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60
760회. 그대도 보았나?
마조가 대종사에게 살수를 썼지만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구주 출신이지만 신좌에 오른 뒤로 과거를 잊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른다고 하지만, 신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신좌에 오른 마조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자신의 뿌리인 구주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 왔다.
그런 그녀에게 진신(眞神)을 부정하는 연적하 대종사의 말은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마조는 대종사가 얕은 식견으로 하는 말에 눈곱만큼도 동의하지 않았다.
“내가 자칭 신이라는 여러 존재들을 만나 봤거든? 그런데 내 기준에 그들은 진짜 신이 아니었어. 그래서 곰곰 생각하다가 하나를 알아냈지. 그게 뭔지 알아?”
‘아니 너는 틀렸어.’
아직 반신에 불과한 그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테지만 진신은 진짜 신이었다.
“신격이니 신좌니 떠들어 대지만 사실은 고수를 구별하는 말이라는 소리야. 진신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 못하잖아? 진신이 할 줄 아는 건 싸움뿐이야. 내 말 틀려?”
‘허튼소리! 신들마다 맡은 역할이 다르다는 것도 모르면서 함부도 입방아를 찧어 대는군!’
모든 신이 비를 내리게 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그걸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이 아니라는 것은 대종사의 사견일 뿐이다.
대종사는 검령 하나를 믿고 자신의 그릇된 생각을 진리인 양 설파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것은 ‘최고신조차 죽일 수 있는 검령’이지 ‘현자의 지혜’가 아니다.
꼴랑 검령 하나 잘 만난 게 전부인 사람이 진신의 비밀을 아는 것처럼 행세하다니?
죽을 고생 끝에 신좌에 오른 그녀는 기가 막혔다.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던 그녀를 결단하게 만든 것은 대종사였다.
“둘이 힘을 합쳤으면 혈사자 바르마스가 바라쿠다 아니라 바라쿠다 할아버지를 들고 있었어도 이겼겠지. 그런데 적 앞에서 한가하게 자기들끼리 싸움질이나 했다면서? 그런 주제에 뻔뻔하게 최고신 앞에서 검령과 바라쿠다를 비교하고 자빠졌어?”
‘뭐? 힘을 합치면 이겼다고?’
본디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종사의 검령을 혈사자 바르마스의 바라쿠다와 같은 것으로 여기던 그녀는 대종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건 ‘대종사에게 검령이 있다 해도 북두신군과 힘을 합친다면 이길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즉시 통령지술(通靈之術)로 북두신군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바로 그때 대종사가 마조와 북두신군의 마지막 자존심을 짓밟았다.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내 앞에서 그따위 비교를 하면, 입을 찢어 버릴 거야. 알았어?”
선을 한참이나 넘어 버린 대종사의 말에 마조는 도리어 차분해졌다.
반신이 진신을 천박한 말로 겁박하다니?
그건 백번 죽어 마땅한 죄였다.
“대답 안 하지?”
대종사의 닦달에 북두신군은 갈라진 음성으로 답했다.
“알겠소.”
“알겠소? 내가 당신 친구야?”
“……알겠습니다.”
“그쪽은?”
대종사가 고개를 트는 순간 마조는 통천조공(通天爪功)으로 그의 목을 찔렀다.
완벽한 기습이었지만 연적하의 몸이 미끄러지듯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 북두신군의 손끝에서 튀어나온 북두검령이 연적하의 허리를 베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합격술이다.
연적하는 황급히 신형을 틀었지만 검령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파앗-!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연적하의 허리춤이 붉게 물들었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려는 연적하를 마조가 비호처럼 다시 덮쳤다.
그녀는 통천조공(通天爪功)으로 대종사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마조의 손바닥이 머리로 다가오자 연적하가 주먹을 휘둘렀다.
구천세법 오 식 건곤번천(乾坤飜天)의 묘가 실린 주먹과 통천조공이 격돌했다.
콰직-!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연적하와 마조의 몸이 뒤로 튕겨났다.
연적하는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쭉 물러났다.
그제야 ‘아차!’ 싶은 얼굴로 북두신군이 따라붙었지만 늦었다.
대종사의 검결지가 자신을 가리키자 북두신군은 오싹한 느낌에 급히 자리를 피했다.
퍽!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집채만큼 커다란 검이 내리꽂혔다.
그것이 대종사의 검령임을 알아본 북두신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하지만 곱게 보내 줄 연적하가 아니다.
연적하는 등에 매고 있던 ‘피나카 아스트라(무한의 활)’의 시위를 당겼다.
슈아아악-!
바람의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가 북두신군의 등에 박혔다.
“커헉!”
비명과 함께 살에 맞은 날짐승처럼 북두신군의 몸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연적하의 시선이 마조를 향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두 팔을 늘어트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연적하는 묵묵히 다시 한번 ‘피나카 아스트라’의 시위를 당겼다.
전의를 상실한 마조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나는 신이다!”
“그래. 병신이지.”
슈아아악-!
일직선으로 날아간 바람의 화살이 마조의 이마 정중앙에 박혔다.
‘퍽!’ 하고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조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착잡한 얼굴로 서 있던 연적하는 ‘피나카 아스트라’를 다시 등에 맸다.
그리고 싸움 통에 무너진 천막을 한차례 둘러본 후 자리를 떠났다.
천족들은 대종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종사와 종문 고수들이 사라진 직후,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는 유스투스 참모장을 불렀다.
“예, 사령관님.”
“그대도 보았나?”
“대종사가 마조와 북두신군을 죽인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똑똑히 보았습니다.”
“아니 그가 가지고 있던 활 말이다. 그걸 보았느냐고.”
“아, 예. 보았습니다.”
“그건 분명히 ‘피나카 아스트라’다.”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神器) 말입니까?”
“그래, 칠대신기 중에 ‘피나카 아스트라’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건 앙겔로스 왕가의 보물이 아닙니까? 천계 왕가의 보물이 인간 손에 들어갔다면 천계가 발칵 뒤집혔을 텐데요?”
“그게 이상해서 그대를 부른 거다.”
“저에게 물으셔도 모른다고밖에는…….”
유스투스 참모장이 말끝을 흐렸다.
자신은 저 활을 알아보지도 못했기에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알아봐라. 앙겔로스 왕가의 신기가 왜 대종사의 손에 들어갔는지를.”
“예.”
그제야 유스투스 참모장은 사령관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대종사의 뒷조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저어, 그런데 사령관님.”
“뭔가?”
“대종사 말입니다. 저래도 괜찮은 겁니까?”
“괜찮은 거냐니?”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가 의아한 눈으로 유스투스 참모장을 보았다.
“마신과 마왕은 마천의 신들이니 이해한다 쳐도, 마조와 북두신군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신들이 대종사를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내버려 두지 않으면? 그를 죽일 수는 있고?”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종사는 마조와 북두신군을 죽이고 그들의 영기가 흩어지도록 방치했다. 진신들의 영기가 불필요할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다.
“진신들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딱히 생기는 것도 없는데, 위험하게 그런 일을 추진할 만한 진신이 있을까?”
“그도 그렇겠군요. 대종사가 저토록 강할 줄은 몰랐습니다.”
“신들의 일은 신들에게 맡기고 그대는 활에 대해서나 알아봐라.”
“알겠습니다.”
“늦어도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알아야 하니 서둘러야 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유스투스 참모장이 묵례를 하고 돌아갔다.
잠시 후 이번에는 부사령관 코르넬리오가 아이더 부관과 함께 그녀를 찾아왔다.
“사령관님, 진신들의 시체를 수습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마조와 북두신군의 시체를 인수해 갈 연고자가 있나?”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아이더 부관은 그에 대해 들은 바가 있나?”
“저도 없습니다.”
“그렇다는군요. 그냥 천계의 방식대로 풍장(風葬)을 진행하도록 할까요?”
부사령관 코르넬리오가 남부군 사령관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는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야. 느낌이 좋지 않아. 진신들의 시체를 주법으로 썩지 않게 처리한 후에 따로 보관하도록.”
“혹시 나중에라도 진신들이 책임을 물을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
“어쨌든 남부군을 돕던 중에 벌어진 일이니 남부군의 책임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 풍장으로 시체를 없애면 사인(死因)을 감추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니 썩지 않게 주법으로 잘 보관하도록. 누구라도 군소리를 하지 않게 성의를 보이라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부사령관 코르넬리오는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전쟁도 다 끝나 가는 마당인지라 진신의 시체 둘을 보관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종문의 보급 상황은 어떤가?”
“보급 상황이라고 하심은?”
부사령관 코르넬리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보급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사령관의 질문에 맞는 답을 주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먹을 게 풍족한가? 대종사가 벽곡단이나 선단만 먹어야 하는 상황이냐 이 말이다.”
대종사의 신위를 가까이서 목격한 남부군 사령관 바실리오 엘다는 그의 먹거리까지 걱정했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천태종에서 따로 선과(仙果) 따위를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알아보고 챙겨 줄 게 있으면 따로 챙겨 주도록. 대종사에게 점수를 따서 나쁠 건 없으니까. 반신이니 뭐니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최고신의 지위에 오른 존재다. 그러니 그에 맞는 대접을 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부사령관 코르넬리오는 남부군 사령관의 지시에 토를 달지 않았다.
천족군의 보급품에 여유가 있는 것도 있지만, 대종사가 두려운 것도 한몫했다.
아무리 이 세계가 약육강식이라 해도 진신 둘을 죽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
다음 날 아침.
천족군과 세 개 종문의 고수들은 조양성 성도로 진군했다.
지난밤 두 진신이 죽었지만 천족군과 종문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조양성 성도.
혈사자 바르마스는 성벽에 우뚝 서서 발아래 펼쳐진 벌판을 내려다보았다.
천족군과 종문 고수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의 계속된 도발을 보고 있으려니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마족 메라트가 말했다.
“저것들은 뭘 믿고 저렇게 덤벼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조와 북두신군이 달아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구먼. 바르마스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들판을 천족들의 시체로 가득 메워 버리겠습니다!”
그러자 또다른 마족 차르툰이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메라트! 나대지 마라. 마신님께서 죽고, 얼마 전에는 광천사 베레드의 사자가 회군을 알려 왔다! 구주에서 계속해서 나쁜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왜 싸울 생각만 하느냐! 바르마스님! 천족군이 더 늘어나 퇴로가 막히기 전에 우리도 이쯤에서…….”
그러자 혈사자 바르마스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쯤에서 뭐? 광천사 베레드처럼 꼬리를 말고 달아나자는 말이냐? 나의 손에 이 바라쿠다가 있는 한 어림도 없다!”
“바르마스님도 대종사에 대한 소문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만에 하나 그가 이곳으로 오면…….”
“뭐가 걱정이냐? 그래 봐야 바라쿠다의 제물에 불과한 것을. 대종사든 뭐든 오라고 해라! 신기의 왕 바라쿠다의 선택을 받은 이 몸이 두려워할 것 같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