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04
804회. 매 아래 장사 없다잖아요
고민에 빠진 다섯 명의 정천호들을 대신해 위지휘사 류이근이 답했다.
“그것은 혹 준비태세에 대한 말씀이 아니십니까?”
“그대의 말이 맞네. 토벌은 아군이 적보다 강하다는 생각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지. 황 정천호 역시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네. 그러니 화포가 아니라 궁병을 앞세웠던 게지.”
류이근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장군께서는 혹 이번 일에 화포를 사용하실 계획이십니까?”
화포는 궁극의 병기로 대규모 전쟁이나 공성전에서 사용해 왔다.
역도 하나를 잡겠다고 화포까지 동원한 예는 지금까지 없었다.
게다가 장소도 문제다.
유서 깊은 도관으로 명성을 천하에 떨치고 있는 청성파에 화포라니?
그러나 도지휘사 구시우는 거침이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궁병으로 잡을 수 없는 적이라면 화포를 동원해야지. 그럼 또다시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었던 활을 쏘겠다는 건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청성파의 도관에 그래도 되겠습니까?”
“청성파가 아니라 소림사라고 해도 마찬가지네. 우리는 황상이 원하시는 대로 생사 불문하고 역도를 추포하는 일에만 신경 쓰면 되네. 화포에 불타고 싶지 않으면 연적하를 내보내면 될 일이 아닌가?”
“허면 청성파에도 그와 같은 사실을 통지하실 생각이십니까?”
“연습이 아니라 실전일세. 지금까지 그런 걸 일일이 알려 준 적은 없네.”
“…….”
류이근은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도지휘사의 말마따나 화살이 통하지 않으면 화포를 동원하는 게 당연했다.
구시우가 걱정 말라는 듯 말을 덧붙였다.
“별궁이 따로 떨어져 있으니 청성파의 피해도 생각만큼 크지는 않을 걸세.”
“장군. 화포의 사용은 황실에도 부담이 될 것입니다. 혹 그 부분에 대한 언질이 있었습니까?”
“황상께서는 이번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하셨네. 이제 됐는가?”
“예. 저는 이번 결정이 훗날 장군에게 누가 될까 싶어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류이근은 도지휘사를 위하는 마음에 그런 것처럼 말했다.
구시우는 그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그랬다는 걸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넘어갔다.
***
청성파.
상청궁 별궁.
내력과 영기가 분리되는 것은 남궁연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운기조식을 마친 심통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를 감지하고 놀란 상태였다.
고민하던 그는 곧바로 연적하를 찾아갔다.
“공자님.”
심통이 슬금슬금 다가오자 아기와 놀고 있던 연적하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거기까지. 백일 전까지는 아기 옆에 올 생각도 하지 마. 무슨 일이야?”
“생판 남인 저 모녀도 아기를 돌보는데 왜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모녀는 아기만 돌볼 뿐 다른 일을 하지 않잖아.”
“그렇게 말하면 저도 청성파에 온 뒤로 산문 밖을 나간 적이 없습니다.”
“오! 그렇다 이거지? 만에 하나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심 노인이 책임질 거야? 그럼 가까이 와도 돼.”
연적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심통은 뒤로 물러났다.
아기가 아픈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서다.
“뭐 좀 여쭤 볼 게 있습니다.”
“뭔데?”
“혹시 공자님은 괜찮으십니까?”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괜찮냐는 거야?”
“구주에서 쌓은 영기 말입니다. 저는 며칠 전부터 내력과 영기가 따로 놀기 시작했습니다. 구주에서 겪었던 주화입마의 후유증일까요?”
연적하는 심통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구주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영기에 아무런 변화가 찾아오지 않아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영기가 그대로라는 말씀이시죠? 그럼 역시 그 일의 후유증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궁연이 끼어들었다.
“심 노인. 그건 주화입마의 후유증이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나도 며칠 전에 같은 일을 겪었어요.”
“헉! 가모님도요?”
“그래요. 나는 천호소의 공격을 받던 날 내력과 영기가 분리됐어요.”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력과 영기를 따로 수련해야 하나요?”
남궁연이 애잔한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기는 신령스러운 힘으로 범천욕계의 권능이에요. 그걸 이 세계의 주신이 거부해서 금제를 받고 있었죠. 적하는 구천현녀의 보증으로 금제에서 풀렸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한 상태예요. 이 세계의 주신이 영기에 중유(中有)의 기간을 준 것 같아요.”
“중유요?”
“이생이 끝나면 사십구일 후에 다음 생을 시작하죠. 그걸 중유라고 해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유예받은 날들인 셈이죠.”
“허면 사십구일 뒤에 영기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니 소멸하겠죠. 나는 이미 영기를 잃었어요.”
“예에? 가모님이 영기를 잃으셨다고요?”
심통은 가슴이 철렁했다.
제군의 경지에 있던 남궁연이 영기를 잃었다면 자신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어차피 쓰지 못할 힘이었으니까요. 내력과 영기가 완전히 분리되면 내력을 일주천 해 보세요. 그럼 마치 선단을 먹은 것처럼, 내력이 영기를 흡수하는 게 느껴질 거예요.”
“내력을 일주천 하면 영기를 흡수한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래요. 나는 서른여섯 번 동안 영기를 흡수할 수 있었어요.”
“아!”
심통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영기를 그냥 잃게 되는 줄 알았는데 내력으로 흡수할 수 있다니!
하지만 계속된 남궁연의 말에 그의 얼굴은 다시 일그러졌다.
“내가 흡수한 영기는 일 할에 불과했어요.”
“이, 일 할요? 그럼 구 할이나 잃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심통은 기가 막혔다.
열에 아홉을 잃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심통과 달리 남궁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영기의 일 할이 얼마나 큰지는 심 노인도 곧 알게 될 거예요.”
“끙!”
심통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 일 할의 힘을 체감하지 못한 그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가모님. 그 사십구일이라는 건 언제까지입니까?”
“아마도 우리가 풍지산에 돌아온 날을 시작으로 하지 않을까요?”
“그럼…….”
심통은 머릿속으로 날짜를 꼽아 보았다.
정확히는 따져 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스무 날은 지난 것 같았다.
날짜를 계산하고 있는 그에게 남궁연이 물었다.
“영기와 내력이 분리됐나요?”
“며칠 전부터 두 기운이 따로 노는 것 같더니 오늘은 물과 기름처럼 되었습니다. 영기를 움직여 보았지만 너무 느려 포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력을 일주천 해 보세요. 그럼 영기를 흡수할 거예요.”
남궁연의 말에 심통은 지체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연적하와 남궁연의 앞이니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라 할 수 있었다.
반신반의한 가운데 일주천이 끝났다.
내력이 몸을 한 바퀴 돌고 단전에 돌아온 순간 그는 벌떡 일어설 뻔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말처럼 내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약이나 선단을 먹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런 일주천을 서른여섯 번 하면 천하십대고수도 발밑에 둘 수 있으리라.
용기백배해진 그는 계속해서 일주천을 해 나갔다.
두 번, 세 번, 네 번……. 열여덟 번.
열아홉 번째 일주천을 마치고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력에 변화가 없었다.
서른여섯 번이나 한 남궁연과 달리 자신은 열여덟 번이 끝인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을 다시 도전했지만 내력은 더 늘어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입맛을 다실 때다.
산처럼 쌓여 있던 영기가 미처 잡을 틈도 없이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이런 십팔.’
탄식하던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연적하가 바로 물었다.
“그래서 일주천은 몇 번이나 했어?”
“열여덟 번 했습니다.”
“툭하면 십팔, 십팔 하더니 일주천도 딱 그만큼 했네?”
“놀리지 마십쇼.”
빙글빙글 웃던 연적하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천하십대고수의 뒤꿈치는 따라잡겠는데 뭐.”
심통이 쓴웃음을 지었다.
서너 번만 더 성공했어도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 노인. 축하해요. 이제는 정말 천하를 오시할 수 있게 됐네요.”
남궁연의 말에 심통은 아쉬움을 훌훌 털어 냈다.
과거 구밀복검이라 불리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가모님. 공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공자님이 구해 주지 않았다면 구주에서 말라 죽었을 겁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세 사람이 구주에서의 추억에 잠겨 있을 때다.
별궁 밖에서 자운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 대협, 안에 계십니까?”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난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무슨 일이오?”
“연 대협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운산인이 애매한 눈으로 구천노도 심통을 올려다보았다.
가급적 연적하에게 직접 알리고 싶었지만 심통을 통해도 상관없었다.
심통이 머뭇거릴 때 연적하가 그의 겨드랑이 아래로 상체를 들이밀고 말했다.
“무슨 일인데요?”
“도지휘사의 군사 오천오백여 명이 산문 밖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도지휘사가 왔다고요?”
“예, 산문 밖 군영에 도지휘사의 깃발이 걸려 있습니다. 군문 출신의 제자가 한 말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도지휘사에게서 별다른 말은 없었고요?”
“예.”
“도사님들의 외부 출입은요? 지금도 자유로운가요?”
“그게 좀 이상합니다. 도지휘사가 온 뒤로 청성파 도사들의 출입도 금지되었습니다. 대화로 풀어갈 생각이 없는 것일까요?”
자운산인은 도지휘사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대가 연적하와 같은 고수라면 응당 대화부터 시도해야 하는 까닭이다.
연적하는 별말 없이 눈만 끔뻑거렸다.
대답을 기다리던 자운산인은 아쉽지만 그냥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빈도는 산문 밖의 상황을 살피러 가 보겠습니다.”
자운산인은 꾸벅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린 뒤 왔던 길을 돌아갔다.
다시 아기 옆으로 돌아온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물었다.
“누님도 들었죠? 도지휘사가 왜 그러는 것 같아요?”
“금의위 북진무사와 정천호가 다쳤으니 가만두지 않겠다는 걸 테지. 고관들이 무림인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너도 알잖아.”
“꼬운 눈?”
“훗! 그래. 감히 무림인이 역적의 편에 서서 고관을 상하게 했는데 그냥 넘어가 주겠니?”
멀찍이서 듣고 있던 심통이 한마디 했다.
“위소(衛所, 천호소)의 군사야 걱정할 게 없지만, 이러다가 금군이 나서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조금 신경이 쓰이네요. 도지휘사가 파견됐다면 황실에 알려졌다는 건데. 도지휘사가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니.”
그건 황제의 뜻이 그렇다는 소리다.
여기서 위소의 군사까지 물리치면 그때는 정말 금군이 동원될 것이다.
‘어쩌지? 금군이 동원될 정도로 일이 커지면 혈족들까지 피해를 입게 될 텐데.’
자신들이야 어찌어찌 피한다 해도 남궁세가와 연적하의 배다른 형제들은 몰살을 당하고 말 게다.
심통과 남궁연이 나중 일을 걱정할 때 연적하가 태평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매 아래 장사 없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