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
7회. 거울 속에 갇히다
약이 오른 연적하는 밖으로 손을 뻗어 보았지만 거울에 막혀 더 나가지 않았다.
“이 요괴야! 내 물건에 손대지 마!”
연적하는 자신이 요괴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거울에 갇혀 있던 요괴가 자신과 자리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요괴는 자신의 말에 신경도 안 쓰고 쾌활한 얼굴로 창고를 뛰어 다녔다.
거울 안에 갇힌 연적하는 이를 갈았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으아! 요괴에게 당하다니!’
분노에 휩싸여 머리를 쥐어뜯던 연적하는 무심코 발길질을 했다.
퍽.
발에 채인 소학 책이 한쪽으로 날아갔다.
신기하게도 거울 속의 세상은 창고 안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연적하는 씩씩거리며 거울 속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자신이 딱 창고 크기만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쁜 새끼…….”
저절로 욕이 나왔다.
나를 속여 좁은 공간에 가두다니!
분하고 억울해서 거울을 발로 차 보았지만 발가락만 아플 뿐이다.
그렇게 해서 창고 살이 오 년 만에 연적하의 거울 속 살이가 시작되었다.
***
거울 속의 연적하가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요괴를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요괴는 이전까지 자신이 했던 일을 반복했다.
작은 구멍으로 음식을 받아먹고, 항아리에 대소변을 싸고, 빈둥거렸다.
평소의 자신과 다른 건 딱 하나다. 뭐가 재밌는지 요괴는 항상 웃었다.
처음에는 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요괴의 짓거리가 한심해 보였다.
저래서야 개돼지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연적하는 요괴를 향해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그날도 아이가 자신의 화권(꽃빵)을 뜯어먹는 걸 보던 연적하는 발끈해서 펄펄 뛰었다.
“그만 처먹어! 내 거라고!”
씩씩거리며 거울 속을 오락가락하던 연적하의 눈에 화권이 담긴 광주리가 보였다.
당연히 거울 속에도 화권이 담긴 광주리가 있었다.
연적하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광주리로 다가갔다.
말라비틀어진 화권이 광주리 안에 담겨 있었다.
거울 속의 화권은 무슨 맛일까?
갑가기 입에 침이 고였다.
딱딱한 화권을 집어 입에 넣자 스르륵 녹아 목으로 넘어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그 맛은 이전에 먹어 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단숨에 세 개의 화권을 집어삼킨 연적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물통이 보였다.
마른 화권이 이렇다면 물맛은 어떨까?
연적하는 표주박으로 물통의 물을 조금 떴다.
본래 퀴퀴한 냄새가 나야 하는데 거울 속의 물은 달랐다. 냄새만 맡았는데 벌써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물을 조금 맛보았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때부터 그는 정신없이 벌컥벌컥 마셨다.
배가 불러 더 마시지 못할 지경이 되자 연적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물러났다. 거울 속이라는 것만 빼면 바깥보다 더 나은 것 같다.
***
거울 속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알 수 없다.
연적하는 작은 창으로 들어오던 신선한 바람이 그리웠다.
음식 구멍 틈새로 보이던 나무와 그 밑에 무성하던 잡초까지도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거울 속은 바람이 불지 않았고, 고개를 기울여도 틈새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던 연적하는 문득 자신이 거울 밖의 요괴처럼 먹고 싸고 빈둥거릴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거울 밖의 요괴는 얼굴만 같았지 자신이 아니다.
그건 그동안 그를 통해 익힌 동작이 자신의 상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구천세법과 아홉 개의 동작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그동안 익힌 동작을 하나하나 되풀이했다.
그러다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우습게도 거울 밖의 요괴가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요괴는 과거의 자신처럼 거울 속의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기발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거울 밖의 요괴는 얼굴만 같은 게 아니라 호기심도 자신처럼 강한 것 같다.
요괴를 가까이 오게끔 만들면 어떨까?
그리고 요괴가 자신에게 했던 대로 하면, 거울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쩐지 자신도 요괴의 머리통을 움켜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적하는 요괴가 했던 동작들을 꼼꼼히 되새김질했다.
구천세법부터 새로 익힌 아홉 개의 동작까지 쉬지 않고 펼쳐 보였다.
그러나 요괴는 힐끔거릴 뿐 가까이 오지 않았다.
화가 난 연적하는 막대기로 거울을 후려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야! 이 요괴야! 너도 관심을 좀 보이란 말이다!”
순간 연적하는 자신의 음성에 놀라 움찔거렸다.
누군가에게 큰 소리를 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불안함과 동시에 쾌감이 몰려왔다.
이 짜릿한 기분에 형들이 그렇게 욕을 했던 모양이다.
“이 개놈아!”
“천한 놈아!”
“이 모자란 새끼야! 이리 좀 와 보라고!”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그동안 형제들에게 들었던 모든 욕을 총동원했다.
답답한 마음이 좀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고 난 다음에 연적하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갔다.
거울 밖으로 나가려면 저 요괴의 호기심을 끌어야 한다.
이 좁은 거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정해져 있다.
요괴가 했던 기나긴 동작을 마르고 닳도록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적하는 ‘열여덟의 동작에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씨 가문의 구천세법은 아홉 개다.
그런데 그 뒤에 계속 이어진 아홉 개는 뭐지?
열여덟 개 동작은 본래 하나의 검법인 것처럼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저 요괴는 어떻게 아빠가 모르는 아홉 개의 동작을 알고 있을까?
연적하는 불현듯 ‘저 요괴가 연씨의 먼 조상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자신과 얼굴이 비슷할 수도 있다.
‘조상의 귀신이 거울에 갇혀 있었나?’
연씨 집안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자 그동안 욕을 했던 게 미안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저 요괴는 처음부터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처음에 본 그는 여섯 살 무렵의 자신과 똑같았다.
조상의 귀신이 자신과 같이 나이를 먹을 리는 없지 않은가!
“아, 뭐지?”
머리를 쥐어뜯던 연적하는 거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요괴와 눈이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요괴의 얼굴은 자신과 닮은 듯했지만 달랐다.
그의 얼굴은 밝았다.
마치 슬픈 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것처럼 해맑아 보였다.
자신은 단 한순간도 저런 얼굴을 한 적이 없다.
이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저건 조상신도 아니고, 자신은 더더욱 아니다.
‘저건 그냥 이름 모를 요괴의 농간이야.’
한때 저걸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고, 심지어 조상신으로 생각했다니 한심할 뿐이다.
연적하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접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넘어야 할 산이자, 물리쳐야 할 적으로 여기기로 했다.
‘방법을 바꿔야 해.’
구천세법으로는 요괴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문득 요괴가 읽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요괴는 저걸 보면서 제 몸을 짚어 보고 머리를 툭툭 치기까지 했다.
‘분명히 소학인데…….’
연적하는 속는 셈치고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표지에 쓰인 글자는 소학이다.
‘제길.’
요괴에게 속았다고 생각하자 이가 갈린다.
“나쁜 새끼!”
욕과 함께 거칠게 책표지를 넘겼다.
휙휙.
현녀경(玄女經).
‘응?’
소학의 속표지에 적힌 건 ‘현녀경’이라는 세 글자였다.
집안의 어른들은 입만 열면 ‘선조들이 현녀경을 잃어버렸다’고 했었다.
‘이게 왜 거울 속에 있지?’
연씨 일족이 알면 까무러칠 일이었다.
“흥! 쌤통이다!”
연씨 일족의 사람들은 애는 물론 노인들까지 죄다 자신을 욕하고 괴롭혔다.
백가장에서 큰엄마가 데리고 온 노비의 자식이라나?
그들은 아빠가 강호를 떠난 걸 엄마와 자신의 탓으로 여겼다.
이제는 아빠가 왜 강호를 떠났는지 안다.
아빠는 자신이 곧 죽을 걸 알고 여생을 엄마와 보내고 싶었던 거다.
엄마가 죽고, 아빠까지 죽자 연씨 일족은 자신을 창고에 가두었다.
연적하는 현녀경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내가 연씨 일족과 말을 섞으면 사람이 아니다!”
더러워서 연씨 성까지 버리려고 했지만 아빠를 생각해 참기로 했다.
대신에 연씨 일족과는 평생 교류하지 않을 작정이다.
현녀경은 어떻게 하냐고?
당연히 가르쳐 주지 않을 거다.
누가 물어보면 그냥 자신이 창고에 갇혀 있는 동안 깨우쳤다고 할 생각이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려면 일단 현녀경을 익히고, 이 답답한 거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저 요괴는 현녀경을 보며 꽤나 고민했다.
그건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자신이 검법과 현녀경의 새로운 묘리를 보여 준다면 분명히 호기심을 느낄 것이다.
연적하는 이전에 요괴가 했던 것처럼 현녀경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선인 구천현녀에 대한 소개로 시작됐다.
계속 읽으니 ‘구천여일진경(九天如一眞經)’이라는 낯선 이름의 숨 쉬는 법이 나왔다. 구천현녀가 직접 만들었다는데 이 진경대로 수련하면 곤화위붕(鯤化爲鵬), 곧 물고기가 대붕이 된단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중반부터는 지금까지 익힌 열여덟 개 동작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눈에 익은 아홉 개 동작은 역시나 ‘구천세법’이었다.
뒤이어 요괴에게 배운 아홉 개 동작의 이름이 나왔다.
구천구검(九天究劍).
하늘 밖의 하늘에 닿는 검술이라나?
이제 보니 연씨 일족은 ‘구천세법’ 아홉 개만 배우고 ‘구천검’이라 했던 모양이다.
일단 연적하는 구천여일진경의 구백 자 법문(法文)을 모두 외웠다.
그리고 구천여일진경에 기록된 대로 숨을 들이쉬고, 모았다가, 천천히 내뱉기를 반복했다.
셀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났다.
구천여일진경에 적힌 구백 자 법문이 뼛속 깊이 새겨질 무렵, 드디어 연적하의 하단전에 쌀 한 톨만 한 원정(元精)이 만들어졌다.
거울 속의 연적하는 배고픔이나 잠을 모르고 시간의 흐름에서도 비껴 난 상태였다.
쌀이 도토리만 한 크기로 자라나자, 이번에는 두정(頭頂)이 열리며 머리의 백회혈(百會穴)에 조금씩 선천기(先天氣)가 쌓이기 시작했다.
연적하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운기 조식의 열락에 빠져 눈을 뜨지 않았다.
백 일이 지나자 백회혈의 선천기는 흘러넘쳐 마침내 임맥을 타고 단전에 고였다.
단전에서 원정과 선천기가 만나자 마치 태극처럼, 두 개의 기운이 융화하여 하나가 되었다.
드디어 구천여일진경에 기록된 구천기(九天氣)가 생성된 것이다.
정작 그는 몰랐지만 그건 거울 속 소년이 오랜 시간 죽은 듯 앉아서 숨만 쉬던 것과 똑같았다.
일단 단전에 구천기가 생성되자 연적하는 번쩍 눈을 떴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집중했는데 구천기라는 걸 얻고 말았다. 이제 구천기의 씨앗만 얻었을 뿐인데 몸이 전과 달라진 느낌이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구천기는 허무한 가운데 오는 것이니 허심(虛心)으로 기다리라고 했는데…….”
문제는 자신이 아직 허무니 허심이니 하는 감정을 잘 모른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