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19
719회.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다 가져가라’는 연적하의 말에 천족은 물론 종문 대표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벨 소니아는 반신반의의 눈으로 대종사를 보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여 준 대종사의 기행이-이를테면 ‘술자리’와 오늘의 ‘지각’까지-계산된 것이라 생각했다.
대종사가 천문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종문에서 전문이 가진 의미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양측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다 가져가란다.
‘무슨 꿍꿍이지?’
놀라기는 세 종문의 대표들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천문을 내주자고 했던 진표 존자가 느끼는 충격은 컸다.
그는 대종사가 천문에 관심이 많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종사는 종문의 다른 유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천문과 관계된 것들은 직접 챙겼다.
그런데 애써 손에 넣은 천문을 흔쾌히 내놓겠다니.
구주의 안녕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여하튼 연적하의 돌발 선언으로 천족과 종문 간의 회의는 시작하자마자 끝이 났다.
천문은 전쟁을 끝내고, 십일월 이후에 천족들이 가져가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다보관 별채.
선발대의 지휘부인 천부장 파티르와 백부장 마그누스, 총참모 벨 소니아가 객청에 마주 앉았다.
세 천족 모두 착잡한 얼굴이다.
대종사의 거리낌 없는 행동과 이해할 수 없는 광명진천의 태도, 그리고 백부장 마그누스의 패배까지 모두 골치 아픈 일투성이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던 천부장 파티르가 먼저 운을 뗐다.
“마그누스, 대종사의 무위에 대한 자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백부장 마그누스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떠올리기도 싫은 수치스러운 기억이지만, 선발대의 소임을 다하려면 가감 없이 말해야 했다.
“제가 종사들과 겨루어 본 적이 없어 인간을 기준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고, 최소한 저보다는 몇 배 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백부장 마그누스의 말에 천부장 파티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그누스는 백부장들 중에 최강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 말은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천족들 중에 최고 고수라는 뜻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벨 소니아가 물었다.
“히즈만타의 경지라는 건가요?”
천족들이 사용하는 주법(呪法)은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세 쌍의 날개가 사용하는 궁극의 레오람, 두 쌍의 날개가 사용하는 절대의 히즈만타, 그리고 마지막이 한 쌍의 날개가 사용하는 크라테오다.
날개의 개수와 주법의 경지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드러내기 좋아하는 천족은 무리해서 날개부터 늘려 나간다.
그러나 은둔 고수들은 날개보다 상위의 주법을 수련한다.
실전에서는 날개의 개수보다 상위의 주법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벨 소니아도 날개 숫자보다 주법 경지로 확인하려 한 것이다.
백부장 마그누스는 그녀의 말에 담긴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히즈만타다. 천부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땠습니까? 대종사가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을까요?”
그 이상의 경지는 궁극의 경지인 레오람을 의미한다.
세 쌍의 날개인 레오람 다음은 초월지경으로 신좌(神坐)에 해당된다. 그러니 레오람은 천족이 다다를 수 있는 최후의 경지였다.
아직 크라테오의 경지인 마그누스로서는 그 이상은 알아볼 재간이 없었다.
천부장 파티르가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히즈만타는 맞다. 하지만 아직 레오람의 경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대종사와 손을 섞어 보지 않은 천부장 파티르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히즈만타의 경지에 든 천족 중에는 백부장 마그누스보다 몇배 강한 천족도 많았다.
그러니 백부장 마그누스보다 강하다고 레오람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 천족이 각자 대종사의 무위를 추측하느라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벨 소니아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대종사는 왜 십일월 이후로 못을 박은 걸까요? 십일월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천부장 파티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모르겠다. 십일월 즈음에 종문의 행사가 있을지도…….”
벨 소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십일월 전후로 종문에는 특별한 행사가 없어요. 혹시 그 전에 천문을 열 계획일까요?”
“그건 불가능하다. 전쟁만 해도 몇 달은 걸릴 텐데 천문을 열 시간이 있겠느냐?”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열지 못한 천문을 무슨수로 한두 달 사이에 연단 말인가.
벨 소니아는 자기가 말하고도 이상한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잠시 후 벨 소니아가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바라던 결과를 얻어 냈는데 왜 이렇게 개운하지 않은지 모르겠네요.”
천부장 파티르와 백부장 마그누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벨 소니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어쩌면 그건 광명진천님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두 분의 눈에 광명진천님의 상태가 어때 보이던가요?”
벨 소니아가 천부장 파티르와 백부장 마그누스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아직 날개가 한 쌍인 데다가, 주법의 경지도 크라테오인지라 광명진천의 상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려웠다.
백부장 마그누스는 천부장의 앞인지라 말을 아꼈다.
크라테오의 경지인 자신보다 히즈만타의 경지인 천부장이 더 정확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천족의 시선에 천부장 파티르가 마지못해 답했다.
“오래전 광명진천님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외관상으로는 그때와 별반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분이 천족으로 현신하셔야 상태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과 비슷한 느낌이다.”
벨 소니아가 계속해서 물었다.
“천부장님이 보시기에 대종사와 광명진천님의 관계가 어때 보이던가요?”
“관계?”
“광명진천님이 대종사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오히려 피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 부분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총참모에 대한 예우로 마그누스가 대종사와 다툴 때 광명진천님이 한마디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천부장 파티르는 말끝을 흐렸다.
광명진천은 자신의 눈앞에서 천족들이 모욕당하고 있는데 그냥 구경만 했다.
그건 천족들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광명진천님이 대종사에게 약점을 잡혔다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이겠죠?”
천부장 파티르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오늘 회의석상에서 보여 준 광명진천의 모습은 그런 의심을 사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대종사의 격(格)은 아직 신이라 하기에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에 반해 광명진천은 최고의 신으로 지내 온 지 수만 년이나 지났다.
고작 인간의 눈치를 볼 존재가 아니었다.
대종사의 한 수에 제압당했던 백부장 마그누스는 아예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묘한 침묵이 세 사람 사이에 흘렀다.
벨 소니아는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하아!”
종문에서 원하는 걸 얻어 냈지만 개운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천족의 자랑인 광명진천이 종문 앞에서 병든 닭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줬다.
이래서야 마신과의 전쟁에서 선봉이나 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칠월 중순.
천족 선발대가 돌아간 뒤로 세 종 문은 벨 소니아의 권고에 따라 배를 징발했다.
한산주에 남아 있던 모든 배가 옥천항으로 모였다.
백리하는 물론 무량하의 배들까지 천중협을 통과해 옥천항으로 집결했다.
옥천항이 중대형 목선과 철선으로 가득찼다.
자리가 부족해 항구에 들어오지 못한 배들도 많았다.
백리하가 워낙 넓고 깊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돌려보내야 했을 것이다.
삼환각 별채.
해거름 무렵, 넓은 객청에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연적하 대종사, 천뢰종의 광성 존자, 태상종의 진표 존자다.
세 사람은 벨 소니아가 제안한 해상전을 두고 며칠째 논의를 이어 가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광성 존자와 진표 존자가 말하고 연적하는 듣기만 했다.
무료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연적하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배는 모두 몇 척이나 준비가 됐어요?”
광성 존자가 머릿속으로 숫자를 헤아릴 때, 진표 존자가 냉큼 답했다.
“목선은 대형이 네 척, 중형이 세 척, 그리고 철선은 중형이 두 척입니다.”
“아홉 척이네요? 그 정도면 충분하겠죠?”
뒤늦게 광성 존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요. 아홉 척이면 종문과 천족들을 다 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표 존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더 많은 배를 확보해 두고 있어야 합니다.”
“배가 더 필요하다고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해상전을 몇 번이나 치러야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철선이야 튼튼하겠지만 목선의 경우 강기에 맞으면 부서지고 말 겁니다. 수리가 불가능하면 교체를 해야 하니 아홉 척으로는 빠듯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네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광성 존자는 뻘쭘한 얼굴로 딴청을 부렸다.
“그런데 우리는 배가 이쪽 편에 있으니 징발이라도 한다지만, 마족들은 어디서 구하는 거래요?”
“천관산맥에서 브로크 족들을 잡아다가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브로크족? 아, 난쟁이들?”
“예, 그들은 손재간이 뛰어나서 뭐든 잘 만들기로 유명합니다.”
“저쪽 강변에서 배를 만들고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연적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배를 만들어서 언제 해상전을 할지 모르겠다.
시월이 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고 싶은 연적하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그럼 꽤나 오래 걸리겠네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브로크족들이 나섰으니 한 달이면 준비가 끝날 겁니다.”
연적하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팔월에 도하를 할 거라고요?”
“그렇습니다. 벌써 절반 이상 만들어진 배가 몇 척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와아. 진짜 빠르네.”
“일손은 넘칠 테니 우리 예상보다 더 빨리 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기야 무식하게 힘만 센 마물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깔렸으니…….”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때다.
곡분조 노조가 발소리도 요란하게 객청 앞마당으로 달려왔다.
“대종사님!”
“왜? 천족들이 벌써 왔어?”
“아닙니다. 심통 진인이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래?”
연적하는 회의를 서둘러 끝내고 옥청 노조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
시화관(時和館).
옥청 노조는 비록 노조에 불과하지만 시화관의 별채를 배정받았다.
그가 제자인 심통 진인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통 진인은 진인에 불과했지만 대종사의 지인인지라 대우가 남달랐다.
별채 안마당에 들어선 대종사를 발견한 옥청 노조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종사님. 오셨습니까.”
“심통 진인이 깨어났다고요?”
“예, 조금 전에 눈을 떴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대화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연적하는 옥청 노조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침상 위의 심통이 보였다.
그는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져서 그런지 이제는 보통의 노인들보다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연적하는 폭삭 늙은 심통의 곁에 서서 그와 눈을 맞추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