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51
751회. 좋은 소식이 있는데 들어 보시겠어요?
마족 오로보스가 황송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찢어진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얼굴을 타고 내려와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천독곡의 뒤편이 막혀 있는 것 같으나 절벽에 아주 작은 균열이 있습니다. 그 균열로 빠져나가 북쪽으로 가시면 금산산맥의 초입이 나옵니다.”
“천관산맥이 있는 동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라?”
“그렇습니다. 천족들은 우리가 천관산맥으로 돌아갈 줄 알고 협곡 입구를 틀어막고 있습니다. 천독곡의 균열을 이용해 천족의 허를 찌르는 겁니다.”
“그 균열이 나의 마기를 가릴 정도로 깊으냐?”
“천독곡 뒤편의 균열은 바다처럼 깊어 왕의 마기를 가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흐음.”
마왕 천자마는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천족의 군세 앞에서 달아나다가 걸리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없어서다.
오로보스가 말을 이었다.
“마물들을 천독곡 입구로 진군하게 하시고, 왕께서 절벽의 균열로 진입하시는 것은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는 것[瞞天過海]’과 같습니다. 천족들은 균열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금산산맥으로 가는 북쪽 길은 방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천자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균열이 자신의 마기를 가릴 정도로 깊고 북쪽 길까지 열려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다.
“좋다. 오늘 밤에 움직일 것이니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도록 해라.”
“예!”
조마조마하게 올려다보던 오로보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 한 수로 다시 천자마의 신뢰를 얻게 되었으니 더는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
녹수성.
천독곡 입구.
마왕 천자마가 천독곡으로 숨자 웅천주에 흩어져 마물을 토벌하던 천족과 종문 고수들이 모여들었다.
마물을 퇴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왕 천자마의 제거가 우선인 까닭이다.
그중에는 종문 고수들과 함께 영천주와 맞닿은 수원성까지 내려갔던 연적하도 있었다.
천독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햇볕을 가리기 위해 천족들이 쳐 둔 대형 차양막 아래로 천족 지휘관과 종문 대표들이 모였다.
연적하가 차양막으로 다가가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급히 마중을 나왔다.
“대종사님.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종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북부군 사령관은 직접 연적하를 상석까지 안내하고 그 옆에 앉았다.
“퉁룽챈녹(혈주종 종문)에서 사라진 마왕군을 저희 북부군이 발견해 천독곡에 몰아넣었습니다.”
북부군 사령관은 나름 공을 세우고도 대종사의 눈치를 보았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며칠 전, 그러니까 마왕이 아직 퉁룽챈녹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다.
북부군과 서부군, 그리고 종문은 삼면에서 퉁룽챈녹으로 진군했다.
어마어마한 군세와 대종사의 무위에 놀란 마왕군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뒤로 밀렸다.
모두가 마왕군의 최후라고 믿었다.
하지만 마왕군은 북부군의 포위망을 뚫고 퉁룽챈녹에서 달아났다.
결국 북부군과 서부군, 종문은 단지 퉁룽챈녹을 되찾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서부군 사령관 아나타시오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잘됐습니다. 이제 북부(웅천주)의 전쟁도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잘 벼려진 칼이라면, 그 칼을 휘두르는 것은 천족군지휘관들이다.
그러니 도와주라는 곳으로 달려가 신명 나게 칼질만 해 주면 된다.
대종사가 침묵하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가 천독곡의 입구입니다. 북부군이 이중 삼중으로 막고 있으니 제아무리 마왕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법요종의 페라르바 존자가 슬쩍 물었다.
“언제까지고 입구만 지킬 수는 없지 않소? 아군의 전력이 월등히 뛰어난데 공격의 시기를 언제로 생각하시는지.”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참모장 퀴리아노스에게 눈짓을 보냈다.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에게 답을 미룬 것이다.
그의 마음을 짐작한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답했다.
“빠르면 오늘 오후,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진입하려고 합니다.”
“오늘 오후면 오후, 내일 아침이면 아침, 확실하게 말해 줄 수는 없소?”
그러자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종사님과 지휘관님들을 위해 차양막은 쳤지만 평소보다 구름이 많습니다. 혈주종 노조들이 오후 늦게 비가 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맑지만, 비가 내릴 수도 있다기에 확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설명하자 페라르바 존자도 더는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웅천주에 사는 혈주종 노조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틀림없을 테니까.
페라르바 존자가 물러나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다시 나섰다.
“선두는 북부군이 서고, 그 뒤를 서부군이 받칠 계획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종문의 위치를 정해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연적하가 되물었다.
“사령관님 생각에 종문의 위치로 어디가 적당할 것 같아요?”
“북부군과 서부군의 중간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대종사의 지원을 고려한 위치 선정이었다.
북부군이 마왕을 감당하지 못하니 대종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연적하가 페라르바 존자와 백은 존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중간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페라르바 존자와 백은 존자는 반대하지 않았다.
중간은 북부군과 서부군 양쪽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북부군 사령관과 눈을 맞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문의 종사들이 좋다니까 그렇게 하죠. 그런데 북부군에서 마왕을 얼마나 잡아 둘 수 있나요?”
마왕 천자마는 이 세계 여덟 왕 중에 하나로 ‘삼천의 신’ 다음가는 고수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마왕을 놓친 북부군이기에 연적하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포함한 북부군 지휘관들의 합공이라면 마왕을 한 식경(약 30분) 정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마왕을 발견하더라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세요. 괜히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겠다고 무리하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멋쩍은 얼굴을 했다.
저 말은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다.
솔직히 대종사의 저 말만 아니었어도 욕심을 부려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런 소리를 듣고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다 희생자가 발생하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퀴리아노스 참모장의 말대로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쏴아아아-.
연적하는 언덕 위에 쳐진 차양막 아래에서 천독곡을 내려다보았다.
천족들은 천막으로 머리만 가린 채 계곡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퍽-!
굵은 빗줄기가 차양막 때리는 소리에 다른 건 들리지도 않았다.
저 아래 천족들의 상황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이래서는 마왕군이 움직여도 알아차리기 힘들겠는데?’
그러고 보면 마왕에게 운이 따르는 것 같다.
퉁룽챈녹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저렇게 무사한 걸 보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보니 어느덧 해가 질 시간이 된 모양이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북부군 사령관도 이제는 요리사를 부리지 않았다.
연적하는 선단 주머니에서 선단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그리고 혀로 이리저리 굴리며 언제 씹을까를 고민할 때, 프리타 키아나가 찾아왔다.
“대종사님, 아직 식사 전이시죠?”
연적하는 흐물흐물해진 선단을 어금니로 씹어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요?”
연적하가 기대 어린 눈으로 프리타 키아나를 보았다.
그녀도 북부군 사령관처럼 개인 요리사를 데리고 다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프리타 키아나는 북부군 사령관과 달랐다.
“저희 천족군에서 먹는 벽곡단 드셔 보시겠어요?”
말과 함께 그녀가 연적하에게 밤톨만 한 벽곡단을 내밀었다.
벽곡단이라기에 콩알만 하려니 생각했던 연적하의 눈이 커졌다.
“벽곡단이 크네요?”
“인간과 달리 천족은 체형이 크니까요. 대종사님은 배가 부르실걸요?”
연적하가 천족의 벽곡단을 받아 들었다.
묵직한 게 그녀의 말대로 몇 개만 먹어도 배가 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바로 먹지 않고 냄새부터 킁킁 맡았다.
“이건 뭐로 만드나요?”
“각종 곡물을 기반으로 영지 선초와 꿀이 들어 있어요.”
“종문의 벽곡단과 비슷하네요?”
“목적이 같아서 그럴 거예요. 배를 꿇게 하지 않으려고 만든 거니까.”
대종사가 먹지 않자 프리타 키아나가 보란 듯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으며 대종사에게 손짓을 보냈다.
먹어 보라는 뜻이다.
어색하게 웃던 연적하는 들고 있던 벽곡단을 살살 갉아 먹었다.
역시나 종문의 선단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맛이다.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남김없이 먹어야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는 갉아 먹던 벽곡단을 그냥 입에 털어 넣었다.
“대종사님은 천문에 관심이 많으시다죠?”
“예.”
“대종사님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데. 들어 보시겠어요?”
“뭔가요?”
“북부군이 퉁룽챈녹에서 경계에 실패한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그게 좋은 소식인가요?”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날 북부군의 실수로 마왕군이 달아났는데 그게 왜 좋은 소식인지 모르겠다.
“그날 북부군 경계병이 브로크(아인종 난쟁이)족 생존자 하나를 발견했어요. 퉁룽챈녹에서 발견한 아인종에 경계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경계에 구멍이 뚫렸던 거죠.”
“브로크족요?”
“아, 그렇게 말하면 모르시려나? 인간들은 그들을 난쟁이족이라고 부르더군요.”
“난쟁이족인 줄은 알아요. 그래서요?”
“알고 보니 그는 마왕 천자마의 명으로 천관산맥에서 잡혀 온 브로크족이었어요. 천자마가 브로크 족을 잡아 온 이유는 저희와 같았어요.”
“그게 뭔데요?”
“브로크 족은 망치 하나로 만들지 못하는 게 없죠. 마왕은 그들에게 천문을 옮기라고 명했어요. 하지만 천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죠.”
“아! 천문…….”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하니 마왕이 혈주종 종문의 천문에 눈독 들이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천문을 뽑지 못하겠다고 하자 마왕의 수하가 그럼 자르라고 했어요. 하지만 브로크족이 자랑하는 정과 망치도 천문에는 흠집조차 낼 수 없었죠. 그 과정에서 브로크족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답니다.”
프리타 키아나가 착잡한 눈으로 대종사를 보았다.
대종사에게야 기쁜 소식이겠지만 천족에게는 그야말로 뒤통수가 얼얼한 소리였다.
“그게 뭔데요?”
난쟁이들이 천문에서 뭔가를 알아냈다는 말에 연적하의 눈에서 빛이 났다.
“천문에 창조신의 축성이 깃들어 있답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것은 물론, 무엇으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다는군요. 그 말은 천문을 천계로 가져갈 수 없다는 소리와도 같죠. 어때요? 대종사님에게는 좋은 소식이 맞나요?”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족들에게 천문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건 확실히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창조신의 축성이 깃들어 있다니?
천문의 신비를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오히려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부군에는 제 명이 서기에 경계병들의 입단속을 시켜 놓았어요. 그러니 서부군은 물론 다른 어떤 천족도 아직 모르는 사실이지요. 제가 대종사님에게 이 비밀을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는 걸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