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
79회. 싸울 때 물불 가리는 사람도 있어?
낭인들이 음식 옮기는 걸 구경하던 연적하가 창가 자리에 걸터앉았다.
“수고했어. 저쪽으로 가.”
“아, 예…….”
적혈검 추공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보니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게 아니라 자리를 바꾼 거였다.
그래도 이만하게 끝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구석 자리에 막 엉덩이를 붙였을 때, 연적하가 불렀다.
“어이!”
추공은 급히 창가 자리로 움직였다.
“점소이 좀 불러 봐.”
“예.”
추공이 계산대 앞쪽에 서 있는 점소이에게 걸어갔다.
아까부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점소이가 황급히 다가갔다.
“여기 차를 좀 더 줘.”
“예, 손님.”
점소이가 빈 병을 들고 돌아갔다.
쭈뼛거리며 서 있던 추공은 연적하가 별말 없자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 뒤로도 연적하는 수시로 추공을 불렀다.
청채를 더 가져와라, 술을 가져와라, 탕을 데워 와라, 등등…….
그 바람에 추공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옆자리에 세워 두고 이것저것 묻기까지 했다.
추공이 붙잡혀 있자 다섯 낭인들은 식사를 마치고도 떠나지 못했다.
노을이 물들어 가는 창밖을 내다보며 연적하가 물었다.
“단체로 어디들 가던 중이야?”
“예, 남양에 일거리가 많다고 해서…….”
“무슨 일?”
“남양상방에서 낭인들을 끌어모으고 있어서요.”
“왜? 그냥 한 번에 쭉 말해. 여러 번 묻게 하지 말고.”
“아, 남양상방과 낙양의 청운관 간에 곧 싸움이 날 거랍니다. 남양상방에서는 ‘호위무사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자 청운관에서 시비를 건다’고 하고, 청운관에서는 제자들이 남양상방에서 모욕당했다는데……. 뭐, 어차피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관계없지만요.”
“남양상방이랑 청운관의 호위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게, 남양상방이 청운관 출신을 호위무사로 썼는데요. 이번에 홍방(紅制)으로 바꾸었다고 하더군요. 그 과정에서 시비가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하! 그래서 어느 쪽에 줄을 서려고?”
“남양상방에 고수가 더 많다고 해서……. 남양상방으로 가던 중입니다.”
그는 남양상방에 화산파 제자 경천 검객 이무량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공평한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청운관으로 가지 않고?”
“아닙니다. 아까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큰 잘못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그래서 일당은 얼마씩 준대?”
“열흘에 은자 한 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엄청 버는 건데 왜 ‘쌔빠지게 벌어도 만두 하나 사 먹기 힘들다’고 한 거야?”
“그냥 해 본 소리였습니다. 정말입니다.”
“아, 시비 걸려고 아무 말이나 던진 거구나?”
“예…….”
“이것도 인연인데 한 잔 받아.”
연적하가 황주(쌀이나 좁쌀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를 빈 잔에 가득 따랐다.
추공은 황송하다는 얼굴로 공손히 잔을 받았다.
추공이 술을 마시자 연적하는 그의 잔에 황주를 다시 채워 주었다.
“어이, 거기 친구들도 와서 한 잔씩 받아.”
다섯 낭인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한 잔씩 마셨다.
“난 개인적으로 ‘사해가 형제다’라는 말을 좋아해. 낭인 아저씨들은 어때?”
“예, 맞습니다. 사해가 형제지요.”
“예,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적하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남이 아니지. 그러니까 식사도 함께하고, 술도 함께 마시는 거야. 그렇지?”
“물론입니다.”
추공은 조금 이상했지만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따로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이 괴상한 사람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할 때였다.
“가서 식사들 마저 해. 우리는 먼저 일어날게.”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하여튼 잘 먹었어. 다음에 또 보자고.”
“예?”
‘잘 먹었다’는 인사에 추공이 저도 모르게 말끝을 올렸다.
“뭐야? 같이 잘 먹고 계산은 우리더러 하라는 건 아니겠지? 설마 입 싹 닦겠다는 거야? 심 노인과 나는 호구가 아니야.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려고 그러네.”
“아,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계산을 해야죠. 다음에 보자는 말씀을 하셔서 조금 놀랐던 겁니다.”
눈치 빠른 추공은 급히 분위기를 수습했다.
“꼭 날을 정해서 만나자는 건 아니야. 인연이 닿으면 또 볼 수도 있다는 거지. 아니면 남양까지 함께 갈까? 어차피 우리도 거길 거쳐 가야 하는데.”
“아닙니다. 저희는 밤을 달려가야 해서요. 실은 오늘 밤에도 노숙을 할 생각입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네. 돈을 벌려면 그래야지. 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고. 우리는 이 집에 하루 머무를 생각이거든. 여기요! 주인아저씨!”
연적하의 부름에 계산대의 주인이 쪼르르 달려왔다.
“여기 계산은 이 낭인 아저씨, 이름이 뭐야?”
말하다 말고 연적하가 추공을 힐끔 바라보았다.
“추공입니다.”
“이름 좋네. 계산은 우리 추 형제가 다 하기로 했어요. 추 형제, 맞지?”
“예, 맞습니다.”
추공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적하가 주인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 집에서 하루 묵어갈 거니까. 혹시라도 추 형제가 계산을 하지 않으면 말해요. 바로 해결해 줄게요. 여기 심 노인이 그런 거 전문이거든요.”
“예, 예.”
주인이 굽실거리며 추공과 심양각의 눈치를 살폈다.
심양각이 살벌한 눈으로 추공을 쏘아보았다.
“나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으면 계산 똑바로 해라.”
그 살기 어린 눈빛에 놀란 추공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똑바로 하겠습니다.”
그제야 연적하와 심양각은 주인을 앞세워 이 층으로 올라갔다.
낭인들에게로 돌아간 추공이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다섯 낭인 중 하나인 추풍검 동인배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추 형, 정말 저들이 먹은 걸 계산해 줄 생각이오?”
“지금 저 노인의 무공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죠?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십시일반으로 냅시다.”
“아니 씨벌, 우리가 먹은 건 만두와 소면뿐이잖소. 저 요리를 좀 보시오. 황주까지 하면 은자 한 냥은 족히 나올 것 같은데.”
“내 이름은 물론, 우리가 남양에 가는 것까지 알고 있는데, 여기서 달아나자는 말이오? 은자 한 냥이 아까워서 남양의 일자리를 포기하자고?”
추공의 말에 동인배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말마따나 은자 한 냥 때문에 남양의 일자리를 버릴 수는 없었다. 내일이 없는 낭인들 입장에서 남양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니까.
다른 낭인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하아! 갹출하는 거로 합시다. 남양에 가서 열흘만 비비면 은자 한 냥이 들어오는데. 까짓 이삼백 문 더 내는 게 대수요? 액땜한 셈 칩시다.”
다른 낭인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사지가 멀쩡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이삼백 문은 아까울 것도 없다.
잠시 후 차갑게 식은 만두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던 동인배가 물었다.
“그런데 노숙을 하자는 건 또 무슨 소리요?”
“남양까지 저들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오. 노숙을 해서라도 저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으니까. 나는 두 번 다시 저들과 만나고 싶지 않소. 으으…….”
추공이 치를 떨었다.
다른 낭인들도 공감이라는 듯 반대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연적하와 심양각은 느지막이 식사를 하고 신흥반점을 나섰다.
남양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 중에 낭인이 꽤 보였다.
관도를 따라 걷던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남양상방이면 언젠가 만났던 것 같은데. 맞지?”
“제가 입산하기 전의 일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총대주가 화산파 제자인 경천검객 이무량이라지요?”
“그래, 이제 기억이 난다. 경천검객. 내가 실수로 양쪽 팔을 자를 뻔했었지. 그때만 해도 힘 조절이 전혀 안 되던 때라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운이 좋은 사람이로군요.”
“그래도 약속은 잘 지켰던 것 같아. 다시 산채에 덤비지 않은 걸 보면.”
“공자님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입니다?”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야.”
그 말에 심양각은 푸들푸들 웃기만 했다.
연적하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순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만약 온순했다면 오봉산채의 도적들이 찍소리 못 하고 눌려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웃어? 내 말이 틀렸다는 거야?”
“아닙니다. 공자님은 얌전하신데 일단 싸움이 나면 물불을 안 가리는 분이시지요.”
“아니, 싸울 때 물불 가리는 사람도 있어?”
“흐흐, 뒷일을 걱정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싸울 때 어떻게 뒷일을 걱정해? 그런 건 싸우기 전이나 후에 해야지. 큰 형님 말씀에 싸울 때 쓸데없는 생각하면 칼 맞아 죽는대.”
“그렇기는 하지요.”
심양각은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풍연초 같은 하수들에게나 해당되는 소리다. 연적하와 같은 경지에 들어서면 그렇게 정신없이 싸울 일도 없다.
고수들이 칭송받는 건 적당한 선을 지켜 줘서다.
물론 정사파의 싸움에서는 그 적당한 선이라는 게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남양상방이 왜 갑자기 상방 호위를 갈아치운 걸까요? 관계를 맺고 있던 청운관과 싸움까지 벌이면서 그런다는 게 좀 납득이 안 가는군요.”
“알 게 뭐야. 상방이든 무관이든 우리랑은 상관없잖아?”
연적하는 옆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도 자신과 관계없으면 그냥 구경할 위인이다.
묘하게 그런 건 심양각의 평소 행동 방식과 통하는 바가 있었다.
심양각은 완전히 납득이 된 얼굴로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
방성현에서 남양까지 본래 하루면 갈 거리지만, 연적하와 심양각은 이틀이나 걸렸다.
어차피 급할 게 없다는 생각에 쉬엄쉬엄 걷다 보니 늦어진 것이다.
점심 무렵 남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일단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점을 찾았다.
심양각이 손님들로 바글거리는 만강홍이라는 식당을 가리켰다.
“공자님, 저곳으로 갈까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요리를 잘하는 집 같습니다.”
“자리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연적하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요리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연적하가 코를 벌름거렸다. 향긋한 음식 냄새가 코로 밀려오는데 방성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십 대로 보이는 점소이가 다가왔다.
“헤헤, 지금은 자리가 없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빈자리가 날 겁니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던 연적하는 귀찮아서 그냥 계산대에 기대어 섰다. 돌아선 점소이는 손님들 속을 분주하게 오갔다.
심양각은 마치 호위라도 하듯 연적하 곁에 꼿꼿하게 서서 사방을 쓸어 보았다.
상방과 무관의 싸움을 앞둬서 그런지 손님 대부분이 무림인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아무 자리나 빼앗았을 것이다.
그러나 폐인 생활을 경험한 뒤로는 그런 일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더구나 연적하의 앞에서 감히 그럴 수도 없었다.
멍하니 기다리다 보니 자연히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주요 소재는 역시나 남양상방과 청운관의 싸움이었다.
가까이에 자리한 두 낭인의 대화를 통해 심양각과 연적하는 꽤나 많은 걸 알게 됐다.
낙양에서 왔다는 두 낭인은 식사보다 떠드는 일에 더 열중이었다.
이마에 팥알 같은 붉은 점이 박힌 사내가 투덜거렸다.
“……하여간 유명교 때문에 난리도 아니라니까.”
그러자 텁석부리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 같은 낭인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나. 칠대문파야 싫어하겠지만 우리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붉은 점과 달리 텁석부리는 유명교에 대한 반감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대의를 생각하면…….”
“대의는 무슨 얼어 죽을. 솔직히 유명교가 나쁘다고들 하는데 그들이 나쁜 짓 하는 걸 본 사람도 없잖아. 정의맹에서 나쁘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과거 흑암대가 무시무시했지만 대적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니 낭인들 입장에서는 유명교나 정의맹이나 오십보백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