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5
735회. 창조신의 뜻대로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는 정말 끝장을 보려는지 주법(呪法)까지 동원했다.
“루우라후 베니레(악령의 강림)!”
소름 돋는 마기가 백리하 상공을 뒤덮었다.
이윽고 악의(惡意)로 충만한 검은 그림자들이 출현했다.
그림자들은 연적하와 신수 화풍의 주변을 쉬지 않고 빙빙 맴돌았다.
휘이익! 휘익-!
“윽!”
“푸르륵-!”
연적하와 화풍이 진저리를 쳤다.
그림자가 다가올 때마다 독이라도 삼킨 것처럼 온몸이 저릿해서다.
연적하는 그림자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악투스 발라지크의 저주에 당한 것처럼 기운이 쭉쭉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느낌이 싸해진 그는 파괴된 청사(靑蛇)를 대신해서 천둔검을 끄집어 냈다.
그때 메디나 이사엘라가 연적하를 향해 검은 검을 휘둘렀다.
“우우우우!”
“으흐흐흑!”
호곡성과 함께 그림자들이 연적하에게 몰려들었다.
메디나 이사엘라를 태운 흑천응이 그림자들에 섞여 연적하에게 날아갔다.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그림자들을 베었다.
푸시시-.
천둔검에 베인 그림자들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연적하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수백, 수천 개의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씩 베다가는 어깨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쩐다.’
멈칫한 순간 수십 개의 그림자가 연적하에게 매달려 물고 뜯고 할퀴었다.
“젠장!”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조금씩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연적하는 즉시 공진검(空塵劍)을 펼쳤다.
우웅-.
한순간 연적하의 앞쪽 허공에서 진동음이 일어났다.
이윽고 대기가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강력한 파동이 퍼져 나갔다.
쿠웅-!
하늘에 가득하던 그림자들이 연기가 되어 흩날렸다.
시야가 선명해진 순간 연적하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헉!”
어느 틈에 메디나 이사엘라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검게 불타는 거대한 검이 사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화르륵-.
연적하는 천둔검으로 검게 불타는 검을 막았다.
콰직-!
두 개의 검이 마주치자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검은 검의 힘을 견디지 못한 화풍이 옆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런 화풍을 흑천응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자연히 연적하는 메디나 이사엘라의 공격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연적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몰아쳤다.
쾅! 쾅! 쾅! 쾅! 콰앙-!
연적하는 메디나 이사엘라의 검을 막기에 급급했다.
검격을 나눌수록 연적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힘에 부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상대의 검에서 전해지는 마기 때문이다.
비록 마기에 직접 닿지 않았다 해도 지속적으로 접하다 보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부로도 몇 번인가 마기가 침입했지만 다행히 그때마다 구천기가 마기를 소멸했다.
아슬아슬한 격검과 별개로 계속된 마기의 침탈에 그는 지쳐 갔다.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집중력이 떨어졌고, 곧 허점을 노출했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그걸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연적하의 어깨가 훤하게 드러나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밀어 넣었다.
콰앙-!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메디나 이사엘라의 검을 막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
막강한 찌르기에 중심을 잃은 상체가 살짝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메디나 이사엘라와 같은 초월자 앞에서 무방비하게 몸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메디나 이사엘라가 왼손 검결지를 뻗어 연적하의 몸통을 가리켰다.
“사지타 마라카(마력의 화살)!”
콰앙!
주법과 동시에 연적하의 몸통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이윽고 마력 화살에 직격당한 연적하의 몸이 화풍에서 튕겨 났다.
“크윽!”
묵직한 신음과 함께 연적하의 몸이 추락했다.
흑천응이 추락하는 연적하를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하지만 마신을 등에 태운 흑천응보다 화풍이 조금 더 빨랐다.
흑운(黑雲)으로 변한 화풍이 빛살처럼 내려와 등으로 연적하를 받았다.
다시 날아오르려는 화풍과 연적하를 향해 메디나 이사엘라가 다시 주법을 썼다.
“루우라후 베니레(악령의 강림)!”
새카만 악령의 그림자들이 연적하와 화풍을 덮쳤다.
그림자에 꽁꽁 묶인 연적하와 화풍을 향해 흑천응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메디나 이사엘라가 검을 앞으로 뻗자 검은 불길이 길게 늘어났다.
화르르륵-
마신의 마기로 만들어진 궁극의 무기 마신기(魔神機)가 창처럼 변했다.
추락하는 연적하를 악령이 감싸고, 메디나 이사엘라가 돌진한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악령의 그림자들에 둘러싸인 연적하는 이를 갈았다.
‘크윽!’
메누아에 대한 연민으로 마신 메디나 이사엘라와 잘 풀고 싶었다.
하지만 메디나 이사엘라는 집요하게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
그녀 역시 이 빌어먹을 세계의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문득 ‘어쩌면 천문이 아니라 자신의 영기를 노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보이는 저 광기가 말이 된다.
사용하지 못할 천문보다 확실한 창조신의 생령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어리석었다.’
심통의 말이 떠올랐다.
-공자님! 마신과 말 섞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쳐 죽이십쇼. 그래야 공자님과 가모님이 강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 공자님이 부상이라도 입으면, 우리는 죄다 폭삭 망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리석고 욕심 많은 심통도 아는 것을 자신이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병신 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씨바알!”
연적하의 기경팔맥과 신맥에 깃들어 있던 구천검령이 일제히 깨어났다.
쩌엉-!
연적하를 중심으로 아홉 개의 구천검령이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구천검령에 담긴 초월적인 권능에 악령의 그림자가 ‘푸스스’ 흩어졌다.
스스스스-.
돌연 악령의 그림자들이 사라지자 메디나 이사엘라는 흠칫했다.
연적하의 무위에 어울리지 않는 검령들이 하늘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저 검령들이 광명진천의 날개를 잘랐음을 알았다.
연적하가 어떻게 광명진천의 날개를 잘랐나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검령에서 전해지는 기운은 이전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최고신이라 불리는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녀는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꽝!
창처럼 길게 뻗은 마신기에 하나의 검령이 튕겨 났다.
또 다른 검령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
콰앙-!
두 번째 검령을 튕겨 내자 마신기의 길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세 번째 검령이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장검만큼이나 줄어든 마신기를 힘껏 휘둘렀다.
콰아앙-!
검령이 뒤로 밀려났지만 메디나 이사엘라는 오히려 인상을 찡그렸다.
뭔가 잘못됐다.
마신기가 줄어든 것은 물론 맹렬하게 타오르던 마기도 시원치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약해지고 있는데, 검령은 그저 막아서기만 할 뿐이다.
메디나 이사엘라가 돌진을 멈추었다.
검령 너머에 있는 연적하를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얼굴이다.
메디나 이사엘라와 눈이 마주치자 연적하가 물었다.
“네가 원하는 게 내 영기였어?”
“…….”
메디나 이사엘라는 눈을 깜빡였다.
그가 왜 갑자기 영기를 거론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것은 대화나 설득이 아니라 죽음인 까닭이다.
“말하지 않았느냐? 죽음이라고.”
“그러니까 나를 죽여 영기를 빼앗겠다는 거잖아! 창조신을 싫어한다면서? 그래서 천문에도 관심이 없다고 하더니, 창조신의 영기를 노려?”
메디나 이사엘라는 연적하가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죽어야지.”
연적하의 말과 함께 구천검령이 메디나 이사엘라의 머리 위로 떨어졌
순간 흑천응이 번개처럼 앞으로 이동했다.
쐐애액-.
메디나 아사엘라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타고 있던 흑천응을 박차고 날아가 연적하를 덮친 것이다.
연적하와 메디나 이사엘라의 거리가 급속도로 좁혀져, 이제는 정말 손짓 하나에 누군가의 머리통이 날아갈 상황이 되고 말았다.
메디나 이사엘라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검령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손이 더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검은 기운에 휩싸인 마신기가 연적하의 목을 찔러 갔다.
슈아악-.
하지만 일은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간을 초월해 구천검령 한 자루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깜짝 놀란 메디나 이사엘라는 찔러 가던 마신기로 구천검령을 쳐 냈다.
채앵-!
누적된 충격에 메디나 이사엘라의 마신기가 절반으로 뚝 부러졌다.
반토막 난 마신기를 들고 서 있는 그녀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돌아가.”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던 메디나 이사엘라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죽일 권리와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용서를 제안하다니.
이 세계에서 닳고 닳은 그녀는 진심으로 연적하의 심성에 탄복했다.
“하계(下界)에 너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니 놀랍구나.”
“그래서 대답은?”
연적하의 바람은 전쟁을 끝내는 것에 있었다.
비록 메디나 이사엘라가 그의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했지만 죽이고 싶지 않았다.
메디나 이사엘라의 모습이 변했다.
한순간 몸체가 줄어들더니 기어코 어린 메누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연적하는 그녀가 평화를 선택했다고 믿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순간 굳이 메누아의 모습을 할 리가 없어서다.
메누아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연적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너는 내가 바라던 존재다. 이제는 믿을 수 있다. 너에게 나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대답은?”
연적하는 메누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다행히 메누아에게서 투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메누아가 천천히 반토막 난 마신기를 들어 올렸다.
검신이 옆으로 향한 것으로 봐서 상대에게 무기를 건네주려는 동작이다.
연적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손을 내밀었다.
순간 반 토막 난 마신기가 빙그르 돌았다.
“하지 마.”
연적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메누아는 반토막 난 마신기로 돌진했다.
반토막 난 마신기 끝이 연적하의 목 한 치(약 3센티) 앞에 접근했을 때다.
연적하의 뒤에서 거대한 붉은 검이 비스듬하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후웅-!
푸욱!
검 끝이 메누아의 가슴을 관통하면서 그녀를 뒤로 쭈욱 밀어냈다.
“쿨럭!”
구천검령에 관통당한 메누아의 입에서 붉은 핏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녀의 작은 손에 들려 있던 마신기가 먼지처럼 흩날렸다.
죽어 가는 메누아를 보고 있던 연적하가 참담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냥 돌아가지 왜 그랬어! 내가 병신처럼 네 손에 죽어 줄 거라고 생각한 거냐! 나는 남 대신 죽어 줄 사람이 아니야!”
메누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 생령? 구천검령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 포기해야지! 너도 이 세계의 다른 것들과 똑같아! 욕심에 눈이 멀어 불나방처럼…….”
“……내가 원한 것은 나의 죽음이었다.”
뜻밖의 말에 격정적으로 메누아를 비난하던 연적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에게 죽으려고 그랬다는 거야?”
죽음의 문턱에서 메누아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창조신의 뜻대로.”
그 말을 끝으로 메누아의 작은 머리가 툭 꺾였다.
그녀의 숨이 멎는 순간 붉은 검도 소임을 다했다는 듯 스르륵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