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02
802회. 이건 내 의지야
청성파.
별궁.
북소리가 가까워지자 십전무후 남궁연은 침상에 앉은 채로 영기를 일주천시켰다.
영기가 임맥과 독맥을 따라 느릿하게 돌기 시작했다. 구주에서 모은 신령스러운 힘을 현세의 주신이 거부해서 생기는 일이다.
영기의 근원은 신(神).
구주와 현세의 주신이 다르니 영기에 제약이 따르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내부를 관조하던 남궁연이 눈살을 찡그렸다.
원영지체를 이루면서 영기와 내력이 하나가 되었는데 어느 틈에 다시 둘로 나뉘었다.
이래서는 껍데기만 원영지체일 뿐 진정한 원영지체가 아니게 된다.
마치 몸속의 시간이 뒤로 가고 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다.
‘이러다 영기가 사라질 수도 있겠는걸?’
그녀는 내력에 의식을 집중했다.
영기와 분리된 내력은 영기와 달리 눈깜짝 할 사이에 일주천을 했다.
‘응? 내력이 늘었다?’
선단이나 내단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주천만으로 내력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분리된 창조신의 생령에서 기운을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긴가민가하던 남궁연은 다시 일주천을 시작했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내력의 상태에 집중하자 과연!
놀랍게도 내력은 영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구주에서는 영기가 내력을 흡수했는데, 강호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구주는 영기를 기반으로 하고, 현세는 내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궁연은 기쁜 마음에 쉬지 않고 일주천을 했다.
그렇게 서른여섯 번이나 일주천을 하자 내력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영기의 일 할도 흡수하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응? 영기가…….’
구 할이나 남아 있던 창조신의 생령이 제 소임을 다한 것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한 번 더 운기조식을 했지만 내력은 늘어나지 않았다.
서른여섯 번의 일주천이 한계였던 모양이다.
마침내 몸 안의 영기가 다 사라지자 남궁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한순간 금석을 꿰뚫을 것 같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가 몇 번 눈을 깜빡이자 눈빛은 호수처럼 그윽해졌다.
총명한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십분 이해했다.
자신이 이룬 원영지체는 탈태환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지다.
그래서 많은 내력을 쌓았지만 신체는 그대로인 것이다.
하다못해 부공삼매(浮空三味)와 같은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력은 이미 천하십대고수를 넘어섰을 터였다.
나이를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는 성취지만 구주에서의 경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남궁연은 나지막이 ‘마하담’의 주법(呪法)을 외웠다.
역시나 영기를 근원으로 하는 주법답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아!’
영기가 사라진 건 아무렇지도 않으나 ‘공간 창고’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아쉬웠다.
그녀는 이내 마음을 비우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산파를 대신해 일을 돕고 있는 모녀가 신기한 눈으로 힐끔거렸다.
무려 한 시진(2시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앉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남궁연이 그런 모녀를 향해 말했다.
“밖이 소란스러울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방에서 나오지 마세요. 알았죠?”
삼십 대 후반의 여자는 바로 말귀를 알아들었다.
“네, 마님. 저희는 아기 곁에 있을게요.”
남궁연은 그녀에게 빙긋 웃어 보인 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 삼보절명 당운망과 월아, 금아가 모여들었다.
“어이쿠! 가모님은 안 나오셔도 되는데…….”
말과 함께 당운망이 보란 듯 가죽 장갑을 꺼내 양손에 착용했다.
독을 쓰려는 것이다.
“당 노인의 마음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별궁의 주인이 아니니 독이나 암기를 쓰지 않았으면 해요. 독에 오염된 땅을 중화시키는 문제도 있지만, 미처 회수하지 못한 암기에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운망은 군말 없이 가죽장갑을 도로 집어넣었다.
십전무후라 불리는 남궁연이 나서면 독과 암기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금의위와 백 명의 선발된 군사가 별궁에 들이닥쳤다.
남궁연을 발견한 하시진 천호가 금의위 백호들에게 명했다.
“남궁연이다! 주 백호, 금 백호, 반 백호는 나와 함께 정면으로 전진, 남궁연을 추포한다! 탁 백호는 우측으로 빠져 별궁으로 들어가라! 반드시 아기를 손에 넣어야 한다!”
“존명!”
금의위 백호들이 각자 지휘를 맡은 군사들을 이끌고 좌우로 갈라졌다.
하시진은 자신의 곁에 따라붙는 백호들에게 말했다.
“남궁연은 십전무후로 불릴 정도로 무위가 뛰어나다. 처음부터 합공으로 제압해야 한다! 연적하가 눈치채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낸다!”
“예!”
하시진은 천호인 자신과 세 명의 백호, 그리고 팔십 명의 군사면 남궁연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정도 무력이면 어지간한 문파 하나쯤은 박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남궁연이 홀로 자신들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시진이 그녀에게 짓쳐 들어가며 말했다.
“남궁 부인! 사천성 북진무사의 명으로 모시러 왔소! 결례를 용서하시오!”
그러자 남궁연이 냉소를 날렸다.
“흥! 재주가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들이 아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남궁연의 눈빛은 차가웠다.
쉬이익-.
하시진의 검이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남궁연은 눈도 깜짝이지 않고 공수입백인의 수법으로 그의 검을 낚아챘다.
그리고 빙그르르 돌며 검면으로 하시진의 등짝을 후려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시진이 달려 가던 기세 그대로 나뒹굴었다.
철퍼덕!
금방이라도 남궁연을 잡아갈 것처럼 말한 것치고는 허무한 결말이다.
연이어 남궁연은 성난 암사자처럼 세 명의 백호를 덮쳤다.
아니 어찌 보면 백호들이 순서대로 그녀의 칼 끝에 어깨를 들이미는 것처럼 보였다.
“윽!”
“큿!”
“악!”
주씨, 금씨, 반씨 성의 백호들이 어깨를 부여잡고 뒷걸음질 쳤다.
하시진이 자빠지고 세 명의 백호가 뒷걸음질 치기까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팔십 명의 군사들은 남궁연이 내뿜는 기세에 오금이 저려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후다닥 일어난 하시진은 우측으로 달려가는 탁군명 백호를 힐끔 보았다.
남궁연의 무위가 생각보다 강하니 이제 믿을 건 탁군명밖에 없었다.
그가 아기를 손에 넣으면 남궁연도 날뛰지 못할 터였다.
탁군명과 스무 명의 군사들 앞을 당운망과 월아, 금아가 막아섰다.
당운망은 반사적으로 앞을 막았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독과 암기를 쓰지 말라는 말 때문이다.
내각의 당씨들과 달리 방계인 외각의 당씨들이 배우는 무술은 대단치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병기마저 지니지 않은 상태.
결국 권각술로 금의위를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표정이 굳어 있기는 월아와 금아도 마찬가지였다.
월아와 금아가 심통에게 무공을 배웠다고 하지만 아직 어려 그 수준이 낮았다.
군사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그녀들에게 스무 명의 군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도 월아와 금아는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리를 지켰다.
한편 탁군명 백호는 속전속결을 위해 검부터 뽑아 들었다.
“살고 싶으면 비켜라!”
경고의 말보다 검이 더 빨랐다.
탁군명은 마치 눈앞에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쳐 내듯 우악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아직 어린 월아와 금아는 그 광포한 기세에 놀라 오히려 몸이 굳었다.
깜짝 놀란 당운망이 월아와 금아를 지키기 위해 막 출수하려 할 때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검 한 자루가 날아와 탁군명의 검을 쳐 냈다.
채앵-.
강력한 검기에 탁군명의 검이 뚝 부러지고, 그의 몸도 반 바퀴를 돌았다.
한순간 탁군명은 청성파의 은거기인이 간섭한 줄 알고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장내에 낯선 노도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스무 명의 천호소 군사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뒷걸음질 쳤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렸던 탁군명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들의 머리 위에 낯익은 검 한 자루가 매처럼 빙빙 돌고 있었다.
‘헉! 이기어검?’
누굴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남궁연의 검결지가 꼿꼿하게 세워져 있다.
그녀의 이기어검이라는 소리다.
‘이기어검을 저렇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
그가 알고 있는 이기어검은 방향을 살짝 트는 것으로 비도술보다 조금 나은 것이었다.
그런데 남궁연의 검은 아예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천호소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뒷걸음질 치는 것도 당연했다.
모두가 포기하고 물러날 때 탁군명은 오히려 정면으로 달려갔다.
연적하와 남궁연의 무위가 뛰어날수록 아기를 손에 넣어야 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이 남궁연의 살심을 건드렸다.
천호소 군사와 금의위에게 살수를 쓰지 않던 그녀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지 않았다.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검이 탁군명의 옆구리를 꿰어 별궁 기둥에 박아 버렸다.
“크윽!”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던 탁군명의 움직임이 점차 약해졌다.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남궁연이 부상을 입은 백호들에게 손을 뻗었다.
순간 강력한 허공섭물에 백호들은 수춘도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하늘로 솟았던 세 자루 수춘도가 별궁 가까이에 있는 천호소 군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액-!
탁군명이 당한 것을 봤던 천호소 군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공포는 전염된다.
스무 명의 군사들이 뛰자 나머지 팔십 명도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어검비행으로 날아온 연적하가 별궁 하늘 위에 도달한 것은 그때였다.
그는 가장 먼저 별궁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기둥에 박혀 있는 금의위 시체 하나를 제외하면 적은 없었다.
연적하는 금의위 앞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검을 타고 내려오는 연적하를 본 하시진 천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남궁연의 이기어검만 해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인데, 검을 타고 다니는 연적하를 보니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달아난 천호소 군사들과 달리 금의위 백호들은 자리를 지켰다.
차마 상관인 하시진을 버리고 달아날 수 없어서다.
수춘도까지 빼앗긴 금의위 백호들은 패잔병의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전부였다.
연적하가 가장 멀쩡한 모습의 금의위 앞에 내려섰다.
그는 발밑에 깔린 장사경의 보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걷어차며 물었다.
“그쪽은 누구?”
“금의위 천호 하시진이라 합니다.”
“북진?”
“예.”
“다들 외원에 진 치고 있던데 별궁까지 왔네?”
“북진무사 장 대인의 명으로…….”
하시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연과 아기를 납치하러 왔다’고 하면 연적하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명으로?”
연적하가 대답을 바라는 눈으로 빤히 보자,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남궁 부인과 아기를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부끄러운 줄은 아나 봐?”
“……상관의 명에 따랐을 뿐, 소관의 의지로 그리한 것은 아닙니다.”
“음, 상관의 명, 어쩔 수 없다 이거지? 그런데 그쪽도 동의하니까 따른 거잖아? 그게 싫었으면 금의위 옷 벗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잖아. 안 그래?”
“…….”
연적하의 말에 하시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말이 쉽지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왜 사람들이 ‘패장은 말이 없다’고 말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건 내 의지야.”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하시진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쩍!’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빛이 번쩍였다.
강풍에 휘말린 낙엽처럼 하시진의 몸이 훨훨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