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692
692회. 그러는 너는 광천사 베레드 맞냐?
여주성.
남대천 강변.
미시 초(오후 1시) 무렵.
죽이 되직해지자 홍이범은 한 그릇 떠서 연적하에게 공손히 바쳤다.
연적하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내가 안 볼 때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지?”
“어이쿠!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저는 여주성의…….”
“알아 치안대라며?”
“예, 그렇습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의심을 풀고 선심 쓰듯 말했다.
“홍 형도 한 그릇 먹어.”
“예, 예.”
홍이범은 황급히 김이 풀풀 나는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죽에 수상한 걸 넣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앞섰다.
“앗! 뜨뜨!”
뜨거운 죽에 그만 혀를 홀라당 데인 그가 오두방정을 떨었다.
“쯧쯧! 저 식탐 봐라. 누가 뺏어간다고 그렇게 서둘러?”
고개를 젓던 연적하는 느긋하게 죽을 떠서 먹기 시작했다.
홍이범은 차마 속에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혀를 쭉 빼고 헐떡거렸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연적하가 홍이범에게 물었다.
“홍 형은 이제 성도(여주성)로 가나?”
“예.”
“여주성 성도면 여기서 좀 멀지 않나?”
“괴물들의 이동 속도를 생각하면 멀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먼 북대천으로 간 사람도 있습니다.”
“북대천?”
“예, 본래 이 앞의 강은 무량하의 지류인데 여주성에 있는 것을 남대천, 청산성에 있는 것을 북대천이라 합니다.”
“어차피 성주의 군사로는 마천을 상대할 수 없잖아? 그런데 왜 조사를 해?”
“성주께서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훌륭한 성주네?”
“예.”
홍이범의 얼굴에 뿌듯한 기색이 어렸다.
여주성의 성주는 여주성의 문무 백관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럼 얼른 가 봐.”
“예? 가도 됩니까?”
홍이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 괴팍한 고수가 순순히 보내 준다니 이게 무슨 행운인지 모르겠다.
연적하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가도 되냐니? 누가 들으면 내가 홍 형을 잡아 두고 있는 줄 알겠어. 나는 그냥 식사나 같이하자고 한 것뿐이라고. 말해 봐. 내가 홍 형을 강제로 잡아 뒀어?”
“아, 아닙니다. 그럼 정말 가 보겠습니다.”
“가, 마음 변하기 전에. 저녁 먹을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찜찜하다고.”
저녁 이야기가 나오자 홍이범은 더 눈치 보지 않고 슬금슬금 떠나갔다.
멀어져 가는 홍이범을 보며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홍 형이 관원만 아니었으면 내가 선단(仙丹)이라도 하나 줬을 텐데. 아, 선단이 없구나.”
선단을 생각하자 다시 어린 서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도 괜찮겠지? 가족들과 있으니까.”
혼자라면 위험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황우연이 함께 있으니 괜찮을 게다.
자신의 고기까지 들고 튄 사람이지만 제 가족은 끔찍이도 챙겨 주리라.
그렇게라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산책하듯 잠시 강변을 거닐던 연적하가 우뚝 멈춰 섰다.
소화도 됐고 이제는 강을 건너야 할 시간이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자연스럽게 구름이 발아래로 와서 그를 받쳤다.
휘이잉-.
연적하를 태운 구름이 남대천을 건너갔다.
***
남대천 건너편 강가.
연적하는 강변 위를 한 바퀴 선회했다.
과연 홍이범의 말대로 지상은 기괴한 괴물들로 가득했다. 다 피난을 갔는지, 괴물들에게 잡아먹혔는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기이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강 하류 쪽에 형성된 제법 큰 마을에서 소름 돋는 기운이 느껴졌다.
전에 만났던 군단장 몰록보다 훨씬 존재감이 강한 기운이다.
‘광천사 베레드인가?’
연적하는 잠시 망설였다.
메누아가 여기 있다면 지금쯤 호기심에라도 모습을 드러냈어야 정상이다.
‘돌아갈까?’
하지만 미련이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이곳까지 와서 저 광포한 기운의 주인을 확인하지 않고 가기도 뭐했다.
마음이 움직이면 영기가 움직인다.
연적하를 태운 구름이 부드럽게 남대천의 마을, 구룡포로 나아갔다.
***
남대천 구룡포.
구룡포 촌장의 집.
앞마당에 크기가 일 장(약 3미터)이나 되는 괴물 네 마리가 난투를 벌이고 있다.
광천사 베레드가 심심풀이로 붙인 싸움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혈전을 지켜보던 광천사 베레드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 저편에서 묘한 기운이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종문(宗門)의 기운이다.
광천사 베레드는 하룻강아지 같은 인간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자신의 영역을 활보하고 다니다니.
광천사 베레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우는 괴물들에게 손을 휘둘렀다.
“꽤애액!”
“크형!”
한창 맞붙어 싸우던 괴물들이 담장을 부수며 밖으로 날아갔다.
마당이 조용해지자 광천사 베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움직이자 집 근처에 있던 괴물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눈알만 굴렸다.
광천사 베레드의 몸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섬전처럼 강쪽으로 날아갔다.
운종술로 기세 좋게 전진하던 연적하가 흠칫 놀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아직 마을에 미치지도 못했는데 누군가 가공할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날 선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쳐 왔다.
“이크!”
연적하는 급히 방향을 틀어 기운에서 비껴 났다.
파츠츠츠-.
모골이 송연한 소리가 코앞까지 왔다가 뒤편으로 멀어져 갔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어도 온몸이 절단 났을 상황이다.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마천의 제후가 이렇게 대단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강함이다.
연적하는 광천사 베레드를 가까이서 보려던 걸 포기하고 급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운종술에 정신을 집중했다.
콰아아-!
연적하를 태운 구름이 다시 남대천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상대는 악신(惡神)으로 알려진 마천의 제후 광천사 베레드다.
어느새 구름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광천사 베레드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핫! 네놈 마음대로 왔다가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말과 함께 광천사 베레드가 손을 흔들었다.
꽈르릉! 꽈광!
연적하의 머리 위로 뇌전(雷電)이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하지만 연적하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연적하를 태운 구름이 갈지자[之]로 날아가며 뇌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그러나 광천사 베레드는 집요했다.
“무르스 이그니스(불의 벽)!”
그가 정면으로 손을 뻗자 돌연 연적하의 앞쪽에 불의 벽이 생겨났다.
화르르륵-!
갑작스러운 화염에 연적하는 깜짝 놀랐다.
구주에서 온갖 기이한 일을 만났지만, 이런 건 생각도 못 해 봤다.
‘득물(得物,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냄)인가!’
하기야 종사들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스스스-.
솜이불처럼 풍성하게 발밑을 받쳐 주던 구름이 조금씩 옅어졌다.
열기에 녹아 버린 것이다.
발밑에 조금 남은 구름으로는 불의 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연적하는 즉시 청사(靑蛇)를 꺼내 던졌다.
청사가 허공을 한 바퀴 돌아 그의 발밑에 깔릴 즈음, 구름이 사라졌다.
연적하는 청사를 밟고 수직으로 솟구쳤다.
불의 벽에서 불과 반장(약 1.5미터)밖에 안 떨어진 거리라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운종술을 계속 썼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으리라.
“흥! 잔재주로 벗어날 성싶으냐?”
광천사 베레드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불의 벽이 앞으로 넘어가며 연적하를 덮쳤다.
화르르륵-!
연적하는 불 벽이 자신에게 넘어오자 즉시 허공에서 천둔검을 끄집어 냈다.
손에 익숙한 장검의 크기다.
그는 손에 쥔 천둔검으로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을 펼쳤다.
콰콰콰콰-!
거대한 용권풍이 불 벽을 빨아들여 뒤쪽으로 밀어붙였다.
연적하는 겨우 한숨 돌렸지만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천둔검으로 불의 벽을 밀어내는 동안 광천사 베레드에게 뒤를 잡히고 만 것이다.
광천사 베레드가 연적하의 앞을 막아섰다.
미꾸라지처럼 달아나던 연적하는 낙심한 얼굴로 광천사 베레드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실망했을 뿐, 겁먹거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런 그를 광천사 베레드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보았다.
한낱 인간 따위가 마천의 제후인 자신을 보고도 겁먹지 않다니?
이건 대체 무슨 조화인가 싶다.
“크크! 감히 이 몸을 번거롭게 만들다니, 죽음으로도 그 죄를 다 씻지 못할 것이다!”
광천사 베레드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인간을 노려보았다.
그에게 인간은 날파리만도 못한, 가볍게 눌러 죽일 수 있는 미물이었다.
그런데 그 인간이 뜻밖의 말을 했다.
“누가 따라오래? 그쪽이 미친놈처럼 따라와 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야?”
“…….”
너무도 뜻밖의 대거리에 광천사 베레드는 한순간 석상처럼 굳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저건 이를테면 최후의 발악 같은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제멋대로 씨불이는 것들은 마천에도 종종 있었다.
저런 놈들에게 죽음은 은총이다.
그러니 바로 죽지 않게끔 힘 조절에 유의하면서 가지고 놀면 된다.
질리도록.
잔혹한 상상을 하던 광천사 베레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실로 구주에서 처음 만나는 대범한 인간이구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연적하. 그러는 너는 광천사 베레드 맞냐?”
연적하에게 예의는 상대적이다.
광천사 베레드가 반말을 하는 순간 그에 대한 연적하의 대우도 정해졌다.
광천사 베레드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것 봐라?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자신을 자극해 단숨에 죽여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료해 마물들끼리 싸움을 붙여 놓고 구경까지 하던 중이다.
‘흐흐, 살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 놓으면 그때는 무슨 말을 하려나?’
잔혹하게 미소 짓는 그를 향해 연적하가 물었다.
“뭐 잘못 처먹었냐? 표정이 왜 그래?”
“크큿! 네놈이 뭐라고 떠들어 대도 나는 너를 쉽게 죽일 생각이 없다. 그래 봐야 네놈이 치러야 할…….”
“무슨 개소리야.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연적하. 나머지는 네놈의 살가죽을 벗긴 후에 듣겠다.”
말과 함께 광천사 베레드가 손을 내밀었다.
순간 ‘우우웅!’ 하는 대기의 떨림과 함께 그의 손아귀에 화염(火焰)의 검이 쥐어졌다.
화르르륵-!
그가 보란 듯 활활 타오르는 검신을 쓰다듬었다.
“화염검 루이나다. 실로 신의 권능에 걸맞은 검이라 할 수 있지.”
화염검이라는 이름답게 검신에서 사위를 녹일 듯한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연적하도 지지 않겠다는 듯 대꾸했다.
“아, 그래? 내 건 천둔검이야. 여동빈이라는 진선(眞仙)이 만든 검이라는데 어때 쓸 만해 보여?”
여동빈의 이름이 나오자 광천사 베레드가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그저 득물의 경지에 든 구주의 종사인 줄 알았는데 진선 여동빈의 검이라니?
아무리 그가 악신이라 해도 진선과 관계된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너는 그것을 여동빈에게 받았느냐?”
“아니, 주운 건데?”
무당파에 갔다가 우연히 천둔검의 검결을 얻었으니 주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쯧! 마천의 제후를 상대로 말장난이라니. 그 죄의 대가도 천천히 치르게 해 주마.”
말을 마친 광천사 베레드가 한 마리 굶주린 호랑이처럼 연적하를 덮쳤다.
연적하는 뜨거운 열기에 치를 떨면서 천둔검으로 맞받아쳤다.
콰앙! 쾅! 쾅-!
광천사 베레드와 연적하는 단순 무식하게 맞붙어 검격을 주고받았다.
두 존재 모두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