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38
738회. 왕가의 성력(聖力)
총사령관 젤라툼은 연적하 대종사가 요령껏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기만 바랐다.
왕세자인 앙겔로스 베니토가 저렇게 흥분했으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완급을 조절하리라.
하지만 그의 바람은 통하지 않았다.
연적하에게는 앙겔로스 베니토보다 메누아의 장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러 주려고요.”
순간 앙겔로스 베니토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오만방자한 놈이로구나!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 앞에서 그따위 망발이라니! 쥐꼬리만 한 공을 세웠다고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줄 아느냐!”
연적하의 성정은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
이를테면 그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
거기다 녹림의 자유분방함까지 갖추었으니 가히 앙겔로스 베니토의 천적이라 할 수 있다.
앙겔로스 베니토의 막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총사령관 젤라툼이 허겁지겁 앙겔로스 베니토를 설득했다.
“전하, 대종사가 비록 생각 없이 말했으나 그의 공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도 대종사와 앙겔로스 베니토의 사이를 막아섰다.
“대종사, 왕세자 전하의 말씀이 조금 과하셨으나 결코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은 아니오. 마신이 앙겔로스 왕가의 원수라 그러시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오.”
연적하는 몸으로 막아선 서부군 사령관을 차마 어쩌지 못하고 화를 삭였다.
이쯤에서 끝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사를 원하는 대로 했던 앙겔로스 베니토가 일을 키웠다.
“너 이놈! 당장 마신의 시체를 내놓고 종문으로 돌아가라! 네놈이 세운 공이 아니었다면 마신과 함께 토막 내어……. 악!”
폭언을 퍼붓던 앙겔로스 베니토가 비명과 함께 뒤로 벌렁 넘어졌다.
어느새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연적하가 귀싸대기를 날린 것이다.
연적하가 바닥에 쓰러진 앙겔로스 베니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뭘 잘못 처먹었나. 누구더러 이놈 저놈이야! 뭐? 나를 토막을 내? 어디서 이렇게 똥오줌도 못 가리는 놈이 튀어나온 거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앙겔로스 베니토가 벌떡 일어나 검 손잡이를 잡았다.
막 검을 뽑으려는 그를 총사령관 젤라툼이 만류했다.
“전하. 마천의 군세를 코앞에 두고 종문 대종사와 싸우시면 안 됩니다.”
“비키시오! 저 미천한 인간이 내 몸에 손 대는 것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시오! 앙겔로스 왕가의 명예를 위해 싸워 줄 천족이 정녕 없다는 것인가!”
왕세자가 왕가의 명예를 입에 담자 지휘관들은 뻘쭘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지휘관들의 그런 태도는 앙겔로스 베니토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총사령관 젤라툼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재빨리 주법(呪法)을 펼쳤다.
“함파스 데 레오람(궁극의 천벌)!”
왕세자 앙겔로스 베니토는 오만한 성격보다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로 더 알려져 있었다.
젊은 나이에 벌써 세 쌍의 날개를 가진 그는 레오람의 주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꽈광-!
누구도 예기치 못한 급습이었다.
천족 지휘관들에 둘러싸여 있던 연적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연적하도 이미 반신급에 이른 존재.
위기의 순간,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호신강기가 뇌전을 막았다.
파츠츠츠-.
파르스름한 뇌전이 연적하의 주변을 떠돌다 흩어졌다.
왕세자가 대종사를 공격하자 천족 지휘관들은 한순간 굳어 버렸다.
차라리 그 일로 대종사가 치명상을 입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왕세자의 주법은 대종사의 호신강기에 막혀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천족 지휘관들이 대종사를 만류하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연적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천둔검을 소환할 틈도 없이, 앙겔로스 베니토를 덮쳤다.
앙겔로스 베니토 역시 기습이 실패하자 즉시 검을 뽑아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그의 검에 파르스름한 기운이 맺혔다.
그것은 일반 천족들이 사용하는 영기가 아니라 왕가의 성력(聖力)이었다.
성력은 창조신의 사자(使者)였던 선조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신성한 기운.
짓쳐들어 가던 연적하는 이제까지와 다른 기이한 힘에 즉시 뒤로 빠졌다.
그러자 앙겔로스 베니토의 입가에 득의의 미소가 어렸다.
대종사가 마신을 죽였다고 해서 경계했는데 성력 앞에서 몸 사리는 걸 보니 뿌듯했다.
하지만 연적하가 뒤로 물러난 건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지 겁이 나서가 아니다.
연적하는 즉시 천둔검을 소환했다.
우우웅-.
천둔검이 연적하가 애용하는 삼척 장검의 크기로 나타나 그의 손에 잡혔다.
이번에는 앙겔로스 베니토가 흠칫 놀랐다.
허공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소환하는 걸 보니 절로 긴장이 됐다.
득물(得物)의 경지에 이른 종사는 천족들에게도 쉬운 상대가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서로를 노려보던 앙겔로스 베니토와 연적하가 앞으로 돌진했다.
싸우기 전부터 감정이 상해 있던 둘은 바로 격검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고상하게 의형검강을 날리기보다 상대를 직접 타격하고 싶어서다.
쾅! 쾅! 쾅! 쾅-!
두 사람이 맞붙은 채로 빛의 속도로 검격을 교환했다.
앙겔로스 베니토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답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물론 처음 몇 합은 그랬다.
하지만 채 십여 합을 나누기도 전에 앙겔로스 베니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지간한 것들은 성력이 깃든 검격을 당해 내지 못하는데, 대종사라는 인간은 달랐다.
처음 귀싸대기를 맞았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저 종문의 대종사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무위를 가졌다는 것을.
‘성력을 너무 믿었나.’
꽈앙-!
둘의 검이 잠깐 붙었다.
아니, 정확히는 앙겔로스 베니토의 검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검을 맞붙인 상태에서 앙겔로스 베니토가 급하게 말했다.
“헉! 헉! 대종사! 너는 끝까지 앙겔로스 왕가에 저항할 생각이냐!”
그가 왕가의 이름을 앞세우자 연적하는 콧방귀를 날렸다.
“흥! 무릎 꿇고 싹싹 빌지 않으면 그 버릇없는 팔을 잘라 버릴 거야! 빌든가! 잘리든가!”
말과 함께 연적하는 왕세자의 검을 힘껏 밀어냈다.
그리고 거리가 벌어지자 다시 폭풍처럼 상대를 몰아쳐 갔다.
쾅! 쾅! 쾅! 쾅! 쾅-!
투기가 꺾인 앙겔로스 베니토는 이제 막기에 급급했다.
그가 수비로 돌아서자 연적하의 검은 더욱 난폭해져서 이젠 살기마저 감돌았다.
대종사의 검을 받아치는 앙겔로스 베니토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는 뒤늦게 상대가 천계의 왕가를 두려워하지 않음을 알았다.
‘빌든가! 잘리든가!’라는 그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이젠 천족 지휘관들이 끼어들어 중재를 하기에도 늦은 상황이었다.
오롯이 자신과 대종사의 시간이다.
그 정도 자각이면 빌 만도 한데 앙겔로스 베니토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심이 문제였다.
‘설마 제 놈이 정말 왕세자의 팔을 자르겠어?’
앙겔로스 베니토는 대종사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대종사의 사람 됨에 대해 알아 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틸 때까지 버텨 보기로 했다.
마음이 정해지자 방어 위주의 검술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사그라졌던 투기도 조금 되살아났다.
그런 앙겔로스 베니토의 변화는 그와 검을 맞대고 있던 연적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쯧!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는구나.’
연적하는 그가 끝까지 버티자 더 이상 봐주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을 죽이려고 한 놈인데 천계의 왕세자란 이유로 너무 봐줬다.
문득 ‘자신도 속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연적하의 눈매가 차가워졌다.
꽝! 꽝!꽝!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을 든 팔이 하늘로 솟구쳤다.
천계 앙겔로스 왕가의 적자, 앙겔로스 베니토의 팔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가 갑판 위에 툭 떨어졌다.
곧이어 앙겔로스 베니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앙겔로스 베니토의 비명이 석양을 가르며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의 수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연적하가 앙겔로스 베니토의 뒷덜미를 손날로 후려쳐 넘어뜨린 뒤, 그의 넓적한 등을 지그시 밟았다.
“빌어. 빌지 않으면 남은 팔다리를 하나씩 자른다.”
살기등등한 대종사의 음성에 앙겔로스 베니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더 이상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를 고려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요, 용서해라.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이게 아직 정신을 덜 차렸네.”
연적하가 천둔검을 치켜들자 앙겔로스 베니토는 즉시 태세를 전환했다.
“용서해 주십쇼! 제가 잘못했습니다!”
앙겔로스 베니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대형 목선 위에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천족 지휘관들은 침통한 얼굴로 앙겔로스 베니토와 대종사를 번갈아 보았다.
특히나 원정군 총사령관 젤라툼의 표정은 심각했다.
오늘의 일로 앙겔로스 왕가와 대종사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대종사다.
종문은 일곱이든 아홉이든 아무래도 상관 없다.
어차피 그들은 천계의 앙겔로스 왕가가 나서면 꼬리를 말 테니까.
하지만 대종사는 앙겔로스 왕가에 굴복하지 않고 싸우려 들 게 분명하다.
대종사의 구천검령을 떠올리니 소름이 오싹 돋았다.
다행히 자신은 앙겔로스 왕가의 소속이 아니니 동원되지 않을 게다.
그는 무심코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를 힐끔 보았다.
페르페투아는 앙겔로스 왕가에 속해 있으니 그가 선봉에 설가능성이 높았다.
때마침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가 대종사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대종사. 원하는 사과를 얻어 냈으면 약속대로 왕세자 전하를 놓아주시오.”
노회한 그는 마치 대종사가 왕세자를 잡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연적하는 시답지 않은 소리에 한마디 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물러났다.
대종사의 발이 등에서 떨어지자 왕세자 앙겔로스 베니토는 후다닥 일어났다.
수치심과 자괴감에 앙겔로스 베니토의 얼굴이 검붉게 물들었다.
앙겔로스 왕가의 깃발 앞에서 팔을 잘린 것으로도 부족해, 도리어 잘못을 빌기까지 하다니.
평소 오만방자한 그의 행실을 생각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
앙겔로스 베니토는 실성한 것처럼 ‘죽인다’를 되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시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들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왕세자의 권위가 통하지 않음을 알아서다.
자신이 대종사에게 당하는 꼴을 보고도 총사령관 젤라툼은 구경만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총사령관 젤라툼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천계 원정군의 목표는 마천이지 대종사가 아닌 까닭이다.
여기서 자신의 명에 따를 천족은 동부군 사령관 페르페투아 하나뿐이다.
물론 자신이 인솔해 온 천족 부대가 있지만, 그중에 믿을 만한 고수는 없었다.
대종사라는 놈은 종문의 검령으로 마신과 마신의 군세를 물리쳤다.
‘빠드득. 놈의 검령을 상대할 왕가의 신기(神器)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휘하의 부대를 앞세웠다가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앙겔로스 베니토는 분을 삭이고 돌아섰다.
대종사가 자신의 팔을 자르고 겁박한 것은 앙겔로스 왕가를 모욕한 것과 같다.
앙겔로스 왕가의 체면이 걸린 일이니 왕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이다.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로 놈을 죽인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앙겔로스 베니토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어렸다.
사만의 천족 부대를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원정군에 합류했던 왕세자 앙겔로스 베니토는, 친위 부대의 호위 속에 조용히 옥천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