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2
782회. 아무런 관계도 아님을 사천 무림과 천지신명께 고하겠소
사천성.
청성산.
술시 초(오후 7시).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을 때 청성파의 산문 앞에 작은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이윽고 마차 문을 열고 연적하와 남궁연이 내렸다.
그사이 마부석에서 뛰어내린 구천노도 심통은 산문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산문의 경비를 맡고 있던 두 명의 도사가 자연스럽게 길을 막았다.
무학 도사가 다가오는 염소수염의 노인에게 말했다.
“멈추십시오. 향화객은 신시 말(오후 5시)까지만 입산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향화객이 아니네. 가서 장문인께 석경장의 연 장주께서 장문인을 뵈러 왔다고 고하게.”
“혹, 남직례성에 있는 그 석경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네.”
그 말에 깜짝 놀란 무학 도사는 급히 함께 있던 사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손님들을 등운정으로 모실 테니 장문인께 고하거라.”
“예.”
정학 도사가 바람처럼 산 위로 달려 올라갔다.
잠시 후 연적하와 남궁연이 다가오자 무학 도사는 급히 인사를 올렸다.
“연 장주님, 저는 청성파의 삼대제자 무학입니다. 장문인께서 나오실 때까지 제가 잠시 모시겠습니다.”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학 도사는 연적하 일행을 등운정으로 안내했다.
연적하 일행이 등운정에 있은 지 일각(15분)쯤 되었을까?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이 장로들을 이끌고 등운정으로 나왔다.
원양 진인은 연적하 일행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알은체를 했다.
“허허허! 이게 얼마 만입니까? 두 분이 성혼했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찾아가 축하했을 텐데, 석경장에 자리를 잡은 뒤에야 알았지 뭡니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축하드립니다.”
물론 입에 발린 소리다.
당시 연적하와 남궁연의 혼인은 강호의 화제였다.
다만 친분이 없는 데다 거리까지 멀어서 찾아가지 않은 것뿐이었다.
연적하는 원양 진인이 친한 척하자-자신의 기억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이 청성파에 온 것은 단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일 뿐이니까.
“장문인께서 이렇게 환대해 주시니 고맙네요. 제가 청성파에 온 것은 한 가지 청이 있어서예요.”
연적하의 말에 원양 진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연적하가 사천무림과 전쟁을 벌인다고 통보하기 위해 온 줄로 알았다.
청성파는 사천성에 있지만 사천무림보다 호천맹 쪽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
사천무림에 연적하의 경고를 전한 것도 청성파다.
‘흠! 이번 전쟁에서 빠지라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인가 보군.’
원양 진인은 잠시 고민했다.
천지맹 시절에 잠시지만 연적하 부부와 동고동락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청성파는 사천성에 있는지라 사천무림에서 완전히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무슨 청인지 모르겠으나 청성파는 사천성에 있는지라……. 사천무림의 일을 방관할 수만은 없소.”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사천무림과의 싸움을 앞두고 청성파에 뭔가 부탁하려는 게 아니었소?”
“아닌데요? 그깟 사천무림이랑 싸우는 데 부탁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
원양 진인이 황망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깟 사천무림’이란다.
사천무림의 힘은 강남무림을 상회한다.
강남무림의 맹주 격인 남궁세가가 지금까지 말씨름만 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그깟이라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다.
‘연적하의 무위는 십대고수에 조금 못 미치는데……. 저 자신감은 대체.’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연적하의 말을 젊은 고수의 치기로 생각해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허면 청이란 무엇이오?”
“청성산에서 천제(天祭)를 지냈으면 해서요.”
예상 밖의 말에 원양 진인은 눈만 끔뻑일 뿐 가타부타 말하지 못했다.
지금 연적하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천제는 실로 엉뚱한 소리였다.
“혹 제사를 빌미로 청성파와 연 장주의 친밀함을 과시하려는 것이오? 말씀드렸다시피 청성파는 사천성에 있어 사천무림의 뜻을…….”
“저어, 장문인? 왜 자꾸 혼자 앞서 가세요? 사천무림을 상대하는 데 다른 세력의 도움은 받지 않아요.”
“그 말씀은 설마 석경장이 단독으로 사천무림과 싸우겠다는 뜻이오?”
원양 진인은 슬쩍 십전무후 남궁연을 보았다.
그녀의 능력이 아무리 하늘에 닿았어도 사천무림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을 텐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해산을 앞둔 것 같은데…….’
아무리 남궁연이 뛰어난 지략가라 해도 저 몸으로는 사천무림과 싸울 수가 없다.
“맞아요. 석경장 단독이에요.”
연적하의 대답에도 원양 진인은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옆에서 무심한 얼굴로 듣고 있던 심통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장문인, 우리 연 장주님은 강남무림의 도움도 받지 않으실 겁니다.”
원양 진인이 깜짝 놀란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 장주, 그 말이 사실이오?”
“맞는데요? 뭘 그렇게 놀라세요? 사람 무안하게.”
“험, 실례했소. 이건 한때 연 장주와 천지맹에 몸담았던 인연으로 드리는 말씀이오만. 강남무림도 사천 무림을 건드리지 못하는데 석경장이 홀로 싸우겠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하오.”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내가 청성파에 바라는 건 하나뿐이에요. 천제를 지낼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어요.”
잠시 생각하던 원양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연 장주가 단지 석경장의 주인이라면 거절했을 것이오. 때가 때인지라 석경장과 나란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아서요. 허나 연 장주는 석경장의 장주 이전에 무당파의 제자요. 도우(道友)가 천제를 지내겠다면 돕는 것이 마땅하 다 생각하오. 허나 말씀드린 대로 청성파는 천제까지만 석 장주를 돕겠소. 우리의 관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사천무림에 통보할 것이오. 그래도 청성파에서 천제를 지내시겠소?”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끝까지 원양 진인은 자신이 청성파의 명성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청성파는 내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라도 얹으시면 안 돼요. 장문인께서는 이 시간 이후로 그렇게 하겠다고 약조해 주세요.”
그러자 내친김에 원양 진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약조하리다. 우리 청성파는 연 장주와 아무런 관계도 아님을 사천무림과 천지신명께 고하겠소.”
그는 이참에 연적하와의 관계를 정리함으로 청성파의 입장을 확실하게 천명했다.
그리고 미안했던지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도우로서 연 장주의 천제만큼은 확실하게 도와 드리겠소.”
“아! 천제와 관계해서 한 가지 더 부탁 좀 드릴게요.”
“무엇이 더 필요하시오?”
“천제는 나 혼자 지낼 건데요, 그동안 남궁 누님이 지낼 만한 곳을 만들어 주세요.”
“천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내시려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길어야 며칠?”
“알겠소. 남궁 부인의 숙소는 천제를 지내는 근처에 준비해 두리다. 그런데 천제는 어디서 지내기를 바라시오? 상청궁, 천사동, 건복궁 등에 제단이 있소만.”
“좀 한적한 곳이 좋겠는데, 다른 곳에는 없어요?”
“청성산의 주봉인 노소정 정상에 잘 사용하지 않는 노천제단(露天祭壇)이 있소.”
말이 좋아 노천제단이지 그냥 바위 따위로 단을 쌓아 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연적하는 노천제단이 마음에 들었다.
“노소정에 있는 노천제단으로 할게요.”
“음, 노소정의 노천제단으로 정하시겠다면 남궁 부인의 거처로 상청궁의 별궁을 내드리리다.”
“참! 아이를 잘 받는 의원이나 산파가 근처에 있나요?”
“출산을 도와줄 사람은 없소. 인가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서…….”
“그럼 의원이나 산파를 며칠 고용해야겠네요. 심 노인?”
“예.”
“가까운 마을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의원이나 산파를 모셔 와. 그리고 별궁에서 누님과 함께 며칠 동안 함께 지내게 해. 사례비를 넉넉하게 챙겨 주겠다고 하면 싫어하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원양 진인은 마치 연적하의 하인처럼 구는 심통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강호에서 구천노도 심통의 명성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기이한 광경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원양 진인이 슬쩍 운을 뗐다.
“연 장주, 천제는 언제쯤 지내면 좋겠소?”
“내일 아침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어요.”
“허! 내일 아침에 지내는 것은 무리요. 아무리 간략하게 지낸다 해도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니, 정오에 지내는 것으로 하십시다.”
“그러죠. 정오까지 노소정 정상으로 가면 되나요?”
“제사 준비는 우리가 해 둘 터이니 연 장주께서는 몸만 오시면 되오. 참, 어느 천신께 제사를 드릴 생각이시오?”
“구천현녀요.”
“천제를 천존(天尊)이 아니라 구천현녀에게 지낸다는 말씀이오?”
원양 진인이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천제’란 말 그대로 ‘하느님에게 올리는 제사’다.
물론 구천현녀 역시 도교의 신 중에 하나지만 천제는 과하다 할 수 있었다.
“왜요? 구천현녀에게 천제를 지내면 안 된다는 법이 있어요?”
“솔직히 구천현녀가 하느님은 아니지 않소?”
“그럼 굳이 천제라고 하지 말고 구천현녀에게 제사를 지낸다 정도로 하죠.”
“제사를 준비할 도사들을 생각하면 그러는 게 낫겠소. 천제가 아니라 구천현녀께 올리는 것으로 하십시다.”
그렇게 제사의 종류까지 확정 지은 뒤에 원양 진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연적하와 오래 앉아 있어 봐야 세간의 오해만 살 뿐이니 서둘러 자리를 피할 생각이다.
“상청궁의 별궁은 자운산인이 와서 안내를 해 드릴 것이오. 그가 올 때까지 잠시 등운정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계시구려.”
배웅을 위해 연적하와 남궁연, 심통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원양 진인은 ‘먼 길을 왔으니 그냥 쉬고 계시라’며 재빨리 떠나갔다.
멀어져 가는 원양 진인을 보며 연적하가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와아! 청성파 장문인인데 무림 말학의 배웅도 마다하고 훌륭하신 분이네.”
그러자 강호에서 닳고 닳은 심통이 한마디 했다.
“훌륭한 게 아니라 얍삽한 겁니다. 공자님과 엮이기 싫어서 저러는 겁니다.”
“쯧쯧!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왜 그렇게 매사를 배배 꽈서 봐? 우리가 녹림 출신이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 주자. 강호는 구주가 아니야. 원양 진인의 진심을 왜곡하지 마. 제 말이 맞죠? 누님?”
연적하가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자 남궁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소문이 날까 봐 피하는 모습인데 무슨 진심을 봤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왜요?”
“으응? 배가 아파서 그래. 답답한지 아기가 발길질을 막 하네?”
“답답해도 조금만 참으라고 해요. 곧 세상 밖으로 나올 테니까.”
보다 못한 심통이 끼어들었다.
“배 속의 아기도 공자님이 답답해서 그러는 겁니다.”
“장가도 안 가 본 심 노인이 뭘 안다고 그래? 장가도 안 가면 애라고 그러더라.”
그 말에는 심통도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연적하는 자신이 단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었다.
무공은 물론 삶에 있어서도 말이다.
찻물이 미지근해지다 못해 차갑게 식을 즈음, 자운산인이 제자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빈도(貧道)는 귀빈들의 안내를 맡은 자운산인이라 합니다. 별궁의 청소를 지시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어서 와요. 나는 연적하. 이쪽은 내 처인 남궁연, 그리고 저쪽은 심통.”
자운산인은 연적하가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치자 자운산인이 정중하게 말했다.
“이제 별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 남궁연, 심통은 어미 오리를 따라가는 새끼들처럼 자운산인의 뒤를 따랐다.
본래 자운산인은 귀빈들을 모실 때마다 청성파의 소개를 늘어놓았지만, 오늘은 조용했다.
십전무후로 알려진 남궁연 앞에서 괜히 말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연적하 일행이 상청궁 별궁에 도착한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자운산인이 물러가자 연적하가 투덜거렸다.
“와아! 뭐 이러냐? 배고픈데 누구 하나 저녁 먹었냐고 묻지를 않네? 친하지도 않은데 먼저 밥 달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