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
71회. 두 개의 맹주
깊은 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쯧쯧.”
가볍게 혀를 차던 검왕 남궁벽은 방으로 들어갔다가 검을 들고 다시 나왔다.
남궁벽이 천천히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뒤이어 남궁벽의 처 장하은이 방에서 나와 주위를 쓸어 보았다.
그녀 역시 무당파 출신답게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가만히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던 남궁벽이 벼락처럼 돌아서며 외쳤다.
“웬 놈들이냐! 검왕 남궁벽이 여기 있다!”
남궁벽의 외침이 잠들었던 남궁세가를 강제로 흔들어 깨웠다.
세가의 무인들이 무장을 갖추고 안채로 속속 모여들었다.
뒤이어 외전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벽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십여 명.
다행히 내전의 제자들은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다 모인 것 같다.
그때 월동문으로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서늘한 눈으로 불청객들을 바라보던 남궁벽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당신들은 누구며, 왜 심야에 남궁세가를 방문했는가!”
무산낭랑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홋! 이거 왜 이러실까? 남궁세가의 가주쯤 되는 분이 왜 순진한 척을 하셔? 좋은 뜻을 가진 사람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은 좋은 뜻을 갖고 온 게 아니라는 말[來者不善 善者不來] 잘 알잖아?”
남궁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누구시라고?”
“호호! 궁지에 몰려서도 저 여유 봐. 내가 이래서 남궁세가를 좋아한다니까.”
“좋아한다면서 칼을 휘두르면 되나. 주안공(朱顔功)으로도 치매는 막지 못했나 보네?”
무산낭랑도 여자인가 보다.
주안공에 치매 소리까지 들은 무산낭랑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네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감히 무산낭랑을 상대로 그따위 천박한 농지거리라니.”
“이런! 무산낭랑이라면 소호 무산소축의 늙은 여우 아니신가? 그런데 늙은 여우 따위가 뭘 믿고 남궁세가를 넘보는 거지? 정말 노망이라도 났나?”
남궁벽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산낭랑은 모산파의 고수로 남궁세가와 아무런 은원이 없다. 그녀가 왜 심야에 쳐들어왔는지, 그리고 뭘 믿고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산낭랑이 모산파 고수라고 하지만 감히 천하십대고수에 비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월하선자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남궁벽, 오랜만이네. 호랑이가 없는 동안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딱 그 꼴이야. 남궁세가 따위가 뭐 별거라고. 안 그래?”
“너는?”
남궁벽이 눈살을 찌푸렸다.
낯이 익은 얼굴인데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 벌써 잊었나 봐. 나야, 월하선자.”
“…….”
월하선자라는 말에 남궁벽의 얼굴이 굳었다.
유명교.
정의맹에서조차 무림첩을 돌려서 상대할 정도의 강적.
남궁벽이 뒤쪽을 돌아보며 짧게 말했다.
“상대는 유명교다! 모두 남궁세가에서 빠져나가라! 지금 당장!”
그래도 세가의 무사들이 머뭇거리자 남궁벽은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가주의 명이다! 모두 떠나! 낙양의 창천대와 합류하라는 말이다!”
그제야 세가의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무산소축에서 온 오십여 명의 고수들은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무산소축의 고수들이 세가 무사들 앞을 막아서면서 혈투가 벌어졌다.
장하은이 남궁벽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부인, 당신도 떠나시오.”
“하지만…….”
“당신이 있으면 내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 어렵소.”
“알았어요. 낙양에서 봬요.”
장하은은 더 고집 부리지 않고 세가 무사들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월하선자가 검결지로 애병인 태을옥검의 검신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눈물 없이는 봐 줄 수 없어서 어쩌나. 그래도 부부니까 제삿날은 맞춰 줘야겠지?”
말과 함께 월하선자가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오 장(약 15미터) 정도 날아오른 월하선자가 태을옥검을 아래쪽으로 던졌다.
쉬이이익-.
파공음과 함께 태을옥검이 화살처럼 한 지점으로 날아갔다.
바로 장하은의 머리 위다.
깜짝 놀란 남궁벽이 검을 뽑자마자 바로 던졌다.
쇄애액 -.
챙.
남궁벽의 검이 태을옥검을 튕겨 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무산낭랑이 수중의 구절장(九節杖)을 휘둘렀다.
월하선자가 구경만 하라고 했지만 확실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순간 구절장의 마지막 마디가 조각조각 갈라져 나가 남궁벽 주위에 박혔다.
츠츠츠츠-.
기묘한 소리와 함께 회색 구름이 피어올라 벽처럼 앞을 막았다.
구름으로 사람을 가둔다는 운장술(雲障術)이다.
월하선자는 무산낭랑이 끼어들자 가볍게 눈살을 찡그렸지만 뭐라 하지 않았다.
남궁벽의 검공이 생각보다 대단했기에 모른 척 받아들인 것이다.
회색 안개에 둘러싸인 남궁벽은 급히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기이하게 아무리 달려도 항상 앞을 구름 벽이 막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 자신이 무산낭랑의 술법에 걸렸다는 걸 알았다.
남궁벽은 즉시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검결지를 앞으로 밀어냈다.
쉬이이익- 쉬익- 쉬익-.
검이 앞으로 날아가는가 싶더니 두 개, 네 개, 여덟 개로 분열했다.
이기어검으로 대연검법(大衍劍法)을 펼친 것이다.
여덟 개의 검이 정면을 가르자 빽빽하던 구름도 조금씩 옅어졌다.
남궁벽은 구름 벽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그를 맞이한 건 월하선자의 태을옥검이었다.
월하선자가 신검합일의 기세로 날아왔다.
사람은 어느새 검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고 한 자루 거대한 검이 남궁벽을 쓸어 갔다.
“헛!”
남궁벽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찰나의 순간, 어디선가 달려온 장하은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장하은의 검이 월하선자의 검면을 때렸다.
따앙.
“악!”
반탄력에 장하은의 몸이 뒤로 튕겨 났다.
입으로 피를 뿜으며 날아가는 모습이 엄중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부인!”
남궁벽은 벼락처럼 검을 휘둘러 월하선자를 물러나게 한 뒤, 장하은에게 달려갔다.
남궁벽이 막 바닥에 쓰러진 장하은의 신형을 안으려 할 때다.
어느 틈에 다가온 무산낭랑이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상조금궐 하부곤륜(上朝金闕 下覆崑崙)!”
주문과 함께 그녀가 구절장을 휘두르자 하늘에서 태산 형상의 암경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
남궁벽은 급히 두 손으로 태산을 받쳐 그 아래 깔릴 위기의 처를 보호했다.
그러나 위로부터 가공할 압력이 가해지자 그의 상체가 조금씩 아래로 기울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이번에는 월하선자의 태을옥검이 매처럼 날게 깔려 날아왔다.
얼굴에 혈관이 툭툭 튀어나올 정도로 힘을 쓰던 남궁벽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손을 떼 맞받아치려니 장하은이 죽겠고, 그냥 버티자니 둘 다 죽을 것 같다.
남궁벽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곧이어 ‘콰앙’ 하고 태산이 남궁벽과 장하은의 자리에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잇달아 몇 차례의 굉음과 함께 지면이 일 장(약 3미터) 깊이로 푹 내려앉았다. 주변의 전각들까지 주저앉아 주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폐허 속에서 남궁벽이 걸어 나왔다.
이미 내상을 입었는지 안색은 창백했지만 눈에서 시퍼런 광망이 뚝뚝 떨어졌다.
상처 입은 호랑이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처를 잃고 흉신악살로 돌변한 남궁벽이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무산소축의 무사들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픽픽 쓰러졌다.
남궁벽은 무산소축 무사들을 베며 무산낭랑과 월하선자를 향해 걸어갔다.
월하선자가 냉소와 함께 검을 앞으로 뻗었다.
붉은 검강이 남궁벽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남궁벽이 돌연 검을 하늘로 세우고 꼿꼿하게 날아올랐다.
남궁세가의 최고절기인 창궁무애검을 펼치려는 것이다.
“크윽!”
새처럼 날아오르던 남궁벽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창궁무애검은 무리였다.
그러나 생사를 도외시한 듯 남궁벽은 마지막 한 방울의 공력까지도 다 검에 담았다.
위기를 느낀 월하선자는 다시 한 번 신검합일로 남궁벽에게 날아갔다.
진정한 신검합일은 몸이 검과 일체화되는 것으로 몸이 사라지고 검만 남는다. 이때 검은 그 자체의 공격력으로 어지간한 상대의 공격을 상쇄해 버린다.
월하선자는 공격과 방어를 위해 이기어검이 아니라 신검합일을 택한 것이었다.
무산낭랑 역시 구경만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구절장은 모산파의 법보로 무가지보라 할 수 있다.
“조리강기 통제건곤(調理綱紀 統制乾坤)!”
무산낭랑이 주문과 함께 구절장을 지면에 꽂았다.
순간 구절장 위로 강기가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촘촘하게 엮여 그물의 형상을 이루었다.
뒤이어 무산낭랑은 마치 어부처럼 남궁벽에게 강기의 그물을 던졌다.
그때 남궁벽의 검이 하늘에서 수백 개로 분열했다.
“쿨럭!”
남궁벽이 피를 토하며 검과 함께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남궁벽과 수백 자루 검을 모두 잡으려는 듯 강기의 그물이 넓게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신검합일 한 월하선자가 하얀 빛줄기로 변해 암천 하늘을 관통했다.
세 사람의 공력이 충돌하자 밤하늘은 하얗고, 붉고, 파란 광채로 번쩍였다.
꽈과광.
충격의 여파로 무산낭랑은 머리카락이 미친년처럼 다 풀어헤쳐졌다.
월하선자 역시 온전치 못했다.
무너진 전각 위에 표표히 떨어져 내린 월하선자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카악, 퇫!”
월하선자가 피를 뱉으며 무산낭랑에게 다가갔다.
“낭랑? 놈은 죽었나요?”
“이 와중에 죽지 않고 살았으면 검왕이 아니라 검신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녀는 남궁벽의 시체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죽었다고 믿었다. 그 끔찍한 폭발을 생각하면 가루가 되지 않은 게 이상한 거다.
잠시 후 두 백두마군과 무산소축 무사들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
남직례성의 맹주인 남궁세가의 몰락에 전 무림이 놀랐다.
그것도 태호의 무산소축이라는 유명교 교당 하나가 한 일이었다.
뒤이어 산동성 제녕의 광명장원, 섬서성 서안의 초월산장, 사천성 성도의 조어사, 북직례성 순천부의 자미궁에 유명교 교당 깃발이 나부꼈다.
태호의 무산소축과 여수의 은하장까지 합하면 교당은 무려 여섯 개나 되는 셈이다.
‘교당마다 백두마군이라는 수호자가 있는데 그들의 무위가 천하제일을 다툴 만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유명교는 가히 칠파이문과 어깨를 견줄 만했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놀란 칠파이문과 사대세가는 급히 문외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무립첩으로 모인 칠파이문과 오대세가 고수들은 여수에 도착해서야 남궁세가의 참사 소식을 들었다. 그 때는 벌써 칠파이문에서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을 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유명교 교당을 코앞에 두고 물러날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그 자리에 천하십대고수인 의천검존 이의정이 함께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은하장 장주인 혼세검마 척진경은 닳고 닳은 녹림의 마두.
군웅들이 밀물처럼 은하장에 쳐들어갔을 때, 은하장은 텅 비어 있었다. 결국 군웅들은 후일을 기약하며 자파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기막히게도 정의맹과 유명교라는 두 개의 맹주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