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87
687회. 대종사와 동향 사람이라지?
종문 고수들의 수발을 받던 광명진천은 기이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청명한 하늘에 하얀 구름이 새털처럼 펼쳐져 있었다.
‘착각인가?’
분명히 묵직한 기감(氣感)이 느껴졌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나 보다.
광명진천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하지만 딱히 눈에 거슬리는 것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연적하를 확인했다.
제가 오늘 한 일이 뭔지 모르는지 희희낙락한 얼굴로 앉아 있다.
‘훗!’
제 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실력에, 눈치마저도 바닥이다.
사실 청명신주 그 자체로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에 자신의 언명(言命)이 가미되면 상상도 못 할 일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억을 뒤틀고, 감정까지도 통제한다.
은인을 원수로 만들거나, 원수를 은인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엿새 후면 연적하는 마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아니 오늘 보니 엿새까지 가지도 않을 것 같다.
사나흘이면 충분할 정도로 그는 무방비했다.
이상을 눈치챈 빙설화는 저항이라도 했는데, 연적하는 그마저도 없었다.
문득 이레 전의 일이 떠올랐다.
***
이레 전.
천지종 종산 원덕산.
안학궁.
‘삼천(三天)의 신’인 광명진천이 상석에서 오연한 얼굴로 빙설화 제군을 내려다보았다.
종문 최고의 미녀라더니, 그녀는 최고신인 자신이 보기에도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과연! 이름 그대로의 외모로다. 구주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지? 지혜로운 사람이라……. 신격(神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냐? 아직 반신(半神)인 연적하에 대한 배려냐? 아니면 우샤스 킨샤사처럼 너도 다른 속셈이 있느냐?”
남궁연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꼭꼭 감추어 둔 자신의 신격을 첫눈에 알아보다니 이 세계 최고신답다.
그의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게 있을까?
지혜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자신이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다.
남궁연은 그의 관심에서 벗어날 대답을 내놓기로 했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요.”
“흠, 그렇게 나오시겠다?”
광명진천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빙설화를 보았다.
천족(天族)인 자신도 홀릴 정도의 미모를 보니 문득 욕심이 든다.
비록 천족에 비해 하등한 인간이지만 가지고 싶었다.
순간 광명진천은 버럭 소리쳤다.
“너는 아직 신명(神名)도 얻지 못한 주제에 최고신인 나를 속이려 하느냐!”
물론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한 행동이다.
광명진천은 빙설화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곧이어 그의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자신보다 아래의 상대를 굴복시키는 광명안(光明眼)을 발동한 것이다.
남궁연은 광명진천이 갑자기 화를 내자 당황했다.
신격을 감추고 지낸 것이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닌 까닭이다.
“신격을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남궁연은 광명진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유리알처럼 반들거린다고 느낀 순간 그녀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뒤이어 기이한 느낌이 벼락처럼 온몸을 관통했다.
그제야 남궁연은 광명진천이 자신에게 손을 썼다는 걸 알아차렸다.
첫 대면에서 그런 무례한 짓이라니?
이 세계의 최고신이 이렇게 경우가 없는 존재인 줄은 몰랐다.
그녀는 황급히 호심공(護心功)인 심중유심(心中有心)의 구결을 읊조렸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던 기이한 느낌은 사라졌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천지종의 삼목공(三目功, 제삼의 눈)으로 확인에 들어갔다.
‘헉!’
삼목공을 쓰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였다.
광명진천의 몸에서 흘러나온 영기가 뱀처럼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광명진천의 야릇한 눈매를 본 남궁연은 처음으로 모멸감을 느꼈다.
울컥했지만 자신의 몸을 감고 있는 영기를 잘라 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는 암암리에 분검공(分劍功) 궁극의 수법인 천지분격(天地分格)을 펼쳤다.
남궁연의 전신에서 무형의 검기가 발출되었다.
그건 마치 보검으로 천잠사를 끊어 내려고 하는 것과 같았다.
우우웅-.
남궁연의 주변에서 기이한 파동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남궁연이 힘을 쓸수록 광명진천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최고신과 갓 입신의 지경에 오른 두 존재의 힘겨루기는 광명진천의 승리로 끝났다.
땀으로 흠뻑 젖은 남궁연과 달리 광명진천의 상태는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남궁연은 자신이 광명진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신으로 인해 힘을 다 쓰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광명진천은 최고신답게 강했다.
이 세계에서 광명진천의 상대는 ‘삼천의 신’밖에 없으리라.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해 줄 수만도 없는 노릇.
남궁연은 천지종 최고의 공법이라는 천지무극공을 끌어 올렸다.
고오오오-. 남궁연의 전신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기운이 발출됐다.
투둑. 툭-.
뱀처럼 그녀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광명진천의 영기가 끊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광명진천이 눈을 부릅뜨자 떨어져 나갔던 영기가 되돌아가 남궁연의 몸에 달라붙었다.
이윽고 남궁연의 천지무극공과 광명진천의 영기가 힘 대결을 시작했다.
그그그극-.
뭔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남궁연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빙설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자 광명진천은 슬며시 라오바르(휘어감음)의 주법(呪法)을 해제했다.
그도 빙설화가 홀몸이 아님을 알았기에 더 이상은 핍박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태아에게 문제가 생기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까닭이다.
“자비를 베풀어 이쯤 해 주지. 어차피 이유라는 것도 별것 아닐 테니까.”
사실 최고신인 그는 그녀가 신격을 감추든 말든 별 상관도 없었다.
“고맙지만, 저는 이미 이유를 말씀 드렸어요.”
남궁연은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광명진천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더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물러가서 쉴까 합니다만.”
“허락한다.”
남궁연은 묵례를 한 후에 돌아서 대전을 나갔다.
광명진천은 사라져 가는 빙설화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그리고 현재.
광명진천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빙설화는 연적하와 같은 반신에게 아까운 여자였다.
미모, 지혜, 그리고 쉽게 굽히지 않는 꼿꼿한 정신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그녀에 비하면 대종사인 연적하는 반푼이였다.
청명신주의 위험도 모르고 주절주절 잘도 읊어 댄다.
빙설화처럼 저항했으면 한번 밟아 주었을 터인데, 알아서 숙이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마뜩잖은 눈으로 연적하를 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이동할 시간이 된 것이다.
***
한산주.
삼채성 옥천항.
해거름 무렵,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삼천의 신’인 광명진천과 그를 따르는 천지종과 태상종 고수들이다.
광명진천은 노조들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전면에 보이는 화려한 누각으로 걸어갔다.
연적하는 다른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기만 해도 불쾌한 광명진천과 같은 공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다.
그제야 노조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실 이틀 거리를 하루 만에 날아온 그들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잠시 후 이백여 명의 진인들이 도착했다.
진인들의 상태는 더 나빴다.
속세에서 신선 취급을 받는 그들이지만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들처럼 비칠거렸다.
그런 진인들을 보며 ‘쯧쯧!’ 하고 혀를 차던 노조들이 전각으로 흩어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진인들도 가까운 객잔으로 삼삼오오 몰려갔다.
심통도 진인들 무리에 섞여 아무 객잔으로 들어갔다.
너무 지쳐서 연적하가 어디에 묵고 있는지 확인할 경황이 없었다.
방으로 안내된 그는 침상에 대자로 누워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심통이 눈을 뜬 건 그로부터 한 시진(2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한 그는 터덜터덜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객잔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쉬고 나온 진인들로 가득했다.
심통은 대충 빈자리에 끼어 앉았다.
식사를 하던 천목 진인이 옆자리로 파고드는 심통을 힐끔 보았다.
“지금 일어났나 보오? 나는 태상종의 천목 진인이오.”
“천지종에 있는 심통입니다.”
천뢰종 출신의 심통이 애매하게 답했지만 천목 진인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휴! 내일도 오늘과 같은 강행군이면 진인들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데. 뭐 들은 바가 있소?”
“전혀요. 하지만 사람들을 이렇게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대종사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광명진천님의 뜻 같습니다.”
“광명진천님의 뜻이라면야 뭐…….”
천목 진인은 별수 없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러자 천목 진인의 곁에 앉아 있던 금악 진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광명진천님에게는 우리 진인들이 있으나 마나 하니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주변의 진인들이 자조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천과의 싸움에서 진인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저 최하위 마물들을 처리하는 정도의 역할이다.
구주에까지 이름을 떨친 마족들은 제군들과 존자의 몫이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광명진천까지 나섰다면 진인의 자리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통은 진인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젓가락질만 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그는 밤거리로 나갔다.
어두운 거리를 터덜터덜 걷던 그는 백리하 강변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가 달빛에 빛나는 백리하를 멍하니 볼 때다.
“천지종에도 흥취를 아는 자가 있었군.”
흠칫 놀라 돌아보던 심통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삼천의 신’으로 숭상받는 광명진천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심통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미천한 놈이 광명진천님의 휴식을 방해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방해는 무슨, 백리하가 내 것도 아닌데. 고개를 들라.”
“예.”
심통은 허리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광명진천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광명진천의 표정은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심통은 가슴이 철렁했다.
“너는 대종사와 동향 사람이라지?”
“예? 예, 그렇습니다.”
“허면 너도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이라는 말을 아느냐?”
“얼핏 대종사님에게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알고 있는 바를 말해 보거라. 네 말이 마음에 들면 선물을 주겠다.”
심통은 ‘이건 또 뭔가?’ 싶어 광명진천을 힐끔 보았다.
그러자 광명진천이 웃으며 뭔가를 꺼내 들었다.
“월성금구(月星金龜)의 영석이다. 이 영기를 흡수하면 원영의 벽을 깰 수 있다.”
노조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순간 심통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연적하는 ‘욕심부리지 말라’고 했지만 영석을 보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백화상방이라는 곳에서 대종사님에게 결례를 저지른 일이 있습니다. 그 대가로 상방에서 고서를 선물했는데, 그 속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통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광명진천의 안색을 살폈다.
일단 떡밥부터 던지고 반응을 보아 적당히 뒤를 이어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재밌는 인연이로구나. 잘 들었다. 옜다.”
광명진천이 선심 쓰듯 월성금구의 영석을 던졌다.
깜짝 놀란 심통은 얼떨결에 월성금구의 영석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