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1
791회. 그래서 세상이 달라졌어요?
천룡문의 대외총관 우사 황원익은 자신이 환술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연적하가 건량 꾸러미와 깔개를 사라지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환술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완벽에 가까운 환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량 꾸러미와 깔개도 근처에 있을 것 같았다.
상청궁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정도로 올라가자 기온은 더 떨어졌다.
이토록 실감 나는 환술이라니!
차가운 바람의 냄새와 허공을 딛고 선 것 같은 기이한 느낌,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다.
진짜 하늘을 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떨어지면 반드시 죽으리라.
그는 본능적으로 연적하의 팔에 매달리며 소리쳤다.
“사, 살려 주시오!”
“누가 죽인대요?”
“내가 은밀히 천룡문 문주님과 연 장주의 회합을 주선해 주리다.”
“그런 거 필요 없어요.”
“허면 나에게 뭘 바라시오?”
“몇 번을 말해요. 길 안내라고요.”
“길 안내를 할 테니 이 환술부터 풀어 주시오.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실례를 할까 봐 그러오. 내가 토하면…….”
“토해도 돼요.”
연적하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가 게워 낸 토사물은 아래로 떨어질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웁! 우웩!”
결국 황원익은 허리를 꺾으며 점심에 먹은 걸 끄집어냈다.
한참 만에 속이 진정되자 황원익은 코를 킁킁거렸다.
‘이상하군. 분명히 냄새가 나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토사물 특유의 그 시큼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개처럼 킁킁거려요?”
“분명히 내가 토했는데 냄새가 나질 않아서 그러오.”
“당연하죠. 그쪽이 토한 건 저 아래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테니까.”
말과 함께 연적하가 구름 아래를 가리켰다.
황원익의 눈이 연적하의 손끝을 따라 구름 아래로 향했다.
“헛!”
당연히 아직도 청성산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이 보였다.
어째 지형이 눈에 익다 싶어 찬찬히 주위를 살피니 민강(岷江)이었다.
민강은 청성산과 성도 사이를 세로 방향으로 가르며 흐르는 강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저건 민강이 아니오?”
“저게 민강이에요? 난 모르죠. 정신 차렸으면 방향이나 알려 줘요. 동남쪽으로 가면 된다고 해서 가고 있던 중이니까.”
“설마 지금 우리가 진짜 민강 위를 날아가고 있는 거요?”
“보면 몰라요? 당가로 가는 길이나 알려 달라니까요.”
그러자 황원익은 세차게 자기 뺨을 후려치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이건 환술일 뿐이야.”
“환술이든 뭐든 길이나 알려 달라고요. 길 안내를 하지 않으면 발로 차서 강에 처박아 버릴 거예요.”
연적하의 협박에 황원익은 고개를 아래로 쭉 빼고 지형을 살폈다.
환술이든 아니든 지금은 연적하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민강 주변을 보면 볼수록 실감 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환술이 아닌가?’
만약 이게 환술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구름을 타고 삼백 리를 단숨에 날아갈 수 있는 고수와 싸우겠다고 설쳐 댄 셈이니까.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황원익은 당장 말투부터 바꿨다.
아직 반신반의한 상태지만 기가 꺾인 탓이다.
그렇게 일다경(약 20분)쯤 날아갔을까?
속이 좋지 않은지 황원익의 얼굴에서 다시 핏기가 사라졌다.
그런 그를 힐끔 보던 연적하는 구름을 아래로 내려가게 했다.
잠시 후 관도 옆에 구름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연적하가 운종술을 거두자 순식간에 자욱하던 구름이 흩어졌다.
두 발이 지면에 닿자 황원익은 오히려 중심을 잃고 잠깐 휘청거렸다.
그는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연적하가 무덤덤한 눈으로 관도 옆에 박혀 있는 표지목을 가리켰다.
“이 앞이 만춘진이라네요. 어딘지 알아요?”
“예? 만춘진요? 정말 우리가 구름을 타고 만춘진까지 온 겁니까?”
황원익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청성산에서 만춘진까지의 거리는 백여 리(약 40킬로미터).
구름 속에 있던 시간은 길어야 한 식경(약 30분)인데 그동안 백 리를 왔다니!
“노형은 만춘진에 가 봤어요?”
“지금까지 못해도 열 번은 들른 것 같습니다.”
“그럼 가 보면 알겠네. 만춘진인지 아닌지. 속도 안 좋은 것 같은데 차나 한잔하고 가자고요.”
“예, 예.”
어느새 황원익은 상전을 대하듯 굽실거리기까지 했다.
연적하가 그런 그를 힐끔 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너무 일찍 출발했어. 노형이 하도 안달을 해서 나도 모르게 서둘렀네. 해가 지기도 전에 도착하면 안 되는데.”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녁에 방문하겠다고 했잖아요.”
“아!”
놀란 황원익을 뒤로하고 연적하는 휘적휘적 앞서 걸었다.
관도를 따라 일각(15분)쯤 걷자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서자 황원익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헉!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만춘진이라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고작 한 식경 만에 무려 백 리 길을 왔다.
그것도 구름을 타고.
다관(茶館)을 발견한 연적하가 그쪽으로 향하자 황원익은 급히 뒤를 따랐다.
고향다관(告香茶館).
용케 황원익을 알아본 다관 주인이 빠르게 다가와 허리를 조아렸다.
“대협,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연적하는 주인을 지나쳐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황원익은 주인에게 나직이 물었다.
“내가 누구요?”
“예? 천룡문의 대외총관이신 우사 황 대협이 아니십니까? 하하! 제가 그것도 모르고 있을까 봐서요?”
“아, 아니오.”
황원익은 고개를 한차례 흔들고는 급히 연적하의 맞은편으로 갔다.
주인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곳은 확실히 만춘진의 다관이었다.
연적하와 자신은 한 식경 만에 구름을 타고 백 리를 이동한 것이다.
잠시 후 주인이 차를 내왔다.
황원익은 공손히 찻주전자를 들어 연적하의 잔을 채웠다.
연적하는 갑자기 행동이 변한 그를 슬쩍 보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차로 입을 축인 연적하가 지나가듯 말했다.
“황 노형이 보는 천하는 어때요? 유명교주가 대법사가 됐다면서요? 그래서 세상이 달라졌어요?”
황원익은 감히 바로 답하지 못하고 질문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되물었다.
“달라졌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유명교 같은 사교(邪敎)가 득세해서 세상이 망했냐고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명교는 더 이상 십두마병이나 백두마군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죽은 듯이 지내서 그 이유를 궁금해 할 지경입니다.”
“죽은 듯이 지낸다고요?”
“예, 유명교주는 대법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곱 개의 교당도 공개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지 꽤 됐습니다.”
“그게 뭐야? 이전처럼 숨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자기들 세상이 됐는데 오히려 조용하다고요?”
“예. 그 이유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모두 추측에 불과할 뿐, 내막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굳이 달라진 걸 꼽으라면……. 유명교 때문에 호천맹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정도일 겁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호국의 종교가 돼서 유명교를 욕하면 금의위에 잡혀간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금의위가 나서서 보호해 주니 호천맹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셈이지요.”
“그래서 사천무림 같은 세력이 생겨난 거예요?”
“사천무림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따로 조직을 결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강남무림이 점차 남맹을 중심으로 뭉치는 바람에…….”
황원익이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남맹은 남궁세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
석경장의 일로 남맹이 압박하자 당가는 사천무림을 결성해 대응했다. 천룡문은 사천무림의 패권을 잡기 위해 동참한 상황이었다.
“사천무림을 조직해 대항했다?”
“예. 하지만 저희 천룡문은 남맹과 싸우기 위해 사천무림에 들어간 게 아닙니다. 사천 지역의 다른 문파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그래도 지금까지 남맹과 각을 세웠고, 나랑도 싸우려고 했잖아요. 그것도 아니라고 잡아뗄 거예요?”
“그, 그건 저희가 연 장주님에 대해 몰라서 그랬던 겁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면 문주님도 사천무림에서 빠지겠다고 할 겁니다.”
“사천무림에서 빠지지 않아도 돼요. 오늘 밤이 지나면 당가는 사라질 테니까. 설마 당가가 멸문당한 뒤에도 사천무림이 석경장에 시비를 걸겠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럴 것 같아요?”
“연 장주님께서 당가를 멸문시키면 사천무림은 감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겁니다.”
“아하! 진짜 그런지는 두고 보자고요.”
연적하는 무덤덤한 얼굴로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들은 당가의 복수를 하겠다고 날뛸 수도 있고, 겁을 집어먹고 납작 엎드릴 수도 있다.
사천무림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양쪽 다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니까.
단호하게 부정했던 황원익도 자신이 없는지 연적하의 눈치만 살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연적하가 말했다.
“참! 그리고 구름에서 떨어질까 봐 몸에 너무 힘주고 있지 않아도 돼요. 운종술을 펼치는 동안은 내 영기가 잡아 주고 있으니까. 몸에 힘 빼고 편안하게 있으면 멀미도 덜할 거예요.”
“아아! 그런 겁니까?”
황원익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큰 걱정이 그거였는데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연적하는 마을 밖에서 다시 운종술로 날아올랐다.
황원익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처음처럼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한 식경쯤 날아갔을까?
연적하는 길 안내에 열심인 황원익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몸에 힘을 빼고 있어서 그런지 혈색도 좋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상으로 내려가 쉬지 않 아도 되리라.
“노형. 바로 당가로 가도 되겠어요? 속이 안 좋으면 쉬었다가 갈 테니까 말해요.”
“괜찮습니다. 운종술이라는 게 정말 신기하군요.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어도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지 않네요?”
“거꾸로 날아도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거꾸로 돌려 볼까요?”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원익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을 나는 것만도 아찔한데 뒤집겠다니?
아무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건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
사천성.
간양 외곽.
당가.
신시 말(오후 5시).
활짝 열린 당가의 정문을 향해 염소수염의 노인이 질풍처럼 달려왔다.
정오에 청성산을 출발한 구천노도 심통이다.
외각 소속의 경비 무사 당위가 재빨리 몸으로 막아서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저돌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던 심통이 경비 무사 앞에서 멈췄다.
휘우우웅-.
그가 일으킨 흙먼지가 정문을 한차례 쓸고 지나갔다.
손바람으로 흙먼지를 걷어 낸 당위는 상대가 무림의 고수임을 알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은 당가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심통은 대답 대신 경비 무사를 빤히 보며 되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외각 소속의 경비 무사인 당위입니다.”
심통은 당위의 이름과 얼굴을 외운 뒤에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이것은 석경장 장주님의 편지다. 지금 즉시 너희 가주에게 전하거라.”
석경장의 이름이 나오자 경비 무사들 사이에 가벼운 동요가 일어났다.
심통은 당위가 편지를 받자 홀연히 사라졌다.
멍하니 서 있던 당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