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07
807회. 일석삼조(一石三鳥)
평화가 지속되면 위기의 정도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한소양이 그랬다.
예컨대 그녀도 청성파 산문 앞까지 천호소 군사들이 쳐들어왔음을 알았다.
하지만 천호소의 공격은 화포 몇 발이 청성파 외곽에 떨어지는 것으로 끝났다.
그 뒤 도지휘사까지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청성파가 피해를 입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화포 소리만 요란했지 청성파 도사들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위(一衛)의 군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간과했다.
‘혼자 아등바등 살면 뭐해. 죽으면 죽는 거지’라고 생각한 배경에는 그런 낙관이 깔려 있었다.
청성파 도사들의 눈을 피해 나가는 것은 쉬웠다.
그들은 외부를 경계했지 안에서 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호소 군사들은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도지휘사가 중상까지 입은 전투인지라 그들은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삼중, 사중으로 친 인의 장막을 낙성문의 제자가 은밀하게 빠져나가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결국 한소양은 청성파를 벗어난 지 일다경(약 20분)이 되기도 전에 천호소 군사들 손에 잡히고 말았다.
천호소 군사들은 역적 한소양을 곧바로 금의위에 인계했다.
북진무사까지 당한 금의위는 화풀이라도 하듯 잔혹하게 한소양을 다뤘다.
손톱 발톱을 뽑는 것은 물론 팔과 다리를 인두로 지지기도 했다.
청성산 인근 움막.
금의위 위사 여수담이 무덤덤한 얼굴로 화로에 꽂혀 있던 인두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의자에 묶여 있는 한소양의 얼굴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한소양. 너의 죄는 실로 가볍지 않다.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싶다면 연적하와의 관계를 대라.”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아무 관계도 아닌데 너와 같은 역적을 보살펴 준다? 북진무사와 도지휘사에게 중상을 입히면서까지? 누굴 바보로 아느냐?”
말과 함께 여수담이 한소양의 다리 위에 인두를 내려놓았다.
메케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한소양이 이를 갈며 말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예요! 만약 내가 연 대협의 여자라면 당신은 온전할 것 같아요?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걸 아니까! 나한테 이러는 거잖아요!”
그제야 여수담은 그녀의 다리에서 인두를 슬쩍 뗐다.
“처음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을 하는군. 진즉에 그렇게 나오지 그랬느냐?”
“내가 연 대협과 아무 관계도 없다는 거 알면서 나한테 왜 이러는데요?”
“그야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누가 아느냐? 우리가 놓친 것이 있을지.”
“없어요! 나도 모르는 뭔가가 있다면 당신들은 온전히 죽지 못할 거예요!”
“…….”
여수담이 애매한 눈으로 한소양을 보았다.
이 정도로 털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정말 없는 모양이다.
고문을 가하면 사람들은 티끌만 한 인연도 과장해서 말하기 마련.
하지만 한소양과 연적하의 사이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허! 거참! 정말 일면식도 없던 여자를 보호해 줬다니.’
그는 역적으로 몰리게 될 걸 뻔히 알면서 왜 이 여자를 보호했을까?
그의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수담은 인두를 화로에 꽂아 넣은 뒤 손을 탈탈 털며 돌아섰다.
여수담은 바로 상관인 조명화 소기를 찾아갔다.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한소양을 고문해 알아낸 바를 보고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묵묵히 듣고 있던 조명화가 말했다.
“남진에서 북진의 뒤를 캐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연적하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연적하가 대역죄인이 된다면 남진의 관계자들도 여럿 숙청될 테니까.”
“하오시면…….”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한소양을 정리해라.”
“압송이 아니라 정리입니까?”
여수담이 조명화 소기를 힐끔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정리란 죽여서 묻으라는 소리다.
사람들은 금의위에 들어가면 사람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죄인들은 금의위의 뇌옥에 갇혀 있다.
물론 그러다가 적당한 날에 참수를 시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판결이 나기도 전에 죄인을 죽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여수담이 슬쩍 물었다.
“남진의 압박이 심합니까?”
그는 일개 무가의 여식인 한소양을 죽여 묻어야 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인지 궁금했다.
“실권을 잡고 있는 남진무사들의 목이 달린 일이니까. 그들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겠느냐. 반격의 빌미를 남겨 둘 수는 없지.”
“반격이라니요? 연적하가 이미 북진무사와 도지휘사까지 상하게 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윗분들은 대의명분을 따지니까. 연적하가 한소양과 무관하다는 게 드러나면 우리 북진에 좋을 일이 없다. 북진이 연적하를 압박해서 일이 커졌다는 동정론이 일어나면, 북진이 온전히 그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남진의 노림수가 그것이라는 북진무사님의 말씀이 계셨다.”
“아!”
“그러니 외부에서 알지 못하게 정리해라.”
“예!”
여수담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황실과 북진의 안녕을 위해서 역적 한소양은 죽는 게 맞았다.
움막으로 돌아간 여수담은 즉시 한소양을 죽인 후 움막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원인 불명의 화재로 죄인이 불에 타 죽었다’고 조명화 소기에게 보고했다.
그 소식은 하시진 천호를 통해 위지휘사 류이근에게까지 전해졌다.
류이근이 애매한 눈으로 하시진을 보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북진에서 한소양에게 손을 쓴 것은 아니오?”
“그럴 리가요. 한소양이 역적인 것은 사실이나, 우리 북진은 판결이 나지 않은 죄인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촛불이 쓰러져 화재가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촛불이라. 알겠소이다. 도지휘사께도 그리 보고 올리리다.”
“도지휘사님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다행히 앞 이빨이 여섯 개 부러진 것 외에는 크게 다친 곳은 없소이다.”
“허어! 북진무사에 이어 도지휘사의 몸에도 손을 대다니……. 연적하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군요. 그나저나 도지휘사께서 지휘가 가능하기는 합니까?”
“이미 세 개의 위(衛)에 병부(兵符)를 보내셨소. 이만 이천의 군사가 모이면 청성파를 가루로 만들 것이라 하셨소.”
“허면 도합 네 개 위가 동원되는 거군요. 쯧쯧! 역적 하나를 잡겠다고 이게 무슨 짓인지.”
하시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만 이천의 군사가 방귀만 뀌어도 청성파는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한소양으로 시작된 일이 이제야 마무리되겠구나.’
그는 이번에야말로 연적하도 끝장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가 천외천의 무인이라 해도 내력에는 한계가 있다.
무림인이 군문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물량과 머릿수로 밀면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지쳐 쓰러지기 마련이다.
네 개 위면 화포가 백여 문에 궁병은 천이백이나 된다.
그 정도 군세면 청성파를 가루로 만드는 데 채 일각(15분)이 걸리지 않을 게다.
***
북직례성.
황성.
깊은 밤, 넓고 넓은 황궁의 구중심 처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황제와 금의위 지휘사 모양이다.
둘밖에 없음에도 황제는 불안한 눈으로 연신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런 황제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던 모양이 말했다.
“폐하.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이곳 천추정(千秋停)의 네 개 기둥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인 척사신주(斥邪神珠)를 숨겨 두었습니다. 제아무리 저들이 신이라 해도 이곳이라면 쉽게 엿보지 못할 것입니다.”
“쉽게 엿보지 못한다는 것은 엿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황제의 지적에 모양이 고개를 저었다.
“소신이 조심하다 보니 말에 실수를 했사옵니다. 세상에 완전한 것이 없어 ‘쉽게’라고 했을 뿐이니 안심하소서. 저들은 엿보지 못합니다.”
“그러한가. 경의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되는구먼. 허나 경도 너무 법보(法寶)를 믿지 마시게. 저들은 그 법보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자들이니.”
“명심하겠사옵니다.”
“청성파의 일은 어찌 되었는가?”
“북진이 열심히 수를 쓰고 있사오니 조만간 결과가 드러날 것입니다.”
“도지휘사가 많이 다쳤다지?”
“이빨이 여러 개 부러졌을 뿐 뼈와 힘줄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옵니다.”
“북진무사 때와 달라졌군.”
“북진무사는 별궁의 가족을 노렸기에 화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사경이었던가?”
“그러하옵니다.”
“보기와 달리 꼼수를 쓰는 사람이었군. 금의위 북진무사가 가족을 노리다니.”
“소신은 병법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법이라. 쯧! 마음에 들지 않는 병법이야.”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만, 소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사옵니다.”
“도지휘사처럼 힘으로 몰아붙일 생각을 해야지. 가족은 조금 치졸했어.”
“금의위 방식대로 하다 보니 그리 된 것 같사옵니다. 차후에는 좀 더 대장부다운 방법으로 하라 이르겠사옵니다.”
“금의위에 다음 기회가 있겠나. 네 개 위를 동원했다면 끝이 보이겠지.”
황제가 씁쓸한 표정으로 모양을 보았다.
모양이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폐하, 포기하지 마옵소서. 비록 연적하의 나이가 어리지만, 그는 단신으로 유명교와 맞서 싸우던 기인이옵니다.”
“그가 기인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의 적은 금군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신이라네. 기인이라고 해 봐야 결국 사람이 아니겠는가.”
“…….”
그 말에는 모양도 차마 답하지 못했다.
황제의 말처럼 인간은 신들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다.
천추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서 돌연 구슬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각-!
깜짝 놀란 황제와 모양이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푸스스-.
기둥 한 지점이 허물어지며 회색 가루가 흘러내렸다.
순간 모양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척사신주가…….”
저 가루는 분명 천추정의 기둥에 숨겨 놓은 척사신주였다.
아무래도 신들이 척사신주를 감지했던 모양이다.
곧이어 나머지 세 개의 기둥에서 연속으로 예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빠각! 빠각! 빠각-!
깜짝 놀란 황제는 체통을 잊고 살 맞은 멧돼지처럼 전각 밖으로 튀어 달아났다.
모양도 허겁지겁 천추정을 떠났다.
여인의 손톱 끝 같은 초승달이 텅 빈 천추정 위로 무심하게 떠올랐다.
***
사천성.
청성산.
삼위(三衛)의 군사들이 합류하기 전, 위지휘사 류이근은 별궁으로 화룡대 총기 소삼종을 보냈다.
대내외적인 명분은 ‘한소양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통보하기 위함이었다.
군문이 그녀의 죽음에 연관되지 않았음과 그것이 단순한 사고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는 화룡대 총기 소삼종에게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소식을 전하면서 별궁의 정확한 위치와 거리를 재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절륜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노림수였다.
별궁.
화룡대의 총기 소삼종은 연적하와 남궁연 앞에서 간결하게 준비한 말을 읊었다.
“……하여 한소양이 움막과 함께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사족입니다만, 불을 끄는 과정에 천호소 군사 셋이 다쳤습니다. 위지휘사께서 연 장주님에게 이와 같은 사정을 알리라 하셨습니다.”
뜻밖의 비보에 연적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걸 저 무관에게 쏟아 내고 싶지는 않았다.