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7
737회. 아무것도 하지 마라
곡분조 노조가 흠칫 놀란 눈으로 블레이즈를 보았다.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嫡子)는 차기 천계 왕이 될 천족으로 그 권세가 어마어마했다.
틀림없이 종문 정도는 안중에 두지 않을 터, 자칫 사달이 날 수도 있었다.
“그분이 왜 마신의 시체를 원하는 겁니까?”
“지난 태고의 전쟁에서 앙겔로스 왕가의 천족이 전사를 했습니다. 그 복수로 마신의 시체를 잘라 다른 왕 가에 보내겠다고…….”
“…….”
곡분조 노조의 입이 쩍 벌어졌다.
혈족 원수의 시체를 토막 내 혈족들에게 보내는 일은 인간들도 하는 일이다.
그러니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가 하는 일이 별스러운 건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 추락한 귄위를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대종사다.
그는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에게 마신의 시체를 내어 주지 않을 게다.
지금까지 보아 온 그의 성정이면 그러고도 남는다.
천계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마신의 시체를 장사 지낼 터였다.
“대종사님에게 가서 고하십시오.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와 맞서려 하지 마시라고. 저는 최대한 걸음을 늦추어 보겠습니다.”
“아, 예.”
곡분조 노조는 즉시 천족 부대의 행렬에서 이탈했다.
블레이즈는 대종사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시간을 끌기 위해서인지 뒤로 빠져 있었다.
천계의 군대는 대형 목선들이 정박한 곳으로 천천히 줄지어 갔다.
곡분조 노조가 막 돌아설 때다.
그의 귓가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들었다.
-정면에 보이는 창고로 오거라.
곡분조 노조가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건 첫 번째 수상전이 벌어지기 전에 사라진 광명진천의 목소리였다.
곡분조 노조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정면의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어두운 창고 구석에 광명진천이 서 있었다.
닷새 만에 만나는 상대지만 오 년은 지난 듯 거리감이 느껴졌다.
곡분조 노조는 죽은 조상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달려가 허리를 조아렸다.
“광명진천님. 갑자기 사라지셔서 걱정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광명진천은 곡분조 노조의 인사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말했다.
“대종사가 마신을 죽였다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사달이 나게 생겼습니다.”
“마신을 죽였는데 사달이라고?”
“대종사님은 마신을 화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배와 땔나무를 구해 오라고 시키셨지요. 그런데…….”
광명진천은 그 뒷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앙겔로스 베니토가 마신의 시체를 원하고 있지.”
“알고 계셨습니까?”
곡분조 노조가 광명진천을 힐끔 보았다.
그것까지 아는 걸 보니 옥천항에서 계속 지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떠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대종사님을 모시던 천족 부관이 대종사님에게 알리라고 해서 급히 가던 중입니다.”
“대책을 마련하게 만들겠다?”
“예,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와 대종사님이 충돌하면 안 되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마라.”
“예?”
“앙겔로스 베니토와 대종사의 일에서 손을 떼란 말이다.”
“하, 하지만 그랬다가는…….”
곡분조 노조는 말끝을 흐렸다.
천계의 군대를 이끌고 온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와 대종사가 충돌할 수도 있었다.
광명진천이 곡분조 노조를 지그시 보았다.
“마신이 죽었으니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종문이 안정되면 너의 자리가 온전히 유지될 것 같으냐?”
“…….”
곡분조 노조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대종사에게 자신이 찍혔다는 것은 이미 천지종에서 유명하다.
지금이야 전쟁으로 경황이 없어 그렇지, 전쟁이 끝나면 자신은 어떻게 될지 몰랐다.
“저에게 대종사님을 배신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너의 살길을 찾으라는 말이다. 너와 나는 대종사와 이미 척을 졌다. 종문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냐?”
“여기서 더 실수를 하면 저는 정말 끝장입니다.”
곡분조 노조는 광명진천이 자신을 그냥 내버려 뒀으면 했다.
하지만 광명진천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너는 이미 끝났다. 네가 종문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대종사를 끌어내려야 한다. 끌어내릴 수 없으면 발목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이대로 전쟁이 끝나면 너는 파문을 당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대종사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되겠습니까?”
“되고말고. 앙겔로스 베니토는 옹졸하고 오만한 왕족이다. 대종사가 자신의 명을 거역하면 그를 죽이려 들 것이다. 어차피 끝날 전쟁이니 고려할 것도 없겠지.”
“대종사는 마신을 죽일 정도로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 고수가 그에게 당하겠습니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네 말대로 앙겔로스 베니토는 대종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앙겔로스 왕가가 있다. 천계 왕가의 뿌리는 창조신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천족들이다. 왕가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기(神器)가 있다. 그것이라면 대종사의 검령쯤은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헉! 정말 그런 게 있습니까?”
곡분조 노조가 놀란 얼굴로 광명진천을 보았다.
천계 왕가에 대종사의 구천검령보다 뛰어난 신기가 있을 줄이야!
“속세가 강이라면 ‘천계의 왕가’는 바다다. 모든 주법(呪法)의 원천이 왕가라면 알겠느냐? 왕가의 신기 또한 검령 따위와 비교할 수 없다.”
“천계 왕가에 그런 힘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흥! 종문의 기원이 ‘창조신의 종’이라면, 천계 왕가는 ‘창조신의 사자(使者)’다. ‘종의 검령’이 ‘사자의 신기’를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으냐?”
“왕가에서 신기를 사용하면 대종사는 상대가 되지 않겠군요? 그런데 왜 ‘태고의 전쟁’에게는 신기를 사용하지 않은 겁니까?”
어느새 곡분조 노조는 대종사에 대한 호칭에서 ‘님’ 자를 뺐다.
“신기는 왕가의 보물로 왕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만 사용한다. ‘태고의 전쟁’이 왕가에 득이 될 것 같으냐? 독이 될 것 같으냐?”
“아!”
곡분조 노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신도 정치를 하지만 천계 왕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알았으면 앙겔로스 베니토와 대종사의 일에 나서지 마라. 그래야 네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광명진천이 암암리에 광명안(光明眼)을 쓰자 그의 눈알이 유리알처럼 번들거렸다.
홀린 듯 그를 보고 있던 곡분조 노조가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예! 저는 이 일에 나서지 않겠습니다.”
광명진천은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만 가 보라는 뜻이다.
곡분조 노조는 허리를 조아려 복종의 뜻을 표한 뒤 조용히 물러났다.
***
곡분조 노조는 광명진천의 명에 따라 연적하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그는 손수 배에 목재를 옮겨 실었다.
한 번에 할 일을 두 번 세 번 나눠서 하는 식으로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천계 군대의 움직임을 살피던 그는 왕가의 깃발이 연적하에게로 향할 즈음 연적하에게 돌아갔다.
곡분조 노조가 허겁지겁 달려오자 연적하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어디 불났어? 왜 그래?”
곡분조 노조는 목선 앞에 도달한 왕가의 깃발을 확인한 뒤 다급하게 말했다.
“대종사님! 천계 왕가의 적자가 대종사님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천계 왕가의 적자? 누구?”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천계의 왕가만 일곱 개인데 그중 어느 쪽과도 일면식이 없었다.
“앙겔로스 왕가의 앙겔로스 베니토가 대종사님을 찾고 있습니다.”
“왜?”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왔지만 연적하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다.
“그게…… 마신의 시체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신의 시체를 가져다가 뭘 하려고?”
“과거 태고의 전쟁에서 앙겔로스 왕가의 핏줄이 전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복수로…….”
곡분조 노조는 말끝을 흐렸다.
마신의 시체를 애지중지하는 연적하 앞에서 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복수로 뭐?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연적하의 독촉에 곡분조 노조는 마지못해 말했다.
“그게, 마신의 시체를 토막 내 왕가들에게 보내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들었다고? 누가 그래?”
“조금 전에 블레이즈를 만났습니다. 그 천족 여자가 알려 줬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족 지휘관들이 우르르 배 위로 올라왔다.
연적하는 그간 안면을 익힌 몇몇 지휘관들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천족 지휘관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를 했다.
대종사의 무위를 먼 발치에서나마 본 그들은 난감함을 감추지 않았다.
어색한 순간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이 나섰다.
“전하, 저 사람이 종문의 대종사인 연적하이옵니다. 대종사, 이분은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이신 앙겔로스 베니토 전하이시네. 인사 올리게.”
연적하의 시선이 총사령관 젤라툼의 옆에 있는 천족에게 향했다.
한눈에 봐도 오만한 인상이 제멋대로 살아온 티가 역력하게 드러났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연적하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종문의 대종사 연적합니다.”
신장이 월등하게 큰 앙겔로스 베니토가 연적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대종사라고 하지만 아직 구주의 아홉 종문을 다 통합하지는 못했다고 들었다. 네가 거두어들인 종문이 여섯 개냐? 일곱 개냐?”
관심을 보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 ‘너는 아직 대종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다.
연적하가 그 질문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총사령관 젤라툼이 대신 답했다.
“전하, 대종사는 일곱 개의 종문을 휘하에 두었습니다. 남은 두 개의 종문도 곧 그에게 복속될 것입니다.”
그러자 앙겔로스 베니토가 못마땅한 눈으로 총사령관 젤라툼을 보았다.
대종사에게 물었는데 왜 네가 나서냐고 힐난하는 눈초리다.
그러거나 말거나 총사령관 젤라툼은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먼저 나섰다.
“대종사. 전하께서 마신의 시체를 양도받기를 원하시네. 마신과 천계는 태고 때부터…….”
“안 돼요.”
총사령관 젤라툼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대종사의 양해를 이끌어 내기 위해 천계와 마신의 오랜 은원을 설명하려 했는데…….’
그걸 단칼에 거절당하니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앙겔로스 베니토가 황당한 얼굴로 대종사를 손가락질했다.
“너 지금 안 된다고 했느냐? 감히 앙겔로스 왕가의 일에 종문의 대종사 따위가!”
앙겔로스 베니토가 흥분하자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급히 끼어들었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마천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대종사는 마신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의 공로를 생각하면 그 정도 의견은 낼 수 있습니다.”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는 은근슬쩍 대종사의 위치를 높여 주었다.
그가 그러는 것은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천족들처럼 그도 대종사가 마신을 죽이는 걸 보지 못했다.
높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싸움인 데다가, 그때 천족들은 마족들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홉 자루의 검령이 일으킨 천번지복(天翻地覆)의 조화는 다르다.
그 초월적인 검령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같은 편이기에 망정이지 적이 되어 그 검령 앞에 서고 싶지는 않았다.
발끈한 앙겔로스 베니토가 이번에는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를 나무랐다.
“그 정도 의견이라니! 나의 지시에 안 된다고 거절한 게 어찌 의견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와 달라는 눈으로 총사령관을 보았다.
오랜 세월 아나타시오와 전장을 전전했던 총사령관 젤라툼이 눈치 있게 나섰다.
“대종사, 방금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