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0
720회. 신수(神獸) 화풍(和風)
연적하를 알아본 듯 심통의 축 처진 눈에 아주 잠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원기를 상실해서 그런지 이내 흐릿해졌다.
그런 그를 연적하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심통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공자님…….”
“어, 정신이 들어?”
“예.”
“심 노인이 주화입마에 든 건 알아?”
“예.”
“그래서 내가 욕심부리지 말랬잖아. 왜 말을 안 들어. 내단도 위험한데 무슨 영석이야. 죽으려고 작정했어?”
“죄송합니다.”
“기껏 진인까지 되고서 이게 뭐야. 다시 오늘내일하게 됐잖아.”
그 말에 심통이 푸시시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꼴이 한심해서 웃기라도 하지 않으면 울 것 같았다.
“웃어? 웃음이 나오지?”
연적하는 심통을 야단쳤지만 한편으로 안심도 됐다.
이제 고비를 넘겼다는 게 느껴져서다.
“오봉산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가고 싶어졌어?”
“예. 제가 죽으면……. 오봉산에 묻어 주십쇼.”
‘오봉산에 묻어 달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한 연적하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죽긴 왜 죽어.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심통은 자신의 뜻이 전해졌음을 알고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씩씩거리던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 함께 돌아가자. 알았지?”
“예…….”
이번에는 심통도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는다면 강호에서 죽고 싶었다. 그래야 오봉산에 묻힐 수 있을 테니까.
연적하가 심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전에는 장난삼아 오늘내일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정말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진인의 수명이 삼백 년쯤 된다는 걸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었다.
“영석은 어디서 난 거야?”
“광명진천이 줬습니다.”
“광명진천? 그 음흉한 천족이 왜?”
“제게 이것저것 묻길래 답해 줬더니 그 보상으로…….”
“아니, 얼마나 대단한 질문이었기에 보상으로 영석까지 줘? 뭘 물어봤는데?”
“범천욕계왕재천(梵天欲界王在天)이라는 말을 아느냐고…… 했습니다.”
심통의 말에 연적하는 흠칫했다.
범천욕계왕재천.
이전에는 그저 기담(奇談)이 기록된 책이려니 했지만 이젠 다르다.
마신은 그 책의 저자인 구전범천을 창조신이라 믿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범천욕계왕재천’은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공자님이 그 책을 얻게 된 경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백화상방에서 받았다는 거?”
“예.”
“꼴랑 그 이야기의 보답으로 영석을 줬다고?”
“예.”
“허! 영석이 썩어 나나 보네.”
연적하는 광명진천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작 그 정도 이야기에 이 세계의 최고 보물인 영석을 내어 주다니?
그런 이유로 심통에게 영석이 흘러 들어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광명진천이 ‘범천욕계왕재천’의 신비를 알고 있다면 그 정도 대가는 아깝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범천욕계왕재천’은 광명진천의 암계를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만들었다.
연적하는 심통의 곁에서 반 시진(1시간)쯤 더 머무르다가 삼환각으로 돌아갔다.
***
옥천항.
영빈관 별채.
심통이 깨어났음을 알게 된 곡분조 노조는 광명진천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세 쌍의 날개를 되찾은 광명진천이 심드렁한 얼굴로 곡분조 노조를 보았다.
“어쩐 일이냐?”
“지난번에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심통 진인이 깨어나면 알리라고.”
순간 광명진천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깨어났느냐?”
“예.”
그러자 광명진천이 다급하게 물었다.
“언제냐?”
“오늘 아침에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광명진천이 눈을 찌푸렸다.
지금이 해거름 무렵이니 꽤나 늦은 셈이다.
세상인심이 이렇게 무섭다.
최고신의 자리에서 내려오니 아침에 일어난 일을 해가 떨어질 즈음에야 알게 된다.
이제 알 사람은 다 안다고 봐야 했다.
광명진천의 안색을 살피던 곡분조 노조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오전에 대종사께서 심통을 만나고 오셨습니다.”
대종사가 심통을 만났다면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영석의 출처를 알게 되었음에도 자신을 찾지 않은 걸 보니 그냥 넘어갈 모양이다.
펄펄 뛰며 죽이니 살리니 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문득 광명진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연적하가 자신에게 찾아와 행패 부릴 것을 걱정하는 날이 올 줄이야.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광명진천이 그만 가라는 듯 손을 까닥였다.
막 돌아서려던 곡분조 노조가 슬쩍 물었다.
“치료는 잘 마치셨습니까?”
날개는 천족이 드러내지 않으면 보이지가 않는다.
곡분조 노조는 광명진천이 정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는지 궁금했다.
“덕분에 잘 되었다.”
“아, 예.”
곡분조 노조는 허리를 깊숙이 조아려 보인 후에 돌아서 갔다.
홀로 남아 허공을 응시하던 광명진천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하아!”
마신을 상대하려면 세 쌍의 날개로는 턱도 없다.
두 쌍의 날개를 더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당장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쩐다.’
연적하 정도 되는 영기를 취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정도면 가능하다.
하지만 다섯 쌍의 날개로도 당해 내지 못한 연적하를 무슨 수로?
고민하던 광명진천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하던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던 빙설화의 그린 듯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빙설화의 영기도 만만치 않았다.
종문 제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천지종의 성물에서 기연을 얻었다.
세 쌍의 날개라지만 자신은 신좌에 오른 몸.
빙설화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영기와 빙설화를 모두 취할 방법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잔뜩 일그러졌던 광명진천의 얼굴이 조금씩 퍼졌다.
***
수약주.
조양성.
월악산 내악(內岳).
천관산맥에서 넘어온 마물은 점차 영역을 넓혀 갔다.
처음에는 도시를 점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상이 바뀌었다.
마물들은 먹을 게 없는 도시보다 먹이가 풍부한 산으로 더 몰렸다.
월악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외악에만 바글거리던 마물들은 이내 내악까지도 밀고 들어 갔다.
천관산맥마저 넘은 마물들에게 월악산은 뒷동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쿠아아!”
“우워어어!”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갔다.
그들의 앞쪽에 다 자란 거록(巨鹿) 한 마리가 겅중겅중 뛰고 있었다.
마물들을 떨치려고 쉬지 않고 달리던 거록은 협곡 끝의 거대한 동굴 앞에서 멈춰 섰다.
거록은 동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뒤따라오는 마물만큼이나 입을 벌리고 있는 시커먼 동굴도 두려운 모양이다.
“크륵!”
“크르륵!”
거록을 막다른 곳에 몰아넣은 마물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포위를 좁혔다.
망설이던 거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로 뛰어들었다.
십여 마리의 마물들이 막 동굴로 들어가려는 순간이다.
돌연 동굴 안쪽에서 광풍이 휘몰아쳤다.
콰콰콰콰-!
이윽고 거록이 바람에 떠밀려 동굴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쿠당탕!
마물들이 ‘옳다구나!’ 하고 거록에게 달려들 때다.
일진광풍이 이번에는 마물들을 휘감았다.
“쿠어어!”
“쿠억!”
낙엽처럼 날아간 십여 마리의 마물들이 계곡 끝에 처박혔다.
거록은 그 틈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겨우 정신을 차린 마물들이 비칠비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거록이 보이지 않자 소리소리 질러 대더니 하나 둘 떠나갔다.
마물이 떠나가자 협곡은 다시 조용해졌다.
따각. 따각.
동굴 안에서 칠흑처럼 검은 말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독안귀마였다.
독안귀마는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천천히 월악산을 둘러보았다.
하나밖에 없는 눈은 날카롭던 전과 달리 그윽했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다시 잃었던 신격(神格)을 되찾은 모양이다.
신수(神獸) 화풍(和風)의 귀로 월악산이 내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마물들이 동물과 야수를 따라 외악에서 내악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마물들이 퍼질수록 월악산은 마기에 잠식당해 갔다.
“푸르르-.”
가볍게 투레질을 하던 화풍이 어둑어둑해지려는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천지사방이 마기로 가득 찬 가운데 북서쪽에서 공허한 영기가 느껴졌다.
연적하다.
마기에 잠식되어 미쳐 날뛰던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해 준 존재.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이참에 보답해야겠다.
화풍은 이내 한 줄기 흑풍으로 변해 단숨에 협곡을 빠져나갔다.
***
칠월 중순.
한산주.
삼채성 옥천항.
세 종문의 고수들은 아홉 척의 배로 만족하지 않고 더 끌어모았다.
종류도 가리지 않았다.
크고 작은 배들이 옥천항 인근의 강변에 줄지어 정박했다.
배를 따라 사람들도 옥천항으로 모여들었다.
옥천항이 미어터지게 되자 사람들은 백리하 강변으로 삶의 터전을 넓혔다.
강변을 따라 피난민들의 임시 천막과 노점상이 들어섰다.
마치 거대한 강변 도시가 새로 만들어진 듯했다.
전쟁이 임박했음에도 강변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구주에서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말썽을 부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옥천항에 세 종문의 고수들과 대종사가 있으니 알아서 몸을 사린 것이다.
연적하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순찰 명목으로 백리하 강변을 돌아다니거나, 배를 타고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날도 연적하는 십 장(약 30미터) 길이의 철선을 타고 백리하를 건넜다.
사천포로 다가가자 수십 척의 대형 목선이 보였다.
철선을 발견했는지 사천포에서 오십여 척의 소형 목선들이 몰려나왔다.
그걸 본 철선의 선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종사님, 이만 배를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보다 더 많이 몰려오네요.”
“그러세요.”
연적하가 허락하자 선장이 조타수에게 소리소리 질렀다.
“돌려! 돌려!”
이윽고 철선의 선체가 서서히 방향을 바꾸었다.
철선이 돌아서서 백리하의 중심부로 물러나자 소형 목선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연적하를 수행하고 있던 태상종의 고송 제군이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브로크족의 속도가 무섭네요. 사천포에 있는 것만 서른 척이 넘어 보이던데. 이제 곧 도하를 하겠지요?”
“그래 보이네요.”
연적하는 브로크족이 더 서둘러 주었으면 했다.
그들이 배를 빨리 만들수록 수상전의 시기가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대종사님, 혹시 우리 쪽에 배가 부족하지는 않겠습니까?”
“아직은 충분하다고 생각되는데 왜요? 부족할 것 같아요?”
“사천포에 있는 마천의 배를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마천은 브로크족을 통해 계속 만들고 있지만, 우리는 징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배를 징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 전에 전쟁을 끝내야죠. 전쟁이 길어지면 고송 제군님의 말대로 우리가 불리해지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연적하는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려면 석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 전에 마천과의 전쟁을 끝내고 어떻게든 강호로 돌아가야 했다.
옥천항이 저 멀리 보일 즈음, 갑자기 잠잠하던 하늘에서 광풍이 몰아쳤다.
휘우우웅-.
그런데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광풍에도 돛은 조금도 펄럭이지 않았다.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허공을 가리켰다.
쓰아아아-.
흑운(黑雲) 한 덩어리가 매처럼 철선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