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26
726회. 옹이가 많은 나무가 되고 싶지 않아
심통만큼 연적하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어떤 면에서 그는 남궁연보다 더 연적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심통이 연적하를 물끄러미 보았다.
오늘 연적하의 말과 행동은 평소와 달랐다.
그는 어딘지 불안정해 보였다.
심통은 임박한 전쟁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그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피식 웃는 건 그때뿐, 연적하는 이내 처음의 상태로 돌아갔다.
“공자님.”
“응?”
“제가 공자님이라면 걱정이 없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공자님에게는 반신(半神) 소리를 들을 만큼 무궁무진한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
“어떤 문제든 공자님이 헤쳐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요.”
“심 노인.”
“예.”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나는 헤쳐 나가지 못할 걸 걱정하지 않아.”
“그럼 뭘 걱정하십니까?”
“나는 옹이가 많은 나무가 되고 싶지 않아. 내 주변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공자님, 상처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것도 웬만해야지. 심 노인의 몰골을 좀 봐.”
연적하의 지적에 심통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울적해진 심통이 연적하를 밀어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오늘은 그만 돌아가서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뭘 했다고 벌써 피곤해?”
“아까부터 몸이 무겁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날은 푹 쉬어야 합니다.”
“그런가.”
연적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런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심통과 헤어진 연적하는 삼환각으로 돌아가기 전에 백리하 강변을 걸었다.
강변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배들을 지나자 백리하의 수평선이 보였다.
시원하게 뻗은 수평선을 보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정말 임박한 전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마신을 죽여야 끝날 전쟁이라고 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마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광명진천의 날개를 자른 게 후회가 된다.
자신이 마신, 메누아를 죽을 수 있을까?
그녀를 죽여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자신과 남궁연은 강호로 돌아갈 수 없다.
문득 메누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천문(天門)에 욕심도 없으면서 왜 이런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일까.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메누아가 쳐들어오지만 않았어도 편안하게 천문 연구에 매달렸을 텐데…….’
천문을 떠올리자 마음이 끌렸다.
뭐랄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근원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
‘뭐지?’
연적하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섰다.
옥천항과 그 뒤편에 병풍처럼 길게 둘러서 있는 산줄기들이 보였다.
내륙에 뭐가 있다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문득 심통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제가 공자님이라면 걱정이 없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공자님에게는 반신(半神) 소리를 들을 만큼 무궁무진한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
-어떤 문제든 공자님이 헤쳐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요.
맞다.
자신에게는 무궁무진한 능력이 있다.
그중에는 이 답답함을 풀어 줄 것도 하나쯤…… 있었다.
연적하는 나무 아래 적당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신은 너무 모른다.
자신에게 어떤 재능과 능력이 있는지를.
스스로 자책하던 그는 오랜만에 육신통(六神通)의 하나인 천안통(天眼通)을 사용했다.
***
그날은 모두에게 바쁜 하루였다.
마족도, 천족도, 인간도, 수상전을 준비하느라 쉬지 않고 일했다.
그리고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칠월의 마지막 밤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옥천항과 사천포의 배를 지키는 경계가 다른 날의 두 배로 늘어났다.
그것은 양측이 수상전 준비를 끝냈음을 의미했다.
위례성.
천지종 종산 원덕산.
안학궁.
자정이 가까워지자 남궁연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검을 들고 숙소를 나가려다 말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배가 눈에 띄게 불러 있었다.
만에 하나 싸움이 일어난다면 이런 상태로 잘 싸울 수 있을까?
가만히 배를 쓰다듬던 남궁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기를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녀는 마족이 백리하 저편에 있으니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남궁연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염화전에서 그녀를 따라온 신무희 노조가 섬돌 아래 달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남궁연은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천천히 북쪽 방면으로 하산했다.
신무희 노조가 남궁연의 뒤를 조용히 따라붙었다.
길이 끊어지자 남궁연과 신무희 노조는 운종술을 사용해 북악봉으로 날아갔다.
원덕산 북악봉 정상.
달빛을 받으며 두 덩어리 구름이 부드럽게 땅 위로 내려왔다.
남궁연과 신무희 노조였다.
재빨리 정상 주위를 둘러본 남궁연이 신무희 노조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예.”
남궁연은 신무희 노조를 남겨 두고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막 정상에 도달했을 때, 뒤쪽에서 ‘윽!’ 하는 신음이 들려왔다.
남궁연의 고운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신무희 노조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돌아서는 그녀의 발치로 신무희 노조의 몸이 툭 떨어졌다.
남궁연은 상체를 숙여 신무희 노조의 목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다행히 신무희 노조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걸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지는 않았다. 방해받기 싫어서 잠시 제압해 두었을 뿐이다.”
광명진천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등장에 남궁연은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옥천항에 계셔야 할 광명진천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요?”
“창조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이냐?”
“그래요. 광명진천님께서 쪽지를 보냈나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알고 왔겠느냐?”
“정말 창조신의 이명(異名)에 대해 아시나요?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유인하기 위해 쓴 글인가요?”
“신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남궁연은 광명진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단지 눈빛만으로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물론 신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광명진천님은 대종사에게 다섯 쌍의 날개를 잘렸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아직 신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자 광명진천은 보란 듯 천족으로 변했다.
샤라라락-!
세 쌍의 날개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이윽고 광명진천의 전신에서 항거할 수 없는 기세가 쏟아져 나왔다.
상대에게서 전해지는 초월적인 힘과 의지, 그것은 분명 신격(神格)이었다.
남궁연은 광명진천의 날개보다 그가 신격을 잃지 않았다는 것에 더 놀랐다.
세 쌍의 날개에 신격의 권능이 부여되면 자신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제야 놀라는 눈치군. 날개와 함께 신격도 잃었다고 생각했더냐?”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광명진천님과 싸우려고 나온 게 아니니까요.”
그러자 광명진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본래 선택은 강자가 하는 법이다. 너는 나보다 강하냐?”
“설마 싸우려고 나를 불러낸 건 아니겠죠? 나와 싸워서 얻을 게 있나요?”
“나는 네가 건곤벽(乾坤碧)의 영기를 취했음을 알고 있다. 나의 날개를 회복하는 데 그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영기에 욕심을 낸다고요? 믿을 수 없군요. 내 영기가 당신의 날개를 회복시켜 줄 수는 있겠지만, 그 날개로는 대종사를 당해 내지 못할 텐데요.”
“천애불문비의 영기와 건곤벽의 영기는 쌍벽을 이룬다. 그러니 미래를 속단하지 말아라.”
그러자 남궁연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천애불문비와 건곤벽의 영기가 쌍벽을 이룬다고 했나요? 그런데 세 쌍의 날개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머리를 먹는 일에만 쓰나 보군요?”
“으하하핫! 그럴 리가 있느냐. 너는 설마 내가 대종사의 영기에 패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신들에게 영기는 그저 세월이 더해 준 힘에 불과하다.”
말과 함께 광명진천이 주법(呪法)을 외웠다.
“레오람 리제스, 라오바르(궁극의 뿌리여, 휘감으라)!”
레오람, 즉 세 쌍의 날개만이 가능하다는 ‘궁극의’ 주법이 펼쳐졌다.
차라라라락-.
눈 깜짝할 사이에 지면에서 솟아오른 뿌리가 남궁연을 휘어 감았다.
남궁연은 쾌속하게 검을 휘둘러 천지사방에 가득한 뿌리를 베었다.
콰직! 콰지직!
잘려 나간 뿌리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토막 난 뿌리보다 발밑에서 생성되는 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두세 번 호흡할 동안에 뿌리는 남궁연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뿌리가 남궁연을 집어삼키자 북악봉이 조용해졌다.
시작하자마자 끝나 버린 셈이다.
광명진천이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치처럼 변해 버린 뿌리로 한 걸음 다가갈 때다.
콰아아앙-!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켜켜이 쌓여 있던 뿌리가 터져 나갔다.
천지종의 검공으로 뿌리를 날려 버린 남궁연은 칼끝을 광명진천에게 돌렸다.
고오오오-.
붉게 타오르는 원형의 진검강이 광명진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천붕(天崩)에 이어진 낙월(落月)의 반격이다.
“히즈만타 오브라나(절대의 방어)!”
광명진천의 주위에 생겨난 파르스름한 띠가 낙월을 막아 냈다.
콰르르르-.
오브라나에 부닥친 원형의 진검강이 낙석처럼 부서져 흘러내렸다.
광명진천은 ‘레오람’의 한 단계 아래인 ‘히즈만타’로 숨을 돌린 후 즉시 되받아쳤다.
“함파스(천벌)! 함파스(천벌)! 함파스(천벌)!”
세 개의 벼락이 연달아 남궁연에게 떨어졌다.
쩌지적-.
남궁연은 신법을 펼쳐 피해 다니면서 분검공(分劍功)으로 뇌전에 맞섰다.
꽈광! 꽝! 꽝!
벼락과 진검강이 허공에서 맞부닥치자 폭발음과 함께 경력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남궁연은 그 날카로운 경력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퍼퍼퍼퍽-!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찢어져 나간 옷자락이 펄럭거렸다.
한눈에 봐도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광명진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쉴 틈 없이 밀어붙였다.
“아하츠 코아하르! 타큐라!(태산의 힘이여! 눌러라!)”
그는 빙설화를 제압하기 위해 살인의 주법을 포획으로 바꾸었다.
드드드득-.
태산과도 같은 힘이 남궁연을 찍어 눌렀다.
‘으윽!’
남궁연은 이를 악물었다.
광명진천이 감히 자신을 노릴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신격이 가미된 그의 주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사용하는 주법은 확실히 종문의 검공보다 뛰어났다.
건곤벽의 영기를 취했지만, 자신에게는 그의 주법을 압도할 수단이 없었다.
물론 죽기 살기로 천지종의 검공을 쓰면 싸울 수는 있다.
문제는 배 속의 아기였다.
욱씬-.
힘을 너무 쓴 게 무리였는지 아랫배가 당겨 왔다.
양패구상할 각오로 싸우면 격퇴할 수 있을 테지만, 아기가 견딜 수 있을까?
한순간 광명진천의 무방비한 허리가 눈에 들어왔다.
분검공의 천지분격(天地分格)이면 광명진천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위에서 내려오는 이 무자비한 힘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양패구상이다.
남궁연은 장탄식과 함께 칼끝을 지면에 박고, 호신의 공법인 대라금강을 펼쳤다.
아기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그녀의 위로 암경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렸다.
드드드드-.
쏟아져 내리는 암경에 북악봉이 진동했다.
암경을 견디다 못한 남궁연의 상체가 조금씩 꺾일 때다.
콰콰콰콰-.
먼 하늘 저편에서 북악봉을 향해 거대한 붉은 검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