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08
708회. 혹시 법기를 만들려고 하십니까?
유명산에서 후퇴하는 종문 고수들은 세 무리로 나뉘었다.
어검비행이나 운종술로 일찌감치 앞서 나간 선두와, 유명산에서 먼저 피신한 노사와 방사, 그리고 옥청 노조 등이 이끄는 진인들이다.
종문에서 장거리 이동 시에 무리가 나뉘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운종술과 어검비행은 신행부를 섞어 쓰는 경신술과 달리 지형지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쌍방 간에 거리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선두는 뒤따르는 진인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광명진천의 선두는 앞으로 치고 나갔고, 나머지는 유명산에서 탈출한 순서대로 무리 지어 이동했다.
사비성.
백운호(白雲湖).
해거름 무렵, 일진광풍과 함께 삼백여 명의 사람들이 호숫가에 등장했다.
유명산에서 가장 늦게 빠져나온 진인들이다.
백운호는 얼마 전에 숙영지로 사용했던 곳이라 진인들은 금방 쉴 준비를 마쳤다.
진인들은 벽곡단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옥청 노조와 세 명의 노조들이 선단(仙丹)을 모아 연적하를 찾아갔다.
마침 선단이 다 떨어졌던 연적하는 사양하지 않았다.
선단으로 대종사에게 눈도장을 찍은 노조들이 우르르 돌아갔다.
연적하가 저만치 가는 옥청 노조를 따로 불렀다.
“옥청 노조님.”
“예.”
옥청 노조가 한달음에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구천검령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그는 이전보다 더 연적하를 어려워했다.
“내가 들으니 종사들이 제군과 노조에게 뭘 만들어 줬다고 하던데. 맞나요?”
“예.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사께서 법기(法器)를 만들어 내려 주시곤 했습니다.”
“법기요?”
“예, 종사께서 당신의 영기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종사의 영기가 담긴 물건을 법기라 합니다.”
“득물(得物)로 만드는 거 맞죠?”
“그렇습니다. 종사의 영기로 만든 물건은 검령보다 더 높게 쳐줍니다.”
“왜죠?”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검령보다 법기를 더 높게 쳐준다는 말이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검령은 종문 제자들에게 궁극의 경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령과 법기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위력이 비슷합니다. 희귀한 검령의 경우는 법기보다 월등히 뛰어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검령의 경우 영기가 고갈되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에 반해 법기는 영기의 유무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가 있지요.”
“아하! 그런 이유로 더 높게 쳐준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영기가 바닥이 나도 법기는 제 위력을 발휘하니까요. 최후의 수단으로 법기를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아, 고생하는 노조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뭐라도 주고 싶어서요.”
“허허, 대종사님께서 주시는 거라면 무엇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옥청 노조는 사양하지 않았다.
종사의 눈에 들어 뭔가를 받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상대는 대종사다.
이십 대 중반의 그가 벌써 득물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무조건 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둬야 했다.
“법기 중에 인기가 있는 게 뭐예요?”
“영패나 단검, 화살촉 등의 법기가 가지고 다니기에는 좋습니다.”
“모두 파사(破邪)의 기운을 담아야 하나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화기(火氣)나 수기(水氣) 뇌기(電氣) 등을 필요로 할 때도 많습니다.”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옥청 노조를 보았다.
파사의 기운보다 화기, 수기, 뇌기 쪽의 기운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이 세계에서 법기는 제의 용품이 아니라 호신 용품이었다.
‘영기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말이 나온 김에 옥청 노조는 뭘 좋아해요?”
연적하는 법기를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득물’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득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니 많이 만들수록 솜씨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허허, 저는 이전부터 영패 법기를 가져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영패요?”
“예, 영패는 사용하기 전까지 누구도 그 속에 감춰진 힘을 알지 못하니까요.”
“아하!”
연적하는 대번에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단검이나 화살촉은 생김새가 용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영패는 그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적이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니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할 터였다.
옥청 노조는 대종사가 금방이라도 법기를 만들어 줄 것처럼 굴자 조심스레 물었다.
“저어, 대종사님, 혹시 법기를 만들려고 하십니까?”
“예.”
“헛! 허면 벌써 득물의 경지에 드신 것입니까?”
“맞아요.”
연적하가 순순히 수긍하자 옥청 노조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무위가 재능에 달려 있다면, 검령은 순전히 인연이다.
하지만 득물의 깨달음은 재능이나 인연으로 도달할 수 없었다.
득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종사들도 수천 년 수련 끝에 겨우 깨닫곤 했다.
그런데 고작 이십 대 중반의 대종사가 득물의 경지라니.
옥청 노조는 할 말을 잃고 눈만 끔뻑거렸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대종사가 곧 들통날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옥청 노조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자신의 태도가 무례하게 비춰질 수도 있어서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례 없이 빠른 성취에 놀랐을 뿐이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대종사님의 전무후무한 성취를 경하드립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그게 전례 없이 빠른 성취인 거예요?”
“예, 종사들도 득물의 경지에 들기 위해 수천 년 수련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천 년이나요?”
“그렇습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옥청 노조가 얼빠진 얼굴을 한 이유를 알았다.
종사들이 수천 년 걸린 걸 뚝딱 해냈으니 말은 저래도 반신반의할 터였다.
그렇다면 직접 보여 주면 된다.
연적하는-구천검령을 불러낼 때처럼-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영패 법기를 가져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죠?”
“예? 예.”
대종사의 손짓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옥청 노조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연적하가 얼뜬 얼굴을 하고 있는 옥청 노조에게 다시 물었다.
“본인이 뇌기와 친하다고 생각해요?”
“뇌기요?”
옥청 노조는 잠시 머뭇거렸다.
만 가지 기운 중에 가장 강한 기운이 뇌기다.
그런 만큼 종문 제자라면 누구라도 뇌기가 담긴 법기를 가지는 게 꿈이다.
‘뇌기와는 앞으로 친해지면 될 일…….’
욕심에 눈이 먼 옥청 노조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름 친합니다.”
“잘됐군요.”
연적하는 무당파에서 벽력부(幕靂符)를 배울 때의 일을 떠올렸다.
다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의 이름에 의지하라고 했건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하던 대로 구천현녀에게 의지했다.
그래도 벽력부의 효과 하나만큼은 확실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연적하는 머릿속으로 ‘영패’와 ‘뇌기’와 ‘구천현녀’를 떠올렸다. 득물은 ‘생각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의기발현’의 연장이다.
다만 의기발현보다 더 극단적인 의지와 믿음이 필요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인 까닭이다.
여하튼 연적하에게 득물은 의기발현의 최종 형태였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자유자재로 천둔검을 꺼내 쓸 수 있었다.
‘영패, 뇌기, 구천현녀!’
연적하의 손바닥에 생령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는 손바닥에 생령이 가득 차오르자 와락 움켜잡았다.
그의 말아 쥔 주먹에서 ‘우르릉!’ 하는 우렛소리가 쉬임 없이 들려왔다.
연적하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영패를 떠올렸다.
이윽고 손바닥에 뭔가 그득하게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딱딱한 질감을 가진 그것은 무당파에서 자주 보던 영패였다.
자세히 살피니 영패에 ‘구천현녀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영패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확실히 뇌기였다.
처음으로 만든 법기치고는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다.
연적하가 갓 만든-실제로 따끈따끈한-영패를 옥청 노조에게 내밀었다.
“벽력부의 뇌기가 담긴 영패 여기 있어요.”
점소이가 손님에게 주문한 음식을 내어 주는 듯한 말투다.
옥청 노조가 떨리는 손으로 영패를 받았다.
종문의 법기에도 순서가 있는 법.
항상 제군들이 먼저고, 그다음이 노조였다.
하지만 종사는 세 개 이상의 법기를 만들지 않았다.
법기에 쏟아붓는 영기만큼 종사의 영기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조가 법기를 소유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종사도 아닌, 대종사가 만든 법기를 받았으니 일생일대의 기연이었다.
“대종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옥청 노조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감사합니다만 반복했다.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옥청 노조는 영패를 살폈다.
‘구천현녀령?’
진선(眞仙)의 이름이 적힌 영패는 처음이다.
보통은 오뢰신기, 용검오뢰, 뇌정신주 등의 주문이 적혀 있기 마련이었다.
“대종사님, 이 영패의 사용법은 어떻게 됩니까?”
“벽력부의 오의(奧義)를 담았으니까 마음속으로 벽력을 떠올리면 돼요.”
옥청 노조는 영패를 손에 들고 벽력을 떠올렸다.
순간 영패가 ‘퍽!’ 하고 사라지더니 옥청 노조를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휘이잉-.
뒤이어 그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꽈르르릉! 꽝! 꽈광-!
고요하던 백운호반이 한순간 발칵 뒤집혔다.
벼락에 직격당한 나무들이 불타오르고, 바위가 터져 나갔다.
벽곡단을 먹으며 쉬고 있던 진인들은 행여나 벼락에 맞을까 봐 이리저리 달아났다.
한바탕 벼락을 퍼부은 후에야 영패는 옥청 노조의 손바닥에 다시 나타났다.
엉망이 된 주변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열심히 수련하면 더 많은 벼락을, 원하는 곳에 떨어뜨릴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법기라는 건 결국 사용자의 의지에 좌우되니 그렇게 말해 본 것이다.
옥청 노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종사가 만들어 준 법기는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물건이었다.
정말 더 많은 벼락을 원하는 곳에 떨어뜨릴 수 있다면 신들이 부럽지 않으리라.
그는 누가 볼세라 급히 영패를 품에 갈무리했다.
“다른 노조들의 법기도 만들어 줄 테니까 한 사람씩 찾아오라고 하세요.”
“그렇게 빨리 만들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옥청 노조가 대종사의 안색을 살폈다.
법기는 영기의 결정체이니 꽤나 많은 영기가 소모될 터였다.
“예, 왜요? 법기를 대충 만들까 봐 그래요?”
“아닙니다. 대종사님의 영기가 걱정이 돼서 드려 본 말씀입니다. 다른 종사님들은 평생 세 개 이상을 만들지 않으셨거든요.”
“그래요? 나는 괜찮은데?”
연적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법기를 만들었지만 마치 바다에서 한 바가지의 물을 푼 것처럼 아무 느낌도 없었다.
대종사의 대답에 옥청 노조는 기가 막혔다.
방금 법기를 만들었으니 영석 하나 정도는 취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단다.
“그러시다면 노조들에게 대종사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가려던 옥청 노조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대종사님은 보기 드문 검령을 가지고 계신데 자주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그래야 하는 특별 한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법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는 대종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종사를 어려워해서 멀리서만 맴돌았지만 그는 달랐다.
대종사의 최측근인 심통을 제자로 두고 있었기에 부담이 덜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