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8
788회. 사천무림에서 발을 빼라
산파는 받아 낸 아기를 깨끗이 닦은 뒤 산모의 품에 안겨 주었다.
“제가 지금까지 수많은 아기를 받았지만 이렇게 예쁜 공주님은 처음이네요.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어쩌면 갓 태어났는데도 이렇게 이목구비가 또렷하대요?”
십전무후 남궁연은 두 팔로 아기를 보듬어 안았다.
밤새 그렇게 자신을 아프게 했건만 오히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마님. 저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만약 곁에서 마님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소개해 드릴 수는 있어요. 제가 계속 곁에 있고 싶지만 산모를 돌보는 일은 해 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요. 고생했어요. 그리고 집안일 잘하는 분으로 두 명을 소개해 주세요.”
“예, 예. 오늘 중으로 두 명을 보낼게요. 별궁에 계속 계시는 거지요?”
“적어도 보름 동안은 별궁에 머물 거예요.”
“두 명이라고 하시니 떠오르는 모녀가 있는데, 모녀는 안 될까요?”
“괜찮아요.”
“예, 오늘 오전 중으로 마님을 찾아뵈라고 할게요. 그럼 쉽네는 이만.”
산파는 남궁연에게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사흘간 뒷바라지를 하고 은자 세 냥을 받은 터라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밖으로 나온 산파가 멈칫했다.
무슨 행사라도 하는 것처럼 청성파 도사들이 별궁 앞마당에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이백여 명의 도사들이 일제히 자신을 보자 당황한 그녀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연적하가 망부석처럼 서 있는 산파에게 다가갔다.
“산모와 아기는요?”
뒤늦게 산파는 정신을 차리고 도사들의 눈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산모와 아기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님께서 아주 예쁜 공주님을 낳으셨어요. 저어, 그런데 나으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청성파 도사들이 축하한다며 몰려온 거예요.”
“아!”
그제야 산파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아침 댓바람부터 청성파 도사들을 몰려오게 만든 젊은 부부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나리. 저는 산파 일밖에 몰라서, 마님을 돌봐 줄 모녀를 보내기로 했어요.”
“그래요? 그럼 빨리 가서 그 사람들을 보내 줘요.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
“늦어도 사시 말(오전 11시)까지는 별궁으로 갈 수 있게 할게요.”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사시 초(오전 9시)이니 사시 말이면 늦은 건 아니었다.
“그러세요.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아주머니라도 다시 와야 해요. 만약에 그 시간까지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마지막 말을 할 때 연적하의 눈빛은 차가워서 산파는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예, 예.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저라도 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고생했어요. 가 봐요. 나중에라도 웃으면서 보는 관계가 됐으면 하네요.”
꽤나 뒤끝 있는 인사말이다.
산파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막 떠나려 할 때다.
이번에는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여사(女士)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공무, 현무는 행여나 연 장주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도록 여사님을 모시고 다니도록 해라.”
“예!”
청성파의 이대제자인 공무와 현무가 큰 소리로 답하며 앞으로 나섰다.
뒤이어 원양 진인은 산파와 눈을 맞춘 뒤에 말했다.
“다른 어떤 일보다 연 장주님의 약속을 우선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이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여사님은 우리 청성파의 귀인이 될 게요.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원양 진인은 보는 눈이 많아 협박은 못 하고 대신에 이를 빠드득 갈았다.
긴장한 산파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고작 산후조리를 도울 사람을 구하는 일에 왜 청성파의 윗분들까지 나서서 겁박하는지 모르겠다.
“예, 예, 집안에 길사(吉事)가 있는 흉사(凶事)가 있는 나리와의 약속부터 처리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할 게요. 어서 가 보시오.”
원양 진인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마당 끝에 보이는 문을 손으로 가리켜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던 산파가 뒤를 힐끔 보았다.
청성파 도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마당에서 뭔가를 외우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공무 도사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안토지신주(安土地神呪)를 외우고 있는 겁니다.”
“그게 뭔가요?”
“별궁을 정화해 평안해지게 만드는 주문이지요.”
“아…… 그런데 나리와 마님이 누구시기에 청성파에서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가요?”
“그런 것까지는 몰라도 됩니다. 여사께서는 약속을 지키시기만 하면 됩니다.”
“…….”
공무 도사의 단호한 말에 찔끔한 산파는 더욱 빠르게 발을 놀렸다.
청성산에서 내려간 산파는 곧바로 모녀의 집을 찾았다.
마침 일거리가 없던 모녀는 산파의 말에 서둘러 옷가지를 챙겼다.
잠시 후 두 도사와 모녀가 사라지자 산파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휴우! 귀신에 홀린 것 같네.”
지난 며칠간 소 닭 보듯 하던 도사들의 태도가 오늘 아침에 돌변한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황족은 아닌 것 같은데……. 뭐지?”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도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주문을 외워 주고, 자신에게 사람까지 붙여 주었으니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민해도 답을 얻지 못하자 그녀는 툴툴 털어 버렸다.
은자 세 냥이 중요하지 젊은 부부의 정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시월 스무닷새.
사천성 성도.
건곤문.
이른 아침, 사천무림의 일원인 건곤문에 예고도 없이 도사가 찾아왔다.
청성파의 장로 자운산인이었다.
청성파 속가제자인 문주 건곤상인 이시원이 직접 마중 나와 그를 안으로 모셨다.
객청.
이시원이 웃으며 자운산인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자운 사형, 이게 얼마 만에 뵙는 겁니까? 스승님은 무탈하시지요?”
그러나 자운산인은 화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복잡한 눈으로 찻잔에 그득한 찻물을 보기만 했다.
뒤늦게 이상을 감지한 이시원은 조용히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한참 만에 이시원이 물었다.
“사형, 스승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스승님은 건강하시다.”
“청성파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청성파도 괜찮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그건 너 때문이다.”
“저요?”
“건곤문이 사천무림의 핵심 세력 중 하나라지?”
“예. 청성파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사제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 노력을 탓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인지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사천무림에서 발을 빼라.”
“예?”
이시원이 황당한 눈으로 자운산인을 보았다.
사천무림에서 인정받기 위해 죽도록 고생했는데 발을 빼라니?
“하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사형은 제가 사천무림에 자리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까 하는 말이다. 사천무림에서 발을 빼라.”
“농담이 아니군요?”
“이건 비단 나의 뜻만이 아니다.”
“설마 스승님께서도 제가 사천무림에서 발 빼기를 원하신다는 겁니까?”
“스승님뿐이 아니다. 청성파의 은혜를 입은 제자들은 사천무림에서 발을 빼라는 장문인의 명이시다.”
“장문인의 명이라고요? 왜요? 왜 그런 이상한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이시원은 기가 막혔다.
자신이 청성파의 속가제자지만 청성파는 제자를 가르친 뒤에 거의 나 몰라라 했다.
지금까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건곤문을 키워 왔다.
그리고 사천무림에서 힘 좀 쓸 만하게 된 지금 갑자기 찾아와 발을 빼란다.
“사천무림이 석경장의 연 장주와 척을 졌기 때문이다.”
“연적하요? 녹림과 남궁세가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사형, 우리 사천무림이 힘을 합치면 녹림과 남궁세가보다 강합니다.”
“녹림과 남궁세가 때문이 아니다.”
“그럼 왜요?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사천무림에서 발을 빼라는 겁니까?”
“석경장의 연 장주다. 우리는 그가 두렵다.”
뜻밖의 대답에 이시원은 눈만 끔뻑였다.
청성오수로 알려진 사형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자운산인을 응시하던 이시원이 물었다.
“혹 그자에게 청성파의 약점을 잡혔습니까? 그래서 청성파 제자들에게 그러시는 겁니까?”
“푸후후! 청성파의 약점을 잡혔느냐고? 이 어리석은 녀석아. 우리 청성파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연 장주가 약점까지 잡아 가며 그렇게 하겠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저는 사형과 장문인의 명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천무림이 들고일어나면 석경장쯤은…….”
“사천무림이 사라진다.”
자운산인의 말에 이시원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사형이 왜 저렇게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늘이 두 쪽 나기 전까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러자 자운산인이 묘한 눈으로 이시원을 보았다.
“너, 하늘이 두 쪽 난 것을 본 적 있느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어떻게 하늘이 두 쪽 날 수가 있습니까?”
“나는, 아니 우리 청성파의 도사들은 사흘 전에 하늘이 두 쪽 난 것을 보았다.”
“허! 사형. 대체 왜 그러십니까?”
이시원은 계속된 자운산인의 헛소리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못 믿겠다는 얼굴이구나. 그럴 만도 하지. 너 사람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은 본 적이 있느냐? 나와 청성파 도사들은 연 장주가 제천대성처럼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며 아수라와 싸우는 걸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연적하가 청성파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구름을 타고 아수라와 싸웠다는 건 뭡니까?”
자운산인은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로 목을 축인 후 말했다.
“닷새 전 연 장주 부부와 구천노도 심통이 청성파를 방문했다. 제사 지내는 걸 도와 달라고 하더구나. 우리는 그가 사천무림과의 분쟁에 청성파의 명성을 이용하려 한다고 오해했다. 그러다 사흘 전 새벽에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났다…….”
자운산인은 그날 새벽 자신이 본 것을 들려주었다.
별궁 위 하늘이 길게 찢어진 것에서 시작해 삼목(三目) 거인의 눈을 보고 기절한 것까지.
“그는 무신(武神)이다. 아수라를 격살한 그의 검은 크기가 십 장(약 30미터)이나 됐다. 그런 검을 그는 무려 아홉 개나 가지고 있었다. 사천무림이 강하다고? 그의 검 한 자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게다.”
“하아! 믿을 수가 없군요. 무림의 역사에 그런 무공은 없었습니다.”
이시원은 자운산인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림의 역사는 물론 전설 속에도 그와 같은 무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시원의 태도를 본 자운산인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청성파 속가제자 이시원에게 장문인의 명을 전한다! 사천무림과 결별하라. 장문인의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이시원을 청성파에서 파문할 것이다.”
“사형?”
그제야 이시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았다.
청성파는 사천무림과 청성파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사제. 청성파 원로 모두가 장문인의 뜻에 동의했다. 너도 청성파의 제자라면 따르기를 바란다. 거부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동문의 사형제가 아니게 된다.”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내뱉던 이시원이 이를 악물고 한 자 한 자 씹어 뱉듯 답했다.
“사천무림이 중하다고 하나 어찌 사문의 의리에 비하겠습니까. 건곤문은 사천무림에서 나오겠습니다. 오늘처럼 사형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습니다.”
그제야 자운산인은 흡족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만간 나에게 감사할 날이 올 게다.”
“당가가 우리 건곤문을 찢어발기기 전에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