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76
776회. 심 진인 시절이 그리워?
광명진천은 거대한 검이 자신을 뒤따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건 천족 지휘관들과 종문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의 크기가 너무 크다 보니 모두가 검의 영역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광명진천은 덕유봉 뒤편의 북악봉에 도달하고서 살짝 마음을 놓았다.
산봉우리 하나를 건너뛰었으니 연적하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 연적하의 싸움 상대는 자신이 아니라 사천왕이었다.
‘휴우! 지독한 검이었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사방이 짙은 어둠에 잠겼다.
깜짝 놀란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임박한 검을 발견하고는 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하지만 광명진천이 완전히 빠져나가기도 전에 검이 북악봉을 내리찍었다.
쿠르르릉-!
광명진천과 그 주변이 검에 짓뭉개졌다.
바위가 터지고 산이 무너져 내렸다.
북악봉 일부를 허물어트린 뒤에야 천둔검은 고운 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은 가까스로 거리를 벌려 재앙에서 빠져나갔다.
젤라툼 총사령관은 깊게 패인 북악봉 중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허어! 저런 검공이라니!’
반신급에 불과한 대종사의 검공이 만들어 낸 결과는 그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벨 소니아 총참모가 옷에 내려앉은 흙먼지를 털어 내며 중얼거렸다.
“대종사의 검령이 저렇게 컸던가요?”
“아마 그럴 걸세. 대종사의 검령은 크기부터가 남다르지 않던가?”
젤라툼 총사령관의 말에 근처의 지휘관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록 이전에 보았던 검령과는 달랐지만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검이 떨어진 자리를 살피던 누군가 말했다.
“광명진천님은……. 보이지 않는군요.”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의 얼굴에 착잡한 빛이 떠올랐다.
광명진천은 천족 출신으로 암암리에 천족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그런 그가 사라졌으니 천족은 든든한 후원자 하나를 잃게 된 셈이다.
연적하는 가장 먼저 바하르 산의 천문으로 이동해 구천검령을 날렸다.
기경팔맥에 있던 검령이 빠져나가자 그만큼 영기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연적하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직전 구천검령이 천문에 꽂히는 것을 보았다.
꽈르릉!
구천검령과 천문이 폭발했다.
그 순간 연적하는 천문이 박살 났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구천검령도 천문과 함께 소멸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결과를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그다음으로 금악산, 퉁룽챈녹, 유명산, 불우산, 태백산, 장백산, 도봉산의 천문에 구천검령을 날렸다.
하나의 구천검령이 빠져나갈 때마다 몸과 마음에 구멍이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덟 개의 구천검령이 사라졌다.
마지막인 천지종의 원덕산으로 왔을 때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신맥에 깃든 영기와 구천검령뿐이었다.
연적하는 비장한 눈으로 구천검령을 불러냈다. 거대한 붉은 검이 천역(天域) 위에 나타났다.
그가 구천검령에 의지를 전하자 붉은 검이 맹렬하게 천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기경팔맥과 신맥에 있던 모든 힘을 다 쓴 연적하는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다.
안학궁으로 달려가려는 마음과 달리 몸이 천역으로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어찌어찌 지면에 내려서자마자 기이한 힘이 그를 뒤로 끌어당긴 것이다.
급히 고개를 돌리니 천문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기의 소용돌이가 보였다.
휘우우우-.
그 소용돌이가 자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순간 연적하는 그것이 천문의 작용임을 깨달았다.
‘안 돼!’
연적하는 안학궁에 남아 있는 남궁연과 심통을 떠올리고 저항했다.
그러나 영기를 모두 다 써 버린 그는 조금씩 소용돌이로 끌려갔다.
“누님! 심 노인!”
뒤늦게 그는 목이 터져라 두 사람을 불렀다.
천역에서 안학궁까지의 거리는 대략 사 리(약 1.5 킬로미터).
이대로라면 두 사람과 생이별을 하게 될 판이다.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 가던 연적하는 나무 그루터기를 잡고 매달렸다.
“누니임-!”
애타는 그의 심정과 달리 두 발이 지면에서 둥실 떠올랐다.
손아귀에서도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나무 그루터기를 안고 있던 연적하의 팔이 조금씩 벌어질 때다.
“적하야!”
“공자님!”
남궁연과 심통이 바람처럼 날아왔다.
연적하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나를 잡아요!”
남궁연과 심통은 즉시 그의 양쪽 어깨에 매달렸다.
연적하는 재빨리 두 사람을 마주 안았다.
한 덩어리가 된 세 사람은 곧바로 기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휘우우우- 팟-.
세 사람을 집어삼키자마자 소용돌이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천역에 종문 고수들과 천족 원정군 지휘관들, 그리고 사천왕들이 나타났다.
기단(基壇)만 남아 있는 천문을 본 공허천왕이 젤라툼 총사령관에게 물었다.
“천문에 축성이 있어 파괴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허면 천지종의 천문은 어떻게 된 것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천문은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었습니다.”
황망한 얼굴로 서 있던 젤라툼 총사령관이 벨 소니아 총참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물의 토벌이 끝났을 때 프리타 키아나가 찾아왔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천문에 창조신의 축성이 깃들어 있어 천계로 가지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급히 천뢰종의 천문으로 실험을 하고서야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천문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광명진천이 대종사의 음모를 알려 왔을 때 내심 안도했다.
그럼에도 대종사의 압박에 동참한 것은 대종사가 너무도 뛰어나서다.
그는 천족이 인간보다 우수함을 부정한 존재였다.
점입가경으로 광명진천은 그가 하계(下界)의 인간이라 했다.
천족보다 열등한 하계의 인간이 이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게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족 원정군을 이끌고 원덕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벨 소니아 총참모가 거들었다.
“공허천왕님, 천문에 창조신의 축성이 깃들어 파괴할 수 없음은 저희가 천뢰종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공허천왕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런데 왜 천지종의 천문이 사라졌느냐 말이다! 너희 눈에는 기단만 남은 것이 보이지 않느냐!”
공허천왕의 역정에 벨 소니아 총참모는 지은 죄도 없건만 고개를 숙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공허천왕과 북명천왕, 광욕천왕은 다른 종문의 천문이 멀쩡한지 봐야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일곱 종문의 존자들도 자신들의 천문을 확인하러 말도 없이 사라졌다.
젤라툼 총사령관이 벨 소니아 총참모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천지종의 천문만 사라진 것 같은가? 아니면…….”
젤라툼 총사령관은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던 벨 소니아 총참모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대종사라해도 그 짧은 시간에 구주의 천문을 깨뜨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역시 그렇겠지?”
젤라툼 총사령관은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냈다.
성물이 사라진 지금 천문은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이 세계는 그저 짐승처럼 약육강식만 남게 될 터였다.
문득 대종사의 호통이 떠올랐다.
-범천 욕계의 질서 어쩌고 하지만 실상은 그저 탐욕에 눈이 먼 거지? 존자들은 너희가 왕 노릇 하고 싶고! 천족은 너희보다 뛰어난 인간을 인정하기 싫고! 너희 사천왕들은 창조신의 생령을 뺏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 광명진천! 뱀처럼 간교한 노괴야! 너희들은 영원히 범천 욕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알아? 너희들은 구제불능이라고!
‘설마, 아니겠지.’
젤라툼 총사령관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의식적으로 떨쳐 내려 했지만 대종사의 마지막 말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다녔다.
***
산서성.
교구현.
영후촌 풍지산.
휘우우웅-.
풍지산 협곡에 보이지 않는 기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휘몰아쳤다.
이윽고 소용돌이는 한 덩어리 사람을 토해 낸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적하와 남궁연, 그리고 심통이 자갈밭 위에 툭 떨어졌다.
철퍼덕-.
아랫배로 전해지는 충격에 남궁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다행히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은 이내 사라졌다.
그녀는 손등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주위를 살폈다.
어딘지 눈에 익은 풍광이다.
잠시 후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아!”
놀랍게도 자신이 있는 곳은 풍지산이었다.
폭포와 검은 양이 매어져 있던 말뚝까지, 분명 팔황신모가 제사를 지내던 풍지산 협곡이다.
녹음이 짙은 숲을 보니 계절은 여름 같았다.
구주도 여름이었으니 강호와 구주의 시간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년 정도 지났으려나?’
구주에서 보낸 시간이 그 정도니 시간의 흐름이 비슷하다면 그래야 맞다.
잠시 후 연적하와 심통이 차례로 눈을 떴다.
“끄응! 누님? 괜찮아요?”
“응, 너는 좀 어때?”
“영기를 다 써서 사지에 힘이 안 들어가지만, 괜찮아요.”
말과 함께 연적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비틀거리자 심통이 그를 부축했다.
연적하의 다리가 마치 중병을 앓고 일어난 사람처럼 후들거렸다.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던 남궁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닥을 보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아. 팔황신모는 풍지산을 떠난 걸까?”
연적하가 급히 바닥을 살피니 과연!
피와 재에 알록달록 물들었던 계곡의 자갈들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기력을 회복한 세 사람은 팔황신모부터 만나 볼 생각에 선녀암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선녀암은 비어 있었다. 심통이 덜렁거리는 신당의 문을 손으로 툭 치며 말했다.
“이거 꽤나 오랫동안 관리를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문짝도 덜렁거리고, 마구간도 부서져 있네요. 산을 내려간 뒤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 봅니다.”
부엌에서 나온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궁이와 살림 도구를 보니 하산한 뒤로 다시 오지 않은 게 분명해. 산을 내려가면 알겠지. 팔황신모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왜요? 찾아서 복수라도 하게요?”
연적하가 웃으며 묻자 남궁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팔황신모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모를까? 굳이 찾아서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럴 몸 상태도 아니고. 너는 어때? 찾아서 복수하고 싶니?”
“저도 별로예요.”
연적하의 말에 남궁연이 피식 웃었다.
묻지 않아도 그의 심정이 어떤지 알 것도 같았다.
왕들의 하늘에서 겪은 기괴한 일에 비하면 팔황신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녀암을 들쑤시며 다니던 심통이 신당 앞의 쪽마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야아! 막상 돌아오니 왕들의 하늘에서 겪은 일들이 꿈만 같네요. 공자님은 그렇지 않습니까?”
“왜? 벌써부터 심 진인 시절이 그리워?”
“어이쿠! 그럴 리가요. 다시 갈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안 갈 겁니다.”
심통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린 듯한 구주(九州)의 산과 바다처럼 넓은 강은 신비했지만, 사람이 살 곳은 못 됐다.
구주에서는 강호를 그리워했지만, 강호에 온 지금 구주가 그립지 않았다.
멀리서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주의 끔찍한 야수를 보다가 산새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다 푸근했다.
연적하가 남궁연을 돌아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럼 석경장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 집에 가자.”
남궁연은 산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두 손으로 받치며 돌아섰다.
조금 전부터 아랫배가 꼬이듯 살살 아파 오는 게 영 불안했다. 아직 산달은 아니지만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