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3
713회. 너는 신이 두렵지 않으냐?
광명진천의 시선이 대종사 연적하를 지나 태상종, 천지종, 천뢰종으로 향했다.
그는 이 기회에 연적하의 기를 꺾을 생각이다.
곧 합류할 천족들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연적하는 아직 쓴맛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지 너무 뻣뻣했다.
대종사가 저런 태도를 보인다면 종문과 천족의 관계도 상당히 껄끄럽게 될 터였다.
천족과 인간의 차이를 각인시켜 천족의 명에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천문의 소유를 두고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대종사의 권위부터 없애야 한다.
대종사가 얼마나 하찮은 신분인지 알면 종문도 천족에 복종하리라.
누군가의 권위를 없애는 건 간단하다. 공개 석상에서 대놓고 밟아 주면 된다.
그런 그의 의지는 종문의 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물론 광명진천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분위기에서 그걸 모른다면 바보다.
진표 존자와 광성 존자는 광명진천이 대종사를 무시하고 자신들을 빤히 보자 어쩔 줄 몰라 했다.
광명진천이 대종사보다 아득히 위에 있는 존재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존자들에게 대종사는 종문의 대표였다.
최고신인 광명진천과 종문의 존자들은 애초에 서 있는 위치가 다른 것이다.
두 존자들이 머뭇거리자 광명진천이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지금까지 천문은 너희 종문의 소유였다. 그것을 부정하느냐?”
“아닙니다.”
두 존자가 서둘러 답하자 광명진천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천문을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계속된 압박에 진표 존자와 광성 존자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두 사람은 대종사가 이쯤에서 정리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종사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정말 병풍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일까?
답답함을 참지 못한 광성 존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대종사님, 뭐라고 좀 하십쇼.’
대종사가 가타부타 답을 해야 광명진천의 관심이 그리로 돌아갈 터였다.
‘헛?’
대종사를 훔쳐보던 광성 존자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지금쯤 대종사가 모멸감에 이를 박박 갈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종사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그를 보고 있으려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대종사를 위해 광명진천에게 쪼이고 있는데, 정작 그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대종사님?”
그는 홧김에 대종사를 불렀다.
그렇게라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그를 대화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왜요?”
이왕 내친걸음, 광성 존자는 따지듯 말했다.
“천문의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저희 존자가 아니라 대종사님에게 있지 않습니까? 광명진천님에게 뭐라고 답을 해 주셔야지요.”
“나야 그러고 싶지요. 그런데 광명진천님이 계속 헛다리를 짚고 있으니 어쩝니까? 저 헛짓거리가 어디까까지 가나 지켜볼 수밖에요.”
“…….”
가공할 대답에 광성 존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미쳤다’였다.
광명진천의 앞에서 헛다리니, 헛짓거리니, 해 댔으니 이제 말로 넘어가기는 틀렸다.
대종사의 무위가 뛰어난 것은 인정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주, 즉 인간 세계에서나 통하는 소리다.
그런데 상대는 구주가 아니라 이 세계 최고의 신인 광명진천이다.
가뜩이나 싸하던 객청의 분위기는 이제 무덤처럼 변했다.
종문의 고수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광명진천의 눈치만 살폈다.
광명진천의 입꼬리가 가볍게 뒤틀렸다.
연적하가 참지 못하고 나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너무 나갔다.
저 정도 무례함이면 죽여도 무방할 정도다.
‘죽여 버릴까?’
문득 ‘놈을 죽이고 빙설화를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살심에 심장 어림이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누군가를 이 정도로 죽이고 싶기는 광천사 베레드 이후로 처음이었다.
살기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자 도리어 광명진천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임박한 싸움을 위해 몸이 저절로 반응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 헛짓거리라고 했느냐?”
무덤덤한 음성이었지만 광명진천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안광은 쇠라도 녹일 듯했다.
“어? 이제 내가 보이나 보네?”
“그것이 너의 변명이냐?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했다고? 그 말에 네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음을 아느냐?”
“지금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거예요?”
“내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겠지만, 너는 선을 넘었다. 비록 종문이 마천과 전쟁 중이라고는 하나, 오늘 내가 너를 벌하지 않는다면 신들이 나를 비웃을 것이다.”
“계속 해 봐요. 그래서 어쩌시겠다고?”
광명진천이 기이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쯤 되면 연적하가 목숨을 구걸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을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말했다.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죽일 능력은 되시고?”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은 연적하가 광명진천을 마주 보았다.
그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뭐? 어쩔 건데?’
연적하가 적의를 드러냈다.
처음 광명안(光明眼)으로 수작 부렸을 때 들이박았어야 했다.
하지만 ‘삼천의 신’이라는 위명에 눌려 그냥 넘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천의 신’에 맞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마신, 메누아를 만나면서 ‘삼천의 신’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그들은 신이 아니라 초월적인 경지에 든 존재였다.
그렇다면 해볼 만했다.
자신에게도 그들의 경지에 버금가는 구천구검과 구천검령이 있으니까.
광명진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그제야 한낱 인간에 불과한 연적하가 자신과 맞서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오랜 세월 ‘삼천의 신’으로 공경받다 보니 간과했던 모양이다.
싸우기 위해 도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광명진천이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신에 맞서겠다니 용기는 가상하다만, 분수에 넘는 것을 넘본 대가를 치러야겠다.”
“얼마든지.”
연적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자 종문 대표들은 황급히 객청에서 빠져나갔다.
연적하를 응시하던 광명진천이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스스-.
객청의 천장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옥천항이 부서지면 여러모로 불편해지겠지? 따라오거라.”
말을 마친 광명진천이 하늘로 솟구쳤다.
연적하는 벌써 까마득히 날아오른 광명진천을 심드렁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과연 ‘삼천의 신’답게 하늘에서 싸울 생각인 모양이다.
이전 같았으면 엄두도 나지 않을 일이지만 연적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발밑에 하얀 구름이 뭉글뭉글 피어났다.
이윽고 운종술로 날아오른 연적하가 광명진천의 앞에 우뚝 섰다.
광명진천을 보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광명진천의 등 뒤로 눈처럼 하얀 세 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등에서 날개를 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천족을 처음 보는 모양이군.”
“날개가 잘리면 추락하나?”
연적하의 말에 광명진천은 피식 웃었다.
세 쌍의 날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인간과 싸워야 한다니 황당할 뿐이다.
날개를 많이 만들수록 높은 경지다.
세 쌍의 날개는 천족들 사이에서도 전무후무한 경지였다.
“종문에 득물(得物)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천족에게 날개는 그것과 같다. 너희 인간에게 천족의 날개를 부술 재주가 있을 것 같으냐?”
“아! 어쩐지 등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서 튀어나왔나 했네. 천족은 날개를 그런 식으로 가지고 다니나 보네?”
광명진천은 죽음 앞에서 날개에 관심을 보이는 연적하를 기이한 눈으로 보았다.
“나는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 너는 신이 두렵지 않으냐?”
“신은 두렵지. 그런데 그쪽은 신이 아니잖아. 설마 내 앞에서 끝까지 신인 척하려고?”
“역시 네놈은 마신에게 물이 들었구나.”
“물 같은 소리 하지 마시고. 마신은 자기가 신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던데, 그쪽은 아닌가 봐?”
“마신은 자기가 무엇을 가졌는지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는 늘 다른 곳에 진짜 좋은 게 있다고 믿지. 그래서 항상 불행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데? 내 눈에는 그쪽이 과대망상으로 보이는데?”
“너의 안목이 부족함을 원망해라. 신의 권능을 보여 주마. 함파스 데 레오람(궁극의 천벌)!”
주문과 함께 광명진천의 손끝이 연적하를 가리켰다.
꽈광-!
한 줄기 뇌전이 연적하의 몸에 떨어졌다.
하지만 연적하도 맥없이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광명진천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올 때 재빨리 천둔검을 생성했다.
파직! 파지지직-!
천둔검에 꽂혔던 뇌전이 새파란 불꽃을 튀기다 소멸했다.
천검으로 잘 막아 냈지만 연적하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광천사 베레드가 펼친 것과 비슷해 보였는데 위력은 전혀 달랐다.
자칫 천둔검이 부서질 정도로 광명진천의 뇌기는 강했다.
천둔검이 아니라 청사(靑蛇)였다면 저 일격에 자신은 치명상을 입었으리라.
광천사 베레드와 싸운 경험이 위기에서 구해 준 셈이다.
‘그래도 삼천의 신이라 이건가.’
한편 광명진천은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놀랐다.
인간 따위가 천족의 필살기인 ‘천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내다니?
그것도 그냥 천벌이 아니라 ‘궁극의 천벌’을?
광명진천이 멈칫한 틈을 타 이번에는 연적하가 천산검영으로 반격에 나섰다.
고오오오-.
하늘이 ‘검의 화신(化身)’으로 가득 찼다.
콰콰콰쾅!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검의 화신’이 광명진천의 몸으로 떨어져 내렸다.
광명진천은 연적하가 자신의 주법을 막아 낸 뒤로 더 이상 그를 경시하지 않았다.
“오브리나 데 레오람(궁극의 방어)!”
순간 광명진천의 몸 주위에 파르스름한 빛깔의 막이 생성됐다.
과거 광천사 베레드가 만들었던 ‘히즈만타 오브리나(절대의 방어)’보다 선명한 빛깔이다.
콰콰콰쾅! 콰앙-!
‘검의 화신’은 광명진천의 주위에 있는 파르스름한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검의 화신’이 터질 때마다 우렛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조각난 ‘검의 화신’들이 돌풍으로 변해 사방으로 휘몰아쳐 갔다.
연적하가 광명진천의 주법에 놀란 것만큼이나 광명진천도 연적하의 검공에 기함을 했다.
기이한 검형(劍形)이 부딪쳐 올 때마다 망치로 두드려 맞는 것 같았다.
‘궁극의 방어막’ 안에 있음에도 이 정도면 그 위력이 어떠한지 알 만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반신급의 인간이 낼 수 없는 힘이었다.
검형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광명진천은 ‘오브리나의 막’ 안에서 다시 주문을 외웠다.
“라무하르 아빌 하마드(죽음의 기사여 돌격하라)!”
그것은 ‘오브리나의 막’ 안에서 광명진천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법이었다.
쿠르르르-.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기이한 울림이 울려 왔다.
그것은 우렛소리 같기도 하고, 수천 수만 마리의 말이 달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광명진천 주변의 기이한 막부터 부숴 버리려던 연적하는 섬뜩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헉!’
처음에는 멀리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먹구름이 아니라 기병(騎兵)이었다.
정확히는 흑마에 탄 해골들이, 검은 장창을 앞세운 채, 노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 하늘 위에 흑마를 탄 해골 기병들이라니!
그 이질적인 광경에 연적하는 한순간 ‘이 모두가 꿈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해골 기병들보다 먼저 음습한 사기(死氣)가 훅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