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06
706회. 이제는 권좌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다.
유월 보름.
마침내 마신의 군세가 북대천을 넘었다.
얼마 전까지 인간들의 거주지였던 낙일현이 마물들로 북적거렸다.
정오 무렵.
낙일현 현청.
상좌(上座)에 앉아 있는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의 앞으로 마족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마신 휘하의 마족 중에 최강자로 알려진 다이몬이었다.
다이몬은 등장하자마자 복종의 표시로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마신님.”
생각에 잠겨 있던 메디나 이사엘라가 다이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해라.”
“마천에 마물의 동원령을 내린 이가 있었습니다.”
“누구냐?”
“마왕 천자마입니다.”
“흥!”
메디나 이사엘라가 같잖다는 듯 냉소를 쳤다.
본래 그녀는 구주에서 전쟁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었다.
관심이 천문에서 구전범천으로 옮겨 간 것도 있지만, 전쟁이 커지면 천계의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세 개의 침공로를 제안한 이는 마왕 천자마였다.
지금까지 꾸려 왔던 원정대와 비교하면 두 배쯤 늘어난 규모다.
마족들은 그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마족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다.
대신에 백리하까지만 진군할 것을 명했다.
백리하 동편의 세 개 종문을 위해 천계가 전쟁에 뛰어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천관산맥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귀나 마족은 지성이 있어서 통제가 수월하다.
마신이 명했으니 그들은 절대 백리하를 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마물들이다.
먹이경쟁이 치열해지면 마물들은 백리하를 건너갈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천계도 움직이게 된다.
중간 지대인 구주가 마천에 점령당하는 걸 방관할 천족은 없을 테니까.
다이몬이 조심스럽게 마신의 안색을 살폈다.
‘삼천의 신’인 마신은 한군데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녔다.
반면 마왕 천자마는 마천에 머무르며 마천을 지배했다.
그러다가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구주로 넘어온 마물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
“웅천주, 영천주, 수약주를 합치면 백만에 육박합니다.”
“후후! 그 정도 숫자면 천자마가 작정을 했다고 봐야겠지?”
“예?”
“천자마가 구주에서 ‘태고의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리다.”
“아!”
다이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마신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천자마가 마신의 뜻을 거슬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천자마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신에 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천자마를 불러 문책하심이…….”
“됐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다이몬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그건 곧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꼴인 까닭이다.
“마신님, 구주에서 ‘태고의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까?”
“글쎄다.”
그녀는 솔직히 천자마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구주에 들어온 마천의 병단(兵端)은 세 개.
종문을 상대로는 넉넉하지만, 천계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하다.
천계에서 그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면 밀릴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천자마도 그 정도는 알 텐데 무슨 꿍꿍이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
웅천주
센라성.
혈주종 종산 퉁룽챈녹.
혈주종은 마왕 천자마의 선발 부대도 막아 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연적하에게 종사와 제군들이 죽임을 당한 탓에 그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덕분에 마왕 천자마는 가장 먼저 종산을 점령할 수 있었다.
디아녹궁.
마왕의 장자방(張子房)으로 불리는 마족 오로보스가 마왕 천자마와 그를 따르는 백여 명의 마족들 앞에서 말을 이어 갔다.
“……지금쯤 다이몬이 마신님에게 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신님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을 겁니다. 마왕님을 불러서 책망해 봐야 실익이 없기 때문이지요.”
마족 하나가 불쑥 물었다.
“다 좋은데 이러다 천계가 개입하면 어쩔 거요? 우리 쪽은 고작 세 개 병단뿐이지 않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천계의 병단이 투입된다 해도, 웅천주에서는 고범천왕과 우샤스 킨샤사의 명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고범천왕과 우샤스 킨샤사의 명을 따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마족이 의아한 얼굴로 오로보스를 보았다.
그러나 오로보스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마왕 천자마가 나섰다.
“거기까지. 너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나에게 충성해라. 그리하면 살아남는 것은 물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 마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화답했다.
“마왕님을 따르겠습니다!”
잠시 후 마족들을 내보낸 마왕 천자마가 오로보스를 가까이 오게 했다.
오로보스가 조심스럽게 마왕의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구나. 우샤스 킨샤사는 뱀처럼 교활한 자다. 그가 뒤통수를 치면 우리도 마천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샤스 킨샤사는 누구보다 ‘죽음의 서(書)’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왕님에게 그것이 있는 한, 그는 마왕님을 배신하지 못할 겁니다. 그보다 천문을 옮기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문제라고?”
“예, 천문을 땅에서 뽑으려고 하는데 도통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힘이 부족한 건 아니고?”
“마물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한 사우루스들을 동원했습니다만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마왕 천자마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사우루스는 과장하면 산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용력이 강한 마물이다.
천문이라 불리는 돌기둥은 제법 크다.
높이는 오 장(약 15미터)에 둘레가 이 장(약 6미터) 정도 된다.
하지만 사우루스들의 용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미동도 하지 않았다면 뭔가 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천문에 어떤 기운이 남아 있더냐?”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마왕님께 먼저 보고를 올렸을 겁니다.”
“특별한 기운도 없는데 천문이 땅에서 뽑히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허!”
마왕 천자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태고의 전쟁’에 마신을 밀어 넣고, 그 혼란통에 천문을 뽑아 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마족들의 폭넓은 지지를 가능케 한 것은 ‘천문을 옮기겠다’는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마천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런 생각을 한 마족은 없었다.
창조신과 천문에 대한 경외감은 그렇게나 컸다.
자신이 ‘그로 인해 발생할 모든 저주를 내가 떠안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추진해 온 일인데 천문이 움직이지 않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마족들은 다시 마신의 편으로 돌아설지도 몰랐다.
“뽑을 수 없다면 지면에 노출된 부분만이라도 잘라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문을 가져가야 한다.”
“예!”
시원한 대답과 달리 오로보스의 눈빛은 흔들렸다.
미동도 하지 않는 천문이 과연 잘릴 것인지 자신할 수 없어서다.
오로보스가 물러가자 마왕 천자마는 상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대낮임에도 마기에 물든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마신이여, 이제는 권좌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다.’
우샤스 킨샤사는 ‘지혜의 신’이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생명체의 죽음에서 쾌락을 얻는다. 그런 그가 가장 탐내는 것이 바로 ‘죽음의 서’.
우샤스 킨샤사를 움직여 천계의 화력을 마신에게 집중시키고, 퇴로를 확보할 계획이다.
그렇게 구주에 마신을 묻으면 마천의 완전한 지배자가 될 수 있다.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왕 천자마의 눈이 욕망으로 이글거렸다.
위의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마족의 숙명.
마왕 천자마는 마신을 꿈꾸고 있었다.
***
마족 오로보스는 마귀들을 이끌고 다시 혈주종의 천역(天域, 천문이 있는 장소)으로 향했다.
마족과 마귀 들이 바친 제물로 천역 주변은 온통 핏자국투성이였다.
혈주종의 인신공양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한 편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이 야수의 시체였지만, 간혹 어디서 잡아 왔는지 인간도 보였다.
“쯧쯧!”
혀를 차던 오로보스는 천역에 모여든 마물과 마귀 들을 산 아래로 내쫓았다.
뒤이어 백여 명의 아브할(마귀종)을 배치해 다른 마귀와 마물의 접근을 막았다.
천역 일대를 외부와 차단한 그는 브로크(아인종 난쟁이)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망치 하나로 암반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산다는 브로크들이 쭈뼛쭈뼛 나섰다.
하지만 브로크들은 감히 천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 브로크들이 망설이자 오로보스가 “쓰읍!” 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그제야 브로크들은 마지못해 망치질을 시작했다.
탁!
탁! 탁! 따악-!
처음이 한 번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탄력이라는 게 붙기 마련이다.
어딘지 신통치 않던 망치 소리가 점점 묵직하게 변해 갔다.
쾅! 쾅! 쾅! 쾅-!
그러나 한 시진(2시간)이 넘는 브로크들의 망치질에도 천문은 멀쩡했다.
오히려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한 브로크들이 탈진으로 픽픽 쓰러졌다.
인상을 찌푸리며 지켜보던 오로보스가 브로크를 헤집고 천문에 다가갔다.
‘이런 제길!’
그토록 요란하게 망치질을 했는데 떨어져 나간 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뽑을 수도 없고 잘라 갈 수도 없는 형국이다.
고민하고 있는 오로보스에게 브로크의 우두머리 드베르그가 다가갔다.
“오로보스 님, 보셨다시피 망치질이 먹히지를 않습니다.”
“너희는 망치 하나만 있으면 암반에 굴도 팔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보통의 바위라면 지금쯤 한 뼘은 깎아 냈을 겁니다. 저희 종족의 전설에 의하면 천문은 성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일반의 망치질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성력으로 보호를 받는다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저희가 탈진할 때까지 두드리는 것을 보셨지 않습니까? 바위를 쳤지만 돌에 닿는 느낌이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망치질을 하나 마나입니다.”
“방법을 찾아내라. 천문을 파내거나, 자르지 못하면, 너희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
오로보스의 협박에 드베르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천문을 응시하던 오로보스가 드베르그의 손에서 망치를 홱 낚아챘다.
그리고 천문의 하단 부위를 힘껏 내리찍었다.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망치가 뒤로 튕겨났다.
과연 드베르그의 말처럼 바위에서 묘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망치가 바위에 닿는 느낌이 아니다.
성력인지 뭔지가 바위를 보호하는 게 틀림없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오로보스는 망치를 드베르그에게 던졌다.
“윽!”
망치에 맞은 드베르그가 몸을 웅크렸다.
그런 드베르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던 오로보스가 물었다.
“너희 종족에 천문과 관계된 전설이 있다고?”
“예.”
“말해 보아라.”
“전설에 의하면 천문은 창조신의 명으로 저희 브로크의 조상들이 만든 것입니다. 조상이 만든 바위기둥에 창조신께서 축성(祝聖)하시고, 천문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축성을 했다고?”
축성은 제사장이나 신관이 어떤 물건을 성스럽게 만드는 행위이다.
그걸 창조신이 직접 했다면 그의 말대로 성력이라는 게 담겨 있을 법도 했다.
“살고 싶으면 사흘 안에 방법을 찾아라.”
그 말을 끝으로 오로보스는 천역에서 떠나갔다.
천문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브로크들이 드베르그의 주변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드베르그는 암울한 눈으로 천문과 동족을 번갈아 보았다.
축성을 깨트리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정(不淨)하게 하면 거룩함은 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창조신이 거룩하게 한 것을 더럽히면서까지 살아야 할까?
드베르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망치가 피로 얼룩진 지면에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