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
73회. 조어사(調御師), 이로운 존재
유명교 교당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태풍전의 고요’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정의맹이 몸을 사린다’고도 했다.
그러다 원단(설날)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유명교의 현장 법사가 황실에서 법회를 연 것이다.
정의맹에서 무림공적으로 선언한 유명교를 나라에서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유명교의 정체를 두고 왈가왈부했다.
누군가는 사교라 했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명교의 실체도 많이 밝혀졌다.
이를테면 그들은 불교와 도교를 결합한 신흥 종교였다.
유명교도들은 염마왕을 조어사(調御師)라 믿었다.
불가에서 조어사란 중생을 보호하며 이끌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돕는 이로운 존재다.
세상에는 다섯 종류의 조어사가 있는데, 첫째는 부모·형제·친척, 둘째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법률[官法], 셋째는 스승의 가르침[師法], 넷째는 저승의 염마왕[閻羅王], 다섯째는 부처[佛]다.
특이하게도 유명교는 염마왕을 통해 현세의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그 점이 부처에게 의지하는 불교와 다른 점이고, 나머지는 대동소이했다.
거기에 도교적인 내용이 가미가 되었을 뿐이라, 사악하다고 할 건 없었다.
현장 법사가 황실을 들락거리면서 정의맹과 유명교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정의에서는 ‘유명교가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다’고 고발했다.
그러자 유명교 교당에서는 ‘그 증거를 대라’고 맞받아쳤다.
정의맹에서 목내이(미이라)가 된 양원의 시체를 내세웠지만, 그게 유명교 짓이라는 건 증명하지 못했다.
기나긴 논쟁은 봄이 돼서야 유명교의 승리로 끝났다.
황실을 등에 업은 유명교를 사교로 공격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다.
정의맹은 유명교에 큰 피해를 입고도 공식적으로는 따질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
낙양 동편 언사.
와룡장.
날씨가 풀리자 와룡장의 안주인 백미주는 장자인 와룡검객 연무백을 불렀다.
안채의 대청마루로 올라간 연무백은 백미주의 맞은편에 조용히 자리했다. 지난해 가을에 혼인을 한 뒤로 그는 제법 점잖은 태가 났다.
장부를 보고 있던 백미주는 아들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남궁세가 사람들은 언제 나간다고 하더냐?”
“…….”
대답이 없자 그녀는 책망 어린 눈으로 아들을 쏘아보았다.
남궁천과 남궁연 남매와 청천대 스무 명, 거기다 합비에서 온 생존자 다섯까지 도합 스물일곱이 지난해부터 와룡장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이 합비로 돌아가지 않은 건 남궁세가가 폐허로 변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월하선자를 두려워해서다. 그녀가 계속 남궁세가를 노릴지도 모르는 터라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백미주는 오갈 데 없게 된 남궁세가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오랜 친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월하선자가 와룡장에 올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찾아왔다. 월하선자가 와룡장을 복수의 대상에서 제외한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기야 참월검객 연무룡이 죽었는데 무슨 복수란 말인가?
봄이 되어도 유명교나 월하선자의 움직임이 없자 그런 생각은 확신으로 굳었다.
“우리가 지난겨울부터 백세상방에서 매달 은자 백 냥씩 빌리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예.”
“녹림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몇 달 안에 갚을 수 있는 돈이지만, 와룡장을 운영하기 위해 빚까지 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돼.”
“어머니, 아직 월하선자가…….”
“남궁세가가 몰락한 지 반년이 지났다. 월하선자가 와룡장을 노리고 있다면 지금까지 조용할 리가 없어. 설사 월하선자가 온다고 해도 그래. 처음에는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 창천대를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아. 월하선자가 쳐들어온다면 그들이 막을 수나 있겠느냐?”
“막을 수는 없지만 의천검존께서 도우러 올 때까지 시간은 벌어 줄 수 있습니다.”
“의천검존이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
“정의맹에서 정파의 무가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의천검존은 오실 겁니다.”
“글쎄다. 지금 합비의 맹주가 누군지 아느냐? 남궁세가를 몰살시킨 무산소축이야. 이제는 정의맹도 유명교의 눈치를 살피고 있어. 남궁세가 사람들이 정의맹을 믿었다면 벌써 합비로 돌아갔을 게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와룡장에 남아 있지. 왜 그런지 아니? 정의맹의 보호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너는 아직도 의천검존이 달려와 줄 거라고 말하는구나.”
“…….”
신랄한 백미주의 지적에 연무백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남궁세가의 생존자들이 합비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월하선자를 두려워해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정의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정의맹은 남궁세가를 몰살시킨 무산소축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합비의 패자가 되는 것을 묵인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와룡장이 월하선자에게 밟혀도 의천문에서 도와줄지 의문이다. 와룡장도 칠파이문에 속하지 않았으니 남궁세가처럼 외면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외면하겠지. 내가 의천문주라도 그럴 테니까…….’
연무백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의 유명교는 이십 년 전과 달리 힘과 권력 모두를 쥐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연무백의 귓가로 백미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보내도록 해라. 우리 형편이 좋지 않다는 건 그들도 알고 있으니 신의가 없다고 비난하지 않을 게다.”
“……예.”
결국 연무백은 어머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매달 은자 백 냥씩 빌리는 걸 알면서 남궁세가를 먹여 살리자고 할 수는 없었다.
연무백은 곧바로 객청으로 향했다.
그러다 마침 마당을 산책 중이던 청운검 남궁천과 만났다.
“사형.”
“어, 그래. 아침부터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그냥 겸사겸사 와 봤습니다. 참! 아직 숙부님 소식은 없는 건가요?”
“응.”
남궁천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무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강호가 얼마나 위험한 세계인지를 가르친다. 죽고 죽이는 게 일상다반사인 삶에서 죽음이란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막상 혈족이 몰살당하고 부친마저 실종되니 참담할 뿐이다.
“죄송합니다. 괜히 제가 그 얘기를 꺼내서…….”
“아니야. 괜찮아. 나는 아버지께서 어딘가에 살아 계시다고 믿는다. 그렇게 쉽게 가실 분이 아니거든.”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먼 하늘만 응시하던 남궁천이 연무백을 힐끔 보며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어 온 얼굴인데? 괜찮으니까 말해 봐. 숙모님이 뭐라고 하신 거냐?”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합비에는 언제쯤 돌아가실 계획이신가요?”
“당분간 합비에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와룡장에 계속 머물 생각도 없고. 수일 내로 나갈 생각이니까 숙모님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려라.”
“나가신다고요?”
“언제까지 와룡장 신세를 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갑자기……. 합비가 아니라면 어디로 가시려고요?”
“낙양.”
“낙양요?”
“어, 그곳에서 추이를 좀 더 지켜보다가 적당한 시기에 돌아갈 생각이다.”
“낙양에 계실 거라면 굳이…….”
“와룡장 형편이 어떤지 뻔히 아는데 계속 폐를 끼칠 수는 없지.”
“폐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연무백은 ‘계속 머무르시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남궁천이 연무백의 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렸다.
“괜찮다. 마침 상조상방에 아버지의 지인이 계셔서 당분간 일을 거들기로 했다.”
“상방의 일이라면?”
“상행을 호위하는 거지. 무한과 남경으로 가는 상행을 도와주기로 했다.”
“아! 그러시군요.”
연무백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의 남궁세가가 상단의 호위라니!
모든 것을 잃었으니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연무백은 애써 밝은 얼굴을 지어 보였다.
“남궁세가의 호위라니 상조상방이 복을 받았군요. 남궁세가의 깃발이 걸리면 녹림도 알아서 길을 터 줄 겁니다. 여행을 즐긴다 생각하세요.”
“너희 와룡장은 여전히 녹림과 사이가 좋지 않으냐?”
“예, 오봉산채에 예물을 보냈는데 반응이 없네요. 그놈들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오봉산채를 지날 때 한번 알아봐 주도록 하마.”
“사형, 오봉십걸 중에 녹림삼존의 무위를 지닌 젊은 도적이 있습니다. 유독 그놈이 와룡장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녹림삼존?”
“예,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순간 남궁천이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부끄럽지만 상대가 녹림삼존 급의 무위면 지금의 남궁세가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먼저 말을 꺼낸 상황이라 번복하기도 그렇고 마음이 착잡했다.
“그래도 대화는 잘될 겁니다. 오봉십걸이 잔인무도하지는 않다고 하니까요. 사실 와룡장만 괴롭히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호걸 소리를 들을 정돕니다.”
“허! 그거 참 괴이하군.”
남궁천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만약 연무백의 말대로라면 이유 정도는 알아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
사흘 후, 남궁세가 사람들은 와룡장을 떠나 낙양 상조상방에 몸을 의탁했다. 남궁세가를 얻은 상조상방을 향해 상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월 초하루.
상조상방의 방주 손월과 대행수 손명, 그리고 남궁천이 한자리에 모였다. 곧 가게 될 상행의 세부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손월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남궁 소협, 아직 부친의 생사도 모르는데 일을 부탁하게 돼서 미안하오. 녹림이 들끓지만 않았어도 이리 급하게 부탁하지는 않았을 텐데…….”
“괜찮습니다. 오히려 상방의 일을 도울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감사하오. 허나 쉽지는 않을 게요. 유명교가 득세를 한 뒤로 녹림이 실로 대담해져서…….”
손월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의맹이 유명교를 견제하느라 바쁜 틈에 녹림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칠파이문은 이전처럼 녹림을 상대로 강호행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이젠 그럴 만한 여력도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칠파이문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에도 급급했다.
유명교가 황실의 인정을 받은 뒤로 사파는 물론 중도의 세력까지도 유명교를 들락거렸다. 그들 중에는 유명교에 입교한 고수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칠파이문의 힘은 줄어 들 수밖에 없었다.
대도시의 상인들도 발 빠르게 칠파이문에서 하나 둘 유명교로 옮겨 갔다.
객점, 기루, 주루, 도박장은 물론 다관과 반점까지도 유명교의 열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
기존에 보호와 관리를 맡고 있던 방파와 유명교를 등에 업고 새로 진입한 방파 간의 쟁탈전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산과 들은 도적들로 들끓었다.
녹림은 관에서도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쯧! 그렇다 해도 쉽지 않을 거라니.’
남궁천의 입가에 씁쓰름한 미소가 어렸다.
대남궁세가가 녹림 따위를 상대로 저런 말을 듣는 날이 오다니.
뒤늦게 남궁천의 찡그린 얼굴을 본 손명이 한마디 했다.
“방주님, 녹림이 우리 같은 상방에게나 저승사자지 남궁세가에는 하룻강아지일 겁니다.”
“아, 그야 이를 말인가. 남궁세가의 깃발만 봐도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을 텐데.”
뒤늦게 실언을 깨달은 손월은 황급히 수습에 들어갔다.
“방주님, 상행은 언제 떠나는 겁니까?”
“사흘 후외다. 이번 상행은 우리 상조상방이 문을 연 이후로 가장 큰 규모가 될 게요. 남궁세가가 경호를 맡는다고 하니 상인들이 몰려들어서 말이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남궁천은 손월과 손명에게 상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뒤 객청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