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2
772회. 방진의 방향이 덕유봉을 향하고 있어
구월 스무닷새.
한산주 삼채성.
옥천항.
천족 원정군과 종문이 머무르던 옥천항은 마물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연적하 대종사가 백리하에서 마신의 군세를 패퇴시킨 까닭이다.
그 소식에 피난 가던 사람들이 재빨리 돌아와 옥천항은 가장 먼저 정상화됐다.
정오 무렵.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옥천항으로 중년 사내가 들어섰다.
그는 천지종의 이역봉 진인이었다.
감회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이역봉 진인은 이내 사람들 속에 섞여 들었다.
한동안 산책하듯 길을 따라 걷던 그는 자연스럽게 영빈관으로 들어갔다.
별채 앞에서 이역봉 진인은 복장을 한번 점검한 후에 나직이 말했다.
“안에 계십니까?”
그러나 별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귀를 기울이던 그가 다시 한 번 말하려고 숨을 들이마실 때다.
묵직한 음성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누구냐.”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후에 이역봉 진인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스승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들어오라.”
이역봉 진인은 조심조심 섬돌에 신발을 벗고 툇마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방문을 열기 전 품에 지니고 온 봉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광명진천이 의아한 눈으로 중년 남자를 보았다.
스승의 심부름으로 왔다니 일단 들어오라 했지만 낯선 얼굴이었다.
“네 스승이 누구냐?”
“곡분조 노조이십니다.”
광명진천은 의아한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지금까지 곡분조 노조가 중간에 다른 사람을 세운 적이 없어서다.
“곡분조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
그러자 이역봉 진인이 품에서 봉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스승님께서는 나흘 전 뇌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곡분조가 죽었다고?”
광명진천이 황당한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마천과의 전쟁도 끝난 마당에 곡분조 노조가 죽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옥사란다.
“스승님께서 잡히시던 날 저녁에 그 봉서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스승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봉서를 광명진천님에게 전하라고요.”
광명진천이 봉서를 집으며 물었다.
“너는 이 안에 적힌 내용을 아느냐?”
“모릅니다.”
“허면 네 스승이 죽은 이유는 아느냐?”
“예, 스승께서는 대종사와 빙 제군의 거처에 청음부를 설치한 죄로 그리되셨습니다.”
“청음부?”
광명진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말을 들을수록 오히려 더 알 수가 없었다.
천지종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곡분조가 왜 청음부를 설치했단 말인가?
‘그것도 하필 대종사와 빙 제군의 거처에 말이지…….’
오늘날 구주에서 대종사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건 정신 나간 짓이었다.
곡분조같이 노회한 자가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뭔가 더 대단한 게 감춰져 있다는 말인데…….’
광명진천은 손에 든 봉서를 살폈다.
봉서를 밀봉한 영기는 과연 곡분조 노조의 것이었다.
‘보면 알겠지.’
광명진천의 손끝이 밀봉한 부분에 닿자, 밀봉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 안에 담긴 편지를 꺼내 읽던 광명진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 대종사와 빙 제군이 종문의 천문을 부수려 한다고?’
곡분조 노조는 그 이유를 둘 중에 하나라고 했다.
그게 천문을 여는 방법이거나, 천족들에게 내주느니 부숴 버리겠다는 독심이 그것이다.
어느 쪽이라 해도 광명진천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수행자들의 마지막 목표가 천문인 까닭이다.
광명진천의 시선이 남자를 향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역봉이라 합니다.”
“이역봉 너는……. 아니다. 수고했다. 그만 돌아가라.”
광명진천은 이역봉 진인에게 ‘종문을 규합하라’는 지시를 내리려다가 말았다.
그러기에는 그의 지위가 너무도 낮았다.
이럴 때는 곡분조 노조의 빈자리가 아쉽기만 하다.
‘어차피 종문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마신조차 힘으로 눌러 버리는 대종사를 종문의 고수들이 당해 낼 리 없었다.
지금 대종사와 빙 제군의 경계심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이역봉 노조는 그가 하려다 만 말이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홀로 남은 광명진천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대종사라 해도 진신(眞神)들의 힘을 막지는 못하겠지.”
천문을 지키려면 그래야 했다.
천문이 없는 세상이라니!
그건 정말 너무 끔찍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
구월 말.
구주에서 마물을 몰아낸 천족 원정군과 종문 고수들이 천지종 종산으로 모였다.
종문의 고수들은 원덕산을 올랐지만, 천족 원정군은 숫자가 많아 원덕산 인근에 따로 숙영지를 만들어야 했다.
종문의 고수들과 천족 원정군은 대종사에게 승전 소식을 알린 뒤에도 즉시 해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천행사를 빌미로 천지종에 남았다.
마천의 손에서 구주를 되찾은 기념으로 창조신에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한 것이다.
예정에도 없던 제천행사 준비로 천지종은 시끌벅적했다.
구월 마지막 날 저녁.
안학궁.
저녁 식사 후 남궁연은 연적하와 심통을 따로 불러 차를 대접했다.
평소에도 종종 그랬던 터라 연적하와 심통은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차를 마시던 심통이 문득 연적하에게 물었다.
“공자님, 구룡번신의 성취는 어느 정도나 됐습니까?”
천문을 열려면 구룡번신에 통달해야 한다니 자연 궁금했던 것이다.
“거의 다 됐어.”
“그것참 다행이군요.”
심통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연의 배를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출산을 할 것 같아 불안했다.
한동안 연적하와 잡담을 나누던 심통은 슬쩍 남궁연의 눈치를 봤다.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도 하는 않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가모님,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연적하도 남궁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 조금 다른 것도 같다.
“누님, 무슨 일 있어요?”
“오늘 천족 원정군의 숙영지를 둘러봤어. 첫날과 달라져 있었어.”
“그게 어때서요?”
“덕유봉을 중심에 둔 방진(方陣)이야.”
연적하는 눈을 끔뻑거렸다.
천족이 덕유봉을 사각형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그야 천족의 숫자가 몇만이나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잖아요?”
“방진의 방향이 덕유봉을 향하고 있어.”
“…….”
그 말에는 연적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족들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온 그는 방향의 의미 또한 잘 알았다.
“바깥이 아니라 덕유봉을 향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에요?”
“나도 조금 전에 보고 놀랐어. 천족이 암암리에 천지종을 적으로 규 정한 것인지도 몰라.”
“왜요? 그럴 이유가 없……. 아! 혹시 천문의 이양이 불가능해서 그런 걸까요? 정상적으로 이양받지 못하니까 아예 마천처럼 구주를 점령하려고?”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뭔가 변화가 생긴 것만은 틀림없어. 제천행사를 준비한다면서 떠나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녀의 말에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모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상하긴 합니다. 대종사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제천행사를 열겠다는 것부터가 잘못됐습니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 없습니다.”
연적하의 표정이 굳어 갔다.
제천행사는 천족들과 종문 모두가 열겠다고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심 노인 말은 종문에도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거야?”
“떠났어야 할 것들이 천지종에 들어앉아 있으니 드린 말씀입니다.”
연적하가 황망한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누님 생각에도 종문과 천족이 손을 잡은 것 같아요?”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천족과 함께 움직인 종문들은 그런 것 같아.”
“…….”
연적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족과 함께 움직인 종문이라면 각 종문에 남아 있던 인원을 제외한 전부였다.
“하아! 그들이 힘을 합쳐 나를 대적한다고요? 왜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곡분조 노조가 손을 썼을지도 몰라. 신무희의 이야기를 듣고 하루 동안 자유로이 움직였으니까. 신무희를 만나러 가기 전에 대비했겠지.”
남궁연은 곡분조의 짓이라 여겼다.
청음부를 이용해 신무희까지 함정에 빠트릴 정도로 그의 심계가 깊어서다.
“와아! 곡분조. 그 인간은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네?”
연적하는 파르르 떨었지만 곡분조가 이미 죽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은 예측뿐이니까 그렇게 화낼 거 없어.”
“누님 말이 맞을 거예요. 어쩐지 오늘 저녁에 종사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니. 제천행사 준비 때문에 바빠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냥 나를 피한 거였어!”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어. 신무희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 하는데.”
남궁연이 자책하자 연적하가 반박했다.
“아니에요, 누님. 조력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뭐가 되겠어요? 곡분조 그 늙은이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그렇게 된 거예요. 하여간 남 괴롭히는 일은 빠르 다니까.”
연적하는 분통을 터뜨렸다. 정말로 곡분조가 죽기 전에 여기저기 알렸다면 수습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심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그런데 곡분조가 손을 썼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래 봐야 노조에 불과한데 그가 천족과 종문을 움직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연적하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신무희가 누님과 내 말을 엿듣고 곡분조에게 흘렸어. 그 뒤로 심 노인이 보다시피 이렇게 됐고.”
“엿들었다고요?”
심통이 궁금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눈치를 보니 자신에게 ‘알면 다친다’고 숨겼던 내용 같았다.
“천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거든. 그걸 엿들었어.”
“그 이야기가 전해져서 천족과 종문이 저렇게 나오는 거라고요?”
“응.”
“그게 뭡니까?”
연적하는 이젠 말해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누님과 나는 아홉 종문의 천문을 부숴야 열린다고 생각하거든.”
“예?”
심통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홉 종문의 천문을 부수다니?
천족과 종문이 갑자기 원수로 돌변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니, 공자님, 문은 원래 열고 닫고 하는 게 아닙니까? 그걸 부순다고요?”
“응, 상계(上界)로 가는 문은 일회용이었어. 생각해 보면 이 막돼먹은 세계에 상계로 가는 문을 만든 것 자체가 잘못이야. 사악한 진신들이 운 좋게 문을 열고 상계로 진출하면 어쩌려고?”
“와아! 기가 막히네요.”
심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 욕망의 세계에서 천문을 들락날락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지금까지 잠잠하던 천족의 태도가 오늘 저녁에 돌변한 것도 문제야.”
“왜요?”
연적하가 눈을 찡그렸다.
천족과 종문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운데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제천행사를 앞세우고 기다린 건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였을 거야. 그러던 천족이 방진을 천지종 쪽으로 돌렸다는 건 변화가 생겼다는 거지. 어쩌면 진신들이 합류했을지도 몰라.”
“진신요?”
“천문이 파괴되면 천족과 종문보다 진신들이 더 타격을 입잖아. 진신들까지 끌어들였을 거야.”
“…….”
연적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지키는 쪽이었어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터였다.
심통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천족과 종문뿐 아니라 진신들까지 떼거리로 몰려왔다 이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