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2
732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연적하는 처음으로 참모장 벨 소니아가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수상전이나 육상전이나 천족에게 불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수상전을 선택한 것은 마신의 군세를 걸러내기 위해서다.
천족은 칠 할(70%)이 전투에 참가했지만, 마신 측은 이 할(20%) 정도가 전투에 참여했다.
양측이 동원할 수 있는 배의 숫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걸 생각하면 벨 소니아가 왜 수상전을 고집했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백리하의 끔찍한 환경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괴수들을 생각하면 수상전은 외줄타기나 마찬가지였다.
강물에 떨어지면 십중팔구 죽게 된다.
조금 전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의 배에 탔던 마물들처럼 말이다.
열네 척의 배에 있던 천족도 마물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했을 터였다.
능력이 되는 천족은 다른 천족의 배로 옮겨 갔겠지만, 수장된 천족도 많았을 게다.
그걸 생각하면 수상전은 배수진을 치고 싸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극단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부군 사령관의 부관인 블레이즈는 ‘너무 극단적인 것 같지 않냐?’는 대종사의 질문에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점도 없지 않지만 그나마 그게 육상전보다는 나은 까닭이다.
육상전은 극단적이니 뭐니 생각할 틈도 없을 정도로 참담할 터였다.
적당히 할 말을 찾던 블레이즈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바람이 묵직해진 느낌이다.
“대종사님, 바람이 바뀐 것 같지 않습니까?”
그제야 연적하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수평선 저 끝에 거무스름한 구름이 어른거렸다.
연적하가 수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네요. 설마 태풍은 아니겠죠?”
“비구름일 가능성이 높지만 태풍인지 아닌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일단 항구로 피해야 할 것 같긴 합니다만.”
블레이즈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사령선을 보았다.
한창 수상전 도중에 항구로 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총참모 벨 소니아도 고민인지 내려간 깃발은 금방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마족들도 뒤늦게 먹구름을 발견하고 우왕좌왕했다.
수상전은 자연히 멈췄다.
먹구름보다 바람이 먼저 밀려왔다.
돛대에 편안하게 걸려 있던 이 바람을 받아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
더불어 잔잔하던 수면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젠 누구라도 바람과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사령선에 검은색 깃발이 올라왔다.
뒤이어 뿔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사령선의 지시만 기다리던 배들이 옥천항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수평선 저 끝에 있던 먹구름이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휘이이잉-!
바람은 어느새 강풍으로 변해 있었다.
이러다가는 마신의 선단(船團)이 아니라 높아진 파도에 배가 침몰할 판이다.
서른 척의 배는 부랴부랴 옥천항으로 이동했다.
마신의 선단도 자연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사천포 방면으로 물러갔다.
***
옥천항.
천족의 배들은 해거름 무렵 항구로 돌아왔다.
항구에 배를 정박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강풍과 함께 비가 쏟아졌
휘이이잉-.
쏴아아아-!
천족과 종문 고수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선원들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들은 항구에 배를 고정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배들을 서로 연결했다.
삼환각.
대종사인 연적하가 머무르는 삼환각에 두 종족 대표들이 모였다.
수상전에 대한 결과를 나누고 내일의 수상전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총참모 벨 소니아가 담담한 어조로 보고를 했다.
“아군의 피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형 목선 다섯 척, 중형 목선 다섯 척, 철선 네 척이 침몰하거나 적에게 피랍되었습니다. 나머지 배들이 입은 피해는 항구에서 수리가 가능할 정도로 경미합니다. 그리고 침몰된 적의 배는 스무 척으로 관측되었습니다.”
그녀는 천족의 사상자가 몇인지 밝히지 않았다.
인간들이 알아 봐야 도움이 될 게 없으니 생략한 것이다.
여하튼 수상전 결과 보고를 끝낸 벨 소니아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빠르면 칠월부터 태풍이 왔다고 하더군요. 바람의 세기로 보아 태풍인 것 같아요. 하루나 이틀 정도 마신의 선단도 백리하로 나오지 못할 거예요. 그동안 다음 수상전에 대비해 파손당한 선박을 수리할 예정이에요. 종문에서는 선박의 징발에 더 매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아, 곡 노조님, 현재 몇 척이나 더 징발이 됐나요?”
“세 척입니다.”
“전에 열 척 정도가 더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더는 무리일까요?”
“열 척을 말씀드린 것도 무리한 수치였습니다. 더 쥐어짜 봐야 나올 곳이 없습니다. 이미 모든 배들이 무량하로 건너간 상황이라서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연적하가 슬쩍 끼어들었다.
“곡 노조. 듣자 하니 사천포의 적들은 배를 건조한다고 하던데. 우리는 배를 못 만드나?”
“선박의 건조와 관계된 기술자가 죄다 피난을 갔습니다. 사천포는 난쟁이들을 잡아다가 시킨 것이고요. 저희도 초기에 기술자를 잡아 두었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피난 간 기술자들을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징발밖에 방법이 없는 거네?”
“그렇습니다만 징발도 이젠 끝이 보이는 듯합니다. 인근에 남아 있는 배가 없습니다.”
연적하가 벨 소니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는군요. 배를 더 징발하는 건 어려운 것 같네요. 수상전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 거예요?”
잠시 침묵하던 벨 소니아가 답했다.
“대종사님도 보셨다시피 양측의 전력 차이가 심해서 가능한 한 오래 수상전을 끌어갈 생각이에요.”
“가능한 한 오래 언제요? 그래도 기준이 있을 거 아니에요? 배가 없으면 수상전도 힘들지 않나?”
“우리 측 선박이 스무 척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는 할 생각이에요.”
“거의 끝나 가네요?”
연적하의 말에 벨 소니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징발한 것까지 천족의 배가 서른세 척인데 마신의 배는 아직 팔십 척이나 된다.
돌아간 것만 팔십 척이지 그사이에 건조가 끝난 배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다음 수상전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다음 수상전에서 전쟁의 향방이 결정될 것 같아요. 대종사님께서 오늘 군단장 악투스 발라지크를 죽였으니 다음에는 마신이 나설 거예요. 대종사님께서 마신을 죽이면, 마족들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마천으로 돌아갈 거예요.”
회의장이 묘한 열기에 휩싸였다.
분명히 불리한 상황인데 벨 소니아의 말을 들어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확실히 마신이 대종사의 손에 죽으면 이 전쟁도 끝날 터였다.
천족과 종문의 대표들이 들뜬 얼굴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천족과 종문 대표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연적하가 딴지를 걸었다.
“마신이 직접 나서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벨 소니아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니요. 군단장의 복수를 위해서 마신이 직접 나설 거예요. 마족들은 계산이 확실하거든요. 절대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
연적하는 반박하지 않았다.
마족의 생리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왠지 그녀의 말대로 될 것 같았다.
마신도 자신과의 싸움에 전쟁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걸 알테니까.
마신이라면 오히려 이참에 자신과의 연을 정리하려 할지도 몰랐다.
‘다음에는 마신과 만나겠구나.’
생각해 보니 폭풍이 시작된 게 다행이다 싶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메누아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항구도시에서 맞이하는 태풍은 내륙과 달리 강하고 파괴적이었다.
태풍은 이틀 만에 지나갔지만 후유증이 사흘이나 갔다.
수상전에 파손된 배들보다 태풍에 부서진 배가 훨씬 많았다.
사흘 동안 선원과 기술자 들이 복구에 매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옥천항보다 사천포의 피해가 더 컸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마신의 선단은 태풍이 지나가고도 한동안 도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화관(時和館).
해거름 무렵, 연적하는 심통을 찾아갔다.
상체를 침상 뒤쪽 벽에 기대고 앉아 있던 심통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자꾸 찾아오십니까?”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 내가 주면 줬지 언제 얻어먹었다고 그런 소리를 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마신과의 일전을 앞두고 그렇게 돌아다니셔도 됩니까? 대종사님이 패하면 저는 바로 잡아먹힐 겁니다.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시고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 주십쇼.”
“하루 이틀 칼 휘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알면서 왜그래?”
“끙! 그렇기는 하네요.”
심통은 선선히 인정했다.
그의 말대로 칼 하루 이틀 더 휘두른다고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심 노인은 마신을 어떻게 생각해?”
“그 꼬마 아가씨요? 저는 눈만 마주쳐도 심장이 덜컹했습니다. 대종사님도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십쇼. 마신에 대한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문?”
“자기 앞에서 껄떡거리는 마족의 심장을 꽉 뽑아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껄떡거린 놈 잘못이지.”
“하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럴 정도로 독한 마족이라 이겁니다.”
“알아, 알아. 마신이잖아.”
“대종사님, 아니, 공자님. 꼬마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신을 죽이실 수 있겠습니까?”
“…….”
연적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평소 여자와 노인과 어린애를 싫어한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죽이는 건 또 달랐다.
그런 그의 모습에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쯧쯧!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마신 그년이 아주 무서운 년이네요. 공자님의 마음이 약하다는 걸 알고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던 게 틀림없습니다. 공자님, 정신 차리십쇼. 가모님을 모시고 강호로 돌아가셔야지요.”
“나 바보 아니다.”
“예, 바보는 아니시지요. 그저 마음이 여려서 문제죠.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여려져서 바보짓 하지 마시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마신을 못 죽일까 봐? 천만의 말씀. 나 소악마 소리를 듣던 연적하야.”
“예, 그 마음 잊지 마십쇼. 예전에 복수를 하실 때처럼 그냥 피도 눈물도 없이 밀어붙이십쇼.”
“그런데 말야. 꼭 마신을 죽여야지 끝나는 건 아니잖아?”
“안 죽이면요?”
“마신을 타일러서 마천으로 돌려보내도 되잖아. 안 그래?”
그러자 심통이 펄쩍 뛰었다.
“아이고! 제발 좀! 그런 병신 같은 말씀 하지 마십쇼! 그런 생각이 바보 같은 겁니다. 야단쳐서 들을 년이 구주를 침공했겠습니까? 그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물의 먹이가 됐는지 모르십니까? 이번에 천족도 천이백 명이나 죽었다면서요? 죄다 그년이 마물들을 이끌고 구주로 쳐들어온 탓입니다. 그년이 어린애 모습으로 나타나 말을 걸어도 쳐 죽이실 생각을 하셔야지요. 타일러서 돌려보내다니요!”
“그럴 수도 있다고 했지 언제 그런다고 했어? 뭔 말을 못하게 하네?”
“공자님! 마신과 말 섞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쳐 죽이십쇼. 그래야 공자님과 가모님이 강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 공자님이 부상이라도 입으면, 우리는 죄다 폭삭 망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와아! 아는 사람이 더하다고 하더니 딱 그러네. 왜 그렇게 몰인정해?”
“몰인정이 아니라, 마신과 대화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러는 겁니다. 보이는 게다가 아니라는 거 공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끙!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이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그거야말로 연적하가 심통에게 해 주고 싶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