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0
70회.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
낙양 동편 언사.
와룡장.
와룡장의 정문으로 이십여 명의 무림인이 다가갔다. 청운검 남궁천과 화용독심 남궁연,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행 중인 창천대다.
남궁세가 가주 검왕 남궁벽은 낙양에 자녀들을 대신 보냈다. 이십여 년 전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강호행을 맡긴 것이다.
창천대의 무사 중 하나가 가볍게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남자 하인이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인은 예고 없이 찾아온 무림인들을 보고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그 모습에 남궁천이 눈을 찡그렸다.
과거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변한 것일까?
창천대 무사가 짧게 말했다.
“우리는 남궁세가의 사람들이오. 연무백을 만나러 왔소이다.”
그제야 하인이 문을 열며 허리를 숙였다.
“어이쿠! 남궁세가 분들이셨군요. 안채에 기별할 동안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잠시 후 안채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와룡검객 연무백이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사형! 사저! 오랜만입니다! 진즉 알았으면 소제가 낙양으로 나갔을 텐데. 잘 오셨습니다.”
남궁천이 웃으며 화답했다.
“괜찮아. 바쁘다고 들었는데 덜 바쁜 사람들이 와야지.”
“하하! 바쁘긴요. 안으로 드시지요.”
눈치를 살피던 연승백이 살짝 끼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연승백입니다.”
“그래, 너도 잘 있었느냐?”
고개를 끄덕이던 남궁천이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전과 달리 백 부인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남궁천은 이내 연무백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연무백은 남궁천과 남궁연 남매를 객청으로 안내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남궁 자매와 연씨 형제가 마주 앉았다.
잠시 연무백의 아래위를 살피던 남궁천이 말했다.
“낙양에서 와룡장 얘기는 들었다. 몸은 괜찮으냐?”
“예, 괜찮습니다.”
“그렇군. 나는 낙양 무림대회에 와룡장 사람들이 안 보여서 아직도 치료 중인 줄 알았다.”
“급한 일을 마치고 좀 쉬던 참입니다.”
연무백은 차마 공현요의 싸움 뒤에 요양 중이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랬구나. 이번 유명교 토벌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내일이나 모레쯤 여주로 출발할 것 같던데.”
“지난번에 피해를 많이 봐서 이번에는 빠질까 생각 중입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두 분도 조심하십시오. 이십여 년 전의 유명교라고 생각하시면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군자검 이 대협에게 대략의 이야기는 들었다. 혼세검마의 무위가 뛰어나다지?”
“혼세검마만이 아닙니다. 그의 수하들 중에 약한 자가 없었습니다. 칠파이문의 제자들이 수숫단 쓰러지듯 픽픽 쓰러졌으니까요.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졸개들도 그 정도로 뛰어나더냐?”
“아휴! 말도 마십시오. 저도 운이 좋아서 살아 돌아온 겁니다. 솔직히 은하장에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게다. 의천검존께서 가신다고 하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의천검존이 아니면 사형도 만류하려고 했습니다.”
“쯧! 도고일척 마고일장(道高一尺 魔高一丈)이라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네. 언제 유명교가 그렇게 커졌지?”
연승백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군자검 이 대협까지 그렇게 당하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창 유명교 이야기를 이어 가다 말고 남궁천이 물었다.
“참, 오는 길에 녹림과 와룡장의 사이가 나쁘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솔직히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봉산채에서 와룡장을 적대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무슨 이유로?”
“그걸 모르니 답답할 뿐입니다.”
“도적들이 그 정도로 귀찮게 굴면 토벌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남궁천은 와룡장 정도의 무가가 당하고만 있다는 게 좀 의아했다.
“실은 여주에 갔다가 토벌을 나갈 생각이었습니다만, 유명교에 너무 큰 피해를 입어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유명교가 여럿 망쳤군.”
“이번에는 토벌이 잘 끝나겠지요? 의천검존과 오백여 명의 협객들이 가신다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되겠지.”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남궁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낙양으로 돌아가야겠다.”
“사형, 여주로 갈 때까지 그냥 이곳에 계셔도 됩니다.”
“아니야. 새로운 소식을 들으려면 낙양에 있는 게 좋아. 이런 때는 귀를 열어 두고 있어야지.”
남궁천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지라 연무백은 더 잡지 못했다.
남궁천과 남궁연은 차만 마시고 바로 와룡장을 떠났다.
낙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궁천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숙모님께 인사도 못 드렸군. 집에는 계신 것 같던데…….”
남궁연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궁천은 그게 조소(嘲笑)라는 걸 알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그래. 와룡장이 호전적으로 변했다기에 숙모님의 작품인 줄은 알았어. 하지만 얼굴도 비치지 않을 정도로 콧대가 높아지신 줄은 몰랐지.”
섭섭해하는 남궁천과 달리 남궁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
보봉현.
오봉산.
연적하는 오늘도 오봉산 제일봉에 올랐다.
박도에서 검으로 바꾸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검을 박도처럼 휘두르다가 ‘아차’ 한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검과 박도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양날과 외날의 차이는 물론이요, 무게의 중심마저도 차이가 컸다.
시원하게 휘두르면서도 계속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차라리 그냥 박도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구천구검을 수련하던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건 아니야.’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었다.
연적하는 그늘로 들어가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오히려 구천구검의 연공이 쉬웠다.
막대기 하나로 연습할 때는 이런 부조화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전에 박도로 펼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검법을 검으로 펼치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
‘쳇! 천지상인이 옆에 있다면 속 시원하게 물어볼 텐데.’
그라면 자신이 왜 이렇게 헤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연적하의 귀로 구밀복검 심양각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자님, 잘돼 가십니까?”
“아니.”
“흘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심양각의 말에 연적하가 관심을 보였다.
“그럴 줄 알았다고?”
“박도를 쓰던 사람은 유엽도만 들어도 어색합니다. 하물며 검으로 바꾸셨으니 더할 겁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공자님께서 처음으로 든 무기가 박도라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어.”
“그럼 더더욱 쉽지 않을 겁니다. 몸이 박도에 길들여졌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가? 박도로 검법을 펼칠 때보다 검으로 펼치는 게 더 이상해.”
“공자님의 무위가 높다 보니 도와 검 사이의 간극이 더 크게 느껴져 그럴 수도 있습니다. 검을 든 움직임이 성에 안 차시는 거죠. 그럴 때는 서두르지 마시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처음?”
“검으로 구천세법을 다시 연습하다 보면 몸에 익지 않겠습니까? 와룡장의 사람들은 전부 검으로 구천세법을 쓴다면서요.”
“오! 괜찮은 생각인데? 역시 심 노인이야. 생각하는 게 달라.”
그제야 연적하는 길을 찾은 느낌이었다.
억지로 구천구검에 매달리지 말고 구천세법부터 다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차피 앞으로는 구천세법을 검으로 펼쳐야 하니 일거양득이다.
“그건 그렇고 심 노인은 어때? 이제 운기토납은 좀 되고 있어?”
“예, 아직은 미미하지만, 그래도 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심양각의 안색도 좋아 보였다.
“설마 그 얘기를 해 주려고 올라온 거야?”
“흐, 어제오늘 표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서 와 본 겁니다.”
“어이쿠! 자기 코가 석 자인 사람이 내 걱정도 다 해 주고. 고맙네.”
“공자님이 잘되셔야 저도 잘될 테니까요.”
“알았어. 잘될게. 심 노인이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흐흐, 공자님은 속에 있는 말을 바로 하셔서 대화하기가 편합니다.”
“칭찬이야? 욕이야?”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심양각이 휘적휘적 산을 내려갔다.
연적하의 연공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심양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으로 구천세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역시나 차이는 있었지만 구천구검을 펼칠 때만큼 크지는 않았다.
연적하는 초심으로 돌아가 한 동작 한 동작 차분하게 움직였다.
해거름 무렵까지 구천세법을 반복하자 어색한 느낌은 많이 줄어들었다.
***
남직례성 소호(巢湖).
합비 남쪽의 거대한 담수호인 소호에서 한 마장(약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무산소축(楚山小縮)이라는 현판이 붙은 장원이 있다.
늦은 밤.
장원에서 가장 큰 전각 앞으로 백여 명의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사십 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나왔다.
모여 있던 무인들은 두 여자가 두려운 듯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여자 모두 백두마군인 까닭이다. 겉으로는 사십 대지만 실은 둘 다 육십이 넘은 노파였다.
여자 중 하나, 월하선자가 곁에 선 무산낭랑 이매화에게 말했다.
“낭랑께서는 오늘 구경만 하세요. 남궁세가와 와룡장에는 빚이 있어서요.”
“후후, 나도 검왕과 참월검객의 이야기는 들었어요. 십두마병 시절의 일이 큰 상처였나 봐요?”
“그것들이 검왕과 참월검객 소리를 듣고 있는 게 모두 내 덕이잖아요. 오래전 일이라 잊고 싶은데 세상이 자꾸 되새겨 주네요.”
“오늘 남궁세가를 없애면 기분이 조금 풀어지실 거예요.”
“그러기를 바라요.”
“남궁세가가 사라지면 무극문도 남경에서 힘을 쓰지 못할 거예요. 혼세검마가 적절한 때에 이목을 끌어 줘서 고맙네요. 참, 선자께서도 교당을 다시 세우셔야지요?”
“이곳에는 이미 무산소축이 있으니까 와룡장에 교당을 세울까 생각 중이에요. 그럼 깔끔한 복수가 될 것 같지 않아요? 참월검객이라는 놈도 부관참시를 해 주고.”
“그것도 괜찮아 보이네요. 선자께서 그렇게 교훈을 내리면 함부로 유명교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두 여자는 검왕 남궁벽이 두렵지 않는지 한참을 시시덕거렸다.
***
합비.
남궁세가.
검왕 남궁벽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잠을 방해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불안해서다.
천하십대고수들처럼 내외공이 초범 입성의 경지에 들면 조금씩 천기의 흐름을 알게 된다.
오늘밤 남궁벽이 그랬다.
그는 육감보다 더 확실한, 어떤 운명의 징조를 느끼고 있었다.
침상에서 일어난 그는 대청마루로 나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별 두 개가 만나고 있었다.
저건 분명히 ‘나라의 운명을 가른다’는 이른바 ‘형혹수심(楚惑守心, 화성이 천자의 별자리를 위협)’의 불길한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