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6
786회. 순천자(順天者)와 역천자(逆天者)
청성파.
상청궁 별궁.
별궁 위의 밤하늘이 마치 암석에 균열이 간 것처럼 길게 갈라졌다.
뜻하지 않은 기사(奇事)에 놀란 구천노도 심통이 호들갑을 떨었다.
“공자님! 저거 보이십니까? 저게 뭡니까? 지금 하늘이 갈라지고 있는 게 맞습니까?”
“나도 봤어. 조용히 좀 해.”
그래도 심통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정말 저게 업(業)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까? 업이 눈에 보입니까?”
“아, 진짜. 정신 사납게 구네. 아직 시작도 안 했구만 벌써부터 그러면 어떻게 해?”
“시작도 안 했다고요? 지금 저걸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저건 전조(前兆)에 불과해. 범천 욕계의 의지는 아직 실체화되지도 않았다고.”
“범천 욕계의 의지는 또 뭡니까?”
“범천 욕계의 질서를 지키려는 신의 의지래. 업이 범천 욕계의 질서에 속해 있어서 저러는 거야.”
연적하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이 아기에게 넣어 준 메누아의 원신(原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섣부른 추측과 오해를 피하려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나을 터였다.
그걸 모르는 심통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업이 무서운 거군요.”
심통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연적하는 영기에 집중했다.
구천현녀가 이마에 징표까지 남겨 주었지만 은근히 긴장이 됐다.
현세에 돌아온 뒤로 어딘지 굼뜨던 영기가 영활하게 움직였다. 구주에 있을 때처럼 영기를 다스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친김에 영기로 대주천을 마친 연적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회복된 것은 영기만이 아니다.
검령을 금제하던 힘이 사라졌는지 구천검령의 투기도 느낄 수 있었다.
“심 노인.”
“예?”
“별궁을 지켜 줘.”
“어디 가시게요?”
연적하의 손가락이 갈라진 밤하늘을 가리켰다.
곧이어 그가 운종술을 쓰자 그의 발밑에서 하얀 구름이 피어올랐다.
“심 노인! 아무도 별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그 말을 끝으로 연적하는 구름과 함께 별궁 위로 날아올랐다.
심통은 즉시 금강저를 뽑아 들고 별궁 앞에 마치 사천왕상처럼 버티고 섰다.
별궁 위로 날아 올라간 연적하는 기경팔맥에 깃들어 있던 구천검령을 불러냈다.
고오오오-.
거대한 여덟 자루의 검이 밤하늘 위에 나타났다.
‘응?’
오랜만에 구천검령을 본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구천검령은 본래 은은한 빛을 발했는데 그 빛이 이전과 약간 다른 느낌이다?
이전에도 신비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상서로운 기운이 더해져 있었다.
‘뭐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천검령이 흡족해하니 나쁜 일은 아니리라.
‘별궁을 중심으로 팔방(八方)이라고 했겠다!’
연적하의 의지에 따라 여덟 개의 구천검령이 팔방으로 흩어졌다.
쿠쿠쿠쿵-!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별궁 주변에 여덟 개의 구천검령이 박혔다.
흡사 여덟 개의 거검이 별궁을 둘러싼 형세다.
무려 십 장(약 30미터)에 달하는 구천검령은 찢어진 밤하늘만큼이나 기괴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한 소리에 청성파 도사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도사들은 미증유의 기운을 느끼고 부랴부랴 전각 밖으로 나갔다.
상청궁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피던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처음에는 뭘 잘못 본 줄 알았다.
‘별궁 자리에 누가 저런 기둥을 세웠지?’ 하며 위쪽을 올려다보던 그가 굳었다.
별궁이 가려질 정도로 거대한 기둥은 검이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것 같았다.
검신에 시야가 가려 모두 셀 수는 없었지만 얼핏 봐도 여러 개다.
별궁보다 큰 검에 놀란 그를 기함하게 한 것은 찢어지는 밤하늘이다.
‘헉! 하늘이 찢어지고 있다니!’
과장이나 비유가 아니다.
별궁 위쪽의 밤하늘에 균열이 가 있었다.
밤하늘에 생긴 균열은 보고 있는 중에도 계속해서 커졌다.
자신을 놀라게 한 미증유의 기운은 균열 저편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에게만 보인 환각은 아닌지 멀리서 임박한 위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땡! 땡! 땡! 땡! 땡!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던 원양 진인은 애검을 찾아 들고 별궁으로 달려갔다.
그의 뒤로 무장한 청성파 장로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따라붙었다.
기이한 일의 중심지인 별궁으로 가던 원양 진인의 앞을 구천노도 심통이 막아섰다.
“멈추시오. 연 장주님께서 누구도 별궁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소.”
원양 진인이 기막힌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청성파의 지존인 자신마저도 청성파의 별궁에 갈 수가 없다니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
“나는 청성파의 장문인이오. 청성파에서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나는 연 장주님의 지시에 따를 뿐이오.”
심통의 막말에 발끈한 원양 진인이 한마디 하려 할 때다.
꾸아아아-!
귀청을 찢는 소리가 별궁의 하늘에서 들려왔다.
순간 청성파 도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풀썩 주저앉았다.
‘헉! 이 무슨…….’
원양 진인은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지만 팔과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버둥거리던 원양 진인은 문득 심통이 떠올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심통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었다.
‘허어!’
탄식하던 그는 차츰 힘이 돌아오자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그건 다른 청성파 도사들도 마찬가지였던지 하나 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구천노도. 지금 별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오?”
심통이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보다시피 사악한 기운이 몰려와 우리 연 장주님께서 막으러 올라가셨소.”
“연 장주가 올라갔다는 거요?”
원양 진인과 청성파 장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밤하늘을 향했다.
눈에 힘을 주고 보니 그제야 밤하늘에 하얀 구름 한 덩이가 보였다.
놀랍게도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은 연적하였다!
원양 진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정심신주(淨心神呪)의 진언이 흘러나왔다.
“태상태성께서는 한곳에 머물지 아니하시고[太上太星 應變無停]…….”
사람이 어찌 구름을 타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다 생각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듣고 사지에 힘이 쪽 빠진 것부터가 영 수상쩍었다.
그런데 정심신주를 다 외웠음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원양 진인은 청성오수 중에 하나인 적운산인의 팔을 툭 건드렸다.
“저 별궁의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이는가?”
“예, 연 장주가 아닙니까?”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연 장주가 맞는가?”
조금 전 장문인의 정심신주를 들었던 적운산인이 씁쓰름한 얼굴로 답했다.
“저도 몇 번을 다시 봤지만 연 장주가 맞습니다. 연 장주가 무당파의 제자이니 도가의 술법을 쓰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소?”
적운산인이 심통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심통은 마치 자신이 그런 절기를 펼쳐 보인 듯 기세등등한 얼굴로 답했다.
“맞소. 연 장주님께서 쓰고 있는 저 술법의 이름은 운종술이오.”
“운종술…….”
원양 진인은 가만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연적하의 나이에 구름을 부리는 술법이라니 기가 막히면서 한편으로 부러웠다.
그때 균열이 더욱 벌어지더니 거대한 뭔가가 현세로 한 걸음 내디뎠
검붉은 발을 따라 올라가던 원양 진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떠졌다.
“아, 아수라(阿修羅)?”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그것은 틀림없는 아수라였다.
별궁보다 큰 아수라에 비하면 연적하는 너무도 작았다.
싸움은커녕 아수라가 입바람만 훅 불어도 천 리 밖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연적하가 아수라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범천 욕계의 질서가 아수라의 형상으로 나타났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수라가 입을 열자 하늘과 땅이 울렸다.
“연적하. 물러서라. 너는 구천 하늘의 수행자면서 순리를 거스르려 하느냐?”
청성파 도사들은 아수라의 음성에 담긴 무상의 권위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연적하는 오히려 턱을 치켜 세웠다.
“무슨 개소리야? 아버지가 자식을 지키는 거야말로 순리잖아!”
“인간의 정에 눈이 멀어 순리를 거스르려 하다니!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아남지만 이를 거스르면 망한다[順天者存逆天者亡]’는 말을 알지 못하느냐? 역천자는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
“아버지가 자식을 지키겠다는 게 왜 역천이냐고?”
말이 통하지 않자 아수라는 들고 있던 활시위를 당겼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 보주(寶珠)를 들어 올리자 벼락이 쏟아져 나갔다.
쉬이익-.
번쩍-.
연적하는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 화살과 벼락을 피했다.
아수라의 또 다른 손에 들려 있던 검이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연적하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슈아악-!
조금 전까지 연적하가 타고 있던 구름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뒤로 물러난 연적하는 급하게 밀린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세 명의 신들과 싸우는 것 같았다.
아니 한 몸이라 그런지 여섯 손의 합공은 세 명의 신들보다 뛰어났다.
왜 구천현녀가 구천검령으로 상대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연적하는 즉시 신맥에 깃들어 있는 붉은 검을 불러냈다.
고오오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붉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막 짓쳐들어 가려던 아수라는 붉은 검을 보고 황급히 상체를 뒤로 뺐다.
“신살검(神殺劍)이라니! 이제 보니 너는 역천자의 길을 걷고 있었구나!”
“개방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
물러나는 듯하던 아수라가 가슴을 쫙 펴고 포효했다.
“그것이 너의 뜻이라면 전심전력으로 상대해 주마! 역천자여! 지옥으로 가라!”
이윽고 아수라는 활시위를 당기고, 보주와 검을 현란하게 휘둘렀다.
쐐애애액-!
꽈르르릉-!
쉬익-!
전광석화가 따로 없었다.
여섯 손의 움직임은 보기만 해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했다.
사방천지가 화살과 벼락과 검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구주에서 세 명의 신들(사천왕)과 싸웠던 연적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발밑에 다시 구름이 뭉쳤다.
연적하는 구름을 타고 화살과 벼락과 검 사이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근두운을 탄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 같았다.
연적하에게 공격을 퍼붓던 아수라가 멈칫했다.
허공중에 고요히 떠 있던 붉은 검이 시야에서 사라진 까닭이다.
뒤늦게 이상을 눈치챈 아수라의 머리들이 사방팔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주위에 붉은 검은 없었다.
왠지 불안해진 아수라는 빨리 원신을 되찾아 갈 생각에 별궁으로 목표를 바꿨다.
아수라는 즉시 별궁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팔방에 세워진 구천검령의 기운이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수라는 주먹과 검으로 구천검령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쿵! 콰앙-! 채앵-!
아수라의 거친 공격에 청성산은 물론 별궁 주변의 전각들까지 들썩거렸다.
그러나 정작 별궁은 별세계에 있는 것처럼 홀로 고요했다.
아수라는 방법을 바꿔 별궁 옆에 내려섰다.
때려도 부서지지 않으니 차라리 손으로 구천검령을 뽑아내려는 것이다.
구천검령의 손잡이를 잡아가던 아수라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반짝-.
붉은 검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대경실색한 아수라는 활시위를 당기고, 보주와 검을 치켜세웠다.
콰자자자작-!
화살은 튕겨 났고, 보주의 벼락도 붉은 검의 방향을 틀지 못했다.
튕겨 난 화살 하나가 전각에 떨어지자 전각이 왈칵 허물어졌다.
허물어진 전각에 잠깐 한눈을 팔던 원양 진인이 다시 아수라를 보았다.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 붉은 검에 아수라의 몸통이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원양 진인과 청성파 제자들 앞으로 부러진 검편(劍片) 하나가 ‘툭!’ 떨어졌다.
철그렁-.
원양 진인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토막 나 나뒹구는 검편만 해도 청성파의 대문 한 짝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