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7
787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몰라?
반토막 난 아수라의 시체와 부서진 검편들이 검은 안개로 화해 사라졌다.
츠츠츠-.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사를 숨 죽인 채 지켜보았다.
아수라는 사라졌지만 연적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길게 찢어진 밤하늘 사이로 또 뭔가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청궁만큼이나 거대한 그것은 언뜻 부처를 연상케 했다.
목에 걸려 있는 백팔 개의 염주를 보면 누구라도 부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목을 감고 있는 구리 뱀과 손에 들고 있는 삼지창은 부처와 거리가 멀었다.
원양 진인과 청성파 제자들이 거인의 정체를 두고 고민할 때다.
거인의 이마 정중앙에 있던 세 번째 눈이 천천히 열렸다.
번쩍-.
세 번째 눈에서 쏟아져 나온 안광을 본 원양 진인과 청성파 제자들이 픽픽 쓰러졌다.
안광을 보고도 기절하지 않은 사람은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뿐이었다.
삼목(三目)의 거인이 연적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가련한 인간이여! 네가 우주의 질서를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관심 없어.”
“업(業)은 인간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 너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우주의 질서가 파괴될 것이다. 그 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난 그런 거 몰라.”
“이기적인 줄만 알았더니 무책임하기까지 하구나!”
무책임하다는 말에 연적하가 발끈했다.
“내가 이기적인 건 사실이지만 무책임하지는 않아! 무책임한 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자기 자식을 지키겠다는 게 왜 무책임한 거야?”
“자기 혈육을 위해 대의(大義)를 저버리는 행동보다 무책임한 것이 어디 있느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몰라? 가정이 우선이라고!”
삼목의 거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네 뜻은 알겠으나 나는 범천 욕계의 질서를 관장하는 자. 끝내 네가 범천 욕계의 질서를 거스르겠다면 멸하는 수밖에 없다. 선택해라. 삶이냐? 죽음이냐?”
삼목 거인의 말에 연적하가 냉소를 쳤다.
“흥! 내 자식의 원신(原神)을 빼앗아 가려면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거야.”
그러자 삼목 거인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면 죽어라!”
삼목 거인이 들고 있던 삼지창을 휘둘렀다.
우렛소리와 함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번개가 쏟아져 나왔다.
우르르릉-! 번쩍-.
절체절명의 순간, 거대한 붉은검이 연적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꽈과과과과광-!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백광(白光)이 작열했다.
번개가 모두 소멸하자 연적하는 검결지로 삼목 거인을 가리켰다.
“가라!”
번개와의 충돌로 시뻘겋게 달구어진 구천검령이 삼목 거인을 향해 날아갔다.
이윽고 붉은 검과 삼목 거인의 삼지창이 맞부닥쳤다.
카카카캉-!
맞닿은 붉은 검과 삼지창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기세등등하게 날아가던 붉은 검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양에 차지 않았던지 삼목 거인이 목에 두르고 있던 구리 뱀을 집어 연적하에게 내던졌다.
캬아아아-.
칠 장(약 21미터)이나 되는 크기의 구리 뱀이 독아(毒牙)를 치켜세운 채 연적하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연적하는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왼손 검결지를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그었다.
순간 허공에서 천둔검이 나타나 구리 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직-!
그러나 아쉽게도 천둔검은 구리 뱀의 머리를 관통하지 못하고 찍어 누르는 데 그쳤다.
천둔검이 머리를 찍어 누르자 구리 뱀은 몸통으로 천둔검을 휘감고 조였다.
빠드드득-.
구리 뱀의 몸통이 잘리든지, 천둔검의 검이 부러지든지 해야 끝날 싸움이었다.
천둔검을 조종하는 연적하의 얼굴이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됐다.
지금 연적하와 천둔검은 영기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구리 뱀이 조르는 압력은 고스란히 연적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천둔검이 강해서 버티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박살 났을 터였다.
연적하가 땀을 흘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삼목 거인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 상황에서 삼목 거인의 세 번째 눈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연적하! 공포의 근원이 너를 찾아갈 터이니 절망 속에서 죽어라!”
연적하가 삼목 거인의 말에 뭐라고 반박하려는 때다.
돌연 그의 앞에 큰어머니 백미주가 나타났다.
그녀는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빠르게 다가와 연적하의 팔을 힘껏 꼬집었다.
“너는 왜 그렇게 병신처럼 서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널 괴롭히는 줄 알잖아. 똑바로 서지 못해?”
“윽!”
연적하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녀를 밀쳐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 손의 검결지로 구천검령과 천둔검을 조종해야 하는 까닭이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지금 그의 정신은 어린 시절 학대당하던 때로 돌아가 있었기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백미주가 연적하의 양쪽 어깨를 잡고 사납게 흔들었다.
“뭐가 아프다고 엄살이야! 허리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서라고! 똑바로!”
연적하의 머리가 사정없이 아래위로 덜렁거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 입술이 터졌는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백미주가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입술은 왜 물어뜯고 난리야! 손님들 보라고 자학하는 거야? 어린놈이 벌써부터 그래서 사람 되겠니? 네 엄마가 사람 구실 못했으면 너라도 잘해야 되는 거 아냐!”
“잘못……했어요…….”
한편 심통은 연적하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뻣뻣하게 몸이 굳는 것 같더니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어 댔다.
그 행동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입술까지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러고 하는 말이 ‘잘못했어요’다.
설마 연적하와 같은 고수가 사술에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한껏 움츠러든 연적하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사람이 말을 하려면 분명하게 해야지! 몇 번 말해! 남이 알아들을 수 있게 똑바로 말하라고 했어? 안 했어? 응? 대답해!”
백미주가 검지 손가락으로 연적하의 상체를 사정없이 푹푹 찔렀다.
놀랍게도 그럴 때마다 연적하의 몸에 구멍이 뚫리며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연적하의 상반신이 피에 물들자 심통은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고 날아 올랐다.
“공자님!”
그러자 삼목 거인은 목에 걸고 있던 백팔 개의 염주를 벗어 심통에게 던졌다.
휘리리릭-.
백팔 개의 염주가 포승줄처럼 심통의 몸을 휘감으려 했다. 깜짝 놀란 심통은 금강저를 뽑아 휘둘렀다.
금강저가 염주를 때리자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염주가 흩어졌다.
촤아아악-!
사방으로 흩어졌던 백팔 개의 염주 알이 사방팔방에서 심통을 에워쌌다.
길이 막히자 잠시 멈칫하던 심통은 연적하에게 금강저를 힘껏 내던졌다.
살기를 뺀 금강저는 단지 몽둥이에 불과할 뿐이다.
금강저가 연적하의 등짝을 때렸다.
퍽-!
법기에 맞고서야 정신이 돌아온 연적하는 머리를 몇 차례 흔들었다.
갑자기 큰어머니에게 학대받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연적하가 정신을 차리자 삼목 거인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이거야말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격이었다.
“이놈!”
백팔 개의 염주가 번개처럼 심통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심통은 삼목 거인에 맞서지 않고 재빨리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피했다.
백팔 개의 염주가 빈 공간을 쓸고 지나갔다.
삼목 거인이 심통을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다.
연적하가 차갑게 말했다.
“이봐! 네 상대는 나라고!”
구리 뱀에 감겨 있던 천둔검이 꺼지듯 사라졌다.
다시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든 연적하의 손에서 천산검영이 펼쳐졌다.
고오오오-.
동터 오는 새벽하늘 위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검의 화신(化身)이 떠올랐다.
검의 화신들이 삼목 거인에게 비처럼 쏟아졌다.
구리 뱀과 백팔 개의 염주가 삼목 거인의 주위를 돌며 검의 화신을 막아 냈다.
퍼퍼퍼펑! 퍼엉-!
검의 화신과 충돌할 때마다 구리 뱀과 백팔 개의 염주가 조금씩 깎여 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구리 뱀과 백팔 개의 염주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삼목 거인이 황망한 눈으로 아직도 하늘에 가득한 검의 화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하계(下界)에 범천 욕계의 영기가 이처럼 왕성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검의 화신들이 빛살처럼 삼목 거인에게 내리꽂혔다.
퍼퍼퍼퍽-.
검의 화신은 삼목 거인의 크기에 비하면 이쑤시개처럼 작았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삼목 거인조차 비명을 지를 정도로 대단했다.
“크윽!”
고슴도치처럼 변한 삼목 거인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깨졌다.
가가가각-!
삼지창을 밀쳐 내고 쾌속하게 전진 하던 붉은 검이 삼목 거인의 가슴에 박혔다.
콰직-!
순간 삼목 거인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삼목 거인은 황급히 두 손으로 붉은 검의 검신을 잡았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붉은 검을 뽑아내려 했지만 붉은 검은 오히려 더 파고들었다.
한참 동안 가슴에 박힌 붉은 검과 힘 싸움을 하던 삼목 거인이 멈칫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아기의 원신과 연결되었던 끈이 녹아 사라져 버린 까닭이다.
끈만 녹아 사라진 게 아니다.
길게 찢어졌던 하늘이-마치 상처가 치유되듯-서서히 오므라들기 시작했다.
균열이 줄어들자 힘도 덩달아 빠져나갔다.
푸욱-.
결국 붉은 검이 가슴을 관통하자 삼목 거인은 검은 안개로 화해 균열로 빨려들었다.
거짓말처럼 모든 게 사라지고 청성산에 평화가 찾아왔다.
연적하는 별궁 주위에 박아 두었던 구천검령을 회수한 뒤 앞마당으로 내려갔다.
그사이 멀리 떨어져 있던 금강저를 되찾아 온 심통이 물었다.
“공자님. 그 괴물들이 범천 욕계의 힘이었습니까?”
“응.”
“후우! 끔찍하네요. 살다 살다 그런 건 처음 봅니다. 구주에서도 못 본 걸 현세에서 볼 줄은 몰랐네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안심해.”
“끝났다고요?”
“어, 이제 괜찮을 거야.”
“그건 다시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어. 끝났어. 완전히.”
“하이고! 다행이네요. 오늘은 정말 공자님 시체를 치우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목이 부러져라 머리를 아래위로 흔드시더니, 갑자기 몸에서 피가 펑펑 쏟아지는데……. 사술에라도 당하신 겁니까?”
“내가 사술에 당할 사람은 아니지.”
“그런데 왜 그러셨습니까?”
“몰라. 갑자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 큰어머니가 나를 괴롭히는데, 이상하게 무섭기만 하고 꼼짝할 수가 없더라고.”
“그게 사술이 아니면 뭡니까?”
“글쎄. 인간이 거역하기 어려운 창조신의 명령 같은 느낌이랄까?”
“아까 그 괴물들이 범천 욕계의 창조신이라는 겁니까?”
“전혀 아니라고는 못 하지. 범천 욕계의 질서를 지키려는 창조신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것들이니까.”
“어휴! 그놈의 질서 소리. 이제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그때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청성파 제자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잠시 후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과 장로들이 쭈뼛쭈뼛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애써 거리를 두던 어제와 달리 청성파 도사들의 눈빛은 뜨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