나, 혹은 마신에 대해 알기를 원치 않는다는 거지.”
“와! 눈 뜨고 코 베일 뻔했네요? 언명에 영향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너의 의지에 날을 세워. 그것으로 광명진천의 언명을 베겠다고 생각해. 그의 언명을 베지 않으면, 너는 마신에 대한 바른 기억을 잃게 될 거야.”
“보이지도 않는 언명을 베라고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 기운도 보이지 않지만 현실에서 구현[意氣發顯]할 수 있잖아. 너라면 할 수 있어.”
“해 볼게요.”
연적하는 자신이 메누아에 대해 느꼈던 연민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마신과 네 사이를 떼어 놓으려 하는 이유가 뭘까? 말해 봐. 마신은 어떤 존재였어?”
연적하는 메누아를 처음 만난 날부터 헤어질 때까지의 일들을 말했다.
“……메누아가 사라지기 전에 그러더라고요. ‘광명진천에게 당하지 마라. 너를 살려 둔 내 결정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으니까’라고.”
남궁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잠시 후 심연처럼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발했다.
“마신과 광명진천은 모두 ‘삼천의 신’이야. 우리 같은 사람과는 사고 방식이 다르지. 마신과 광명진천 모두를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돼. 마신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너에게 접근했고, 광명진천은 네 생각을 자기 입맛대로 뜯어고치려고 하잖아.”
“와아! 강호나 이곳이나 믿을 놈 하나도 없네요.”
“마신이 너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을 거야. 너에게 접근했다는 건 네 생령에 욕심을 냈다는 거니까. 다만 왜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님,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인데요.”
“뭔데?”
“메누아가 어린 여자아이 모습으로 나타난 게 나 때문만은 아닐지도 몰라요.”
“너 때문만은 아니라고?”
“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곤화위붕(물고기가 새가 된다)’에 대해 말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메누아를 봤는데 표정이 멍한 게 사연이 있는 얼굴이었어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예, 그러면서 하늘의 연못[天池]에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자기가 사는 이 세계를 감옥이라고도 했고. 신들조차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나? 그 정도면 정말 감옥보다 더한 곳 아니에요?”
“그렇구나.”
“이곳에서 태어난 존재는 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대요. 그 말을 듣고 어떻게든 강호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니까요.”
“이 세계를 감옥이라고 하면서도 네 생령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니…….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구나. 마신이라는 존재는.”
“메누아는 이 세계와 이 세계를 만든 창조신을 증오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증오하는 창조신의 생령을 몸에 받아들일 것 같으냐고도 했고.”
“창조신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거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야. 그러기에는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크거든.”
“그런데 누님.”
“응?”
“누님도 천지종의 성물에서 기연을 얻었잖아요.”
“그랬지.”
“그럼 누님도 창조신의 생령을 얻었어요?”
“어.”
그러자 연적하가 장탄식을 터뜨렸다.
“아! 역시 그랬구나!”
“왜?”
“마신이나 광명진천 모두 생령에 관심이 있잖아요. 최고 신들도 그런데 다른 신들은 어떻겠어요? 종문 사람들이야 감히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겠지만…….”
아홉 군주나 여덟 왕, 삼천의 신들은 다르다. 그들이 남궁연의 생령에 욕심을 내면 그것도 골칫거리였다.
“후후!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요?”
“창조신의 생령이 이 세계 최고의 보물인 것은 틀림없어. 하지만 그게 왜 최고의 보물인지 생각해 봐.”
“그야 당연히 생령을 취하면 격(格)이 높아지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 격이 높아지지. 종사들이 취하면 신좌(神坐)에 오를 수도 있고.”
“그래서요?”
“광명진천이 너에게 반신(半神)이라고 했다면서?”
“네.”
“그럼 나는 어떨 것 같아?”
“앗! 누님도 반신이 된 거예요?”
그러자 남궁연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나는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올랐어. 이 세계의 기준으로 군주급 이상이야.”
“헉! 정말요?”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군주급이면 신좌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이상이면 완전한 신격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정말 그랬다.
아기를 가진 뒤로 늘 걱정했는데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을 줄이야.
하기야 남궁연의 자질을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초인적인 재능에 창조신의 생령이 더해졌으니…….
연적하가 선망의 눈으로 보자 남궁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에 대한 걱정을 접으라고 말해 주는 거야.”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기분이 조금 이상하네요.”
“뭐가?”
“아까 광명진천에게 반신이 됐다고 들었을 때도 그랬거든요. 우쭐하면서도 뭔가 허탈한 느낌?”
남궁연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인간으로 살다가 신(神)의 반열에 올랐으니 어깨가 으쓱해질 만도 하다.
하지만 허탈한 느낌은 뭘까?
연적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반신이라지만 나는 크게 변한 것도 없거든요? 지금의 내 모습이나 누님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신(神)이 아니에요. 지금 누님을 봐요. 석경장에서 나하고 알콩달콩 살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잖아요.”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건 네가 지금의 상황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야.”
“익숙해서 그렇다고요?”
“생각해 봐. 요즘 어지간한 곳은 구름을 타고 다니지?”
“그렇죠?”
“강호에서 누가 그러는 걸 보면 신선이라고 우러렀을 거야. 하지만 구주에서는 노조만 돼도 운종술로 구름을 타고 다니잖아.”
“아…….”
연적하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야 이곳에서 어검비행과 운종술은 말을 타고 다니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강호에서 그런 걸 봤다면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게다.
“네가 상상하던 신이 아니라고 했지? 그래, 어쩌면 신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라.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가져다준다는 건 인간의 과대망상이려나?”
“어렵다.”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지금 자신이 구주에서 하는 행동들을 보면 부처나 신선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부처나 신선인가?
아니다.
문득 신들의 세계도 약육강식이라던 메누아의 말이 떠올랐다.
광명진천과 메누아의 관계를 보면 그 말이 맞았다.
‘삼천의 신’들이라 할지라도 적대적인 관계에서는 상대를 죽이려 한다.
그래서야 남궁연의 말처럼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에 불과하지 않은가.
“누님, 우리는 강호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되다니?”
“이전처럼 석경장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원한다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거야. 신에게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으니까. 너는 평범하게 살고 싶니?”
“사람들이 누님과 나를 신이라고 떠받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왜요?”
“강호에는 이전부터 무신(武神)이라 불린 사람들이 많았어. 우리도 그런 식으로 불릴 거야. 심지어 소문이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걸?”
“쩝! 그래도 누님에 대한 걱정을 덜어서 다행이네요. 나는 종문 고수들과 신들이 누님의 생령을 노리면 어쩌나 했거든요.”
“나보다는 반신인 네 걱정이나 해. 아직 마신과 광명진천의 속셈이 뭔지도 모르잖아.”
“누님, 우리 이상한 거 알아요?”
“뭐가 이상해?”
“신과 반신,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구주에 적응을 하기는 한 모양이에요?”
“듣고 보니 그러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마신과 광명진천에 대한 이야기가 정리되자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대화에 신과 반신도 지친 모양이다.
잠시 후 연적하가 은근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누님 얼굴이 피곤해 보여요. 무슨 신이 반신인 나보다 더 피로를 느껴요?”
“혹시 나를 침상으로 이끌려고 하는 말이야?”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뭐 매일 그 짓만 생각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진짜 피곤해 보여서 그래요.”
“천문 연구에 심력을 너무 쏟았나 봐.”
사실 아이를 가진 남궁연이 느끼는 위기감은 연적하보다 더했다.
배가 매일 조금씩 불러 온 탓이다.
그런 다급함에도 불구하고 천문은 조금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았다.
출산을 생각하면 넉 달 안에 천문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구주에서 가장 지혜로운 그녀도 천문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다 잘될 거예요.”
“그래야지.”
남궁연이 이제는 완연하게 솟아오른 배를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아빠가 온 줄 아나 봐. 한동안 잠잠하더니 오늘은 발길질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